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래도 설원입니다-112화 (112/224)

00112 설원이 아니에요. =========================

5월 말, 소설을 완성하고 투고했다. 마감날짜에 맞춰 간신히 제출했다. 결과 발표는 6월이다.

한정운의 말이 상당히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자기검열에 대한 부분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썼더니 완성할 수는 있었다.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고민들을 담아냈다. 내가 하는 생각이라 봐야 항상 그런 것들이니까. 나다운 소설을 써낸거다.

솔직히 가능성에 대한 부분은 잘 모르겠다. 그냥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고민하는 것들을 썼다. 그걸 과연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다만 솔직해지려 노력했다. 거짓말 같은 말들을 늘어놓기도 했지만 지우지 않았다. 그 또한 나의 진정성일 수 있을거다.

이선준도 투고를 했을까? 잘 모르겠다. 이제는 연락할 방법이 없다. 안 되면 그냥 안 되는거다. 나는 그냥 실낱 같은 희망에 걸어보는 것뿐이다. 반드시 만나길 바라고 투고한 게 아니다. 차라리 안 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투고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편함을 본다. 완성된 6월호 잡지가 들어있다. 관계자니까 조금 더 빨리 받아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나는 애초에 이 잡지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항상 새로운 내용으로 매월 책을 낸다는 건 정말 고역이다. 아무리 날림식 회사라 해도 마찬가지다.

집으로 돌아와서 잡지를 본다. 내가 확인하는 건 내 기사가 어떻게 나와있나 그런 것밖에 없다. 중도에 수정 요청이나 추가 요청 같은 걸 받아서 몇 번 정도 수정한거다. 내가 찍은 사진과 글이 실려있다. 내 글이 책에 실린다는 건 항상 겪어도 묘한 일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 되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게 나쁜 느낌은 아니다. 좋다고 봐야 할거다. 그게 아무리 정부기관에 강매하듯 팔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다지 관심도 없는 잡지라 해도 마찬가지다.

“뭐야, 어쩐 일로 컬러작업이래?”

애초에 표지도, 속지도 흑백 잉크로 찍어내던 잡지다. 하지만 이번 6월호는 재질부터 다르다. 컬러인쇄를 했다. 이런 일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어쩐 일로 이랬는지 웃긴다. 딱히 대단한 특집호도 아니었으면서.

나는 내 기사 부분을 펼쳐서 본다. 내가 찍은 사진이 컬러로 인쇄되어 있으니 느낌이 새롭다. 음, 사진을 잘 찍는 건 아니지만 나름대로 예쁘게 찍었다. 내 수준에서 이 정도면 대단한거다. 내가 찍은 사진들이 나열되어 있다. 시장 풍경, 해수욕장, 가로수길 등등 많다. 그리고 가장 크게 실려있는 사진에서 나도 모르게 멈춘다.

“어, 어? 어? 이, 이게 뭐야?”

애초에 나는 사진과 원고를 보내고, 편집은 편집부에 맡겨놓는다. 최종편집본 받아보는 건 귀찮아서 안 한다. 나는 일을 찾아서 하는 타입은 아니다. 알아서 잘 하겠지 하고 놔둔다.

그래서 전부 인쇄된 다음 책자로 받아본다. 그나마도 귀찮아서 확인 안 해본다. 내가 당황한 건 내가 찍은 사진 때문이다. 없는 사진을 올려놓지 않는다. 내가 맡은 부분에 올라오는 건 다 내가 찍은 사진이다.

“내가…. 내가 이걸 왜 못 봤지?”

페이지 한 부분이 아예 내가 찍은 사진으로 되어 있다. 중요한 건 내가 식당가를 걸으며 간판을 찍었던 사진이다. 이건 별로 잘 찍은 사진도 아니다. 아마 파일을 압축하면서 나도 모르게 실수로 붙여넣은 사진인 것 같다.

중요한 건, 사진을 찍는 내 모습이 건물 유리창에 다 비친다는 것이다. 사진도 그런 내 모습이 부각되게 편집해 놨다. 렌즈에 눈을 대고 찍은 게 아니라 대충 카메라 스크린을 보고 찍어서 내 얼굴과 옷차림이 그대로 보인다. 살짝 옆모습인 건 맞지만 내가 봐도 내 모습은 매혹적이다.

