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피해피 고문재단-179화 (179/209)

< 경비 업무 일지 : 세일럼 마피아 게임(5) >

"마피아 게임은 저렇게 하는 게 아닌데......"

벌써 몇 시간째 호국이 붙들고 있는 게임 패드와 연결된 모니터의 화면을 바라보면서 세희가 중얼거렸다.

ES 6-333은 게임 패드와 콘솔 기기만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세희는 별도로 설치된 거대한 모니터를 통해 호국의 1인칭 시점을 실시간으로 관전할 수 있었다.

-제게도 마피아 게임이라는 인간들의 마녀사냥을 유희화한 오락의 지식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전적으로 동생분의 의견에 동감합니다. 저것은 정상적인 마피아 게임의 진행방식이 아닙니다.

"정해진 매뉴얼이 없는 일은 항상 저렇게 즉흥적으로, 엉망진창으로 진행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그걸 실제로 옆에서 지켜보니 더 부끄럽네."

다른 화면 속에서 비춰지는 호국은 게임 패드를 양손에 쥔 채, 입을 헤~ 벌린 상태로 소파에 축 늘어져 있었다.

아주 즐겁고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 것 처럼 보여서, 만약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저 광경을 봤더라면 호국이 게임하다 잠들었나 하고 착각했으리라.

"분명 ES 6-333을 통한 가상 현실의 진입은, 사실 가상현실에 접속하는 게 아니라고 했었지?"

-그렇습니다. ES 6-333이 만들어낸 것은 틀림없는 '진짜' 현실이며, 가상 현실에 접속했던 자들에게서 정신체만을 빼내 자신이 만든 우리 속에 가두고, 무한하게 죽이고 고통을 주는 행위를 반복합니다. 이미 재단 측에선 ES 6-333과 모니터를 연결해,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한 바 있습니다.

"진짜 마녀 사냥 같은, 고문과 살인, 음모와 계략이 판치는 마피아 게임 말이지......"

어떤 의미에선 고문재단(Torture Foundation)에 딱 맞는 ES였다.

만약 ES 6-333이 다른 ES의 정신체(영혼)만을 빼낸 다음 자신이 직접 만든 우리에 가두고 무한하게 고통을 줄 수 있었다면, 재단 측에선 ES 6-333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했을 것이다.

그 어떤 고문 시스템보다도 효과적이고, 불필요한 은폐 작업도 최소화할 수 있으니까.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이끌어낼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이다.

하지만 ES 6-333은 납치하고, 고문하는 대상은 인간에게만 한정지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머지않은 미래에 전뇌세계로 떠나야 할 인간들의 정신체만을 목표로 삼은 것이다.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 없고, 파괴해서 멈추고 싶어도 불가능하다. 덕분에 최고 수석 연구원이라 불리는 남자도 손을 놔버렸을 만큼 끔찍한 재앙 덩어리는 여전히 제 6 처리 시설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오빠라면 저걸 멈출 수 있을까?"

-가드가 없는 곳에선 '오빠'라고 부르시는군요.

"당사자가 없는 장소에서도 예의없게 부르면 주변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보겠어?"

-당사자가 있는 장소에서 예의없게 부르는 것으로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걱정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게 우리 집안 방식이야."

김씨네 집안의 심오한 역학 관계를 어찌 한낱 AI 따위가 알 수 있으랴!

-...좌우지간. 지금까지는 이렇다 할만한 특이점은 관측되지 않습니다. 가드는 자신의 정신체가 '강탈' 당했다는 것도 모른 채 ES 6-333이 만든 우리 속에서 즐겁게...뛰어놀고 있습니다. 당장 마녀 사냥의 대상이 된다거나, 살인 행위가 가능한 사람의 목표가 될 기미도 없어보입니다.

"어릴때부터 항상 저랬어. 분명 주변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을 만큼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충분하고, 성격도 나쁘진 않아. 그런데 꼭 행동은 따로 놀더라니까. 마치 몸과 정신이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어."

-그 말씀은?

