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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해피 고문재단-201화 (201/209)

< 게임 플레이 타임 : 700800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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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방호복 벗으면 고기 굽는 냄새 날까?"

호국은 화염방사기의 노즐 방향을 바꾸면서 중얼거렸다.

시설 전역에 뿌리를 내린 이 기괴한 혈관들을 정리하는 건 정말 어려운 작업이었다. 과거의 호국은 치약과 칫솔 하나만으로도 세차를 한 적이 있지만, 지금 상황은 그것과 비교도 안 될 만큼 벅찼다.

화르르르륵!

화염방사기에서 쏟아져 나온 불꽃이 구역을 휩쓸고 지나갈때마다 혈관들이 쪼그라들며 검은 숯덩이로 변했지만, 그것도 잠깐 뿐이었다.

곧 새로운 점액질이 분비되면서, 그곳에 새살이 돋는 것처럼 혈관이 다시 자라났다. 혈관이 자라는 속도가 어찌나 빨랐던지, 불로 태워없애는 속도가 따라가질 못 했다.

"물리적으로 잘라내거나 터뜨리는 건 효과가 있었는데, 불로 태우는 건 요만큼도 효과가 없어. 군 제초 작업도 이렇게 힘들진 않았는데......"

그때도 쓸모없는 잡초 더미를 싹 태워버리거나, 제초기와 삽을 동원해서 흔적도 없이 갈아버린 적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어차피 다시 자라났지만, 이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게다가 두터운 방호복을 껴입고 있었기 때문인지 호국의 전신은 금세 땀으로 축축해졌다. 화염방사기에서 나오는 열기와 답답한 환경때문에 주변이 찜질방처럼 느껴졌다.

"후우...후우...체력적으로 이렇게 지친 건 오랜만인데."

입가에 연결된 튜브로 물을 빨아마셔도 다시 땀이 비오듯 흘렀다.

우주비행사 슈트처럼 땀과 소변을 즉시 정수해서 식수로 만들어주는 뛰어난 기능은 없었다. 애초에 이런 걸 입는 과학자들은 그런 상황까지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이 혈관들이 너무 거슬려.'

집요하게 호국의 팔이나 다리를 휘어감으려는 혈관들 때문에 호국은 몇번이고 발길질을 하거나, 단검을 휘둘러 끊어냈다.

'마치 날 부르고 있는 것 같아.'

정신병자마냥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오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혈관들이 묘하게 자신을 잡아끄는 것 같아서, 거기에 어떤 이유가 있는 건가 싶었다. 이런 징그럽게 생긴 것들이 자신에게 대체 무슨 볼일이 있어서?

'새끼 발가락을 자꾸 찧고 있는 느낌일테니 열이 받은 거겠지.'

병원 신세를 져본 사람들이라면 다들 그 느낌을 모를 수가 없다.

정확한 시간에 맞춰 주사기를 들고 나타나는 의료인들, 약을 먹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다시 찾아오는 통증.

하지만 그건 심각하게 논의할 만큼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다. 신경이 쓰일 만큼 아픈 것 뿐이다. 새끼발가락을 자꾸 찧는 것처럼.

'즉 이 혈관의 입장에서 보면 우린 의료인과 주사기 같은 건가?'

사실 어떻게 생각하든 호국이 신경쓸만한 일은 아니다. 호국이 부여받은 임무는 '청소'였고, 그걸 위해 신입과 함께 이곳까지 기어들어왔다.

학창시절,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너는 멍청하니 복잡한 것은 생각하지말고 주어진 일만 성실히 수행해라, 라는 얘기를 들었었다. 역시 똑똑한 교사답게 멍청한 학생을 가르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 집중만 하면 되는 거야. 난 똑똑하지 않으니까 복잡한 건 생각할 필요가 없어. IQ 84에게 그런 건 사치니까.'

호국은 연료가 다 떨어진 화염방사기와 탱크를 옆으로 내던졌다. 기세 좋게 휘둘렀던 절삭톱도 날이 나가버렸기 때문에 더이상 사용할 수 없었다. 해머는 이미 손잡이가 부러져 버렸다.

