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피해피 고문재단-176화 (176/209)

< 경비 업무 일지 : 세일럼 마피아 게임(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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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남짓한 인생에서 이토록 가슴이 뛰었던 적이 있을까? 스스로에게 자문한 호국은 단언컨대 그런 적이 없다고 확신했다.

'게임하면 또 내가 전문이지.'

가상 현실에서 편하게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호국은 꽤 오래 전부터 PC나 오락기, 콘솔을 이용한 구식 게임에 인생의 절반을 허비했는지라 익숙하다 못해 고일 지경이었다.

더이상 구식 게임을 하는 유저가 전세계적으로 수천명 단위도 되지 않기 때문에, 멀티 플레이가 아닌 싱글 플레이 위주의 게임이긴 했다. 그래도 난이도 베리 하드쯤은 우스울 만큼 호국의 게임 피지컬은 실로 대단했다.

머리를 써야 하는 퍼즐 게임 같은 것만 빼면, 구식 게임으로 호국을 따라올 자가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었다.

게다가 군대를 다녀오면서 육체적 피지컬이 한층 더 상승됐으니, 이제는 그 실력을 가늠하기 조차 어렵다.

B74에 엄중히 보관되어 있는 것은 호국도 익숙하게 가지고 놀았던 플레이스테이션 계열의 콘솔 게임기였다. 2~30년 전쯤에 단종된 것으로 추정되는 모델이었는데, 남들에겐 골동품처럼 보일지 몰라도 호국에겐 아주 익숙했다.

'게다가 멀티 플레이도 가능해!'

멀티 플레이!

호국의 게임 인생에서 멀티 플레이란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사막의 신기루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일반적인 인터넷은 가상현실의 인터넷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커뮤니티 사이트를 다함께 즐기는 건 가능했지만, 정작 게임 만큼은 호국만 왕따당하듯 싱글 플레이를 해야 했던 것이다.

곧장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호국은 B74의 버튼을 마구 연타하며 들뜬 기분으로 기다렸다.

이윽고 엘리베이터가 그를 B74에 내려주자, 호국은 스마트패드를 마구 흔들어 프롯을 닦달했다.

"문 열어! 빨리!"

-가드. 혹시 몰라 한 번 더 설명하겠습니다만, 이건 가드가 생각하는 VR 게임이 아닙니다. VR 기기는 어디까지나 육체를 대신할 매개체일 뿐, 엄밀히 말하자면 정신을 전뇌세계로 옮기는 비상식적인 물건이 아닙니다. 그저 육체가 받아들여야 할 감각을 VR 기기가 대신 받아서 뇌를 속이는 것일 뿐. 때문에 VR 게임은 '안전'합니다. 하지만 6-333은......

"내가 지금 그런 거 따지게 생겼어? 넌 탈모 환자에게 '이 약을 바르면 아주 똥같은 개털이 자라날텐데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라고 물어보면 그 사람이 거절할 거라고 생각해?"

대다수의 탈모 환자들은 똥같은 개털이든 뭐든 자신의 매끈매끈한 버터감자 두피에 새로운 모발을 자라나게 할 수만 있다면 뭐든 상관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만큼 호국도 필사적이었다.

위험한 게임이든, 위험하지 않은 게임이든, 설령 호국이 구역질을 할 만큼 싫어하는 퍼즐 게임이라고 해도 남들과 함께 즐길수만 있다면 기꺼이 할 생각이었다.

"아니면 넌 다 큰 사내새끼가 바닥을 뒹굴면서 문 열어달라고 떼 쓰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거야? 그래? 지금 보여줘?!"

-난 보고 싶은데?

-...여동생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상황이 더 복잡해집니다. 그리고 어차피 해야 할 일이었으니 저도 계속 막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한 번 더 리스크에 대해 생각해보시라는 의미였습니다.

호국이 대충 유치원에 처음 입학했을 무렵 배웠던 마트에서 드러눕기 스킬을 시전하려 하자, 프롯은 마지못해 B74의 모든 보안 시스템을 해제해주었다.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안으로 달려들어간 호국은 ES 6-333이 놓여있는 커다란 테이블 앞의 소파에 몸을 던졌다.

관리봇이 정기적으로 청소를 한 덕분인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고 푹신푹신한 소파였다. 먼 옛날, 아메리끼 게이머들은 다 이런 소파에 앉아 편하게 게임을 즐겼다더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닌 듯 했다.

호국은 더이상 기다릴 수 없어 콘솔 게임기의 전원 버튼을 꾹 누르고, 새 것처럼 멀쩡한 게임 패드를 집어들었다.

우우웅, 하는 희미한 기동음과 함께 콘솔 게임기와 연결된 커다란 60인치 모니터가 저절로 켜졌다. 무려 60인치라니!

분위기가 달아오른 호국은 휘파람을 불면서 게임 패드를 조작해 저장된 게임 목록을 확인했다.

게임 목록에 있는 것은 단 하나 뿐이었지만, 호국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게임이 흥미가 마구 샘솟았다.