"정말로 본인이 원해서 저렇게 행동하는 걸까?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저렇게 행동하길 원하는 거라고 착각하고 있는 걸까? 어느 쪽이든 꺼림칙하면서...불쌍하다고 생각해."

정신과 육체가 따로 논다. 말로 표현하면 조금 어렵지만, 의외로 이러한 현상은 일부 정신질환자들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본인은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기 싫어하지만, 분노조절장애나 틱장애로 주변에 원치 않은 피해를 끼치는 경우가 있다.

그밖에도 환각, 환청, 과대망상 등으로 결코 원하지 않았던 결과에 어쩔 수 없이 이끌려가기도 한다. 정신이 붕괴해가는 것을 육체가 견디지 못해, 마지못해 육체가 정신의 괴리감에 따라가주는 것이다.

-동생분은 가드에게 모종의 정신질환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

세희는 프롯의 질문을 딱 잘라 부정했다.

"차라리 정신질환 같은 단순한 문제였다면 내가 TF에 입사하는 일도 없었어. 아픈 오빠를 간호하면서 가족으로서 해야 할 의무를 다 했겠지. 하지만 저건 아픈 게 아니야. 적어도 생명공학을 전공하고, TF에 입사하면서 내게 허락된 정보를 빠짐없이 뒤져본 결과에 의하면...저건 절대로 아픈 게 아니야."

-그럼 동생분의 고견을 들려주십시오. 저 또한 가드와 동생분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프롯이 은근한 어조로 되물었지만 세희는 잠시동안 입을 꾹 다물었다.

"내가 보기에 오빠는...완전하지 않은 '인형' 같아."

-그건 또 참신한 해석이군요.

"나도 확신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야. 단지 오빠의 사고방식, 행동, 말투, 그리고 현실을 인지하는 지각능력이 일반인이랑 꽤 다른 구석이 많아.

-그것을 인간들사이엔 '별종' 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수십억 인구중에 특이한 사람이야 얼마든지 있는 법입니다.

"특이한 수준이었으면 나도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지. 특이한 게 아니라 이질적이야."

세희는 편안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면서 한숨 섞인 어조로 말했다.

"과연 오빠가 보고 있는 광경이, 인지하고 있는 현실이, 생각하고 있는 상식이 정말 우리와 같은 걸까?"

만약 다르다면.

그것은 '누구'의 방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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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호국은 탄성이 있는 나뭇가지를 적당한 길이로 꺾어 낡은 밧줄과 당근을 매달아서 말의 안장에 끼워넣었다.

마차를 끄는 두 마리의 말은 자신의 눈앞에서 데롱데롱 흔들리는 당근을 쫓아, 호국이 이끄는대로 무작정 움직였다.

시스템인지 뭔지 자꾸 호국에게 마차를 끄는 것도, 말을 타는 것도 안 된다고 경고를 주었기에 호국이 화가 나서 저지른 행위였다.

-마차가 설정된 위치를 벗어나고 있습니다. 즉시 원위치로 돌려놓으십시오.

"응 싫어~"

시스템은 자꾸 호국에게 경고를 내뱉었지만, 호국은 여봐란듯이 말을 당근으로 유혹하며 자신이 움직이고 싶은 곳으로 유도했다.

어디까지나 이건 말을 조종하는 게 아니라, 말을 유혹해서 스스로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이라 호국의 의사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렇다면 IQ 84가 어떻게 이런 기가막힌 생각을 떠올렸는가, 하고 질문하면. 호국은 이상하게 이 게임에 접속한 뒤부터 자신의 머리가 한층 맑아진 것 같은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생각이었다.

'이정도면 이제 나도 IQ 90대에 도달했을지도 몰라. 건방진 여동생이랑 20도 차이가 안 나!'

IQ 80대와 IQ 90대가 바라보는 세상은 이토록 큰 차이가 난다는 걸 새삼 실감한 호국은 들뜬 나머지 발걸음이 조금 더 가벼워진 것을 느꼈다.

