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피해피 고문재단-168화 (168/209)

< 경비 업무 일지 : 민트초코 냄새(1)(수정 완료) >

"이거 맛있네."

호국은 멋부리기 좋아하는 가식쟁이 엘리트 놈들과 멀찍이 떨어져, 신입과 함께 음식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하와이안 푸드를 즐기고 있었다.

하루종일 얼간이 트리오에게 시달린 탓에 호국은 테이블 2개를 끝장내고도 아직 배가 고팠다. 슬쩍 신입을 바라보면, 녀석은 커다란 접시에 각종 고기와 야채를 담아 양손에 들고 있었다.

"하나 내놔 인마."

신입에게 접시 하나를 빼앗아든 호국은 블루레몬 음료와 함께 반쯤 흡입하듯이 집어삼켰다. 이토록 어마어마한 열량을 섭취해도 원체 기초대사량이 높은 호국은 살찔 염려가 없었다.

애초에 활동력 하나는 꾸준히 몸매를 관리하려 노력하는 세희보다 더 했기 때문에, 잉여 에너지가 남아 지방으로 전환될 여유도 없었다.

그런 호국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몇몇 이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경호 요원을 불러 호국에게 주의를 주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동물원의 원숭이를 보는 것 처럼, 결국 자신보다 못한 존재라고 생각하면서 구경하는 것을 즐기는 듯 했다.

"어휴, 내가 창피해서 진짜......"

엘리트 코스를 밟고 올라온 세희는 호국과 달리 아름다운 드레스 차림에 머리까지 틀어올려, 멋부린 아가씨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보유 지식이나, TF내에서 세운 업적도 남달랐기 때문에 그 어떤 연구원이나 고위 관료가 말을 걸어와도 능히 상대할 수 있었다.

오죽하면 그녀를 이제 막 4급 선임 연구원이 됐을 뿐인 애송이라며,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접근한 몇몇 연구원이 되레 그녀에게 K.O 패를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세희의 미친듯한 정치질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호국은 파티 내의 공식적인 구경거리로 전락한지 오래였다.

저런 사람과 같이 파트너가 되어 파티에 참석한 것도 열이 받는데, 그렇다고 저 파트너를 매몰차게 까버리자니 세희에겐 너무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저 광대 같은 파트너가 이 파티에 참석한 그 어떤 인재보다도 업적, 실적면에서 우수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유일무이한 경비(가드) 출신 파티 참가자였다.

무슨 말을 꺼내든 '그래서 저보다 일 잘 하시는지?' 라고 반박해버릴 게 뻔했다. 그 말에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플 따름이다.

'후, 그래도 내가 챙겨줘야지. 원래 일만 잘 하는 사람이 사회 생활에 어두운 경향도 있으니까.'

천재 자폐아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특정 분야에선 수재조차 가볍게 찍어누르는 진짜배기 천재의 실력을 보여주지만, 그 외에는 절망적으로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의 특징이다.

세희는 아직 아이를 가져보지도 않았고, 연애조차 해보지 않았지만, 그래도 저 파트너가 못난 모습을 보일 때마다 겉으로는 욕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다독여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여성이 남성에게 느끼는 연애적인 감정이라기보단, 마치 소중한 가족이나 절친한 친구를 대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가 '신입' 이라고 부르는 후임과 함께 -대체 어떻게 가능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음식 테이블을 싹쓸이하는 것을 보고 다가가려던 순간, 세희는 하마터면 손에 쥐고 있는 글라스를 떨어뜨릴 뻔 했다.

'방금 그거...비명 소리 아냐?!'

이런 중요한 자리일수록 당연히 VIP 인사들을 위해 방음이 철저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 방음도 아주 완벽한 것은 아니었는데, 종종 호텔 직원들이 서비스를 위해 파티장을 들락날락 할 때마다 짧게나마 문이 열리곤 했던 것이다.

바로 그 기가막힌 타이밍에, 바깥 복도에서 찢어지는 듯한 여성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진 것이다.

비명을 들은 건 비단 세희만이 아니었는지, 몇몇 연구원들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느 샌가 잔잔하게 흘러나오던 클래식 음악도 연주가 중지되었다.

