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래도 설원입니다-1화 (1/224)

s00001 워너비는 TS하지 말라는 법 없잖아. =========================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새는 알을 깨지 않는다.

알은 새의 세계다.

새는 천천히 녹아내린다.

그리고 어디로도 가지 못한다.

세상은 우리에게 꿈을 강요한다. 꿈을 가지지 않는 사람은 인생의 패배자, 속물, 황금만능주의자라고 불리며 멸시당한다. 소년이여, 소년이든 소녀든, 야망을 가져라. 너의 열정에 세상은 항상 대답할 것이다.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이 그렇게 말해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말할 것이다. 꿈을 가져라. 꿈꾸지 않는 청춘은 오아시스 없는 사막이고, 치즈 없는 피자이며, AD 조합으로 말파이트를 잡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고 말할 것이다. 물론 치즈 없는 피자도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그거 싫다. 맛없어.

꿈이 있는 사람들은 많다. 아이들이 좋아서 교사, 자신의 일을 하고 싶어서 사업가, 세상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고 싶어서 정치가,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백수, 금수저 등등…. 세상에 사는 사람들만큼의 꿈이 있고, 저마다 바라는 빛깔도 다르다.

하지만 대개 현실은 잔인하다. 음, 정확히 말하자면 잔인하다기보다는 무심하다. 나라는 존재를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흔히 사람을 톱니바퀴에 비유하고는 한다. 이가 빠지고 닳아버리면 교체해도 되는 톱니바퀴라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이들을 보며 말하고 싶다. 좆까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나는 톱니바퀴조차 되지 못한다. 나는 누군가에 맞춰져서 돌아갈만한 알맞은 굴곡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꼬였고, 성격 더럽고, 이성보다 감성에 충실하다. 나라는 인간을 물고 돌아갈 수 있는 메커니즘을 가진 집단 따위, 세상에 있을리가 없다. 비유하자면 나는 톱니바퀴도 되지 못한 울퉁불퉁한 쇠뭉치 같은 것이다. 나 같은 걸 넣으면 그 기계는 돌아가기는커녕 망가질 것이다.

이쯤 말하면 알지도 모르겠는데, 난데없이 꿈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자살직전의 자기비하로 넘어갈 정도의 인물이라면 아마 대충 감이 올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아마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첫째는 사업에 실패한 오십대 가장이고, 십년간 짝사랑하던 여자를 단짝친구에게 빼앗긴 병신이거나, 소설가가 꿈인 이십대 대학생일 것이다.

그래,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사람이다. 소설가가 꿈인 이십대 대학생이다.

비열하고도 무정한 세상을 원망하며, 이 세계를 둘러싼 거대담론에 항상 의견을 가지고 있지만 피력할만한 공간도, 의지도 없는 그런 인간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페북에다 글 싸지르는 저능한 짓거리는 그나마 하지 않는다는 점일까.

그래, 나라는 인간의 유일한 장점은 그것이다. 페북에다 똥글 싸고 내 글을 옹호하기 위해 무진 애쓰는 그런 인간은 아니라는거, 그게 내 유일한 장점이다. 그 정도로 나는 별볼일 없고 하찮다.

“항상 말해왔던 부분이지만, 설원 학형 글은 굉장히 정념(情念)적 성향이 강합니다.”

“…….”

나는 지금 내 소설이 찢겨지는 상황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실제로 찢겨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실 실제로 찢기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실 원탁에는 사람들이 원형으로 앉아 있었고, 내 소설을 찢어발기는 녀석은 내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교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때로 이 수업의 주인이 교수가 아니라 이 녀석이 아닌지 종종 의심하곤 한다. 이럴거면 출강하지 말던가 내 등록금으로 월급 받아먹고 있으면 좀 더 섬세하게 봐야 하는거 아냐?

“굉장히 감정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이 ‘글’의 내용은 절반 이상, 대략 칠할 정도가 감정의 나열에 불과합니다. 저는 정념은 소설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정념들을 뭉치고 의미화 과정을 커져 제대로 빚어낼 때에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결국 참지 못했다. 아무리 싫어도 내 단편소설을 소설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싫다는 듯 ‘글’이라 표현한 것은 정말 자존심이 상해서 견딜 수 없었다.

“너…. 흠, 아니, 한정운 학우는 소설에 대해서 굉장히 편협한 시각을 강요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이미 유명한 단편 작가들은 충분히 이런 소재를 통해서…. 한강이라던지…. 한유주라던지….”

“그들은 이러한 감정과 정념들을 소설적 언어로 정제해 충분히 의미있는 단편들로 엮어냈습니다. 단편소설이라 불릴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입니다.”

