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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해피 고문재단-192화 (192/209)

< 경비 업무 일지 : 호르몬(1) >

자신의 입을 왜 그렇게까지 찢어놓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입을 그렇게 찢어놔도 먹는 양이 늘어나진 않는다는 점이었다.

샷건에 머리통이 완전히 날아가버린 미치광이의 시체를 옆으로 치운 호국은 깜빡이는 백열등을 보고 한숨부터 쉬었다.

이런 대규모 시설일수록 전력 사용량이 엄청나기 때문에 전등의 소모율도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하루종일 불을 켜두는데 소모가 느릴리가 있나.

"전등 교체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우선 구역 청소부터 하자. 방문도 죄다 열려있는 걸 보니......"

"익싸이이이이이이이팅!!"

저 멀리서 자신의 가슴을 고릴라처럼 두들기며, 핏물로 범벅이 된 매끄러운 복도를 무릎썰매로 미끄러져 오는 남자가 있었다.

"치워."

호국의 한 마디에 신입이 앞으로 튀어나가 무릎썰매를 타던 남자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어둠 속으로 끌고 들어가서 '게걸스럽게' 처리했다.

뼈와 살점이 바스러지는 불쾌한 소음이 울려퍼졌지만, 호국의 '귀'는 그런 불필요한 소음보다도 다른 무언가를 듣고 있었다.

"안쪽에 사람이 모여있는 것 같은데."

말끔한 복장으로 걸어나온 신입과 함께 더러운 복도를 가로질러가자, 제 6 처리 시설처럼 제 6 연구 시설의 B41 고위험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처리 시설과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역시 병원을 방불케 할 만큼 각종 실험기재나 의료기기가 많다는 부분이었다. 저걸 누구에게,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는지는 궁금증을 느낄 필요도 없었다.

-6A B41에는 1체의 ES가 존재합니다.

복도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 관리봇의 목소리는 이 앞에 무엇이 있는지 알려주었다. 호국이 처음 TF에 입사했던 그날 처럼.

-ES 6A-01은 고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대리석 조각상입니다. 하지만 그 어떤 역사에도 해당 조각상의 명확한 외형이 묘사되어 있질 않습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아름다운 여신상이라고 표현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흉포하고 사악한 악신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밖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상, 형태조차 남아있지 않을 만큼 철저하게 부서진 조각상 등 다양한 기록들이 남아있습니다.

"예술이란 원래 그런 거 아니야? 도화지에 점 하나만 찍어놔도 온갖 해괴한 해석이 나오잖아."

예전에 다큐멘터리에서 본 적이 있었다. 어떤 예술가는 자신의 똥을 예술 작품이라며 수십 억에 팔아치우질 않나, 어떤 예술가는 자신의 아들이 그린 그림을 평론가들에게 공개해 감상회를 열기도 했다.

미술이란 잘난 척 하고 싶은 놈들이 자신의 망상을 좋을대로 싸지르는 것. 호국이 다큐멘터리에서 배운 예술에 대한 교휸은 그게 전부였다.

-6A-01은 여러 대상에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정신오염성이 짙은 개체입니다. 전자장비로 관측할 수 없으며, 오직 생명체의 시각을 통해서만 형태를 나타냅니다. 현재 TF에선 6A-01을 2급 보안 등급으로 분류했으며, 최소 1개 기동타격대가 함께 하지 않는다면 접근이 허가되지 않습니다.

"그런 것 치곤 이미 많이들 접근한 것 같은데?"

호국은 눈을 가늘게 떠 복도의 끝자락에 모여있는 사람들을 살폈다.

그들은 거대한 조각상을 중심으로 거대한 원을 만들어 절을 하고 있었다. 물론 모두가 절을 하는 건 아니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눈알을 파내거나, 날카로운 쇠붙이로 가슴부터 복부까지 도려내 장기를 꺼내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오히려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조각상을 향해 머리만 처박고 있는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제 모든 것을 받아주십시오! 여기...당신께 드리는 저의 헌신입니다!"

"황홀해...모든 것이 황홀합니다. 제가 이곳에서 살아숨쉬고 있다는 사실이, 당신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버틸 수 없을 만큼......!

"기쁘다! 기쁘다! 기쁘다! 기쁘다! 기쁘다!!"

"이 주체할 수 없는 흥분조차도 당신의 축복! 그렇다면 나는...선택받은 자!!"

신흥 사이비 종교도 아니고, 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 하는 사람들이 시끄러운 비명이나 웃음소리를 자아내며 단체로 몸부림 치고 있었다.

조각상을 향해 과격한(?) 애정 표현을 하는 것도, 자신의 신체 일부를 헌신이니 뭐니 하면서 갖다 바치는 것도 호국에겐 지옥같은 광경일 뿐이었다.

'복도가 더러워지고 있잖아......!'

