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3 감내하는 법 =========================
이선준은 내가 살아있는 걸 보는 그 순간부터, 나에 대한 모든 애정과 죄책감을 내버린 것 같다. 나를 증오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다. 그렇게나 힘들었던 거야?
“나가자.”
이선준은 갑자기 일어나 내 팔을 잡아끈다. 나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이선준의 손에 이끌려 간다. 무섭다.
어디로 가려는거야? 어느 새 날이 저물고 있다.
이선준이 나를 데려간 곳은 대전 시내의 한 초밥집이다. 조금 무서웠지만, 이선준이 네비게이션 위치를 알려준 덕에 각자 차를 타고 도착했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초밥집은 내가 대전에 살면서도 못 가본 곳이다.
“뭐 이렇게 늦냐?”
“너무 빠르잖아….”
범퍼가 사이좋게 찌그러진 차가 나란히 주차되어 있다.
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나는 약간 겁이 난다. 두려워져서 이선준을 쳐다본다. 하지만 아무것도 물을 수 없다.
이선준은 능숙하게 메뉴를 주문한다. 평소에 먹지도 못했던 비싼 사케도 주문한다. 이선준은 이제 대학생이 아니다.
“아무데도 가지 마라 이제.”
“…….”
“내 옆에 있어.”
“내가…. 왜 그래야 해?”
“네가 이기적이었던 것처럼, 나도 이제 이기적으로 행동할거야. 너도 일 년 네 멋대로 했으니까. 나도 일 년 정도는 내 멋대로 해도 되는 거 아니야?”
“나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잖아….”
“귀찮은 얘기는 술 좀 마시고 나서 하자.”
이선준은 내 말을 딱 잘라 끊어버린다. 귀찮은 얘기라니…. 무섭다.
메뉴가 나오고, 술이 나온다. 이선준이 술을 따라준다. 잔을 내밀고, 나는 그걸 멍하니 쳐다본다.
어째서,
왜 이렇게 되어야만 했을까.
왜 너는 이렇게 되어버린거야?
내가 그렇게나 나쁜 짓을 한거였구나….
나는 독배를 마시듯 술을 마신다. 초밥은 맛있었지만, 그 이상의 감탄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큰 사케 병이 전부 비워질 때까지 우리는 묵묵히 술을 마셨다. 간간히 얘기도 나눴다.
“이 기만자 역시 어디 안 가네…. 어용잡지사라고?”
“응…. 뭐 그래…. 너는?”
“나야 뭐…. 후, 소설 쓰고…. 그랬지 뭐.”
당선된 거 축하한다는 말을 못 했다. 나는 그걸 어쩐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고 있다. 타이밍을 놓쳐버려서 알면서도 아는 척을 못 한다. 우리는 실없는 얘기들을 나눈다. 나는 박헌영이 나를 찾아낸 이야기를 어쩐지 변명처럼 늘어놓는다.
“그러니까 오해야…. 정말이야….”
“아, 아, 아, 알았어. 뭘 그러냐…. 꼭 켕기는 거라도 있는 사람처럼.”
나는 박헌영과 내가 잘뻔했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정말로 켕겨서 그랬다. 이선준이 그걸 알게 되는게 싫었다.
“너 그 사진…. 왜 가져갔냐.”
“……그냥.”
“그래.”
이선준은 그렇게 말하고 술을 마신다. 한 병이 다 비워졌을 때, 나도 이선준도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급하게 마셨다. 예전처럼 진지한 얘기는 한 방울도 오가지 않았다. 우리는 급한 사람들처럼 술잔을 비워댔다.
“나가자.”
“아, 응….”
이선준은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서로 조금씩 비틀거리면서 바깥으로 나온다. 이선준이 담배를 피운다.
“나…. 잠깐….”
“어, 그래.”
이선준을 내버려둔 채 나는 잠깐 주차장에 다녀온다. 나는 어설프게 손을 뒤로 숨기고, 담배를 태우는 이선준에게 다가간다. 얼굴이 붉어진 이선준과 내 눈이 마주친다.
“너, 그거 뭐야?”
나는 다 시들고 말라빠진 꽃다발을 이선준에게 내민다.
“당선된 거…. 축하해….”
“…알고 있었나보네….”
이선준은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내가 건넨 꽃다발을 받는다. 이선준은 내가 건넨 꽃다발을 보며, 그 시들고 말라빠진, 꽃잎도 떨어져서 볼품없는 꽃다발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꽃이 왜…. 이렇게 시들었냐.”
“갔었어…. 그런데 못 주겠어서…. 도저히 못 주겠어서…. 그냥 나와버렸어…. 헤….”