"좀 더 안으로 들어가자."

호국이 점액질이 질질 흘러나오고 있는 엘리베이터 입구를 가리키자 신입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작은 미생물조차 들어올 수 없을 만큼 튼튼한 방호복을 껴입고 있으니, 호국은 망설임없이 점액질 풀장으로 입수했다.

이 점액질이 끝도 없이 혈관을 만들어내고 있다면, 제 6 연구 시설에서 그랬던 것처럼 원흉이 존재할 것이 분명했다.

이미 상대를 충분히 열받게 만들었을테니, 남은 것은 직접 찾아가서 처리하면 될 일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산소통의 잔량이 1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훨씬 더 빠르게 흐르고 있어.'

분명 5시간 분량이었던 산소가 어느샌가 1시간도 남지 않게 되었다.

자신은 땀을 비오듯 쏟고 있었고, 그건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필요 이상으로 움직였다는 것을 반증한다.

야생 동물 특집 다큐멘터리에서 본 적이 있다. 어떤 설치류는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그만큼 필요한 열량을 섭취하지 못 하면 쇼크로 죽어버린다고. 그리고 인간이 느끼는 것과는 전혀 다른 시간대를 느낀다는 얘기도 들었다.

'맥동이 느껴져.'

호국은 점액질 속을 헤엄쳐 아래로 내려가면서 거대한 쇼크 웨이브가 자신의 몸을 때리는 것을 느꼈다.

지금 호국과 신입이 잠수한 곳은 엘리베이터 통로 속에 존재하는 것은 동맥이었다. 점액질에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가고 있었으니, 점액류의 방향만 놓고 보면 틀림없는 동맥이었다.

시답잖게 호국을 옭아메려 했던 모세 혈관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크기, 강한 압박감이 느껴진다. 특히 한 번의 맥동이 혈관을 훑고 지나갈때마다 쇼크 웨이브가 터져나왔다.

심지어 이 맥동은 점액이 동맥과 정맥을 통해 순환하기만 하면 절대로 멈추지 않는 심장의 생체 반응이다.

"으음......!"

다시 한 번 작렬한 쇼크 웨이브가 방호복의 유리 마스크를 깨버렸다.

어찌할 틈도 없이 기분나쁜 점액질이 호국의 슈트 내부로 쏟아져 들어왔다.

하지만 괴로운 것도 잠깐이었다. 평범하게 숨 쉴 수 있었고, 목이 막히는 느낌도 없었다.

'익숙한 느낌이야.'

마치 처음부터 자신의 것이었던 것 같은 느낌이다.

따스하게 전신을 감싼 점액질은 피로에 지친 호국의 몸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실력좋은 마사지사의 마사지 풀코스를 받은 것처럼 근육의 피로가 풀렸다.

동시에 호국의 체내에서 들끓고 있던 호르몬이 외부로 터져나갔다.

분비된 호르몬은 점액질을 타고 사방팔방으로 뻗어가 자신의 영역을 넓혔다.

심장으로부터 터져나온 맥동은 더이상 호국에게 피해를 주지 못 했다. '자신'의 심장이 맥동하는 것에 상처를 입을 사람은 없으니까.

별 힘들이지 않고 점액류의 흐름을 역전해 아래로 내려간 호국은 이윽고 거대한 고치를 발견했다. 정확히는 고치의 내부와 연결되어 있는 구멍이었다.

"그래. 기억이 나."

구멍 속에서 기어나온 호국은 무언가에 의해 압박감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불규칙적으로 떨리듯 맥동하는 고치 내부를 둘러보았다.

고치의 중심부에는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있는 2개의 백골(白骨)에 자잘한 혈관들이 얽혀있었다. 백골 내부에 조금씩 살과 피가 차오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외부에서 끌어모은 에너지를 흡수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기억컨대, '자신'의 심장과 혈관은 이런 용도로 사용되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용도로 사용되는 걸 허락한 기억도 없고.