마치 내가 말하는걸 저 자식이 끊어먹은 것 같지만, 사실 내가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생각이 복잡해져서 말을 맺지 못했다. 녀석은 내가 말이 없는 사이에 자기 할 말을 한 것이었다. 예의바르다. 정말 기분나빠. 말하는 건 진짜 싫은데 비난할 구석이 없었다.

“말씀드렸듯 이 글이 소설이 되지 못하는 것은 그러한 정념들이 유기적이지 않고 단편적으로 유리되어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심상과 심상이 연결되어 있지 않으니 독해에 시간이 걸리고, 이해의 끝에 도달해서 남는 것은 화자의 분열적 사고가 빚어내는 비극의 무가치성입니다. 어떠한 면에서 보면 굉장히 폭력적인 방법이기도 합니다.”

“폭력? 폭력이라고?”

내가 이를 악물고 발끈해도 녀석은 눈동자 하나 흔들리지 않고 말해나갔다.

“네, 플롯도, 서사도, 문장도, 문체도, 상징도 전부 폭력적입니다. 화자가 자신의 남성기를 손으로 잡아 으스러뜨리는 것은 유의미한 시도로 보입니다만, 설득력이 전혀 없습니다. 충격적인 장면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 충격은 서사적 설득력을 가질 때에나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녀석은 장장 십분동안이나 내 소설을 갈가리 찢었다. 그 뒤의 이야기는 한정운이 한 이야기의 변주에 불과했다. 교수조차 마찬가지였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그 평가들을 노트에 적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묵묵히 들었다. 불손해 보이지만 상관없다. 나는 예비역이다. 여기에 나보다 선배는 없다. 나는 이 강의실에서 가장 학번이 높았다. 나는 후배들에게 처참할 정도로 분쇄되었다.

촌충이 되고싶다. 눈에 띄지도 않는 작은 사이즈로 작아진다면 아마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겠지? 헤라클레스 장수풍뎅이는 아니어도 좋으니까 애벌레가 되어서 땅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그래서 마오리족의 유난히 흰 이에 처참하게 분쇄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결말일 것 같았다.

내 소설을 제대로 읽지 못한 다른 얼빵한 표정의 녀석들에게는 별 생각이 없었다. 여자나 남자나 전부 다 쓰레기같은 포즈의 집합체에 불과했다. 내 소설에 대한 평가로 모든 강의 시간이 흘러간다. 일 분이 일 년처럼 느껴졌다. 말년휴가 꼬여서 전역대기를 한 달 해야 했을 때도 이렇게 시간이 안 가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열받는 것은 한정운의 말이 전부 맞는다는 사실이었다. 녀석은 내 소설을 제대로 봤다. 열심히 봤다. 이 자리에서 다른 사람이 한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저열한 것들과는 달랐다. 녀석은 내 소설을 정말 제대로 봤다. 소설의 모든 부분에서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썼는지 알고 있었다. 녀석이 정말 천재여서 그런건지, 노력해서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은 교수보다도 내 소설을 온전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싫고, 짜증나고, 죽이고 싶었다. 녀석은 그렇게 열심히 보고 내 소설을 방법론적으로, 서사적으로, 구조적으로, 리얼리스트적 관점에서, 모더니스트적 관점에서 철저하게 분해해서 비판했다.

그래서 나는 더욱 자존심이 바닥까지 내려앉았다. 차라리 이 녀석이 없었다면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정신승리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불가능했다. 내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있다. 모르고 있었지만 한정운 저 자식 때문에 알게 되었다.

내 소설은 쓰레기다. 졸업시즌이 다가오는데 내 소설은 일학년 때 듣던 소리와 전혀 다른 말을 듣지 못했다.

“그러니까 원이는 조금 더 서사구조에 천착한 글쓰기를 해보는게….”

-덜컹!

“워, 원이학생?”

-쾅!

“씨발!”

그래, 나는 성격 더럽다. 소설도 못 쓰는 주제에 착하지도 않았다. 후회할 걸 알면서 강의실 문을 박차고 나와버렸다. 이제 4학년인데…. 학점도 따야 하는데….

내 소설은 정념적이다. 그리고 나는 그보다 더한 정념적 인간이다. 내 감정을 내 스스로 가끔 주체하지 못한다.

나는 뛰쳐나간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다시 들어왔다.

“워, 원이학생?”

나는 너무 화가 난 탓에 두고왔던 가방을 다시 들고 나갔다. 후배들의 비웃는 소리가 뒷덜미에 들려오는 것 같았다.

아,

죽으면 편할텐데.

그런 생각이 문득 드는 삼월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