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딥 다크 진실 >
"이거 안전한 거 맞습니까?!"
"안전했어야 하는 물건은 맞지!"
심하게 덜컹거리는 궤도 엘리베이터 속에서 이두근과 김선열이 고함을 지르며 대화를 나눴다.
모두에게 지급된 우주복의 성능은 충분히 괜찮았지만, 문제는 그들을 태운 궤도 엘리베이터가 대기권을 벗어나기 직전에 미묘하게 궤도를 틀어버렸다는 것이다.
"대체 누가 궤도 엘리베이터의 궤도를 수정한 겁니까?!"
"누구도 수정하지 않았어! 애초에 궤도 엘리베이터 내에서 그걸 수정할 수도 없고!!"
"젠장! 그럼 외부의 소행이란 거 아닙니까?!"
해킹을 당했다. 혹은 그들이 궤도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기 전부터 이런 일이 벌어지도록 공작이 된 상태였다.
그밖에도 단순한 기기 오류나 프로그램 계산 오류라는 가능성도 있지만, 누구도 단순 사고의 가능성을 염두하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이 궤도 엘리베이터는 재단 산하의 물건이니까.
재단은 이렇게 허술하지 않다. 인간이 하는 일을 못 믿어서 인공지능에게 한 번 더 재검사와 작업을 명령할 정도로 꼼꼼한 성격을 가진 집단이니까.
"이러다 우주에서 아무것도 못 해보고 폭사하겠습니다! 궤도 엘리베이터가 못 버틸 거란 말입니다!!"
"우주정거장의 AI가 우릴 포착하고, 캐치해주길 빌어야지!"
"제정신 입니까?! 이 속도로 다른 방향을 향해 날아가고 있는 궤도 엘리베이터를 우주정거장에서 무슨 수로 잡아준다는......!"
덜컹! 콰과광!
궤도 엘리베이터가 또 다시 흔들리면서 내부의 배선이 끊어졌다. 동시에 엄청난 양의 스파크가 튀어오르고, 조사관들의 비명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보다 더 시끄럽게 세희의 고막을 때리는 것은 당연히 궤도 엘리베이터의 경보음이었지만, 그녀는 흔들리는 궤도 엘리베이터 속에서도 큰 감정 변화를 가지지 않았다.
혹시 자신이 이곳에서 죽는다면 모든 게 끝나는 걸까? 두 번 다시 이런 삶은 지속되지 않는 걸까? 그럭저럭 평범했던 가정이 한 순간에 박살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 걸까?
그런 생각들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눈치가 있었다. 사춘기가 빨리 온 탓에 자신이라는 인간에 대해 누구보다도 빨리 자각하게 되었으며, 또한 이 세상을 이해했다.
특이체질이었던 김호국, 친오빠가 아니었던 김호국, 고문재단의 경비였던 김호국, 이 세상의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김호국.
그 사실들만은 그녀의 머리로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해결책을 찾기 위해 이 자리까지 올라왔건만.
'결국 해결책은 무엇 하나 찾지 못 하고 이런식으로 끝날 운명이었구나.'
아마도 꽤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었던 결말이 아닐까?
그녀가 태어나기 전 부터, 김호국이 입양되기 전 부터, 이 세계에 고문재단이 설립되기 전 부터. 어쩌면 이 세계가 탄생하기 전 부터......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고 싶었다. 깔끔하게 포기하면 최소한 미련을 남길 필요는 없어지니까. 구질구질하게 옛 생각이나 떠올리며 눈물이나 짤 필요도 없어지니까.
그냥...폭발에 몸을 맡기고, 정신은 저 안드로메다 너머로 보내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침 우주 한복판이기도 하니 꽤 그럴싸한 논리였다.
앞으로 이 궤도 엘리베이터가 폭발하기까지 얼마나 남았는지에 대해서도 더이상 계산하지 않았다.
터질 때가 되면 알아서 터지겠지. 단순 사고든, 누군가에 의한 공작이든 터진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을 테니까.
마지막으로 한 번,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우주와 아름다운 지구를 눈에 새겨두기 위해 특수 유리창 너머로 시선을 돌린 순간.
그녀는 무언가가 궤도 엘리베이터로 접근하고 있음을 포착했다.
"...어?"
그것은 로켓이었다.
흰 솜털이 달린 붉은 모자에, 붉은 재킷, 검은 장화를 신고, 축 늘어진 흰 선물 보따리를 짊어지고 있는 남자가 탄 로켓.