호국은 답답하기만 한 방호복을 벗어던진 뒤, 자신의 가슴팍에 손을 갖다대보았다. 희미하지만 자신의 심장은 여전히 맥동하고 있다.

하지만 힘이 부족하다. 전신으로 피를 보내기 위한 펌프질에서 박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 심장으로는 너무나도 부족하다!

고치가 점점 더 빨리, 점점 더 혼란스럽게 불규칙적으로 뛰었다.

"허으으으.....!"

"하앗?!"

2개의 백골에 빠르게 살과 피가 채워지며, 이윽고 두 명의 남녀가 본래의 형태를 되찾았다. 동시에 둘은 가슴팍을 움켜쥐고 매우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헐떡였다.

호국의 체내에서 분비된 호르몬 과다 분비로 인해 이 고치가 미친듯이 빠르게 맥동하자, 혈관으로 고치와 연결된 둘 역시 심장마비의 고통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너, 너...! 네가 어떻게 호르몬을......!"

"허흐...허흐...! 있을 수...없는 일이다! 그 녀석이 그렇게 허무하게 당했다고?!"

호국은 헐떡이며 씹어뱉듯이 소리치는 두 남녀에게 다가가, 그들에게 연결되어 있던 혈관을 강제로 잡아 뜯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악! 크흑......!"

본래 자신들의 것이 아니었음에도 두 남녀는 혈관이 뜯기자마자 끔찍한 절규를 내질렀다. 누가 이 광경을 봤더라면 호국이 고문을 한 줄 알았을 것이다.

"난 내가 멍청하다는 걸 알아."

둘에게서 잡아 뜯은 혈관을 리본처럼 묶어 던져버린 호국이 대뜸 그런 말을 꺼냈다.

"그래서 난 내 이성적 판단을 믿기보단, 내 기억 속에 축적된 경험과 지식을 믿어. 난 멀쩡한 정신 대신 멀쩡한 기억을 택했으니까."

바닥에 엎드려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고 있는 둘의 목덜미를 양손으로 움켜쥔 호국은 둘을 잡아올렸다.

"그리고 난 이걸 기억하고 있어. 내 심장, 내 혈관. 내 몸의 일부를. 지금까지는 잊고 있었지만, 하나둘씩 얻고 나니 자연스럽게 떠오르더라고."

눈을 가지고 있을 때는 자신만의 관점으로 세계를 보는 멍청이였다.

귀를 가지게 되었을 때는 자신이 들을 수 없었던 세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멍청이가 되었다.

다리를 가졌을 때는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튼튼한 두다리를 지닌 멍청이가 되었다.

그 시점에서 반의 반의 반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현재'의 얘기를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호르몬을 얻고 난 지금. 그 말을 이해한 것을 넘어, 지금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부족한 것들이 지금 어떤 꼴을 당하고 있는지 이해하는 것도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내 몸에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둘의 목덜미를 움켜쥔 채 손가락 끝으로 지그시 경동맥을 압박하며 물었다.

"흐으, 흐흐...크흡! 하아...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 이건 단순한 '게임'이야! 아버지의 유산을 상속받기 위한 게임!"

"그걸 네가 망친 거야. 유산을 상속받을 자격도 없는 분가(分家)의 자식주제에!!"

"네 몸...? 이건 '누구'의 몸도 아니야! 모두가 원하는 몸이라면 모를까......!"

"넌 규칙을 어겼어. 애초에 참가 자격도...크흡?!"

호국이 남자쪽의 목덜미를 강한 악력으로 압박하자 입가에서 검붉은 핏물을 쏟아냈다.

"내가 원하는 건 그런 답이 아니야. 그저 내 몸에 대해서 알고 싶은 거지."

"당연히...모르겠지! 뇌는 이미 다른 형제의 손에 넘어갔어! 넌 절대 알 수 없을 거다!"

