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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해피 고문재단-204화 (204/209)

< 흔하디 흔한 래퍼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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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반드시 이 세계에서 죽어야 한다! 이 세계에 묶여있어야 한다!!"

그렇게 외친 조원석이 노쇠한 몸이라곤 생각되지 않을 만큼 무시무시한 속도로 내게 쇄도해왔다. 더이상 웃어른으로 공경해줄 수가 없을 만큼.

"난 이미 3번이나 죽었어."

도저히 답이 없었으니까.

내가 이길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이 요만큼도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인사권(人事權)을 지닌 권력자가 부하를 해고(처형)하듯, 나 역시 스스로를 처형했다. 왠지 모르게 그게 내 적성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약물을 주입한 건지, 수술을 통해 신체를 전반적으로 손본 건지, 그의 주먹은 내 눈으로도 간신히 좇을 수 있을 만큼 재빨랐다.

속도가 대단하면 힘도 대단하다고 했던가, 볼을 스치고 지나간 주먹의 풍압이 얼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3번이나 죽었으면 이번 한 번 정도는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다들 먹고 살려고 노력하는 세상인데, 나만 자꾸 죽으면 억울하잖아."

"네가 죽어야 모두가 살 수 있다!"

"그럼 반대로 내가 살기 위해 모두를 죽이면 된다는 거야?"

"그렇게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내가 온 거다!!"

그의 희생 정신이 참으로 눈물겹다.

그냥 본인이 자신은 위대한 무언가를 위해 희생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노인네의 늦깎이 환상을 무참하게 깨버리는 것도 조금 너무한 일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말없이 몸을 회전시켜 그의 옆구리에 뒷돌려차기를 때려박았다. 내 발꿈치가 그의 10번, 11번 갈빗대를 부수는 느낌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내장이 파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찰나의 순간에 몸을 비틀어 갈빗대로 충격을 완화한 것이 틀림없었다. 부러진 뼛조각이 폐를 마구 찌를 거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내장이 파열되면 찢어진 내장 조각와 내용물, 피가 복부를 채우면서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지. 쿨럭!"

"그리고 폐는 2개이니 1개쯤은 희생해도 된다. 나도 알아. 당신이 가르쳐 줬으니까."

그는 복수가 부풀어 올라 움직이기 힘들어지느니, 차라리 폐 한짝을 날려먹는 한이 있더라도 최대한 자유롭게 움직이겠다는 심산이었다.

정말로 눈물겹다.

"흐흐, 지금 내 몸에 뭐가 흐르고 있는지 알겠나......?"

"쥬스 마약."

"그래, 잘 아는군."

쥬스라는 건 은어일 뿐이고, 지금 그의 체내를 돌고 있는 것은 정밀한 배합으로 제작된 Mix Drug다.

통증 차단, 감각 증진, 아드레날린 과다 분비, 자아도취를 통한 자신감 향상. 그는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마약으로 뽑아낼 수 있는 모든 장점들을 발현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제와서 이런 말 하기도 뭣하지만, 그 몸으론 요양원도 못 들어가. 말년에 기저귀 차고, 침 질질 흘리면서 사셔야 한다고."

"상관없다. 여기서 모두 끝낼 생각이니까."

"모든 걸 끝내고 나면? 그게 어떤 의미가 있는데?"

"신께서 우리를 굽어살피신다는 것에 대한 확신!"

그래, 나는 그의 친누나가 신내림을 받은 여자라는 걸 알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종교보다는 오컬트에 관련된 인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두 남매에겐 종교나 다름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날 잡고 천국행 코인을 타보시겠다?"

"모든 인류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려는 것 뿐이다. 너만 없으면...네가 다시 깊은 나락으로 떨어진다면...필시 모두에게 구원이 있을 테니까!"

목에서 뚜둑 소리가 날 정도로 급하게 고개를 젖힌 순간, 코끝을 스치고 지나간 조원석의 발길이 눈에 들어왔다.

횡으로 휘두르는 칼날처럼 날카로운 발차기 한 번으로 끝낼 생각은 없었는지, 그는 재빨리 권투 자세로 바꿔 인파이팅을 시도했다.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날아든 주먹이 아무렇게나 허점을 보이고 있던 내 복부와 흉부에 틀어박혔다. 한 방 한 방이 내 몸에 꽂힐 때마다 총에 맞은 것처럼 전신이 들썩였다.

주먹은 때론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가슴을 후벼팠고, 때론 무지막지한 망치로 변모해 뼈와 내장을 산산조각내버렸다. 그런가 하면 채찍보다도 강렬한 고통을 문신처럼 남기기도 했다.