원피스에 카디건, 웨지힐을 신은 모습이다. 한정운을 만나러 갔을 때의 그 모습과 똑같다. 오히려 완전하게 다 안 보여서 궁금하게 만드는 그런 느낌이 있다.

“이, 이, 이 개새끼들 진짜…….”

어쩐 일로 컬러인쇄를 했나 했더니 내 생각이 확실해진다. 실수로 내 모습이 같이 찍힌 사진을 보낸 걸 보고 기회다 싶어서 이런거다. 표지로 하면 내가 지랄발광을 하며 초상권 침해니 뭐니 할 게 뻔하니까 이런 식으로 해버린거다.

진짜 이 회사 자식들은 나를 왜 이렇게 좋아하는거야? 방침 바꿔서 뜬금없이 내 얼굴 하나 보여주려고 컬러인쇄를 할 만큼인거야? 진짜 이 정도면 대단하다.

전화를 해서 한 번 지랄이라도 할까 하다가 그만둔다. 나는 얼굴을 감싼 채 소파에 엎어진다.

이건 내가 병신이다. 사진을 잘 확인하고 보내거나, 최종 편집본 확인 정도는 했어야 하는데, 수정 요청을 했어야 하는데, 아니, 내가 무슨 사진들을 보냈는지 꼼꼼하게 살펴보기만 했어도 된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으악!”

물론 과민한거다. 이 잡지는 고정판매 부수가 많기는 하지만 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렇게 알고 있다. 그게 맞을거다. 그러니까 내 얼굴이 잡지에 조금 팔려도 큰 문제는 없을거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이 잡지를 보고, 내 얼굴을 발견하고, 이선준이나 박헌영이 알게 될 일은 없을거다.

인쇄본을 넘겼다는 건 내가 건드릴 수는 없다는 뜻이다. 이미 전부 다 인쇄 끝났을거다. 나 하나 때문에 이만부가 넘는 잡지들을 전량 폐기하고 다시 만들 수는 없다.

애초에 1번 그렇게 싫어하는 두 놈들이 이런 우파 성향 잡지를 볼 일은 없을 거잖아? 그럴거다. 진짜로 그럴거다.

차라리 로또 맞기를 바라는게 낫다. 마음을 편하게 가져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심호흡을 하면서도.

불안하다.

“아 진짜 이 병신! 병신아! 병신년! 병신새끼!”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자학한다. 거의 오타쿠 수준으로 나를 어떻게 한 번 잡지에 노출시키려는 놈들에게 그런 사진을 대놓고 보낸 내 잘못이다. 이건 누굴 탓할 수도 없다. 왜 연예인도 뭣도 아닌 나한테 덕질을 하는거야 미친놈들이!

아니다. 신경과민이다. 아무 일도 없을거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물을 한 잔 따라마신다. 손이 덜덜 떨린다.

진짜 죽어야 하나.

6월이 되었다.

당연히 아무 일도 없었다. 당연한거다. 이 잡지는 많이 팔리는 만큼 읽혀지는 잡지가 아니다. 그냥 꽂혀있다가 재활용 폐지가 되는 잡지다. 동사무소에서 자기 차례 기다리는 사람이 잠깐 읽다가 내버리는 잡지다.

나는 지금 6월 기획회의를 하기 위해 회의실에 들어와 있다. 각 페이지 기자들과, 편집부, 기획부 사람들이 모였다. 그렇게 대단한 회의는 아니다. 기획부장이 먼저 이번호는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만들 것인지 회의 전에 미리 전파한다. 그리고 작가나 기자들도 어떤 걸 할지 말하고, 세부적으로 조정하는거다. 길 때도 있고 짧을 때도 있다.

“음, 최기자는 이번에 어디 취재 가나?”

“요즘 시끄러운 학월동 집회현장 갈 거에요.”

“음, 그래…. 학월동 집회현장. 방향성 제대로 잡기 힘들텐데 괜찮겠어?”

“아 뭐, 생각 하고 있는 게 있어서요.”

“아, 네 그럼 중간보고도 겸해서 해주시고. 문학 쪽은?”

“이번에는 장르문학 쪽으로 해보려고요. 인터뷰 후보들이 몇 있는데, 추려서 나중에 말씀해 드릴게요.”

“장르? 내일 중으로 추려서 명단 보내봐요. 컨텍 가능한지 알아볼 테니까.”

