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피해피 고문재단-184화 (184/209)

< 경비 업무 일지 : 재단을 위한 산타는 없다(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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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좀 밀어드려라. 날도 추운데 어르신이 얼마나 힘들겟냐?"

카지노에 가기 전, 호국은 팀원들과 함께 6-01의 방에 들러 그를 휠체어로 옮겨주었다.

팀원들의 머리통을 까보면 하나같이 웃어른 공경과 예의가 바닥이었는지라, 이참에 봉사 활동을 시키면서 교육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 결과, 2호가 6-01이 구속된 휠체어를 밀어 옮겼다. 녀석은 뭐가 그리도 불만인지, 마치 털갈이 하는 애완견마냥 지푸라기를 마구 흘려댔다.

그렇게 6-01과 함께 카지노에 도착한 호국은 내부 인테리어가 확 바뀐 것을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눈사람 모형에, 크리스마스 트리, 알록달록한 알전구와 플라스틱 모형 선물 박스. 거기에 찬란하게 빛나는 커다란 별 장식과 황금종까지.

심지어 평소의 시끄러운 카지노 슬롯머신 음악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 대신 잔잔하면서도 활기가 느껴지는 크리스마스 캐롤송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호국은 곧바로 권총을 뽑아 캐롤송이 흘러나오는 주크박스를 갈겨버렸다.

탕탕탕!

정확히 세 발의 탄환이 주크박스의 작동을 중지시키고, 희미한 연기를 피어오르게 만들었다.

사실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지만, 하필 주크박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산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였다.

"알고 있긴 뭘 알고 있어! 내가 15년 간 죽어라 빌었던 소원도 몰랐으면서!!"

애꿎은 의자를 발로 찬 호국은 쓰라린 엄지 발가락의 통증을 참으며 바에 앉았다.

산타걸 복장을 한 카지노 딜러가 호국에게 다가오려다, 호국이 겨눈 권총을 보고 조용히 물러섰다.

"다들 산타에게 속고 있어. 산타는 그렇게 좋은 놈이 아니라고......!"

바텐더가 자연스럽게 넘겨준 마티니를 원샷한 호국은 한 잔을 더 요구했다.

그러는 사이 2호는 게임 테이블에 6-01을 안내해주었으며, 신입은 눈치없이 산타걸 복장을 갖춘 딜러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해피는 마티니를 꿀꺽꿀꺽 들이키는 호국의 무릎에 턱을 괸 채, 호국의 혈중알콜농도를 실시간으로 체크했다.

"아, 그러고보니 제가 여기에 온 이유를 아직 말하지 않았었죠? 혹시 이런 놈을 보시면 저한테 바로 알려주세요."

호국은 프롯에게 부탁해 제작한 현상수배지를 바텐더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매끈한 8자형 콧수염을 씰룩이며 현상수배지 속의 인물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어디까지나 호국의 상상에 의해, 초지능 AI가 기계팔로 스케치한 산타클로스의 초상화(예측)였다.

"그 놈이 아주 악랄한 놈이예요. 허락도 없이 남의 집에 불쑥불쑥 들어와서, 원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물건만 주면서 사람을 골탕 먹이죠. 어디 그뿐이겠어요? 선물을 받으려면 착한 일만 해야 한대요!!"

착한 일만 하라니. 사람이 어디 착한 일만 하고 살 수 있는 동물이란 말인가?

가끔 기분 나쁘면 길거리에 나뒹굴고 있는 빈 깡통도 걷어차보고, 괜히 짜증나서 우르르 몰려있는 비둘기들을 쫓아내보기도 하고, 교육 핑계로 신입 머리통좀 후려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때문에 호국은 지난 15년 간 꾸준히 착한 일을 해왔던 자신이 '호구' 취급을 받은 것 같아 화가 났다.

나쁜 일만 했다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자발적 봉사활동도 하고, 효도도 하고, 타인과 트러블을 일으키지도 않았다.

"내가 원했던 건 VR 기기 딱 하나였다고......!"

테이블에 이마를 쾅쾅 내려찍는 호국이 측은해보였는지, 바텐더는 보드카에 블루 레모네이드를 살짝 섞어서 건네주었다.

호국은 연거푸 그것을 마시려 했지만, 해피가 그의 팔을 잡아 마시지 못 하게 했다.

"그래, 우리 해피. 해피가 마시지 말라고 하면 마시지 말아야지!"

해피의 빨간코를 쓰다듬어주던 호국은 다시 자연스럽게 보드카를 마시려 했지만, 또 한 번 해피에게 제지당했다.

"해피가 못 마시게 하니...이건 옆의 분께 쏠게요."

잔을 옆으로 툭 치자 주르륵 미끄러져 옆의 손님에게 배달되었다.

옆의 손님은 풍성한 금빛 머리칼에 뇌색적인 산타걸 복장을 입고 있는......

"...집주인 아주머니?"

눈을 비비던 호국은 이내 자신이 잘못 본 것이라고 생각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마 그 귀부인의 표본과도 같았던 집주인 아주머니가 주책맞게도 산타걸 복장을 차려입고 바 앞에 홀로 앉아있었을까. 그건 너무 처량해서 도저히 현실 같지 않았다.

