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명 : HappyHappy Torture Foundation >
"2131년의 신년사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과연 어울릴지 모르겠습니다."
정확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지는 모른다.
저들중 누군가는 홀로그램 아바타로 먼 곳에서부터 원격으로 방문한 사람일수도 있고, 안드로이드에 자신의 정신만 주입한 휴머노이드일수도 있다. 혹은 진짜 인간도 있겠지.
아마 진짜 인간이 가장 많을 것이다. 인류가 22세기를 맞이했음에도 인구가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많아졌으니까.
수많은 과학자들이 21세기에 지구 종말이나 인류 멸종을 떠들어댔던 것에 비하면, 인류라는 종은 너무나도 건강하다. 멸종으로부터 이렇게나 자유로운 존재가 어디 있을까 싶을 만큼.
"그래도 저는 꼭 말해야겠습니다. 수백억이 넘는 인구중에서, 무려 70억이란 사람들이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뛰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건장하고 잘 생긴 20대 청년이 힘있게 말을 내뱉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단 귀기울여 준다. 지금도 그러고 있고.
"다들 어렵게 살고 있는 거 압니다. 희망이 없어서 그런 선택을 했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이 곳에선 고작 '1년' 남짓한 시간이었지라도, 저 안에선 맨 정신으로 80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만큼 처절했다는 것이겠지요."
나는 눈앞에 놓인 정화수로 입을 축였다.
"제가 여기서, 모두가 이뤄낸 승리다! 라고 외치면 형편없는 정치인들처럼 보일 겁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보이고 싶진 않아요. 정치인들이 구리다는 건 다 알고 있는데 왜 정치인처럼 보이려 하겠습니까? 전 지금이 좋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그때와 바뀌지 않은 제 모습 말입니다."
숨 죽이고 나를 바라보는 수천만의 군중을 둘러보면, 저들의 눈동자 속에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한 청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전 세대도 그랬던 것처럼, 지금 세대 역시, 지금 세대의 대표를 맡게된 내게 무한한 신뢰를 담아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이겠지.
솔직히 말해서 부담스럽다.
그래도 해야 한다는 걸 안다. 내가 직접 선택을 했으니까.
"그러니 이 자리에서 선언하겠습니다. 부자의 부를 나눠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려는 게 아닙니다. 사회를 혼란에 빠뜨려 서로의 신분을 무질서하게 바꿔보자는 것도 아닙니다. 모두가 똑같이 부유한 삶을 살게 만들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건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저들이 오랫동안 들어왔을 지배층의 헛소리를 다시 한 번 반복하는 실수는 범하지 않는다.
"최소한...인간다운 세상을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기회가 없는 자들에겐 기회를, 궁핍한 자들에겐 궁핍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원과 대안 제시를, 불행한 자들이 소소하게나마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누구나 쉽게 떠들어대는 낙원이 아닌...한없이 인간다운 세상을 말하는 겁니다."
하지만 말은 지배층처럼 할 수 없어도, 제스쳐는 지배층처럼 할수밖에 없었다. 이게 역사상으로도 증명된 최고의 제스쳐인 것 같더라고.
"저 혼자만이 아닌, 여러분이 함께 만들어나가는 겁니다!"
내가 어퍼컷을 쳐올리듯 하늘 위로 손을 들어올리자 모두가 열광하고, 동조해주었다.
나는 저 가상 현실 속에서 벌어졌던 끔찍한 시대는 '작품'으로만 묻어두고, 이제는 저들과 현실에서 함께 할 것을 각오했다.
더이상 나는 가상 현실에 목메지 않는다.
나는 현실에서, 모두와 함께 살아가는 인간이니까.
그러니 이 현실에 존재해선 안 될 것들은 해피해피한 고문재단 속에 영원히 박아두고, 나와 저들은 무한한 영광이 기다리는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해피해피 고문재단 完-
-----후기-----
약 반년간 해피해피 고문재단을 봐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해피해피 고문재단은을 처음 시작할 때는 이 작품이 지난 날 동안 썼던 작품들과 뭐가 다르겠냐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아임 낫 프리스트, 헌터는 강화를 한다, 라스트 콘스탄틴, 헬 다이버즈, 기타 등등......
저는 항상 매니악한 설정만 파던 마이너 작가였고, 다른 작가들이 쓰지 않았던 소재에만 정신이 팔려 미친듯이 글을 썼습니다.