“네.”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기획회의를 비롯한 대부분의 상황에서 편집장이 가장 발언권이 강하다. 결국 잡지 자체가 그 사람 부서에서 만들어지는 거니까 그렇다. 빠꾸도 잘 먹인다. 나이도 지긋하다. 좀 꼰대 기질이 있어서 나는 좀 싫어한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거다.

저 인간이 나를 너무 좋아한다. 나는 아빠 따로 있는데 날 볼때마다 흐뭇한 아빠미소를 지으며 쳐다본다. 사이가 나쁜 것보다는 낫다. 편집장이랑 사이 안 좋으면 회사 나가야 될 정도로 힘들어질 수 있다. 그래도 내가 하는 말은 거의 다 들어주고 받아준다. 고맙긴 하지만 항상 하는 말 때문에 짜증난다.

“이번 호 우리 연작가 덕분에 아주 반응이 좋아. 문의메일이나 엽서도 온다고, 내 살다 이런 거 이렇게 많이 오는 건 처음이야.”

“아, 네…….”

“그래서 이번 호는 연작가 특집호로 만들까 하는데…….”

“아 정말 싫다고요. 이번에도 사진 하나 잘못 보낸건데…. 아.”

내가 대놓고 까칠대자 편집장이 입을 다문다. 원래 이러면 안 되는 거 안다. 하지만 편집장은 자꾸 나를 잡지 어디에 못 실어서 안달이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회의 때마다 편집장이랑 티격태격 하는 걸 은근히 즐긴다.

그리고 이 회사에서 대부분 사람들은 기자라고 부르는데, 나만 작가라고 부른다. 처음 계약했을 때 문창과 다녔다는 것 때문에 그렇다.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작가 된 거 아니냐며, 나 혼자만 이 회사에서 작가라고 불린다. 설작가면 설작가지 연작가는 뭐야? 이상한 자식들이다 정말.

그리고 저 말 회의 올 때마다 듣는다. 내가 한숨을 푹 쉬자 편집장이 날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보며 말한다.

“그런데 진짜야. 엽서 온다니까?”

“……거짓말 좀 하지 마세요. 이걸 누가 봐요?”

잡지사에 다니면서 그 잡지를 무시하는 작가가 여기 있다. 편집장은 갑자기 회의실 바닥에서 뭔가를 들어 원탁에 쏟아낸다. 진짜로 엽서가 있다.

“……뭐, 뭐야. 뭐에요 이게?”

“엽서, 진짜라니까? 이거 나를 너무 나이롱으로 보네.”

나는 쏟아진 엽서들을 확인한다. 작가님이 너무 예쁘시다. 연예인 해도 될 것 같다. 다음 호에는 작가 단독 인터뷰 이런 것 좀 해달라. 이런 내용의 엽서들이다. 막 엄청 많은 건 아니다. 열 몇 장 정도다. 이 잡지, 읽는 사람도 있구나 진짜로…….

나는 엽서를 보낸 곳의 주소를 본다. 이상하게도 강원도 지역이 대부분이다. 나는 그제야 이 쓸데없는 잡지를 어디서 보는지 깨닫는다.

“아, 알겠다…. 얘네 다 군인이네요.”

“그럼! 이게 전 육군 부대에 보급된다니까. 군통령이 별거야? 특집 하나 하고! 인터뷰 좀 하고! 잡지 하나 내면 군통령이지 뭐 아이돌만 군통령 하란 법 있어?”

편집장이 흥분해서 외친다. 이 아저씨 진짜 좀 돈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애초에 그런 잡지는 HIM이라고 이미 있다고. 이건 교양잡지잖아 이 인간아. 나는 무례하게 편집장을 노려보며 외친다.

“아 몰라요. 안 해요! 진짜 사진 하나 잘못 보내서 이게 무슨 꼴이야.”

다른 사람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낄낄거린다. 상을 뒤엎어 버리고 싶다.

============================ 작품 후기 ============================

아끼다 똥되느니 그냥 비축분 투척 ㄱㄱ함.

설원은 시간날때마다 쓰고있음. 지금은 M사에 전력투구하고 있지만....

알다시피 나는 글을 줜나빨리씀. 하루에 2만자씩 쓸수있으니까 가끔 쓰는것도 상당하게 비축분을 만들 수 있으니까 가끔 연재는 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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