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1 감내하는 법 =========================
나는 사과할 기회가 없어. 이선준이 내게 사과할 기회를 준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그러니까 나는, 내가 하지 못한 걸 너에게 하게 해줄게. 설훈은 나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떨군다.
“미안해….”
구체적인 사과와 용서를 구하길 바라지 않는다. 이거면 된건가? 그래, 그럴거야 아마.
“미안해…. 잘못했어….”
녀석은 곧 운다. 주변 사람이 쳐다보든 말든, 설훈은 운다. 나도 어쩐지 눈가가 뜨거워진다. 사과와 용서라는 건 사실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다만 거기에 이르기까지가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 뿐이다.
용서를 비는 것도, 사과를 하는 것도, 그런 기회를 주는 것도. 말을 꺼내기 전까지가 너무 어려울 뿐이다.
서로에게 닿고, 이 말을 꺼내기까지 일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설훈을 마주하기까지, 마음을 먹기까지가 일 년이다. 말하고, 용서하는 것까지 걸리는 시간은 겨우 삼십 초에 불과하다. 이렇게나 쉽다. 이렇게나 간단하다. 하지만 이 간단한 과정을 위해, 다시 얼굴을 마주보기 위해서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설훈을 보며 웃는다.
“그래, 용서해줄게.”
“윽….”
설훈은 운다. 너무 오래 울어서 사람들이 다 쳐다봐도 부끄럽다는 생각은 안 든다. 울면 안 된다. 나는 차오르는 눈물을 찍어 감춘다.
이렇게나 쉽다. 이렇게나 어렵다. 하룻밤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것을 사과하기까지 일 년이 걸렸고, 사과에서 용서까지 삼십 초도 걸리지 않았다.
사과하는 것도, 용서하는 것도 어렵다. 하지만 그래도 해냈다.
설훈을 집에 데려다 주고, 나는 잠시 차에 앉아있는다. 잠깐 생각을 하고 싶다. 대전에 와서 그런지, 부쩍 서준영 생각이 난다.
잘 지내고 있을까?
물론, 서준영을 만나고 싶지는 않다. 설훈과 서준영의 실수 지점은 질적으로 다르다. 서준영은 나를 때렸다. 술에 취해서 때리고, 맨정신인 채로도 때렸다.
하지만 분노는 이미 삭아서 없어져 버렸다. 그저 못난 녀석이라는 생각만 남아있다.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굳이 알고 싶지도 않다. 녀석도 졸업은 했으려나? 못 했을 수도 있겠다. 그 때 만난다던 누나랑은 계속 만날까?
머릿속이 복잡하다. 서준영을 만나는 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 더 고민할 시간이 필요해. 일 년쯤 더 지나면 다시 연락할 용기가 생길지도 몰라.
그 때까지는 만날 생각은 하지 않을래. 아직도 그건 나한테 너무 큰 상처야. 차에서 나와 집으로 들어가려다가 문득 잊은 게 떠오른다.
아버지가 메로나 사오라고 했는데. 굳이 얘기까지 했으니 안 사가는 것도 좀 그렇다. 나는 다시 차에 타서 시동을 건다. 편의점이 근처에 있으니까. 조금만 가면 된다. 골목길을 죽 나가서 운전을 한다. 여기서 오른쪽이었나?
하도 오랜만에 와서 집 근처 슈퍼도 까먹다니, 나 치매 온 거 아냐?
오른쪽인가 직진인가 갈팡길팡하다가 앞을 보면서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는다. 잠깐 정신을 놨다.
그게 치명적인 실수였다.
-쿵!
“악!”
제일 처음 든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아프고 뭐고가 문제가 아니다.
좆됐다.
진짜 좆됐다. 지금까지 겪었던 어떤 상황보다도 더욱 좆됐다.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이거 완전 무조건 내 잘못이다.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좁은 골목길에서 우회전한 내가 잘못했다. 세게 박지는 않았지만 일단 박은 건 박은거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상대 차의 차종을 본다. 그리고….
씨팔
아우디
씨발!
어떡해? 어떡해? 나 진짜 어떡해? 눈물 날 것 같아. 진짜 어떡해야 돼? 나는 다시 고개를 처박고 벌벌 떤다. 죽은 척이라도 해야 하나? 애교라도 부려야 하나? 아우디라니, 엄마, 엄마 나 어떡해 외제차 박았어.