"그래, 저건 내 환각이야. 산타산타 하니까 내 '눈'이 미친 게 틀림없...앗, 따거!"

갑자기 눈이 쿡쿡 쑤신 탓에 호국은 눈물을 찔끔 흘렸다. 이젠 자신의 신체부위마저 반항을 하게 될 줄이야.

"이게 다 산타 때문이야."

밑도끝도 없는 추한 책임전가였지만, 호국은 이 모든 것이 100% 산타의 책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도그럴 것이, 만약 처음부터 호국에게 VR 기기를 선물로 줬다면 애초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터.

VR 기기를 받지 못한 어린 시절의 호국은 성장하는 과정에서 동심을 잃고, 분노를 축적했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는 진리를 너무 일찍 깨달아버린 것이다.

그리고 혼자만 VR 기기가 없어 힘든 미성년자 시절을 보내고, 군대는 병장 만기제대를 했다.

TF에 입사하고, 이번 크리스마스에 산타를 쫓게 된 것은 운명의 힘이 작용한 것일지도 모른다.

순진무구한 아이의 동심을 짓밟은 추악하고 살찐 빨간 뚱보를 확실하게 조져버리라는 신의 계시!

'그래, 난 선택받은 거야.'

크리스마스로 흥한 자, 크리스마스로 망하리라.

카지노를 나선 호국은 이내 시설 전체를 돌면서, 설명이 가능한 ES들에게 산타의 추악한 인상착의가 그려진 현상수배지를 배포했다.

그렇게 몇시간쯤 보냈을까, 호국은 다른 팀원들에게 경계 근무를 서게 한 뒤, 자신은 그 옆에서 의자에 앉아 꿀잠을 때리고 있었다.

프롯이 비상 경보음을 시끄럽게 내뱉으며 호국의 잠을 깨우기 전까지는.

"뭐야! 시발! 뭔데?!"

입가에 흐르는 침을 닦을 생각도 못 하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호국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 미지의 존재가 '다수' 시설에 침투하였습니다.

"다수? 다수라고?!"

설마 또 타이밍 안 맞게 변태같은 테러리스트들이 시설을 습격한 건가 싶었지만, 다행스럽게도 호국의 예상은 빗나갔다.

-시설에 침투한 경로가...지상의 출입구가 아닙니다. 지하에서부터 벽을 뚫고 침투했습니다. 침투 경로는 각각 B55, B46, B30입니다.

무려 세 방향에서 튼튼한 시설의 외벽을 파괴하고 침투할 것이라곤 호국도 예상치 못 했다.

당연히 멍청한 테러리스트들마냥 지상의 출입구로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했건만, 상대는 처음부터 시설 내부를 공략하고 있었다.

"그 놈이다...산타가 온 거야!!"

철컥, 철컥.

무장을 갖춘 호국은 이미 만반의 준비를 끝낸 팀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프롯은 플라스틱 병사들의 협조를 구해서 B30에 침투한 놈들을 처리하게 해. 아마 B5에서 쉬고있을 연구원들에게 선물을 주고 튈 생각인 모양인데, 어림도 없는 일이지."

-그렇다면 일시적으로 ES 6-41(플라스틱 군대)이 중간 거점에서 감지되지 않도록 보안 시스템을 해제해두겠습니다.

"가능하면 방송으로 각 연구원들의 방문은 꼭 잠가 두라고 해줘. 놈들이 선물을 주지 못 하게! 그리고 해피, 신입들. 너흰 나랑 같이 아래로 내려간다."

호국은 중간 거점의 게이트를 열고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면서 실실 웃었다.

비록 산타의 침투 경로나 방식을 조금도 예측하지 못한 건 자신들의 실수였지만, 그런 산타조차 설마 경비팀 79기가 방어 태세를 갖춰뒀을 것이라곤 생각치 못 했을 것이다.

'그 놈의 통통한 얼굴이 일그러지는 게 기대돼.'

새하얀 턱수염이 새빨간 핏물로 번지고, 빨간 산타복을 더욱 빨갛게 물들여주면 아주 좋아하겠지.

그리고 마지막에, 호국은 놈이 보는 앞에서 선물 꾸러미를 화염 방사기로 태워 흔적조차 없애버릴 생각이었다.

엘리베이터가 고장나는 일 없이, 경비팀 79기는 순조롭게 B46의 저위험군에 도착했다.

B46은 그 거대한 바퀴벌레가 살고 있는 은폐 구역이었기 때문에, 호국은 가능하면 이곳에 오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그 거대 바퀴벌레가 정말로 제 집에 얌전히 처박혀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F킬러 오지게 뿌려서 서서히 말려죽이고 싶은 인상이었지.'

그래도 일은 일인지라, 호국은 해피에게 칫칫, 하고 작게 혀를 차서 먼저 움직임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발소리도 들리지 않게 살금살금 기어 움직인 해피는 동작감지기를 작동시켰다. 위잉, 위잉, 소리를 내며 돌아가던 동작감지기가 B46의 저위험군 복도를 샅샅이 수색했다.