이선준은 정신이 번쩍 든 것 같은 표정으로,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꽃다발을 들고 웃는다. 저 미소는, 어쩐지 기뻐서 웃는 게 아닌 것 같다. 나는 목구멍으로 솟아나오는 울음을 눌러 참으며 천천히 말한다.
“나…. 우리…. 부탁…. 윽…. 부탁 들어주기로 했잖아…. 기억 나?”
“어, 어…. 뭐. 말해.”
눈물이 터져나온다. 이선준은 나를 쳐다보고 있다. 울면 안 돼. 울기 싫어. 이선준은 우는 걸 정말 싫어하니까. 나는 입술을 깨물고, 심호흡을 한 뒤에 말한다.
“용서해줘…. 내가 잘못했어…. 나는…. 나는 정말 너 사랑해…. 단 한 순간도, 한 순간도 생각하지 않은 적 없었어…. 무섭게 말하지 마, 혼내듯 쳐다보지 마…. 너무 힘들어…. 너무 아파…. 내가 다 잘못했어…. 용서해 줘…. 부탁이야….”
내 말이 끝나자 이선준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하지만 이선준은 나를 보며 웃는다. 너무나 명백하게 의도가 전해지는 웃음이다.
비웃음이다.
“너, 어린애냐?”
“어?”
이선준은 품평이라도 하듯 망가진 꽃다발을 훑어본다. 멸시하고, 비웃는 것 같은 태도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그렇게 차가운 태도인거야? 내가 또 뭔가 잘못한거야?
“순정파네 여전히.”
“아….”
약속은 약속이다. 하지만 그런 약속, 지키지 않는다 해도 누구도 뭐라하지 않는다. 이선준은 그래도 꽃다발을 버리지는 않는다. 이선준이 아니야. 내가 알던 그 사람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어. 이선준은 마치 이 정도면 만족한다는 듯 웃는다.
“그래도, 알고 있긴 있었네, 직접 오려고도 했다니…. 그래. 용서해 줄게.”
하지만 그건 용서한 사람의 표정이 아니야. 마치 애완동물의 재롱이라도 본 것 같은 사람의 표정이잖아.
“너 방금 좀 귀여웠으니까. 이 정도면 충분해. 감성 그만 팔아도 돼.”
누구야.
“너…. 너 누구야? 나, 나 몰라…. 나…. 나는 너 같은 사람 몰라…. 너 누구야? 다른 사람이지? 아니지?”
나는 뒷걸음질치며 묻는다. 하지만 이선준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웃는다.
“당연히 나지.”
이선준은 내가 모르는 표정으로 웃는다. 처음 보는 표정이다. 저렇게 웃을 줄 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저게 어떤 감정에서 비롯하는 표정인지도 모르겠어.
“아, 아….”
“네가 나 때문에 죽어버렸다고 생각해서, 도저히 나를 용서할 수가 없어서….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당연히 연락을 했을텐데 전혀 하지 않아서…. 당연히 죽었다고 생각했지 나는. 하, 하하하! 진짜…. 진짜 웃기지 않아? 너도 네 멋대로 판단한 만큼 나도 내 멋대로 판단한거야. 그래서, 도저히 살 이유가 없더라고, 내가 가장 소중한 친구 설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설원이 나 때문에 죽었는데.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어? 어디에 있지?”
이선준은 미친 사람처럼 웃는다.
“그래서, 죽으려고 했어. 몇 번이나. 몇 번이고…. 그런데 말이야. 사람이라는게 그렇게 쉽게 안 죽더라고.”
이선준의 손목에 흉터가 몇 보인다. 이선준은 못 견디겠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한다.
“…….”
“그런데 걔가 오늘 내 차를 들이받았네?”
“…….”
“너는 내가 이상하냐?”
“…….”
“이래도 내가 이선준이 아니냐?”
“…….”
“네가 이렇게 만든 내가 아직도 이상해?”
이선준은 망가졌다. 오직 나 하나 때문에. 비틀리고 뒤틀려서, 괴물이 되어버렸다.
그렇게나 당당하고, 우직하고, 자기 의견을 옳은 방향으로 관철할 줄 알던 사람이 이렇게 되어버렸다. 전부 나 하나 때문이다. 내가 버리고 떠나가버린 탓에…. 이선준이 망가져 버렸다. 지금의 이선준은 내가 만들었다.
이선준이 내게 다가온다. 내게 얼굴을 가까이 밀어온다.
그래, 나는 책임을 져야만 해. 그게 어떤 방식이든 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