아, 아빠 카센터. 우리 아부지 카센터 하잖아. 무상수리 해준다고 하면 안되나? 아버지가 해결할 수 있으려나?
나 보험, 보험 들어놨나? 맞아 들어놨어. 쫄지 마, 보험사가 해결해 줄거야 아, 아아아무리 비싼 외제차 박았다고 해도 알아서…. 해주겠지. 해줄거야. 나는 천천히 문을 열고 나간다. 시동 끄는 것도 잊지 않았다.
몸이 달달달 떨린다.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다.
“……”
차에서 내린 그 누군가의 발이 보인다. 양복 입은 사람이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든다.
“어….”
누군가 내 눈앞에 서 있다. 누군가가 아니다. 그 누군가가 아니다. 평범한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어, 뭐야. 어떻게
말을 잊는다.
“어, 어…. 뭐….”
“너…. 뭐야?”
상대방도 어이가 없는지 나를 보며 말한다. 익숙한 목소리, 익숙한 얼굴. 언제나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 얼굴이 눈앞에 있다.
이선준이 얼빠진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다. 나와 마찬가지로 놀라고 당황한 표정이 똑같다.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인거야? 아무 생각도, 어떤 생각도 할 수 없다. 이런 지독한 우연이 있을 수 있어? 그보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나는 앞뒤 생각 안 하고 슬슬 뒷걸음질친다. 도, 도망갈래.
마주하니까 아무 말도 못 하겠어. 도망갈래.
나는 덜덜 떨며 돌아선다. 도망가야 돼. 이건 이상해. 이런 건 말도 안 돼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어.
-탁!
하지만 내 뒤에서 이선준이 내 어깨를 잡아챈다. 이선준은 잠시 입술을 깨물더니, 곧 입을 연다.
“뺑소니로 잡혀서 경찰서에서 볼래, 지금 볼래?”
그 말에 나는 굳어버린다. 인적 드문 골목길에서, 이선준은 나를 노려보고 있다. 나는 이 말도 안 되는 일에 놀라서 몸을 떨고 있을 뿐이다.
보험사를 부르니 마니 경찰을 부르니 마니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이선준은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라며 화를 냈다. 결국 서로 앞범퍼가 조금씩 찌그러진 채 차를 몰고 인근의 사람이 많은 카페에 주차를 했다. 놀라고 무서워서 몇 번이나 도망치고 싶었다.
마음의 준비고 뭐고 아무것도 안 한 상태에서 갑자기 마주한 것만으로도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삼 층짜리 카페에서, 우리는 이 층으로 올라간다. 나는 뭔가에 홀린 것처럼 커피를 들고 올라가는 이선준을 멍하니 쳐다본다.
어째서 양복을, 어째서 이런 곳에, 어째서 우리 집 근처에?
우리 집 근처라서 온건가? 알아, 이선준이 이따금 집 앞으로 찾아왔다. 근래 들어서는 아니지만, 내가 없어지고 난 뒤에 집을 찾아와서 내가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부모님은 당연히 모른다고 했고…. 이선준은 연락이 오면 알려달라고 말했다.
나를 몇 번 찾으려다가 결국 환멸하고 떠나길 바랐다.
자리에 앉고 나서, 이선준은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다. 표정은 곱지 않다. 단단히 화가 난 표정이다. 나는 안절부절 할 수 없어서 주먹을 꼭 쥐었다 펴기를 반복한다. 결국 나는 토해내듯 말한다.
“미안해…. 진짜 미안해…. 차 수리는 어떻게든….”
“야.”
이선준이 내 말을 자르고 말한다. 나는 멍하니 이선준을 쳐다본다. 이선준은 나를 노려보고 있다.
“어?”
“너 장난하냐 지금?”
“어…. 아니….”
“너는 저깟 차 범퍼가 중요해?”
이선준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화가 나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어쩐지 다르게 다가온다. 이선준의 집은 부자다. 저런 외제차 범퍼 같은 건 보험처리 하든 말든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그만큼 부자가 아닌데. 새삼 멀다. 멀다고 느꼈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까 알게 된다. 입고 있는 양복도, 구두도, 시계도.
전부 명품이다. 츄리닝을 입고, 면바지와 청바지를 입고 다니던 이선준이 아니다. 이선준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하지만 내 잘못이다.
접촉사고도, 과거의 일도 전부 내 잘못이다. 나는 음료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 아까 설훈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내가 죄인이다. 전부 다 내 잘못이다.