장기를 꺼내 바칠거라면 하다못해 고급스러운 포장지에 포장이라도 했어야지. 핏물과 점액이 뚝뚝 흐르는 걸 누가 좋다고 넙죽 받는단 말인가?

게다가 딱딱한 조각상 앞에서 발가벗고 춤을 추는 놈의 스트립쇼는 정신건강에 좋지 않았다. 정말로 좋지 않았다.

"코끼리 코처럼 흔들리네. 후우, 여러분.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합시다!"

호국이 사람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 천장에 샷건을 갈기자, 귀신같이 미치광이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이 구역 일대의 정신사나움 수치가 조금 내려가니 호국의 마음도 한결 편해졌다. 역시 말을 듣게 하려면 몽둥이보다는 총이었다.

누군가 갑자기 튀어나와 호국의 어깨를 붙잡기 전까지는 원만한 해결이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당신은...당신은 이 행복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우리의 몸 안에서 끓어오르는 원초적인 행복이!"

가슴털이 수북한 사내는 자신의 통통한 뱃살 위에 날카로운 무언가로 스마일 이모티콘을 새겨놓았다. 상처를 따라 핏물이 질질 흘러서 울고 있는 스마일처럼 보였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전 지금도 충분히 행복해서요. 평생 직장에, 돈 많이 주는 상사, 그리고 제가 가장 잘하는 일까지."

이런 자신도 어엿한 사회인으로 인정받고 있는 마당에 불행할 건덕지가 어디 있겠나. VR에 접속하지 못하는 것만 빼면 호국은 조금도 불행하지 않았다.

"아니, 아니, 아니!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물질적 요소로는 당신의 깊고 공허한 마음을 채울 수 없습니다! 그러니 받아들이십시오, 무상의 사랑을! 느끼십시오, 원초적 행복을!!"

"느끼긴 뭘 느껴요. 그거 직장 성희롱이에요."

얼른 옷이나 주워입으라고 경고한 호국은 그들의 중심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조각상에 접근했다.

"이런 조각상을 보고 대체 어떻게 행복을 느끼고 있는 거지?"

호국의 '눈'이 보고 있는 조각상은 날개꺾인 천사가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얼굴로 교수형을 당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개개인이 느끼는 미적 감각이나 예술적 가치관은 서로 다른 법이지만, 호국은 이런 기분 나쁜 조각상을 보면서 헉헉댈 만큼 뒤틀린 이상성욕자가 아니었다.

천사가 좀 예쁘기라도 했으면 모를까, 조각상에 표현된 천사는 생각보다 예쁘지도 않았다. 그리고 왠지 실시간으로 목을 죄이고 있는 것 같았다.

호국은 때마침 주변에 굴러다니는 적당한 천쪼가리로 조각상을 머리부터 덮어버렸다. 이미 기억 속에 남아버린 건 어쩔 수 없지만, 지금부터라도 보이지 않도록 감출 필요가 있었다.

자신은 꽤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주변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고통! 행복! 고통! 행복! 고통! 행복!"

"나의 행복님, 떠나지 마세요! 내 삶의 유일한 낙! 나만 바라봐주세요!!"

"내 헌신이 거부 당했다고?! unacceptable coooonditions!!"

마치 VR방의 전력이 갑자기 내려간 것처럼, 그들은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 하고 폭력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호국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 헌신이라는 명목하에 조각상에 바칠 것 같은 흉흉한 기세를 풍겼다.

"흐음."

호국은 혹시 몰라 조각상을 덮고 있던 천을 다시 벗겼다.

"오오, 행복의 냄새가 내 마음을 간질이는구나."

다시 천을 씌웠다.

"저 이단아의 심장을 뜯어내라! 새치혀를 잘근잘근 씹어라!!"

다시 벗겼고.

"당신의 은총과 축복에 저의 남심이 흔들리고......"

또 다시 씌웠다.

"네 위장을 묶어 술병으로 만들어주겠다!!"

"행복이 아니면 고통을!"

"행복이 아니면 죽음을!"

"오직 행복! 절대 행복!"

우디르급 태세전환을 보이는 그들을 향해 호국은 날카로운 단검을 꺼내보였다.

그리고 불쌍한 희생양의 목을 단칼에 베어내는 대신, 조각상에 칼날을 갖다댔다.

"허튼 짓을 하면 이 조각상에 제 이름을 새겨버리겠습니다."

"아, 안 돼!"

"훼손해선 안 돼!"

"누구도 우리보다 먼저 이름을 새길 수 없어!"

"아니! 누구도 새길 수 없어!"

미치광이들이 당황하는 사이 호국은 신입에게 턱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신입은 그대로 조각상을 주먹 한 방으로 박살내버렸다.

"......"

원래 그러려던 것은 아니었다.