"뇌가 모든 걸 컨트롤 하고 있어. 이미 합의가 끝난 거야. 다들 협동해서 이 게임을 끝내고...뇌의 주도하에 유산을 분배할 생각이었지! 쿨럭! 우리도...그 길에 동참하려 했지만...보다시피 늦었네."

"그래도 아쉽진 않아! 우리가 유산을 받을 수 없다면...너같은 분가의 자식도 받을 수 없어야지! 게임의 규칙을 어긴 네가 정말로...우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냐?"

"이건 20년간 진행했던 '우리들만'의 게임이야! 너 같은 놈에겐...한푼도 못 주지!"

그 말을 내뱉은 직후, 둘은 거의 동시에 자신들의 손을 각자의 가슴팍에 찔러넣었다.

"크흡! 커헉! 혈관은...놓쳤지만. 심장은 파괴했다."

"넌 절대 필요한 조각을 갖출 수 없을 거야......!"

쌍방의 가슴을 꿰뚫은 두 사람은 이윽고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더이상 둘의 심장이 맥동하지 않았다. 고치의 움직임도 멈춰버렸다.

가슴팍에 휑한 구멍이 뚫려있는 둘에게서 건질만한 심장이 없는 것은 확실했다. 이 고치 또한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형태가 무너져 내릴 게 뻔했다.

하지만 호국의 개의치 않고 손짓으로 신입을 불러들였다.

"흡수해서, 재생성. 가능하지?"

신입이 고개를 끄덕이자 호국은 둘의 시체를 발로 밀어서 넘겨주었다.

지금껏 길바닥에 떨어져 있는 걸 막 주워먹지 말라고 누누히 경고했었지만, 이번 만큼은 신입이 바닥에 떨어진 걸 주워먹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

이윽고 점액 형태로 변한 신입이 둘의 시체를 게걸스럽게 집어삼키고, 반투명한 체내에서 녹여 없앴다.

DNA 정보만 습득하면 뭐든 만들어낼 수 있다. 삼킨 것을 장기간 보관하는 것도 가능하다. 호국은 신입의 용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다만 멍청한데다 기억까지 혼탁했던 자신이 제대로 떠올리지 못 했을 뿐.

호국이 바닥에 떨어진 혈관 덩어리를 주워 씹어 삼키는 사이, 열심히 DNA 정보를 분석하던 신입이 마침내 힘차게 펄떡거리는 심장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 괘씸한 쌍둥이가 좌심실과 우심실로 나눠가졌던 심장이 본래의 형태로 복원되어, 다시 한 번 호국의 손에 쥐여졌다.

"후우, 이럴 줄 알았으면 선지 해장국좀 많이 먹어둘 걸 그랬어."

이윽고 펄떡거리는 심장이 진짜 주인의 품으로 돌아갔다.

호국은 자신의 품 속에 넣어두었던 작은 고서적을 꺼내 펼쳤다. 비어있던 내용이 하나둘씩 핏빛 글자와 문양으로 채워졌다.

그것은 마치 접속 코드인 것 같기도 했고, 암호를 해독하기 위한 코드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이만 나가자."

주인의 품으로 돌아온 심장과 혈관은 더이상 기행을 펼치지 않게 되었다.

이 시설 전역을 장악하고 있던 기괴한 혈관들은 빠른 속도로 녹아 없어졌으며, 마치 신혼부부의 방처럼 꾸며져 있던 거대한 고치도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호국과 신입이 다시 메인 모니터룸으로 돌아왔을 때,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굳은 얼굴의 333번과 그의 동료들이었다.

그리고 제 6 처리 시설에 두고왔던 ES들이 바닷물의 짠내를 풍기며 그들의 뒤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제 우리가 뭘 원하는지 알겠지?"

어찌 그것을 모를 수가 있을까. 공교롭게도 호국이 원하는 것은 저들과 같다.

그건 바로 누구도 불만을 품지 않는 완벽한 해피 엔딩(Happy Ending)이다.

괘씸한 놈들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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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 플레이 타임 : 700800h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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