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비 업무 일지 : 자연스러운 자연재해(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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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늦은 할로윈 파티는 아니었던 것 같네요."
호국은 책상 서랍 속에서 찾은 비스킷을 오도독 씹으며 감상을 말했다.
"영상 속에서 나온 사람들은 모두 이 시설의 직원들이었어. 정규 연구원, 보조 연구원, 경비, 청소부, 화물 운송팀. 처리 시설보다 훨씬 더 많은 인력이 운용되는 시설다웠지."
"그만한 인력이 죄다 빠졌으니 시설이 요 모양 요 꼬라지가 된 것도 이해가 되네요."
호국은 분명 다들 연말 청소하기가 싫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과는 별개로 호국도 그냥 넘겨들을 수 없는 내용 하나가 신경을 거슬렸다.
'TF가 내부부터 붕괴되고 있다라......'
오도독!
수분이 사라져 딱딱해진 비스킷을 거칠게 씹어넘긴다. 크리스마스 파티에 내놨으면 욕 거하게 먹었을 비스킷이었다.
"TF가 내부부터 붕괴되면 역시 큰일이겠죠?"
"당연히 큰일이지. 원래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법이라고 하니까. 당장 인류의 역사를 살펴봐도 위대한 국가들 역시 내부에서부터 붕괴되어 멸망했거든. 나도 그 꼴을 몇번인가 봤었지."
"그럼 거기서 일하고 있던 사람들은 졸지에 백수 신세가 되겠네요. 월급은커녕 퇴직금도 못 받을 거고요."
"...그렇지."
미증유의 사태가 벌어진 지금, 고작 걱정하는 게 퇴직금이냐고 되묻는 듯한 333번의 시선이 날아들었다.
역시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돈 얘기를 꺼내는 건 너무 속물적이었나 싶었는지, 호국은 헛기침을 해서 분위기를 바로잡았다.
"제 말은 그러니까, 직장 생활을 계속 하고 싶으면 이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였어요. 직장은 소중하잖아요."
"그래, 직장은 소중하지. 솔직히 말해서 신참인 나도 벌써부터 직장을 잃고 싶지는 않아. 그랬다간 정말 돌아갈 곳이 없어지거든."
333번은 정장 속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럭키 스트라이크라는 오래 된 담배였다.
"이제 사태의 전말을 알았겠다, 어떤 상황인지도 이해했겠다, 각자 주어진 일을 할 차례야. 본(Bone). 보급 상자는?"
"지금 안드로이드가 가져오고 있습니다."
로니를 뜯어말렸던 건장한 체격의 대머리 서양인, 그의 이름이 머슬이 아니라 본이라는 것을 확인한 호국은 대뜸 질문을 던졌다.
"보급 상자가 있었어요?"
"출발하기 전에 헬기에 실어뒀었거든. 말했잖아, 장비는 우리쪽에서 보급해주겠다고."
그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엘리베이터에서 기어나온 것은 4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는 특이한 안드로이드였다.
녀석은 거대한 두 팔로 들고 있던 묵직한 보급 상자를 내려두고, 동글동글한 머리통 LED 패널에서 귀여운 이모티콘으로 자신의 현재 기분을 표출했다. 음성 기능은 따로 탑재되어 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건 감찰팀에게 지급되는 다용도 목적의 대형 안드로이드야. 내가 알던 시절의 안드로이드보다 훨씬 더 진화한 것 같은데...솔직히 말해서 난 기계의 구조따윈 잘 몰라. 그런 건 내 전문이 아니었거든."
"기계야 튼튼하고, 고장 잘 안 나고, 말만 잘 들으면 충분하죠."
"그래, 네가 뭘 좀 아네."
튼튼하고, 고장 잘 안 나고, 말만 잘 듣는 기계의 대표 주자로는 리모컨이 있다.
호국이 가장 먼저 보급 상자를 열어 자신에게 새롭게 지급된 경비단장용 장비를 챙겨들었다.
경비단장 제복은 짙은 회색빛의 일반 경비 제복과는 달리, 짙은 군청색에 '단장' 을 뜻하는 견장이 부착되어 있었다.
거기에 방탄판이 삽입된 방탄복과 장시간 착용해도 귀가 아프지 않은 소형 인터컴, 펄스 라이플과 중장거리 대인사살에 특화된 12게이지 펌프 샷건이 따라온 것은 덤이었다.
'산타를 잡을 땐 샷건을 써보지 못 했지만. 지금이라면 문제없겠지.'
철컥.
우선 샷건의 빈 약실을 확인해보고, 시험삼아 그립을 당겨서 어느정도의 힘을 줘야 하는지 파악했다.
현대 사회의 총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모델이지만, 최신형 펄스 라이플은 할 수 없는 일을 종종 클래식한 총기들이 해내는 법이다.
"네 프로필을 읽으면서 항상 궁금해 했던 건데, 어째서 그렇게나 무기를 다루는 일에 익숙한 거냐?"
"배웠거든요."