“어떻게…. 왜…. 여기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고작 그것뿐이다. 이선준의 인상이 더 험악하게 일그러진다.
“너…. 음, 후우…. 그래. 그래. 설명해줄게.”
이선준이 이를 악물고 숨을 내쉰다. 무섭다. 예전보다 더 거칠어진 것 같다.
“나는 네가 진짜로 죽었다고 생각했어.”
아. 그런 거였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
“그래서 혹시 사망신고라도 됐나. 혹시 찾은 건 아닌가 해서…. 알아보다가…. 이번에…. 또 한 번 와본거고.”
이선준은 분을 못 이기겠는지 이마에 힘줄이 선다. 이선준은 우리 집에 한 번 들르려던 생각이었을 것이다. 아마 상 받은 것도 있고, 내가 생각났다거나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하필이면 접촉사고라니.
안 좋다. 여러모로. 이선준은 눈에 핏발이 선 채 나를 노려본다. 그 눈빛에 애정은 없다.
분노밖에 보이지 않아.
“너…. 내가 그렇게 싫었냐. 다시는 얼굴도 보기 싫을 정도로….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려주기도 싫을 정도였냐?”
이선준은 낮은 목소리로 내게 말한다. 박헌영과는 너무나 다르다.
박헌영은 부드럽게 나와 인사했다. 나를 용서했다. 하지만 이선준은 분노하고 있다. 나를 용서할 생각 같은 건 눈곱만큼도 없어보인다. 싫어한다니, 그게 무슨 오해야 대체.
“아니, 아니야…. 아니야….”
“그런데 왜 그랬어? 너는…. 차라리 죽지 그랬어. 응? 차라리 죽지. 왜 살아있어서 이렇게 배신감 느끼게 만들어? 어? 아니면 잘 숨어있던가. 왜 마주쳐서 열받게 하냐? 왜 또 도망치려고 하냐? 어? 너 뭐야? 뭔데? 너는 왜…. 끝까지 날 기만하는데?”
이선준이 나를 매도한다.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얼마든지 받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렵다. 너무 어렵다. 마음이 너무 아파. 눈물이 나오려 한다. 내 눈이 빨개지자 이선준이 말한다. 경고하듯 천천히 끊어서 말한다.
진짜로 죽었어야 하는데. 괜히 살아있어서, 괜히 마주쳐서 이선준을 더 화나게, 배신감을 느끼게 만들어 버렸어.
“울지 마라. 나 그거 싫어하는 거 알잖아.”
“아, 아으…. 우, 울고 싶어서 그…. 그러는 게 아니라…. 아, 나, 나도 울기 싫…. 흑!”
“후우.”
이선준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화가 났는지 머리칼을 뒤로 쓱 밀어넘긴다. 없던 버릇이다. 이선준은 나를 보며 한심하다는 듯 말한다.
“그럼 좀 울어.”
이선준은 카페 삼층으로 올라간다. 울기 싫은데, 나도 병신처럼 울기 싫은데. 자꾸 눈물이 난다. 등신처럼 울 수밖에 없다.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화를 내도 다 받아낼 자신이 있었는데 전혀 착각이었다.
이렇게나 화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렇게나 배신감을 느끼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어.
나를 만나면 기뻐하지 않을까. 그런 기대가 조금이나마 있었어. 처참하다.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마음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나는 울지 않으려고 눈물을 밀어넣는다. 휴지로 눈물을 닦는다. 휴지가 다 젖을 때까지도 나는 울음을 멈추지 못한다.
“여, 여기 휴지 있어요….”
어떤 여자가 내게 일회용 티슈 박스 하나를 건넨다. 나는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그 사람에게 고개를 숙인다.
“히, 힘내세요….”
“으, 으. 가, 감사합니…. 흑… 끅….”
울음을 삼키려니까 오히려 더 터져나온다. 나는 딸꾹질을 해가며 울음을 밀어넣는다. 나는 울 자격이 없다. 이선준에게 여자 울리는 놈이라는 딱지를 붙일 자격이 없다. 울어야 되는건 이선준인데, 나는 울면 안된다. 우는 건 나쁘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울지 마라.’
과거에 이선준이 서혜인에게 했던 말이, 그대로 내게 적용된다.
“으윽! 흐끅! 흑! 흑!”
딸꾹질을 넘기며 점차 마음의 안정을 찾아간다. 결국 한참을 숨을 고르고 나서야 울음이 잦아든다.
도망치고 싶어.
도망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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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