이윽고 고위험군으로 이어지는 체크포인트에 도달한 순간, 동작감지기가 정면으로 고정되며 붉은 LED 등을 점멸했다.

"앞에 있다!"

기이잉, 드르르르르륵!

해피의 등에 장착된 2개의 회전식총열 기관총이 즉각 불을 내뿜으며 무수한 탄환 세례를 퍼부어주었다.

얇디 얇은 체크포인트의 문은 그대로 박살이 났으며, 그 뒤에 숨어있던 미지의 존재 또한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마치 영화 속 괴수가 그우우우우, 하고 울부짖는 듯한 비명이었다.

머지않아 폭풍과도 같은 기관총 난사가 끝나고, 해피는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먼지와 화약연이 자욱한 가운데, 박살이 난 체크포인트에서 무언가가 걸어나왔다.

"......"

그것은 일단 아주 매력적인 빨간코를 가지고 있었다.

"......"

네 발로 썰매를 끄는 사족보행 짐승이었지만, 이족보행을 하고 있었다.

"......"

또한 터질듯한 흉근과 복근, 이두박근과 삼두박근이 인상적이었으며, 허벅지는 말벅지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만큼 알이 꽉차있었다.

"......"

그렇다면 그것은 과연 루돌프라고 불러도 되는 것일까?

"아냐."

호국은 손바닥에 피가 흘러나오도록 강하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저런 건...내 귀여운 루돌프가 아니야......!"

빨간코가 매력적인,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멋진 녹용을 가지고 있는 루돌프!

그것은 어지간한 보디빌더도 씹어먹을 만큼 강대하고 멋진 근육을 가진, 기관총탄으로도 치명상을 입히지 못한 이족보행형 루돌프였다.

"내 루돌프 돌려줘 이 개새끼야!!"

호국이 지면을 박차고 달려나간 순간, 가히 초월적인 각력으로 십수미터의 거리를 단 1초만에 돌파했다.

콰앙!

호국의 공중회전 옆차기는 가공할만한 위력으로 루돌프의 목에 틀어박혔다.

루돌프(?)가 제아무리 억센 가죽과 철덩어리 같은 근육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호국의 비정상적인 각력에 완전히 저항할 수는 없었다.

뿌드드드득!

불쾌한 소음을 자아내며 놈의 목이 옆으로 반쯤 꺾였다.

하지만 루돌프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에는 아직 패기가 남아있었다. 근육과 격투, 그리고 산타를 도와 선물을 주고 튀겠다는 의지는 여전히 불타고 있었던 것이다.

"그우우웃."

두툼한 어깨로 호국의 다리를 처올린 놈은 그가 허공에 붕뜬 타이밍을 노려 솥뚜껑만한 스매싱을 날렸다. 이대로 호국을 홈런으로 날려보낼 심산인 듯 했다.

"넌 내게 남아있던 마지막 동심마저 깨버렸어."

허공에서 빙글 회전한 호국은 공기를 찢어발기며 날아드는 루돌프의 손뼉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물론 거기서 끝이 아닌, 놈의 손목을 역으로 붙잡아 밀려가는 힘을 이용해 다시 한 번 킥을 먹였다.

상대가 휘두른 힘으로 상대에게 타격을 먹인다. 이는 전형적인 유도의 전투 방식이었지만 호국이 구사한 것은 특공무술 계열이었다.

동양인보다 체격적으로 월등한 서양인 용병, 테러리스트, 정규군, 혹은 특수부대 대원이나 첩보 요원 같은 놈들. 그런 놈들을 상대하려면 이런 식의 변형 기술이 필요했던 것이다.

만약 행보관의 열렬한(?) 가르침이 없었다면, 정말로 스매싱에 홈런을 당한 건 호국이었을 것이다.

"무식하게 근육만 키운 놈들을 상대하는 법을 알고 있지."

이름하여 근육 파괴술.

이름은 그럴싸하지만, 사실 이건 그리 대단한 기술이 아니었다.

"때린 데 또 때려 준다!!"

빡! 빡! 빡!

루돌프의 몸을 정글짐 삼아 원숭이처럼 팔을 걸고, 다리를 걸면서 헤집은 호국은 놈의 목덜미를 집중적으로 타격했다.

제아무리 튼튼하게 단련한 사람이라도 때린 곳 또 때리면 회복할 틈도 없이 근육이 파열된다. 타격기로 치명상을 입히기 전에 자신이 먼저 지칠 것 같다?

그럼 인류의 훌륭한 문명 도구중 하나인 날붙이를 쓰면 된다.

루돌프가 호국의 멱살을 잡아채는 것에 성공해 자신의 앞으로 끌어내린 순간, 호국은 허리춤의 발리스틱 나이프를 뽑은 뒤 놈의 턱을 발로 걷어찼다.

일순간, 무시무시한 각력에 턱주가리가 하늘로 치솟은 루돌프의 목덜미에 너무나도 뻔한 빈틈이 생겼다.

"캡틴 티모오오오!!"

피슛!

미약한 발포음과 함께 발리스틱 나이프의 칼날이 정확히 루돌프의 손상된 목 근육을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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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비 업무 일지 : 재단을 위한 산타는 없다(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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