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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해피 고문재단-174화 (174/209)

< 경비 업무 일지 : 충격과 공포 작전(4) >

사람들은 각자 돌아가야 할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죄인은 감방에, 실험체는 실험실에, 악성재고처럼 쌓인 민트초코는 소각장에.

물론 집 나간 머리털까지 맨들맨들한 두피로 되돌아간다는 보장은 없지만, 어쨌든 세상천지의 만물은 시간이 지나면 본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는 법이다.

뒤늦게 하와이에 도착한 기동타격대가 ES를 모두 특수 케이스에 회수하여 돌아가는 모습은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의 엔딩 크레딧 같은 광경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이 일은 그저 놀기 위해 빨리 처리하고 싶었던 숙제였으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해결해야만 모두가 사는 의무였을 것이다.

"내가 그런 쪽으로는 관심이 없어서 미안하게 됐네."

경호 요원들이 차려입는 특수 케블라 소재의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333번이 오퍼레이터의 뒷목을 후려쳐 기절시켰다.

그 옆에서 조금전까지만 해도 담소를 나누고 있던 또 다른 오퍼레이터가 화들짝 놀라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었지만, 333번이 역으로 그의 팔꿈치를 짓눌러 권총을 뽑아들지 못 하게 막았다.

"너 이 새끼 무슨......?!"

"높으신 분들이 이게 내 일이라고 하니까 너무 원망하진 말자고."

빡!

권총을 뽑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오퍼레이터의 안면에 날카로운 잽이 꽂히고, 그는 코피를 쏟으며 축 늘어졌다. 인중에 때려박은 잽 한 방이 고도의 훈련을 받은 경호국 요원을 단숨에 기절시킨 것이다.

가볍게 손을 털어낸 333번은 축 늘어진 오퍼레이터들을 밀쳐내고, 자리에 앉아 스마트패드를 조작했다.

경호국에선 특히 보안 사고를 크게 신경써서 스마트패드의 주인이 미리 잠금을 해제해두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건드리는 건 매우 힘들었다.

게다가 잠금이 해제된 상태여도 1분 이상 터치가 없으면 다시 보안 시스템이 작동해 주인이 직접 해제해야 한다.

보안 시스템이 작동하기 전에 스마트패드를 터치한 그는 표면적으로 신입인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경호 요원들에게 배부된 자료를 살폈다.

존이 항상 옆에 붙어있어서 좀처럼 손을 쓰기 힘들었는데, 때마침 가드-079가 하와이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해결하면서 존이 급히 자리를 뜬 덕분에 기회가 생겼다.

"어디보자...인공모체(人工母體)에서 배양한 호문클루스를 활용하여...인위적인 형태의...ES 개발? 프로젝트명 한 번 특이하군."

프로젝트명만 보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없었기에, 333번은 쓰러진 오퍼레이터의 손을 끌어와 지문 인식으로 기밀 자료의 잠금을 해제했다.

급이 낮은 오퍼레이터들에겐 모든 자료를 공개한 것은 아니었는지, 이미지 파일로 구성된 프로젝트의 기획서는 듬성듬성 수정 마커가 칠해져 있었다.

하지만 일단 공개적으로 배부된 자료인 만큼, 다음과 같은 정보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하와이에 기반을 둔 TF산하 제 3 연구 시설은 세계에서 단 둘 뿐인 인공모체중 TF 소유의 인공모체를 이용해 대량의 인공생명체인 호문클루스를 배양했다.

-연구팀 측에선 오래 전 최고 수석 연구원의 고문 실험에 의해 사멸되었던 ES 6-380(쌍둥이 세포)의 반쪽짜리 세포의 일부를 대량의 호문클루스와 '배합'했다. 그 결과, 인간이 제어할 수 있으면서 능력적으로는 ES에게 뒤지지 않는 인공 ES를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인공생명체인 호문클루스와 끔찍한 공포만을 남겨두었던 ES 6-380의 사멸된 세포는 궁합이 잘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실험체들은 빠르게 자아를 획득했으며, 눈부실 만큼 빠른 속도로 지능을 상승시켰다.

-실험 진행 도중 인공 생명체가 실험 협조를 거부하자 경비가 그것을 제지하려 들었고, 그 순간 모든 실험체들이 속박을 풀고 주변에 있던 경비와 연구원들을 사살해버렸다.

-시설의 관리봇이 고문 시스템을 이용해 대다수의 실험체들을 은폐, 사살했지만 극소수의 실험체가 공기순환시스템을 통해 시설 외부로 빠져나갔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인공적인 ES를 합성하는 실험은 절대 금기였으므로 우리는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경호국의 '존'과 협력하기로 했다. 그라면 FCD에게 들키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우리를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거기까지."

철컥.

권총의 슬라이드를 당기는 소리에 333번은 자연스럽게 '자료 전송' 버튼을 누르면서 고개를 돌렸다.