로켓은 빠른 속도로 궤도 엘리베이터의 옆을 스쳐지나가는가 싶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고정시킨 갈고리로 궤도 엘리베이터를 이끌었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처럼, 로켓이 이끄는대로 급격하게 선회한 궤도 엘리베이터는 지구의 궤도를 돌고 있는 우주정거장으로 향했다. 올바른 항로에 복귀한 것이다.
"...이젠 너무 많은 일을 겪어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내 감수성이 메마른 겁니까? 상두야, 그런 것 같아?"
"그냥 책을 많이 안 읽어서 그렇습니다. 전 당장 생각나는 감탄사만 해도 스무 개가 넘습니다."
"시작은 씨발로 시작하고?"
"끝도 씨발로 끝납니다."
한국 남자의 대화란 원래 그런 법이지. 서로의 어깨를 두들겨 주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두 사람은 이내 조용해졌다.
궤도 엘리베이터에서 울려퍼지는 경보음은 여전했지만, 최소한 우주에서 폭발하는 일 없이 우주정거장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궤도 엘리베이터의 모든 시스템이 외부에 의한 조작으로 강제 셧다운 되었기 때문이다.
"아마 위대한 손님들 중 하나가 궤도 엘리베이터의 시스템을 건드린 거겠지. 지금 깨어있는 인간들은 우리 뿐일 테니까."
"그게 무슨 소리예요?"
"우리가 움직이기 전 부터 이미 세계 각지의 안드로이드와 호문클루스 군단이 움직이고 있었다. 너희가 모르는 사이에 모든 인류가 가상 현실에 강제로 들어가게 되거나, '처리' 당했다."
김선열의 말에 세희는 숨을 들이켰다.
현실에 깨어있는 인간을 남겨두지 않기 위해 그들을 강제로 가상 현실에 밀어넣거나 처형해버렸다니. 고문재단이 추구한 쉘터 프로젝트의 이상과는 많이 동떨어진 행위였다.
"그냥 전 세계에 선포를 하면 다들 알아서 쉘터 프로젝트에 동의해줬을 텐데...어째서 그런 짓을 한 거죠?"
"현실에 미련을 가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거라는 확신이 서지 않았을 테니까. 위대한 손님들에게 우리들의 안위나 형편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저들은 저들만의 게임을 빨리 진행하고 싶은 것이고, 거기에 우리는 방해되는 버그일 뿐이지."
"그래서 반 강제로 사람들을 가상 현실에 집어넣거나...죽였다고요?"
"그게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지. 저들은 사람 목숨을 개미보다도 하찮게 여긴다. 어쩌면 게임 진행을 위해 필요한 퀘스트나 아이템쯤으로 여길지도 모르지."
"......"
두 부녀의 씁쓸한 대화가 끝나갈 즈음, 고철덩어리 신세가 된 궤도 엘리베이터의 로켓에 의해 견인되어 우주정거장에 무사히 도킹했다.
일행들이 궤도 엘리베이터에서 걸어나오자마자 마주하게 된 것은 예의 로켓 위에 앉아있던 산타 복장의 남자였다.
그가 어떻게 슈트도 입지 않고 우주에서 버틸 수 있었는지, 애초에 어떻게 로켓 위에 메달린 채 그렇게나 빠른 속도로 날아다닐 수 있었는지에 대해선 누구도 질문하지 않았다.
그런 질문을 할 필요가 없는 존재라는 걸 인식했기 때문이다.
"당신은...얼마 전에 제 6 처리 시설에 침입했던 산타로군?"
호국이 연말에 일으킨 소동에 대한 보고서와 CCTV 자료를 확인했던 이두근이 슈트 헬멧을 벗으며 말했다.
산타클로스와 같은 복장이라고 해서 저런 이질적인 존재를 산타라고 부르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두근은 이 상황을 어떻게든 이해하기 위해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때 시설을 탈출할 때 사용했던 로켓을 타고 우주까지 날아온 거였어. 미쳤군......!"
"하지만 내 덕분에 당신들도 살았지. 그거면 충분한 거 아닌가?"
낡고 녹이슨 금속을 벅벅 긁어대는 듯한 거친 음성이 사내의 입가에서 흘러나왔다.
실제로 그의 입은커녕 얼굴 전체가 검은 안개로 가려져 있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중요한 건 그가 말을 했다는 점이다.
"...대화가 가능한 건가?"
"가능하고 말고. 아니면, 내가 ES일 거라고 생각했던 건가?"
"ES가 아니고서야 그 미친 짓거리는 못 하지."