작가에겐 글을 잘 쓰는 것 만큼이나 시장의 트렌드 분석이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저는 멈출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재미있었거든요.
역병의사가 나와서 퇴마를 하고, 헌터가 강화도 하면서 세상을 구하고, 또 헌터도, 역병의사도, 구마사제도 아닌 이상한 놈이 튀어나와서 이상한 놈들을 때려잡고. 아주 시공간을 넘나드는 헬 다이버즈 스토리도 제겐 항상 신선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신이 나서 글을 쓰다보면 머릿속에서 생각이 넘쳐나는 것을 느꼈고, 그러다보니 밥을 먹다가도, 콧구멍을 후비다가도 이야기의 다음 전개가 떠올라서 키보드를 두들기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습니다.
그 결정체가 바로 해피해피 고문재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설정, 내가 재미있다고 느낀 이야기, 너무나도 미치도록 쓰고 싶었던 이야기.
그걸 210화라는 분량으로 써낸 것이 바로 해피해피 고문재단입니다.
작년 여름에 담당 PD님과 함께 이 작품에 대해 논의할 때도 200화 안팎으로 완결내는 것을 이미 정해뒀을 만큼, 저는 이 작품의 전체적인 틀을 확실하게 잡아두었습니다.
일부 독자분들에겐 마지막이 급전개처럼 보이셨을수도 있었겠지만, 급전개처럼 보이게 썼다는 것이 제 답변입니다.
저는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 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비록 제가 박수를 받지는 못 했을지언정, 최소한 작품을 깔끔하게, 궁금증 하나 없이 마무리 하는 것으로 떠날 때를 알았다는 건 증명했습니다.
그래도 혹시 아직 독자분들께서 이해가 되지 않았을 떡밥을 마지막으로 풀어보고자 합니다.
Q. 333번은 참가자였는가?
A. 아닙니다. 작중에서 그는 콘스탄틴의 마지막 생존자로 묘사되지만 해당 세계관에선 그런 비현실적인 존재가 바로 ES라는 걸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그는 주인공과 대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즉 진짜 인간이 아닌 그 세계에서 설정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다만 진짜 현실 세계에서 실제로 333번이란 인물의 정보가 존재했었기에, 그런 캐릭터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덧붙여서 과거, 현재, 미래 역시 333번과 똑같은 프로그램입니다.
Q. 해당 세계관은 공식적으로 라스트 콘스탄틴 이후의 세계관인가?
A. 주인공이 활약했던 가상 현실은 진짜 현실에서 존재했던 역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무대입니다.
Q. 왜 주인공만 처형 능력을 가지고 있었는가?
A. 현실의 내부 협력자 2명이 남몰래 게임 속의 주인공을 도왔습니다. 그들은 몰락한 방계였기 때문에 가문으로부터 배척당했던 주인공을 어렸을때부터 줄곧 돌봐주었던 보호자들입니다. 그들은 항상 주인공의 눈이자 귀였습니다. 그리고 둘다 여자입니다.
Q. 신입은 결국 누구였는가?
A. 무수한 참가자들중 한 명이었으며, 로또 1등에 당첨된 것처럼 가장 강력한 ES의 역할을 부여받은 참가자였습니다. 사리사욕을 표출하지 않고, 순박하기만 했던 주인공에게 호감을 품었고, 희망을 걸었으며,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Q. 게임이 끝난 뒤에 다들 어떻게 되었나?
A. 주인공의 친척, 고문재단의 공동 창립자들은 해피해피 고문재단에 영원히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 외의 모든 참가자들은 무사히 현실로 돌아와 주인공에게 합당한 보상을 받았습니다. 신입은 주인공의 부하로 합류했습니다. 물론 신입도 여자입니다.
Q. 게임 플레이 타임은 80년인데 어떻게 현실에선 1년만에 그걸 다 봤나?
A. 실제로 영화 하나를 제작하는데 1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되지만, 실제 러닝 타임이 2시간도 안되는 것과 같습니다. 수많은 편집자들이 갈려나갔고, 해피해피 고문재단이란 작품은 현실의 방송국을 통해 365일 내내 저녁 8시부터 밤 10시까지 방영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해피해피 고문재단을 봐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새로운 작품인 '역대급 트롤러의 게임 먹방'으로 찾아뵙겠습니다.
< 작품명 : HappyHappy Torture Foundation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