다들 마녀사냥에 미쳐서 서로를 지적하고, 의심하고, 고발하느라 바쁠 때 호국만은 광장에 나가지 않고 마을을 자유롭게 누볐다.

그리고 쓸만한 것이 있으면 모조리 마차에 쓸어넣었다.

본래 인간을 태워서 다른 장소로 이송시킨다는 옵션이 있는 마차는, 반대로 아이템을 실어서 이송시킨다는 개념도 적용할 수 있었다.

오늘로 벌써 5일째 낮이다.

지난 4일간 밤만 되면 무수한 사람들이 총성 속에 쓰러지거나, 칼이나 둔기로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5일째 낮 기준으로 밤에 '살해'당한 사람들의 숫자는 총 15명. 그리고 낮에 처형당한 사람들은 무려 23명에 육박했다.

고작 5일만에 4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 세일럼 빌리지에서 비명횡사한 것이다.

시민 측은 시민 측대로 서로를 보호하거나, 위험을 무릅쓰고 정보를 수집하면서 낮에 타 진영 세력을 고발해 처형대에 올렸다.

반대로 마피아 측과 살인마 측은 이제 제법 흥이 올랐는지 밤만 되면 무기를 휘둘러 자신들을 제외한 다른 진영을 차례차례 살해해나갔다.

혼란의 격변이 벌어지고 있는 세일럼 빌리지에서 유일하게 겉도는 건 중립 진영과 사이비 교단이었는데, 사이비 교단은 첫날부터 광신도 둘을 잃은 것이 뼈아팠는지 선전 활동에 더욱 열을 올렸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시민 측은 정보를 수집하면 즉시 처형대에 올려버리고, 마피아와 살인마는 잡히는 족족 살해해버리니, 방어와 살인 스킬이 없는 사이비 교단 입장에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아이고...이 좋은 걸 여기에 흘리셨네."

사이비 광신도로 추측되는 남자의 시체가 마을 외곽에서 흉기에 난자당한 채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호국은 그의 품 속에서 검게 빛나는 사슬이 감긴 십자가 팬던트를 빼냈다. 본래 이런 건 도굴꾼이 해야 하는 일이지만, 호국은 사망자의 직업을 계승하는 게 아니라 아이템만 쏙 빼먹기 때문에 시스템의 제지를 받지 않았다.

만약 직업 전환을 위해 아이템을 사용하려고 하면 즉시 제지를 받겠지만, 애시당초 호국의 머릿속에는 '파밍이 곧 성공의 지름길' 이라는 공식이 박혀있었다.

마치 소량밖에 얻을 수 없는 최고급 HP, MP 포션을 언젠가는 쓸 날이 오겠지 하고 아끼고 아끼다가, 결국 라스트 보스를 격파할 때까지 사용하지 않는 파밍 중독자들처럼.

호국에겐 이미 대량으로 습득한 아이템을 자신이 모조리 사용한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굳이 설명하자면 '다른 놈들에게 이 귀한 것들을 넘기고 싶지 않다'는 수전노 특유의 심술이 있었다.

내가 사용할 수 없다면 너희도 사용할 수 없다는 기가막히고 코가막히는 논리!

하지만 그렇기에 호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한 멀티 플레이를 즐길 수 있었다.

범인들이 증거를 감추기 위해 밤에 죽어나간 시체들이 마을 외곽에 버려두었다. 그 광경을 본 호국은 자신이 아이템을 싹 쓸어담고 있는 탓에 고통받는 다른 유저들의 기분을 상상하고, 즐겼다.

총이 없어서 자신을 방어하지 못한 퇴역군인은 사망, 총이 없어서 자신을 의심하던 시민 측을 끝내 살해하지 못해 다음 날 바로 목이 걸린 마피아도 사망, 둘 사이에서 어떻게든 신도를 늘려보겠답시고 고개를 들이밀었던 광신도도 사망!

"아, 멀티 플레이란 게 이렇게나 즐거운 거였구나. 조금만 더 일찍 접할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텐데......"

