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1 세상에 안 어려운 게 어디있냐? =========================
다음 날, 나는 안 맞는 큰 옷을 대충 입고 원룸 옥상에 올라가 전화기를 켰다.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주량 자체도 좀 약해졌지만, 숙취도 장난이 아니었다. 하지만 마음먹었을 때 바로 하라고 이선준이 닦달하는 통에 나는 옥상에 올라왔다. 전화를 걸고, 나는 용건을 말했다.
“네…. 안 하려구요…. 아, 네. 아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네.”
나를 찾아왔던 국정원 직원과의 전화 통화였다. 내용은 간단했다. 발병자 보호 프로그램이 필요없다. 이대로 살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걱정된다는 듯 이런저런 사례들과, 사회에서 좋은 시선을 받을 일이 없다고 말했지만 나는 괜찮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발병자를 위한 기초 지원금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굳이 이렇게 해줘도 되는건가 싶기는 했지만 내 입장에서는 돈 준다는데 당연히 땡큐였다. 나는 계좌번호를 불러줬다. 아마 바로 입금이 될 거라는 말이 들려왔다. 일처리 빠르다. 대한민국 공무원들 앞으로 너무 무시하면 안될 것 같았다.
[일 때문에 묻는 건 아니고, 그냥 사적인 질문이니까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만, 그냥 걱정이 되서 묻는다 생각하세요. 굳이 어려운 길로 가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그냥요. 아까워서 그래요. 지금까지 살았던게.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서 살라는게 무섭기도 하구요….”
[……네, 저야 발병자가 아니니 설원씨 마음을 알 수는 없겠죠. 힘내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이 사람, 어째서 TS발병자 전담 직원이 됐는지 알 것 같았다. 진짜로 말투에서 걱정하는 기색이 뚝뚝 떨어질 정도였다. 연장자가 먼저 끊으라는 의미에서 나는 전화기를 계속 붙들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도 전화가 끊어지지 않았다. 내가 먼저 끊으려는 찰나에 말이 들려왔다.
[아…. 이거 원래 이러면 안 되는데….]
“네? 뭐가요?”
그는 그러면서 내게 이야기를 했다. 보호 프로그램을 거부하면 지원금은 첫 달 이후에 받는 돈, 총 세 달간의 지원금액이 전부였다. 첫 달 이백만원, 그 후로는 매월 백만원씩 총 사백만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나는 아직 대학생이고, 마땅한 수입원도 없다.
[금전적으로 집안에 여유가 좀 있으세요?]
“네? 아 뭐 그럭저럭이긴 한데….”
[학자금 대출 받으셨어요?]
“네….”
딱히 집안 사정이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유복한 집안도 아니었다. 대한민국 대학생들 중에 학자금 대출 안 받는 사람, 있으면 얼마나 될까. 나도 학자금 대출 받아가면서 학교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내 신세가 처량한 것이었다. 그 직원은 한숨을 푹 쉬었다. 뭔가 그 한숨이 나에게는 상처가 아니라 위로처럼 들렸다. 내 처지를 누군가가 공감해준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말 편하게 해도 될까요. 원이씨?]
“아, 네 그러세요….”
[원이씨, 내가 발병자들 그렇게 많이 본 건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정말 힘들게 살아. 안 그래도 힘든 세상인데 남들보다 취직도 잘 안 되고, 편견에 무시에 정말 말도 못해. 정말 힘든 선택 한거야.]
“네에….”
[특히 원이씨처럼 남자에서 여자가 된 경우는 더 심해. 차별하자는 말은 아니지만 여자가 힘도 약하고, 목소리 내기도 힘들잖아 이 대한민국이라는 곳이.]
나는 점점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려는건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약올리나? 점점 열받아 갈 때쯤. 그는 본론을 꺼냈다.
[일단 프로그램 신청인 명단에는 올려놓을게, 학비지원 프로그램 신청하면 원이씨는 지금 4학년이라서 한 학기 지원금밖에 못 받거든? 그러니까 자립형 프로그램으로 신청할거야. 이게 돈이 좀 많이 나오거든.]
“아, 네. 그런가요….”
[입주 지원금이랑 구직 보조금 청구할 테니까. 그거로 학자금 대출 해결해. 아마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충분히 도움이 될거야. 실수령액은 아마 전세지원금조로 3천만원 정도 못되게 나오니까 해결하고도 여윳돈이 조금 남을거야. 남은 돈도 등록금으로 쓰거나, 생활비로 쓰거나 하라구.]