-세일럼 마피아(현재 20개의 서버 가동중) (서버 최대 수용 인원 365명)

호국은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 했다.

서버가 무려 20개! 심지어 최대 수용 인원이 365명이나 된다. 즉 한 서버에서 365명이 서로의 육체(아바타)와 재산(포인트)을 탐내며 약육강식의 섭리를 지키고 있는 셈.

20개의 서버중 19개는 모두 수용 인원이 최대치였기 때문에 호국은 마지막 서버에 접속했다. 대기 인원이 250명 남짓한 서버였는데, 호국이 접속하자마자 갑자기 365명이 꽉 채워졌다.

"좋아. 아주 좋아......"

시작부터 부족한 인원으로 게임을 하면 재미가 반감될까 걱정했건만, 알아서 대기 인원까지 채워주니 호국은 더욱 더 흥이 올랐다.

여기서 갑작스럽지만 호국은 눈을 깜빡이는데 걸리는 시간이 대략 0.3초 정도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도 그럴 것이 게임 패드를 집어들고 본격적으로 게임에 집중할 겸 눈을 깜빡인 순간, 주변의 모든 것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단 0.3초만에.

"오......"

순식간에 뒤바뀐 풍경에 당황하기도 전에 호국은 손부터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한술 더 떠서 튼튼한 두다리로 점프도 해보고, 몸을 쭈욱쭈욱 당겨서 가볍게 스트레칭도 해보았다.

싱그러운 풀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저 멀리서 하늘을 날아다니며 울부짖는 독수리의 울음소리도 들을 수 있다. 그밖에도 다양한 감각들이 생생하게 전신을 통해 느껴졌다.

"완벽해."

모든 게 완벽했다. 이게 정말 자신이 꿈꾸던 가상 현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가상 현실이 아니라고 해도 딱히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게임이 시작됐음을 알아차렸으니까.

호국은 눈앞에 갑자기 뭔가가 나타는 것이 아닌, 뇌에 직접 문장이 박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배경 : 세일럼

-진행 날짜 : Day 1

-총 생존자 : 368/365

-마피아 : 30명

-시민 : 200명

-시민측 전문직업 : 30명

-마피아측 조력자 : 30명

-살인마 : 5명

-중립 : 30명

-사이비 교주 : 1명

-사이비 사제 : 9명

-사이비 교단 : 30명

"와! 지식주입!"

호국은 SF 영화에서나 보던 뇌에 다이렉트로 지식을 박아넣는 기술을 퍼뜩 떠올렸다.

대충 사람의 뇌를 통신기기 취급해서 블루투스 기능처럼 지식을 때려박는다던 허구성 가득한 내용이었는데, 막상 자신이 직접 당하고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꼭 외계인에게 붙들려서 신체 개조를 당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호국이 막을 수 없는 강제적인 지식주입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호국이 마피아 게임에 참여한 인원에 대해 모두 기억했을 즈음, 이번에는 각 직업과 간단한 게임 규칙에 대한 지식이 흘러들어왔다.

-게임 진행 방식 : 1일 2턴제 방식

-하루의 시작은 반드시 낮이며, 끝은 밤입니다.

-모든 마피아와 살인마, 일부 사이비 교단과 중립 직업이 고유 행동을 취하는 것은 오직 밤에만 가능합니다.

-시민측 전문직업, 마피아측 조력자, 중립 인원은 각 직업에 따라 일부는 낮에, 일부는 밤에 고유 행동을 취할 수 있습니다.

-특정 직업을 제외한 모든 생존자에게는 공평하게 1개의 투표권이 주어집니다.

-특정 직업은 사망한 인원의 직업이나 장비, 투표권을 습득하여 대신 활용할 수 있습니다.

-2일째부터 낮에 처형 투표를 진행할지 말지 투표한 뒤, 51% 이상의 생존자가 동의하면 처형을 진행합니다.

-처형 투표에서 가장 많은 지목을 받은 사람이 처형대에 올라가게 됩니다.

=처형대에 선 사람에게는 1분의 개인 변호 시간이 주어지며, 처형에 동의하는 표가 75% 이상일 경우 처형됩니다.

-특정 직업은 처형을 당하면 고유 행동을 취합니다.

'어떻게 하면 게임에서 이길 수 있지?'

그렇게 생각하니 마치 호국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친절하게도 다음 설명문이 머릿속에서 저절로 떠올랐다.

-게임 승리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시민 : 모든 마피아, 살인마를 처형하거나 고유 능력으로 사살, 혹은 자살 종용.

-마피아 : 시민 생존 10명 이하로 게임 종료

-살인마 : 모든 생존자 10명 이하로 게임 종료

-중립 : 중립인원이 5명 이상 생존한 상태에서 시민측 or 마피아측 게임 승리

-사이비 교단 : 모든 생존자중 50% 이상을 교단에 영입하기 or 교단 인원을 제외한 모든 생존자 처형, 사살, 자살 종용.