일처리를 하러 갔던 존이 급하게 되돌아온 듯, 살짝 숨을 헐떡이면서 333번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기관단총을 든 경호 요원 두 명이 나란히 서있었다. 아마도 뜻을 함께 하는 동료들이리라.

"그 역겨운 것들을 다시 실험실로 되돌려보내는데 적어도 몇 시간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돌라오셨습니다?"

"쥐새끼 한 마리가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 아무렴. 빨리 돌아오는 게 집주인의 의무지."

"우리 입장에서 집주인은 까마득하게 높은 곳에 계신 분들 아닙니까?"

333번이 은근슬쩍 FCD의 뜻에 반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놀랍게도 존은 비릿한 미소를 흘리며 부정하지 않았다.

"TF는 내외 가리지 않고 적이 많아. 경호국 팀장으로 앉아있으면서 TF가 어떤 세력의 위협을 받고 있는지, 어떤 ES를 최대한 억누르고 있는지, FCD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우리들에겐 다양한 정보들이 실시간으로 들어오거든."

"그래서 더 강한 쪽으로 붙으셨다?"

"건방떨지마라. 더 강한 쪽에만 박쥐처럼 붙는 건 내 성미에 맞지 않아. 난 이 지긋지긋할 정도로 따분한 자리에 앉아있으면서도 극한의 재미를 추구한 인간이다. 젊은 년놈들이 곧잘 떠들어대는 YOLO(You Only Live Once) 정신을 가장 잘 지키고 있지. 하지만 결국 내가 이런저런 방식으로 손을 써도 정말 재미있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더군. 유능한 기동타격대 놈들이 금세 사건을 해결해버리거나, 적대 세력의 은밀한 공격을 사전에 저지하고, 심지어 웬 병신같은 머저리 하나가 연이은 시설 테러도 막아내면서 내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다. 강한 쪽에만 붙어 있으면 영원히 재미를 볼 수 없어. 재미를 보려면 과감하게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으로 덤벼드는 '꾼'에게 붙어야지."

쓸데없이 길게 떠들어대긴 했지만 결국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재미를 위해서' TF를 배신했다는 의미가 된다.

존은 아마도 이번 일을 기획하면서 가드-079를 은밀하게 암살하고, 전 세계와 TF 내부에 인공 ES를 대량으로 풀어놓을 계획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모든 상황이 정말 재미있게 돌아갔을 것이다. 가드-079를 어처구니없이 잃어버린 TF는 크게 당황했을 것이고, 아울러 내부의 적이 점점 더 많아지면서 종국에는 TF의 진짜 목적과 방향성마저 잃어버리게 되었을 테니까.

그걸 막아낸 가드-079가 그저 대견스러울 뿐이다.

"나도 예전에 조직 생활을 해봐서 아는데, 조직 생활을 하는 놈들 중에 인생을 실컷 즐기는 놈은 있었지만, 조직을 배반하는 놈들은 거의 없었어. 그게 왠 줄 알아?"

333번은 베~ 하고 자신의 혀를 내밀었다. 혀 위에 새겨진 룬 문자가 푸르게 빛나더니, 일순간 총을 들고 있던 존과 경호 요원들의 방향 감각이 완전히 망가져버렸다.

"시, 시야가 미쳐 돌아간다! 내가 지금...서있는 거야?! 아니면...우웨에에에엑!"

"뭐가 뭔지 모르겠어! 빌어먹을! 제대로...볼 수가 없어!!"

경호 요원 둘이 헛구역질을 해대며 쓰러졌다. 방향 감각을 완전히 상실한 탓에 시야가 빙글빙글 돌고, 정신이 오락가락 하고 있을 터. 총을 들기는커녕 제대로 서있는 것 조차 힘든 게 현실이었다.

존 역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그는 꽤 오래 이 바닥에서 활동한 덕분인지 눈치가 제법 빨랐다. 감각이 무너졌다고는 하나, 자신이 서있는 위치가 바뀐 것은 아니라고 판단해 두다리로 버티고 섰다.

"오, 대단한데. 강화 시술 깨나 받은 모양이지?"

"닥쳐라!"

타캉! 타캉!

좁은 컨테이너박스 안에서 총성이 울려퍼지고, 탄환이 마구 튀면서 혼돈을 낳았다.

하지만 333번에게 그 탄환이 닿는 일은 없었고, 애초에 그는 피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권총은 다른 곳을 노리고 있었으니까.

"어이쿠, 자료 전송이 끝났네. 그럼 이제 난 경호국 신입 요원이 아니라 감찰국 신입 요원으로 복귀해야겠어."

"너 이 새끼......!"

FCD의 손에 자료가 들어가면 모든 게 끝이다. 그렇게 판단한 존이 필사적으로 333번을 붙잡으려 했지만, 그는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마지막으로 컨테이너를 벗어나기 직전, 333번은 측은함이 섞인 시선으로 존을 내려다보았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계획을 시도할 생각이었다면 인공 ES를 빼내는 것에만 집중하지 그랬어. 그렇게 쓸데없는 짓을 하니까 '시선'을 한 몸에게 받게 됐잖아."

