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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설원입니다-124화 (124/224)

00124 감내하는 법 =========================

"으, 아흑!"

이;선준이 나를 침대에 밀어 넘어뜨린다. 대리운전으로 들어온 인근의 모텔에서, 들어오기 무섭게 이선준이 내 위로 올라탄다.

나는 불안한 듯 이선준을 바라보며 작게 말한다.

"씨, 씻을래…."

"귀찮아. 급해."

"으읏…. 읍…. 아읏…."

이선준이 내 입술을 덮고 나를 탐한다. 담배냄새와 술냄새가 섞인 지독한 냄새다.

하지만 나는 최대한 받아내려 노력한다. 혀를 핥고, 서로의 입술을 핥아댄다.

불 꺼진 모텔에서, 이선준이 옷을 벗는다. 내 옷도 벗긴다

"약속해."

"뭘?"

"나랑만 해."

그 천박한 말에, 나는 구역질이 날 것 같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인다

"응, 너랑만…. 너랑만 할게."

"너 힘들거야. 응? 지금부터…. 엄청 힘들거야. 지금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응…. 하고싶은 대로 해."

네가 내 남자가 되길 바라는게 아니야. 내가 네 소유물이 되길 원한다면 그렇게 해.

내가 너를 이런 놈으로 만들어 버렸으니까 그건 내 책임이야.

나에게서 뭔가 가져갈 수 있다면 그렇게 해. 내가 줄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줄 테니까.

"너…. 여전히 예쁘다."

이선준이 내 얼굴을 쓰다듬는다.

사랑받는 기분이 전혀 안 든다. 그저 괴로울 뿐이다. 이런 건 사랑이 아니야.

그저 얽매인 것일 뿐이야. 이선준이 나에게, 내가 이선준에게 얽매였을 뿐이야.

이선준은 나를 물건처럼 내려다보며 말한다.

"내 소유물이야 너는."

이선준의 이런 종류의 말을 굉장히 싫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그것에 분노하고 화를 낼 이유가 없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응, 나는 네 거야."

"그렇게 대답할 줄은 몰랐는데?"

"응, 네 마음대로 해."

"언제까지?"

"죽을 때까지."

내가 결국 못 견디고 자살해버릴 때까지. 그래, 나는 네 거야.

알아서 해. 어떻게든 해. 그렇게 해서 네가 편해진다면.

아니, 편해질리가 없지.

우리 결국 다시 만나버렸잖아.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더 상처입히게 될거야. 우리는 둘 다 너무 망가져 버렸어.

서로 상처를 핥아주지는 못할망정, 이렇게 서로를 다시 할퀴고 있잖아.

이선준이 내 목덜미를 핥아 내려간다. 온몸이 찌릿찌릿해진다. 사랑받는 느낌과 성적 흥분은 별개다.

모멸감이 드는데도, 나는 흥분하고 있다. 그 때의 밤과 같아. 나는 박헌영과 있을때와는 다르게 울지 않는다.

당연히 울지 않을 수 밖에. 그 때는 그 날의 밤과 너무도 달라서 울었던거야.

어무 따뜻하게 사랑받았던 그 때와 과거가 너무나 이질적이라서 슬펐던 거야.

하지만 이건 아니야. 이건 그저 그 날 밤의 연장선이야. 굳이 그 때를 생각하며 울 필요도 없어.

지금 이 상황이 더 엿 같고 절망적이니까.

그래, 행복한 미래 같은 건 없어. 하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해.

내가 너를 망가뜨렸으니까. 나는 네 곁에 있을거야. 그래도 나는 사람이니까.

사람인 척 하고 살아왔으니까 그 정도는 내가 해야겠지.

"으흑! 아, 아파!"

이선준이 유두를 거칠게 깨문다.

아파, 아프다고! 내가 비명을 지르건 말건 이선준은 내 몸을 주무른다.

가슴을 너무 심하게 틀어 쥐어서 유두가 빳빳하게 선다.

"아악! 아, 아파, 아파!"

이건 폭력에 지나지 않아.

'아읏! 으…. 아파…. 읏…."

내 몸을 손가락과 혀가 마구 누비고 다닌다. 질 속에 손가락이 무례하게 파고든다.

아직 제대로 젖지 않았는데 거칠게 쑤셔댄다.

"응, 읏, 아…. 앗. 아, 안 돼에…. 이상…. 이상해. 진짜…. 싫어…. 싫어…. 읏, 아!"

뭔가 나와. 기분나빠. 정말 기분 나쁘고 무서워.

"으으으으! 흐으…. 아…."

나는 한 번의 절정을 느끼고 몸을 축 늘어뜨린다. 하지만 이선준은 내 몸 위에 자신의 몸을 겹친다.

일 년 만에, 나는 그 때의 원룸과 다를 바 없는 어둑한 모텔 안에서. 이선준과 다시 섹스한다.

"앗,아…. 앗, 안돼…. 싫…어… 살살…"

"너 여전히 따듯하네. 뜨거워."

이선준이 내 머리를 끌어안고 허리를 움직인다. 자궁 끝에 닿을 때마다 나는 헛바람 새는 소리를 낸다.

"힛. 아, 응…. 으응… 앗, 윽…."

"아무데도 못 가."