"...정말로 날 죽이고 싶었다면 지구에 달이라도 떨어뜨렸어야지."

뚜둑, 뚜둑.

내 몸의 호르몬이 미친듯이 분비되고, 심장이 펌프질을 해서 혈관을 통해 전신으로 흘려보낸다. 고통따윈 한 순간에 멎고, 만신창이가 된 세포는 재생 명령을 받고 힘차게 재생을 시작한다.

누군가는 조원석과 조혜원 남매의 사정을 알아줬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사실은 불쌍한 사람이었다던가, 사연이 있는 사람이었다던가 하는 흔하디 흔한 래퍼토리처럼.

하지만 세상에 불쌍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고, 사연이 없는 사람은 또 어디 있겠나. 모두가 불쌍하고, 모두가 사연이 있고, 모두가 결국에는 죽을 운명을 갖고 태어난 생명체다.

나 또한 다르지 않았다.

"내가 3번이나 스스로를 죽여야 했던 이유는, 나 자신이 말도 안 될 만큼 나약하고, 쓸모 없었고, 어떻게 해도 이길 자신이 없을 만큼 불쌍한 놈이었기 때문이야. 그래서 스스로를 죽이면서, 내가 가진 모든 기회를 1%의 가능성으로 맞바꿨지."

"그 가능성이 모든 이들을 파멸시킨다고 해도 말이냐? 이 괴물 새끼......!"

"그럼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했을까? 처음부터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을까? 아니야. 누구도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아. 나도, 친척들도, 이 세상의 그 누구도."

기회가 있으면 자신을 위해 사용한다.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면 코인을 던져 판돈을 올린다.

생명체들의 삶이란 결국 생존 경쟁. 누가 더 많은 판돈(가능성)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각자의 삶에 조금씩 차이가 있을 뿐, 기본적으로 그 틀은 바뀌지 않는다.

빠악!

으스러져라 움켜쥔 주먹으로 그의 안면에 카운터 펀치를 후려 갈겼다.

후두둑 떨어져나간 몇 개의 치아가 바닥에 떨어지고, 핏물이 허공으로 비산했다.

빠악!

카운터에 이은 카운터 펀치가 내 안면으로 날아들었다. 씁쓸한 고통과 함께 눈앞에서 별이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나의 쓸데없이 높은 콧대와 고무타이어도 씹어먹을 만큼 튼튼한 치아는 부러지지 않았다. 역시 젊은 놈과 늙은이의 신체적인 차이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팔을 꺾어 그가 힘겹게 내뻗은 팔꿈치 아래로 손을 비집어 넣은 뒤, 꽈배끼처럼 꼬아서 단번에 비틀어 올렸다. 상대의 어깨를 탈구시키는데에 탁월한 기술이지만, 나의 경우는 아예 팔을 뽑아버릴 작정으로 비틀었다.

"끄으으......!"

"난 태어났을 때부터 기회가 없었어. 분가의 자식이라 배척당하고, 본가의 자식들이 당연하게 누렸던 것을 누리지 못 했지. 그건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야."

오직 나만이 가상 현실에 접속할 수 없었던 것은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소유하기는커녕 꿈을 꾸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은 작디작은 소망. 나는 오직 그것만을 위해 어렵게 넘겨받은 기회를 모두 사용했다.

"남이 대신 결정해준 삶을 열심히 살았던 당신은 죽어도 모르겠지. 스스로 결정하고 살아가는 것조차 불가능했던 내가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려왔는지."

반쯤 뽑혀나간 그의 팔을 억지로 붙든 채, 연거푸 주먹을 휘둘러 복부를 두들겼다. 약과 개조 수술로 강화된 그의 육체도 결국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 한 채, 조금씩 내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크흡....! 이 삶은...! 우리가 선택한 삶이었다! 오직 널 죽이기 위해!!"

"아니, 계시라는 헛소리를 곧이곧대로 믿고, 이게 올바른 일이라며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남의 인생을 송두리째 뜯어내려고 했을 뿐이야."

그건 정말로......

"꼭두각시 같은 삶이지."

그의 목을 움켜쥐고 팔꿈치를 때려박아 턱뼈를 통째로 뜯어냈다. 하관이 날아가 피묻은 혀만 데롱데롱 흔들리는 그의 얼굴은 실로 추레하기 그지없었다.

일반적이었다면 지금쯤 손주의 재롱을 보면서 즐겁게 노후를 보내고 있어야 할 사람이다. 이런 곳에서, 이런 일을 하며, 이런 최후를 맞이할 정도로 형편없는 사람은 아니었단 거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친누나와 함께 철썩같이 믿었던 타인의 거짓을 일생의 지표로 삼으며, 이렇게 되기를 스스로 소망했다.