짜여진 프로그래밍대로만 움직이는 기계적인 AI와 다르게 진짜 인간들과 함께 즐기는 게임은 호국의 회색빛 인생을 컬러풀하게 바꿔주었다.

이게 게임이다! 이게 멀티 플레이다!

감격에 젖어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한 호국은 시큰거리는 코끝을 문지르며, 마차와 말을 숲 깊숙한 곳에 처박아두고 나왔다.

사람이 꽤 죽어나갔고, 슬슬 호국이 동네바보라는 것도 공공연하게 알려진 지금, 이제는 중립 진영에서 어느 쪽 편을 들지 정할 때가 왔다.

그때, 마을 외곽에서부터 밭을 가로질러 마을로 진입하던 호국은 한 폐가 앞에 버려진 고양이처럼 쪼그려 앉아있는 소녀를 발견했다.

그녀는 세일럼 빌리지 1일째부터 또래의 아이들 유저와 함께 즐겁게 뛰놀던 무리중 한 명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어디론가 가버렸는지, 그녀만 홀로 부서진 목재 계단의 구석에 앉아있었다. 아직 사망자 중에 아이들은 없다. 죄다 중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어른들만 죽어나간 것이다.

그러자 문득 자신의 어린 시절이 생각난 호국은 슬쩍 소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추측컨대 또래의 아이들에게 따돌려졌을 가능성이 큰 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역시 힘을 솟구치게 해주는 물건일 것 같았다.

"당근 먹을래?"

말의 낚시용으로 쓰던 당근을 슬쩍 내밀자 긴 흑발을 허리까지 늘어뜨린 소녀는 힐끔 쳐다보기만 할 뿐, 눈앞에서 데롱데롱 흔들리는 당근을 받아들지는 않았다.

'편식 오지네.'

당근이 얼마나 몸에 좋은데.

호국은 당근을 도로 집어넣고, 가정집에서 쓸어온 것들 중 하나인 호밀빵과 우유를 내밀었다.

역시 애라 그런지 빵과 우유를 주니 덥석 받아들고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아마 요 며칠간 죽음의 스트레스에 쫓기면서 공복에 크게 시달렸으리라.

'게임에서 1등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나도 잘 알지.'

한 놈만 더 헤드샷으로 따면 도전과제도 완수하고, 완벽한 만점으로 게임을 끝낼 수도 있는데 헤드샷에 실패했을 때의 그 기분이란.

비록 싱글 플레이어이긴 해도 호국 역시 게이머들의 경쟁 의식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분명 이번 게임은 망했다느니, 운빨좆망겜이라느니 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지.'

마피아 게임에서 아이들은 특별한 직업을 가지지 않는다. 간혹 시민 측, 혹은 마피아 측의 정보원이 되어서 활동할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 게임에 큰 영향을 주진 못 한다.

호국이 준 빵과 우유를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먹어치운 그녀 역시 속으로 씨발씨발 거리고 있을 게 뻔했다.

이제 운 없는 게이머에게 선행도 베풀었으니 호국은 다시 마을의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그러다 문득 자신의 뒤를 조금 전의 소녀가 따라오기 시작했다는 걸 눈치챘다.

'동네바보는 원래 애들이랑 같이 어울리는 법이지.'

아이들이 던진 돌에 맞기도 하고, 바지가 내려지는 장난에 당하기도 하는 게 동네바보다. 절대로 호국이 학창 시절에 당했던 것은 아니다.

호국은 소녀의 앞에 반쯤 무릎을 굽혀 시선을 맞췄다.

"나랑 같이 다니고 싶으면 자기소개를 해야 해. 구라치면 손모가지 날아간다는 약속도 해야 하고."

"...예요."

"그래. 그거면 됐어."

일반인이었다면 모기가 기어들어가는 것 같은 저 목소리를 듣지 못 했겠지만 호국은 똑똑히 들었다.

그녀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하지만 흔들림 없는 검은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면서 밝힌 이름이 '미고' 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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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비 업무 일지 : 세일럼 마피아 게임(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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