"아, 널 추천해준 사람. 그 양반도 곧 복직한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
"행보관님이 복직을 해요?"
호국이 살짝 놀란 어조로 되묻자 333번이 그게 뭔 대수냐는 식으로 대답을 돌려주었다.
"하루하루 처절하게 살았던 인간들이 막상 평화로운 한때를 맞이하면 좀이 쑤셔서 못 버티는 법이지. 난 그런 부류의 인간들을 잘 알아. 그 양반도 결국 TF가 제공하는 지옥을 다시 느끼고 싶은 변태였던 거지."
"그 나이면 아침에 서지도 않을 텐데요 뭘."
"미친 놈."
서로 장비를 챙기면서 추잡한 농을 던지던 두 사람은, 이윽고 제 6 연구 시설의 B40 아래로 내려갈 채비를 끝마쳤다.
다른 감찰관들 역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방탄복과 개인화기로 중무장 했다. 이미 감찰이고 뭐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만, 그들 입장에선 반드시 건져내야 할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다.
"아래로 향하기에 앞서 한 가지는 분명하게 해두자고. 우리 감찰관들은 이 시설의 모든 연구 자료와 기밀을 백업해둔 메인 서버룸으로 향할 거다. 그런 명령을 받고 왔으니까."
"그럼 저는요?"
"하고 싶은 일을 하되, 우리가 하는 일을 방해하지만 않으면 돼. 겸사겸사 그 암호압축파일인지 뭔지도 챙겨두면 좋고. 지금쯤이라면 네 스마트패드도 정상적으로 작동할 거야."
호국은 그제야 자신의 스마트패드를 확인해보았다.
"오우 쉿......"
어마어마한 수의 부재중 전화와 문자 메시지가 산처럼 쌓여있었다. 열어봤다간 스트레스로 신경성 위염이 도질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헬기 타고 오면서 연락을 했어야 했는데 안 했잖아.'
사족보행 안드로이드가 설치한 레펠링 장비를 통해 감찰관들이 먼저 아래로 향한 사이, 호국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놀랍게도 전화를 건지 정확히 2초만에 받았다. 평소에는 1분 넘게 발신음만 가다가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되었는데.
-김호국 이 미친 새끼야! 너 지금 어디야?!
"나? 나 지금...대만!"
-대체 거긴 또 어떻게 간...아니, 됐다. 왜 말도 없이 대만으로 간 건데?
"내가 아는 아재가 감찰관으로 취직해서 날 만나러 왔더라고. 상층부에서 인사발령 명령서가 내려왔으니까 자기랑 같이 좀 가자던데?"
-그래서 그걸 우리한테 말하지도 않고 병신마냥 쫄레쫄레 따라가셨다?
"오빠한테 병신이라니. 넌 이번달 용돈 없다."
-필요없어 김호구! 그보다 지금 이쪽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기나 해? 네가 그 이상한 책인지 뭔지를 들고 사라져서 ES들이 시위를 일으키고 있어!!
"시위라니?"
연말에 하는 시위만큼 의미없는 게 또 어디 있다고. 연말은 시위가 아니라 뜨뜻한~ 방구석에서 든든~하게 국밥이나 한 그릇 때리는 게 최고 아니었단 말인가?
-폭력 사태나 탈주 사태가 일어난 건 아닌데...다들 널 찾고 있어. 그리고 끊임없이 처형을 외치고 있다고!
"연말이라 다들 심심한 모양이지. 할 짓 없으면 연말 대청소나 좀 해두라고 해. 어차피 이거 임시 파견 임무라 때 되면 돌아갈거야."
-지금 당장 돌아와야지!
"에이, 나도 남의 돈 받아먹는 입장인데 어떻게 내 마음대로 행동하냐?"
호국은 맨날 니 마음대로 했잖아! 라고 외친 세희의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다들 시위만 한다면서? 그럼 문제될 거 없잖아. 말 안 듣는 놈 있으면 경비팀 불러서 뚝배기를 다짐육으로 만들어놓으라고 해. 내가 시켰다고 하면 알아들을 거야."
-네가 신입 2호라고 부르는 그 이상한 허수아비도 시위에 동참했어.
"그 호로 새끼가......!"
역시 믿을 놈 하나 없다더니. 신입 2호, 아니. 농사왕이 다시 한 번 뒤통수를 후려갈기자 호국은 이를 뿌드득 갈았다.
"해피랑 프롯한테 싹 진압하라고 말해. 특히 날 배신한 놈은 방에 몰아넣고 10분마다 몽둥이 찜질을 하라고 해. 밀짚모자는 내 사무실 서랍 속에 있으니까, 그 놈이 보는 앞에서 똥통에 푹 담궈버리고."
-...하아. 그건 이제 됐어. 그래서 언제쯤 돌아올 건데?
"일 끝나면. 그리고 조만간 너한테 암호압축파일 하나를 보낼 건데, 연말이라고 놀지만 말고 그거나 풀어놔. 올해 안에 못 풀면 네 앨범 사진 인터넷에 다 풀어버린다."