-무승부 : 모든 직업 3분의 2 이상 생존 상태로 게임 종료

-모든 세력의 직업 정보 및 아이템 정보는 직접 접촉하거나, 타인에게 정보를 제공받아야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모든 정보 공유 및 아이템 수집은 낮과 밤에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모든 게임 규칙과 대략적인 직업 설명을 확인한 호국은 머릿속에서 카운트다운이 울려퍼지는 것을 확인했다.

옛날 미국 서부 개척시절에나 사용했을 법한 다이너마이트의 불씨가 점점 타들어가더니, 이내 뻥! 하고 터지며 본격적인 게임의 튜토리얼이 끝났음을 알렸다.

동시에 호국에게도 직업과 세력 정보가 주어졌다.

-당신의 직업은 동네바보(중립)입니다.

-당신의 세력 성향은 : 혼돈, 중립입니다.

-당신은 '밤'에 직업을 막론하고 모든 생존자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 중 랜덤한 정보를 2개 습득합니다.

-'밤' 사이에 습득한 정보 2개는 자동적으로 개인 수첩에 기록되며, 당신이 '밤'에 사망, 자살 했을경우, 당신의 집에 방문한 사람이 개인 수첩을 습득합니다. '낮'에 처형 당했을 경우 당신을 가장 먼저 지목한 사람이 개인 수첩을 습득합니다.

-모든 직업은 당신이 말하는 정보를 50% 확률로 완벽하게 이해하거나, 완전히 반대로 이해합니다.

-당신은 '낮'에 단 3번만 타인과 정보 교환을 할 수 있습니다.

-동네바보는 아이템 습득의 달인입니다. 모든 길거리, 더러운 구석, 폐허, 시체와 무덤을 뒤져 쓸만한 아이템을 획득하십시오.

-'동네바보의 잡동사니 주머니'를 지급합니다. 한계 용량은 50kg 입니다.

"...이 게임은 현실 IQ도 반영되나?"

직업이야 어찌됐든, 호국은 Younoob에서 곧잘 인싸들이 즐긴다던 마피아 게임을 자주 시청하곤 했다.

당시에는 워낙 컨텐츠 방송 시청에 미쳐 있었는지라,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시청했던 게 지금 빛을 볼 때가 된 것이다.

자신은 가상 현실에 접속할 수 없어 그들이 영상 속에서 벌이는 치열한 두뇌 플레이와 심리전을 손가락 빨며 구경해야 했지만, 마피아가 대충 어떻게 하는 게임인지는 이해해했다.

마피아란 게임은 딱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다.

"자기 편 빼고 전부 죽여버리면 돼."

아니면 자기 편이 전부 죽을 때 까지 트롤링이나 하던가.

물론 인생 최초 멀티 플레이 게임을 그런 식으로 망칠 수는 없었기에, 호국은 어느샌가 자신의 허리춤에 달려있는 가죽 주머니를 들고 미친듯이 숲을 가로질렀다.

숲에서 벗어난 호국은 가장 먼저 보인 민가로 다짜고짜 뛰어들어갔다.

다행히 다른 플레이어가 아직 도착하지는 않았는지, 말끔한 생활 공간이 유지된 상태 그대로였다.

"이건 챙기고, 이것도 챙기고, 이건 먹고."

식탁 위에 올려진 갓 구운 빵을 우악스러운 손길로 찢어서 입에 쑤셔넣고, 가죽부대 속에 보관되어 있던 포도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RPG 게임에 매우 익숙한 호국은 일단 NPC의 집에 쳐들어가서 모든 아이템을 쓸어담고, 당장 챙기기 어려운 소비 아이템은 즉시 소비해버리는 습관이 있었다.

"항아리...짤그락 거리는 소리...깬다!!"

항아리를 던져서 박살내고 안에 들어있던 동전을 챙겼다.

부엌을 뒤엎어서 날붙이와 성냥, 연료를 챙겼다.

창고의 목재 문을 주먹으로 박살낸 다음 쥐새끼처럼 기어들어가 곡식이 담긴 작은 주머니도 몇 개인가 챙겼다.

순식간에 가죽주머니의 한계 용량을 20kg까지 채운 호국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민가에서 빠져나왔다. 게임의 알파와 오메가가 파밍인 것은 만국공통으로 통용되는 부분이었다.

호국이 시작부터 깔끔하게 털어버린 민가는 이 무대의 중심인 '세일럼 빌리지'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거리로 따지면 대충 150m 가량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마을 외곽에 동떨어진 민가, 누가 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이 아싸인 건 확정이겠네.'

불쌍한 아싸는 게임 초반부터 빈집털이를 당한 상태로 시작하게 되겠지만, 그것까지 호국이 신경쓸 일은 아니었다. 그저 게임 진행자가 아이템을 마구 파밍하라고 알려줘서 그랬을 뿐이니까.

"중립이 어떻게 살아남는지 보여주지."

호국은 빈집에서 털어온 호밀빵을 마저 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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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비 업무 일지 : 세일럼 마피아 게임(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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