"야 이 미친 놈아! 내가 시선을 끌고 있는 사이 한 명씩 체포하라는 의미였지, 누가 한 방에 조각상을 골로 보내버리래?!"

신입은 천연덕스럽게 그런 의미인 줄 몰랐다는 양 느릿한 고갯짓으로 대답했다.

"쿨럭! 쿨럭! 흐으...흐으, 대체 이게 뭐야?"

"왜 우리가 여기에......!"

"어흑! 내 배...배가 이상해!"

결코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신입이 조각상을 박살내버린 덕분에 일부 미치광이들이 제정신을 되찾았다.

하지만 상당수의 미치광이들은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더이상 호흡하지 않았다. 호국의 예민한 청각으로 들을 수 있는 건 극소수의 숨소리 뿐이었다.

그들중 한 명이 신입의 멱살을 쥔 호국을 발견하곤 창백한 얼굴로 되물었다.

"호, 혹시 여기에 당신 말고 다른 지원부대가 왔습니까?"

"감찰관 몇 명이 오긴 왔죠."

"당장...떠나십시오! 여기에 있으면 모두 미쳐버립니다! 쿨럭! 호르몬을 분비하는 생명체는 모두 예외없이...'그것'의 조종을 받습니다!"

"전 이과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는데요."

어려운 얘기를 하는 사람은 일단 이과일 확률이 95%다. 나머지 5%는 취직도 안 되는 주제에 입만 살아있는 철학과이고.

엉금엉금 기어와 필사적으로 호국의 발목을 붙들고 늘어진 그는 잠깐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TF 소속 아닙니까?"

"맞는데요."

"그럼 이 사태가...크흡! 얼마나 심각한지...이해했을 것 아닙니까? 그 놈이 조각을 얻고 난 뒤에 인간의 호르몬 분비체계를 만지작 거릴 수 있게 되었단 말입니다! 심지어 인간만이 아니라 ES조차도......!"

혼신의 힘을 다해 쥐어짜내듯 외치던 그는 이내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호국은 다시 신입에게 고개를 돌려 따끔하게 한 마디 쏘아붙였다.

"보고서엔 네 잘못이라고 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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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말한다.

사랑이란 그저 생물끼리 번식하여 새로운 유전적 다양성을 지닌 복제품을 낳아, 유전자를 미래영겁 보존하기 위해 필요한 화학적 작용일 뿐이라고.

이 화학적 작용이 존재해야 생명체는 유전적 다양성을 위해 노력할 것이며, 나아가 새롭게 탄생한 유전적 복제품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그것이 바로 모성애와 부성애라는, 이성에 대한 사랑이 아닌 또 하나의 자신에 대한 사랑이라고 평가한다.

참으로 재미없고 따분하다. 화학 작용이 조금 일어난 것 정도로 생명체란 쉽게 사랑에 빠지고, 쉽게 번식하며, 쉽게 자신들의 씨앗을 흩뿌린다.

그 과정에서 논리나 이해타산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계산조차 제대로 먹히질 않는다. 그저 첫눈에 반했으니까,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니까, 친근하니까 라는 이유로 사랑을 속삭인다.

주체할 수 없는 호르몬 마약 속에서 뇌가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현실을 직시하기 전 까지 진득하게 지지고 볶겠지.

앞뒤 안 재고 일단 무책임하게 결과부터 만들고 보는 것이 '사랑'이라면, 그건 좀 조절할 필요가 있다.

사실 조절하는 건 매우 쉽다. 호르몬의 분비량에 살짝 손대기만 해도 생명체는 완전히 다른 행동과 사고방식을 보이기 때문이다.

특정 호르몬이 부족하면 인간은 극도의 불안 증세와 신경쇠약에 시달리며, 우울증과 자살충동 속에서 미쳐버리고 만다.

반대로 특정 호르몬이 너무 과하면 불타오르는 흥분과 욕정을 주체하지 못 하고 마구 날뛴다.

크게는 인간 그 자체를 바꿔버릴 수 있으며, 작게는 인간의 행동을 세밀하게 컨트롤하는 것이 가능하다.

자아의식을 통해 신체를 관리하는 뇌가 있긴 하지만, 원래 이성은 본능을 이기기 힘든 법이다.

어떤 호르몬이, 얼만큼 분비되느냐에 따라 뇌가 통제하지 못 하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영역화 선포에 실패해서 다시 때를 기다려야 하나 싶었는데...설마 이런 식으로 기회를 얻게 될 줄이야."

올백으로 머리를 넘겨올린 창백한 피부의 사내가 벌거벗은 몸으로 담배를 태우며 중얼거렸다.

그의 주변에는 인간과 ES를 막론하지 않고 '호르몬'의 지배를 받는 것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거라면 내가 모든 유산을 차지할 수 있겠어. 모든 게 유언대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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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비 업무 일지 : 호르몬(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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