"안타깝게도 ES는 아니야. 오랫동안 거짓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불쌍한 놈들 중 하나일 뿐이지. 그러다 이번에 '그들'과 접촉해서...의뢰를 받았다. 내가 15년 간 그 자의 준비를 더디게 만들어 달라고."
"그들이라니?"
"너희가 위대한 손님들이라고 부르는 자들. 그들은 이 게임에 불청객이 끼어들었다는 걸 알았지.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느꼈던 거야. 그래서 내게 '김호국'의 자각 상태를 15년 간 늦추게끔 했다."
15년 전. 그건 김호국이 크리스마스라는 날을 인지하고, 동시에 처음으로 가상 현실 접속 테스트를 받았을 시점. 초등학교 입학 전이다.
"나는 개인적인 조사를 통해 녀석이 '세 번'이나 이 지독한 게임을 망쳐버렸다는 걸 알았고, 녀석에게 합당한 벌을 내리는 것으로 의뢰를 수행했다. 1회당 5년의 자각 금지, 게임을 3번이나 망쳤으니 15년 간 자기 자신에 대해 자각할 수 없는 벌을 내렸지. 산타가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었다면, 크람푸스는 나쁜 아이들에게 벌을 주었던 것처럼."
"오빠...김호국은 올해로 24세예요, 그리고 지난 번 크리스마스가 본인이 크리스마스를 자각하기 뒤로부터 16번째로 맞이한 크리스마스였죠."
"16번째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순간 녀석에게 걸려있던 제약이 풀렸다. 내가 내린 처벌은 15번째 크리스마스까지 자기 자신을 알 수 없게 하는 것이었으니까."
산타의 말을 잠자코 듣고있던 선열은 그제야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한 마디를 툭 던졌다.
"그래서 놈이 다시 한 번 이 게임을 망치기 전에, 위대한 손님들이 이 게임을 서둘러 끝내려 움직이고 있단 거군."
"왜 좀 더 빨리 끝내지 못 한 거냐고 묻지는 않는 건가?"
"그들에게도 준비가 필요했겠지.게임을 완벽하게 끝낼 수 있는 준비가. 하지만 그 준비가 생각보다 오래 걸렸고...그 사이에 15년이 훌쩍 지나가버린 거지. 우리가 입양을 해서 초등학교 입학 전 까지 키운 시간이 얼추 5년이니, 도합 20년이야."
세희가 기억조차 하지 못 할 만큼 아주 어린 시절의 이야기였다.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입양된 김호국과 친남매로 둔갑해버린 시간대의 이야기.
"김호국이 어떤 존재인지, 어째서 지금까지 IQ 84의 멍청이처럼 행동했는지는 잘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의문점이 더 남아있습니다. 당신이 왜 우릴 도왔냐는 겁니다. 우릴 죽이려고 했던 자들의 의뢰를 받았던 당신이."
이두근의 질문을 받은 산타는 대답 대신, 텅 비어버린 우주정거장의 안쪽으로 먼저 걸어 들어갔다.
"나는 전 세계의 그 어떤 인간들보다도 먼저 이 세계의 이상을 깨달은 인간이지. 아니, 사실 인간이 아니었을지도 몰라. 세계로부터 부여받은 거짓된 삶을 살고 있었으니...산타라는 환상의 존재를 돕고 있던 환상의 도우미였을지도 모르지. 중요한 건 내가 이 게임을 3번이나 망쳐서 단단히 화가 난 자들로부터 정보와 의뢰를 받았다는 것이고, 난 누구보다도 빨리 이 세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걸 깨달았지. 또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도."
"우린 그저 강대한 힘에 짓밟히고 있는 나약한 인간들이잖습니까."
"그렇지. 정확히는 일확천금을 노리고 이 게임에 참가한 철딱서니 없는 70억 서민들이고."
"......?"
우주정거장의 컨트롤 타워에 도착하기 직전, 그는 일행들을 천천히 둘러보며 물었다.
"당신들은 이 세계가 그저 빌어먹게 반복되는 끔찍한 지옥인줄로만 알고 있겠지. 더 깊고, 더 끈적거리고, 더 기분 나쁜 진실을 알고 싶나?"
여기까지 온 시점에서 진실을 거부할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침묵은 곧 동의라고 판단했는지, 그는 피식 웃으며 컨트롤 타워의 문을 발로 차서 박살내버렸다.
그들이 보게 된 것은 어마어마한 수의 모니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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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딥 다크 진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