"뭐라고...지껄이는......!"

"미안. 난 무서워서 이만 가볼래."

333번은 소름끼친다는 듯 양팔을 쓰다듬으며 컨테이너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그가 바깥에서 컨테이너 문을 걸어잠그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다.

곧 정신을 차린 존은 아직도 흐느적대고 있는 경호 요원들에게서 휴대용 절단 도구를 빼냈다. 이 컨테이너만 빠져나간다면 아직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절단 도구로 컨테이너의 잠금쇠를 끊어낸 존은 컨테이너 박스의 문을 힘차게 열어젖혔다.

"...이게 뭐야?"

그의 눈앞에 보인 것은 즐거운 관광지 하와이가 아닌, 별천지로 가득한 밤하늘과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황무지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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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제 6 연구 시설의 우수 사원으로 선정된 마키 모니안 박사님과 룽 쓰찬 박사님의 시상식을 거행하겠습니다. 대표자인 마키 모니안 박사님은 앞으로 나와주십시오."

짝짝짝!

상당수의 인간들이 파티에서 빠진 탓에, 실제로 우수 사원 표창장을 받으러 나가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모종의 사건으로 불행하게도 행방불명된 파티 참석자들을 대신하여, 외부에서 파견을 나온 기동타격대가 그들의 빈자리를 대신 채워주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와 함성, 휘파람 소리도 대부분 갑작스럽게 파티의 빈자리를 메꾸게 된 그들이 내는 소리였다.

3급 연구원인 마키 모니안 박사는 눈물과 콧물을 훌쩍이며, 가상 현실 아바타로 시상식을 진행하고 있는 FCD 의원의 앞에 섰다.

"두 박사님께서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불구하고 불같이 타오르는 학구열로 연구에 매진하였으며, TF의 발전, 나아가 인류의 발전을 위해 한몫 보태주었습니다. 이에 TF를 대표하여 FCD 의원이자 최고 위원회 소속인 저 제임스 마커스가 표창합니다."

시상식 진행자가 걸어나와 미리 준비된 꽃다발과 표창장, 그리고 우수 사원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보너스인 황금색의 크레딧 카드가 부상으로 주어졌다.

주변인들에게 듣기로는 저 황금색 크레딧 카드가 사실 우수 사원들이 노리는 진짜배기 목적이라는 말이 있었다. 음식을 입에 우겨넣고 있는 호국도 저 크레딧 카드가 몹시 탐이 났다.

'저 크레딧 카드로 강남에 가서 돈가스 사먹어야지.'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스페셜 고구마 치즈 돈가스를 시켜먹은 뒤 황금색 크레딧 카드를 척 꺼내면 꽤 멋질 것 같았다.

이윽고 마키 모니안 박사가 울먹이면서 짧은 감상을 발표한 뒤 단상에서 내려가고, 드디어 호국과 세희의 차례가 도래했다.

"마지막으로 제 6 처리 시설의 우수 사원으로 선정된 가드-079, 김세희 연구원의 시상식을 거행하겠습니다. 대표자인 가드-079는 앞으로 나와주십시오."

바로 옆에서 뚱한 표정으로 서있던 김세희가 마지못해 영혼없는 박수를 보내주었다.

내심 자신이 대표자로 뽑히길 기대했던 것 같지만, 하와이에 오기 전부터 기획해두었던 '충격과 공포' 작전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라도 호국이 대표자가 되어야 했다.

한낱 경비가 우수 사원으로 뽑히는 게 꽤나 충격적이었는지, 뭣모르고 초대받은 기동타격대 대원들도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호국은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지난 2개월에 가까운 시간을 참고 또 참았다. 이제 그 인고의 시간을 보상받을 때가 됐다.

"가드-079, 김세희 연구원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직급의 차이가 존재했음에도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올 하반기 실적 평가에서 최고의 실적을 세웠습니다. 이에 TF에선 두 사람의 재능과 팀워크, 미래를 볼 줄 아는 선구안 모두 뛰어남을 확인하였으므로 표창하고자 합니다."

호국은 의기양양하게 진행자로부터 꽃다발과 표창장, 그리고 부상을 받아든 뒤  단상의 중앙에 섰다.

잘 빠진 슈트에 쓸데없이 돈만 많은 무기 사업을 하던 남자가 기자들 앞에서 뭐라고 했는지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강철남자, 2050년에 이른 지금도 손꼽히는 명작이다.

호국은 답답하게 얼굴을 가리고 있던 터번을 벗어던지며 담담하게 말했다.

"예, 제가 바로 김호국입니다."

아주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폭탄이 터졌다.

"김호국 이 개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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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비 업무 일지 : 충격과 공포 작전(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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