스스로 선택한 것도 아닌, 그저 멍청하게 이런 결과를 바랐을 뿐인 어리석은 남자가 된 것이다.

나는 여전히 마약이 돌고 있는 그의 몸을 붙들고 물었다.

"내게 가르쳐줬던 생존 지식, 전투 기술, 타인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방법. 그 모든 것을 가르쳤던 것도 계시 때문이었겠지?!"

"......"

"약해빠졌던 나를 강하게 만들어준 것도, 혼탁한 정신으로 방황하고 있던 나를 사람구실이라도 할 수 있게 만들어준 것도, 모두 계시 때문이었겠지?!"

"......"

하관이 날아가버려 더이상 말을 할 수 없는 그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거면 충분한 거다.

"...내가 가진 기회가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었다면 좋았을 것을."

이제와서 700800시간을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다.

나는 주변에서 울려퍼지는 폭음과 기괴한 비명 속에서, 축 늘어진 늙은이의 심장에 주먹을 때려박았다.

이윽고 더이상 볼품없는 인간의 몸을 지닌 그가 움직이지 못 하게 되었을 때, 나는 고개를 들어올려 전방을 바라보았다.

조원석 대령은 숨을 거뒀지만, 그와 함께 나를 말살하기 위해 몰려온 안드로이드와 호문클루스 군단은 여전히 건재했다.

나를 돕고 그 대가로 처형을 받기로 한 ES들이 분전해주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적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고문재단이 전 세계를 청소하기 위해 오랜 시간 공들여 준비한 히든 카드 다웠다.

그는 처음부터 자신이 허무하게 죽을 것이란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내가 어떤 상태인지 모를리가 없었을 테니까.

그럼에도 기꺼이 전장으로 향한 이유는, 나를 이곳에 묻어버리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설령 그것이 거짓으로 점칠된 의지였다고 해도.

끝없이 고문당하는 기분이다.

벌어진 상처를 또다시 후벼파고, 피를 한 웅큼이나 쏟아내게 만들고서 또 배를 걷어차는 것 같은 감각. 이게 고문재단의 방식이고, 이게 고문당하는 자의 삶이다.

솔직히 말하면 고문을 하게 내버려두는 것도, 얌전히 고문을 당해주는 것도 이젠 질렸다.

나는 마땅히 내가 돌려받아야할 것을 돌려받기 위해 700800 시간 속에서 억겁의 고통을 감내해왔다. 이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단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고, 단 한 번도 불행에서 벗어났다고 안심한 적이 없었다.

"이 미친 게임을 끝낼 때가 됐어."

나는 호르몬에 의한 정신간섭이 통하지 않는 안드로이드와 호문클루스 군단을 향해 성심성의껏 육체로 부딪쳐 주었다.

뼈가 부서지고, 근육이 파열되고, 분수처럼 핏물이 터져나오는 한이 있어도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저 감정도, 영혼도 없이 그저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인형 군단을 향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었으니까.

빠즈즈즈즈!

안드로이드의 머리통을 한 손으로 잡아 뜯어버려도 피같은 건 쏟아져 나오지 않는다.

퍽! 퍽! 퍽!

호문클루스의 몸을 인정사정없이 두들겨봐도 인간의 육체와 같은 감촉이 느껴지지 않는다.

"......"

저들은 내게 뭘 원한 것일까?

내가 살인을 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라도 느끼길 원했던 걸까? 아니면 옛 은인을 자신의 손으로 끝장내버린 것으로 정신이 붕괴하길 기대했던 걸까?

어쩌면 이곳에서 끝도없이 밀려오는 인형 군단과 쉴새없이 싸우다, 끝내 지쳐버린 나머지 모든 것을 포기하길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런 식으로 감응하지 않는다는 걸 모르진 않았을 텐데.

과거에는 혼탁한 정신으로 멍청하게 행동했던 내가, 멀쩡한 정신을 되찾는 순간 정신적으로 받는 충격을 상쇄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상대의 의도가 너무 뻔하다.

동쪽 해안가에서 햇살이 떠오르고 있을 무렵, 마지막 안드로이드의 머리통을 잡아뜯은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아침이라 그런가...불끈불끈하네."

나도 남자인 만큼, 아침 햇살이 떠오르는 아침에는 자연스럽게 아랫도리가 건강해지는 법이다.

그게 수백만이 넘는 인형 군단을 처리하고 난 뒤라는 게 조금 찝찝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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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하디 흔한 래퍼토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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