"응, 읏… 으… 안…가…"

이선준은 집착하듯 내 몸에 매달린다. 하나도 기분 안 좋아. 나는 운다. 이선준이 내 위에서 짐승처럼 날뛴다.

내가 바란 건 고작 이 정도였나. 내가 원한 건 고작 이만큼이었나.

"싫어어어…."

나는 늘어지듯 그런 소릴 내지만, 이선준은 제멋대로 움직이기 바쁘다.

우리느 어둑한 모텔 방에서 일어났다. 이선준은 내게 사정한 뒤 쓰러져 잤다.

나도 지쳐서 넋이 나가듯 잠들어 버렸다.

"으응…."

내가 움직이자 이선준이 내 등을 끌어안는다.

"일어났냐."

"어? 아…. 응."

갈라진 목소리가 들려온다.

"설원."

"응."

"아무데도 안 간다고 약속해."

취해서 한 소리는 아니었구나. 절망적이다. 차라리 하룻밤의 타락으로 잊어버리지.

이선준은 그만큼 내게 절박했던 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해놓고, 그래도 내가 필요한건가.

그래, 나도 그래, 사랑을 구걸하지 않아.

그냥 네가 나를 편하게 섹스할 수 있는 상대로 여긴다 해도,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

"약속할게."

"제대로 말해."

"아무데도 안 가. 네 옆에 있을게."

"그래."

이선준이 더 강하게 나를 끌어안는다. 내 몸을 돌리고 입술을 맞추려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입맞춤을 피한다. 이선준이 짜증난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다

"뭘 하든…. 이는 좀 닦고 하자."

" 어, 아…. 그래."

이선준이 일어나서 화장실로 들어간다. 옷 하나 안 걸친 채다.

말랐다. 예전에는 좀 다부진 체격이었는데, 이렇게 보니까 확실히 말랐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도저히 짐작도 안 간다. 죽으려고 했다고?

마음이 아파진다.

"왜 울어?"

이선준이 치약을 짠 칫솔을 내게 디밀며 말한다.

"너가 불쌍해서."

"그건 또 무슨 기만이냐."

네가 이렇게 못난 사람이 된 게 내 탓이라고 생각하니까…. 슬퍼."

대놓고 시비를 걸어도 이선준은 피식 웃기만 한다.

"네 수준에 딱 맞춘건데?"

"….그래?"

나는 칫솔을 입 안에 넣고 이를 닦는다. 이불로 몸을 가리고 있다. 이선준은 가릴 생각 같은건 안 한다.

서로 이를 닦고 나서, 우리는 다시 키스한다.

어젯밤의 섹스가 술에 취해서 한 실수가 아니라고 말하는 듯, 이선준은 나를 탐한다.

나를 원한다. 몇 번이고 하고싶었다는 것처럼, 나를 찍어누르듯 범한다.

"으읏! 앗! 악! 아, 아파! 으! 그, 그만! 힉! 으응! 으으으응!"

이건 학대다. 이건 섹스가 아니야. 이선준은 내가 지르는 비명을 즐기고 있다.

나를 괴롭히는 걸 즐긴다. 그냥 나를 아프게 하려는 거야.

"그, 마, 안, 윽. 앗. 아,안 돼에…. 윽!"

"그런데…. 너, 진짜, 핑크색이네."

"시, 싫, 어, 그, 그 힛!"

이선준은 내 다리를 들어올린 채 벌려서 내 밑을 조롱하듯 쳐다본다.

싫다. 싫다 수이침밖에 들지 않아. 이런 건 정말 싫어 너무 수치스럽고 혐오스러워.

"그, 그런 소리…. 싫, 어…."

"부끄러워?"

살갗이 부딪히는 소리마저 수치스럽다. 이선준은 나를 찍어 누른다.

나는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이지만, 너무 아프다. 괴롭다. 내 마음이 아니라 몬까지 망가뜨리려는 것 같다.

이선준이 내 잎 속에 곤다락을 집어 넣는다.

"우우, 우, 우…. 으우…."

이선준은 사디스트 같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를 괴롭히는 것을 즐긴다. 내가 아파서 울고, 그래도 신음을 내는 것을 즐긴다.

사랑 같은 건 어디에도 없다.

나를 배려하고 아껴주고, 섬세하게 돌봐주던 이선준은 이제 없다.

그저 나를 괴롭게 하고, 아프게 하고, 상처입히는 것을 원하는 사람만 남아있다.

내게 병적으로 집착하는 사람만 남아있다.

이선준은 사정한 뒤 움찔거리며 몸을 떤다. 그래도 콘돔을 끼고 하는 점은 다행이다.

이 선준은 내 몸 위에 얼굴을 묻는다.

"……."

이선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나는 진이 다 빠진 팔을 들어 이선준의 머리를 끌어 안고 있다.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사실 정도는 안다.

하지만, 혹시나. 우리가 이런 식으로 오래 지내게 된다면, 서로를 신뢰하고,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배신감이나 모멸감 같은 게 시간에 묻혀 점차 사라진다면, 우리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섹스한 후에 이선준을 끌어안고 있다. 나를 괴롭히고 학대해도 좋아.

얼마든지 모욕해도 좋아. 나는 말했던 것처럼 그래.

나는 아직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있다.

"사랑해."

이선준은 대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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