“아! 정말요? 정말이에요?”
나는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펄쩍 뛰었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졸업하기 싫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갑자기 사라지려 했다. 온몸이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바르르 떨렸다.
[취업활동이나 주거환경 보고서 같은 경우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원이학생은 학교 다니고, 무사히 졸업하는 것만 신경써, 졸업하고 취업할 생각 있으면 다시 연락해. 대학생들 졸업하면 안 그래도 힘든데 원이씨 같은 경우에는 빚까지 있으면 정말 힘들어. 안 그래도 힘든 사람이….]
“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행복하게 살아. 이 일 하면서 사람이란 게 얼마나 쉽게 불행해지는지 너무 많이 봐왔어. 힘들면 상담도 받고, 진성서울병원 정신과 가면 무료로 상담 프로그램 진행해줄거야. 그 싸가지 없는 TS병동 의사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리고 신분증 새로 발급해야 하니까 사진만 찍어서 명함에 있는 이메일로 보내, 거기에 주소 적어주면 우편으로 보내줄거야. 알았지? 가족관계등록부나 이런거 다 신경 안 써도 되니까 걱정하지 말고.]
“아…. 네…. 흑!”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나는 전화기를 부여잡고 서럽게 울었다. 너무 고마웠다. 어제 처음 본 사이면서 이렇게나 신경써주고,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있었다.
세상에는 이렇게나 따뜻한 사람도 있다. 그 사실이 너무 고맙고, 고마워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감사…. 정말 감사합니다.”
[자살같은거 안 할 거라고 약속해줘 원이학생.]
“네, 네, 안 할게요. 열심히…. 끅! 열심히… 살게요….”
그 아저씨는 한동안 전화를 끊지 못했다. 내가 너무 서럽게 우는 탓이었다.
[살다보면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있는거야. 감당할 수 없는 일은 없어. 물론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해. 원이학생, 알았지?]
“네, 네에…. 잊지 않을게요….”
이 아저씨가 나에게 알려준 이름은 분명히 본명이 아닐 것이다.
[그럼 나중에 연락….]
“아저씨! 자, 잠깐만요….”
나는 아직 울고 있었다. 이런 배려를, 이런 온기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힘들면…. 힘들면 연락해도 돼요? 그냥 얘기만… 얘기만 할게요.”
[당연하지. 언제든 연락해. 나 배정된 일이 이거밖에 없어서 시간 꽤 많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전화는 그것으로 끊어졌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오랫동안 숨을 죽이고 울었다. 기뻐서 나오는건지, 슬퍼서 이러는건지 모르겠다. 둘 다일 수도 있다. 내 인생의 가장 큰 부담이 사라진다.
바이러스 발작 이후 몇 번이나 우는건지 기억도 안 날 정도다. 원래도 눈물이 많은 성격이었는데, 이틀만에 이렇게나 많이 울어본 것은 정말 처음이다. 마음에 새겼다. 이런 말, 원래는 진짜로 혐오하고 싫어하는 말이었다.
긍정적인 경구는 사람을 마취시키고, 나에게 닥친 불행을 감내해야 한다고 사람을 세뇌시킨다. 그래서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던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라던지, ‘열정페이’ 이런 말을 극도로 혐오했다. 그런 말들은 전부 젊음을 벗어난 기성세대의 추잡한 아가리에서 나온 말이라며 혐오했다. 하지만 나는 이 말만은 가슴에 새겨야겠다고 다짐했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은 없다.’
그 아저씨가 내게 해준 배려에 보답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견뎌내고, 무슨 일을 겪어도 감내하자. 자살한다는 생각은 털끝만치도 하지 않겠다. 나는 내 인생을 긍정해야 한다.
최악의 상황이 되니 오히려 그런 말이라도 마음에 새겨놓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고 하늘을 바라봤다. 시릴 정도로 맑았다. 날이 추웠다. 하지만 뭔가, 뭔가 알 수 없는 따뜻한 것이 안에서부터 차오르는 느낌이다.
아, TS바이러스 때문에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나는 눈물을 훔치며 그런 생각을 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성별이 바뀌고 내 인생 위에 내려앉은 돌덩이가 사라졌다. 바이러스에 걸려서 잘 됐다는 생각은 안 들지만 이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조금은 내 처지를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