-뭐? 야!!
"그럼 끊는다."
멋대로 통화를 종료한 호국은 스마트패드를 조작해 여동생의 전화를 '1시간 동안 받지 않음'으로 설정해두었다.
호국의 옆에서 얌전히 통화를 엿듣고 있던 사족보행 안드로이드가 '>_<' 모양의 이모티콘을 출력했다.
"너보다 해피가 더 귀여워 인마."
샷건의 개머리판으로 안드로이드의 꼴통을 가볍게 두들겨 준 호국은, 빛 한 점 보이지 않는 깊숙한 엘리베이터 통로 아래로 레펠링을 시도했다.
모든 시설의 중간 거점이자, 절대로 뚫려선 안 될 B40은 이미 개박살이 난 상태였다.
두꺼운 철문은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고, 군데군데 묻은 피나 살점은 흉흉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감찰관 일행은 위쪽의 메인 서버룸에서 볼일을 보고 있을테니, 결국 B40 아래로 향하는 건 호국 혼자였다.
"하아, TF 입사 첫날이 떠오르네."
그때도 경비 제복과 장비를 지급받자마자 홀로 B40 아래를 순찰했었다.
진압봉을 붕붕 휘두르면서, 아파트 경비 할아버지처럼 헌신적으로 일하게 될 평생 직장이라고 생각했었다.
'이 시설의 경비였던 사람들은 평생 직장을 놓쳐서 안타깝겠어.'
호국은 더이상 제기능을 다할 수 없는 중간거점의 게이트를 지나, 여러 사람들이 피묻은 손바닥으로 마구 문질렀을 벽 근처를 가로질렀다.
단체로 들뜬 기분에 행위 예술이라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붉은빛으로 선명하게 찍혀있는 손바닥 자국들은 비릿하고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공업용 페인트보다 훨씬 더 지독한 냄새였다.
"이런 날에 하는 야간 근무는 커피 한잔으로 시작해야 하는 법인데...커피 자판기가 있네?"
B41 아래로 이어지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기 전, 호국은 반쯤 찌그러진 커피 자판기를 발견하고 휘파람을 불었다.
역시 이 시설에서 근무하던 양반들도 근무의 시작은 달콤쌉싸름한 커피 한잔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심전심이라더니, 같은 직업군은 서로 통하는 게 있다.
"맛있는 커피~ 게살 커피~"
터치 패널에 크레딧 카드를 갖다대고 믹스 커피 버튼을 누르자 철퍽! 하고 아래에서 무언가 쏟아져나왔다.
종이컵과 커피가 나와야 할 장소에는 선홍색의 점액질로 뒤덮인 분홍색 살덩어리가 흘려내려온 참이었다.
"염병...자판기 청소나 좀 해두지."
보나마나 자판기 속에 쥐가 기어들어갔다가 내부 기계에 의해 갈려 죽은 것이리라.
"쥐의 시체가 단돈 300원! 300원이면 풍선껌이 하나인데......"
호국은 애꿎은 자판기를 발로 걷어차버리고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호국의 권한으로 비상전력과 함께 일반전력까지 가동시키자, 당장 시설 전체 설비를 운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전력이 공급되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 안에 한가득 쌓여있는 인간의 피부 거죽이나 내장 덩어리를 슬쩍 발로 밀어내니 자리가 확보되었다. 여긴 락스를 몇통이나 들이부어도 냄새가 쉬이 빠지진 않을 것 같았다.
"후우, 이럴 줄 알았으면 작업용 마스크도 챙겨오는건데."
코를 틀어쥐고 불평을 하는 사이, 호국은 문득 자신의 무거웠던 다리가 다시 가벼워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무언가가 무언가를 집어삼키는 소리가 들리길래 뒤를 돌아보니, 엘리베이터 한구석을 가득 메우고 있던 더러운 오물 덩어리들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고, 그 자리에는 신입이 우두커니 서있었다.
"너도 연말에 일하기 싫어서 따라왔냐?"
호국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신입은 2초 정도 간격을 두고 고개를 끄덕였다.
신입의 대답에 호국은 혀를 끌끌 차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6A-B41에 도착하였습니다.
엘리베이터가 멈춰서자 관리봇의 기계적인 음성이 스피커로부터 흘러나왔다.
"근데 어쩌냐? 여기도 할 일 투성이인데. 내가 말했지? 경비팀 79기는 연말에도 못 쉴 거라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B41의 엘리베이터 입구를 부러진 손톱으로 벅벅 긁어대고 있던 남자가 찢어진 입으로 미소를 지었다.
눈알은 툭 튀어나와 있었고, 흰 가운에는 피가 덕지덕지 묻어 붉은 가운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였다.
손톱이란 손톱이 죄다 부러진 그의 손에는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살점들이 박혀있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내가 빗자루고, 넌 쓰레받기야. 이 사람들 대신 청소 좀 해주자고."
타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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