모두가 숨 죽인 채 지금 파티를 벌이고 있다는 것도 잊었을 무렵, 입구와 비교적 가까이 있었던 세희의 파트너와 신입이 먼저 움직였다.

곧이어 그녀도 질세라 드레스 끝자락을 살짝 들어올린 채 복도로 달려나갔다.

"지금 파티장에서 나오시면 곤란합니다! 현장은 저희가 확인해볼테니 파티 참가자분들은 안에서 대기해주십시오!"

입구 근처에서 근무를 서고 있던 경호 요원들이 가로막고 섰지만, 가드-079와 신입은 매우 날렵한 움직임으로 그들의 저지를 돌파했다.

자신들도 설마 일개 재단 직원에게 돌파당할 거라고는 생각치 못 했는지, 경호 요원들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 틈에 세희도 그들을 지나쳐 파트너의 뒤를 쫓았다.

두 사람이 복도를 가로질러 들어간 곳은 공교롭게도 여자 화장실이었다.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요?!"

잽싸게 가드-079와 신입의 목덜미를 잡아챈 그녀였으나, 그마저도 둘의 손날치기에 가로막혔다. 워낙 빠르고 정확한 솜씨라 킥복싱을 배운 세희의 눈으로도 좇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럼 넌 여자 기숙사에 불났다고 남자 소방관들 못 들어오게 할 거냐? 이 상황에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하고 있어."

"그, 그건......!"

의외로 정론이었던지라 잠시 말문이 막힌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둘이 여자 화장실의 문을 개방하는 것을 주시했다.

최소한 여성인 자신이 함께라면 두 사람이 오해를 살 일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상황은 오해고 뭐고 일어날 건덕지도 없는 대참사라는 걸 알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 아아......!"

새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여자 화장실의 세면대 구석에 쓰러져 벌벌 떨고 있는 드레스 차림의 여성. 그녀는 제 2 연구 시설 소장과 함께 페어로 참가한 연구원이었다.

옆에 그녀의 핸드백이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화장을 고치기 위해 화장실에 왔다가 이런 상황과 마주하게 된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화장실의 정중앙에는 피와 오물, 그리고 천쪼가리 비스무리한 얇은 가죽이 덩어리 진 채 뜨거운 김을 피어올리고 있었으니까.

화장실의 향긋한 방향제 냄새로도, 독한 청소용액 냄새로도 지우기 힘들 만큼 역겨운 냄새가 흘러나오는 괴상한 핏덩어리였다.

"으음......!"

TF 연구원이 된지 이제 거의 두 달이 다 되어가는 그녀는 잔혹한 광경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지만, 그것도 CCTV 너머로 보는 것에나 익숙해져 있을 뿐이었다.

처음으로 현장에서 피와 오물이 섞인 듯한 기괴한 냄새를 맡으니, 배에 얼마 넣은 게 없었음에도 구토감이 밀려올 지경이었다.

그런 그녀와 달리, 가드-079는 척척 걸어가 핏덩이 앞에 쪼그려 앉았다. 신입도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그의 곁에 다가가...일회용 티슈를 마구 뽑았다.

그러자 대뜸 신입의 손에서 티슈를 빼앗아든 가드-079가 핏덩이에 티슈를 살짝 갖다대보았다. 수분을 흡수하는 티슈의 특성상 검붉은 핏물이 새하얀 티슈의 면적을 금세 붉은 빛으로 채워나갔다.

"잠깐, 지금 뭐하는 거예요?"

"뭐하긴 냄새 맡고 있지."

"냄새는 코로 맡아야지 왜 티슈로 그런 짓을......"

"아, 미안. 내가 아는 사람에게서 배운 건데 '이런 걸' 냄새 맡기라고 하거든. 쉽게 말해서 추적술 같은 거야."

아주 당연한 어조로 넌 이런 거 모르지? 난 안다. 라고 말하는 것 처럼 들려서 세희는 살짝 화가 났지만, 우선 옆에서 벌벌 떨고 있는 여성부터 챙기기로 했다.

"혹시 혈액이 응고됐는지 안 됐는지 알아보려는 건가요? 그런 거라면 차라리 전문 감식반을 불러서 조사하는 게 더 나을 텐데요."

"그 사람들 여기까지 오려면 얼마나 걸리는데?"

"이미 왔습니다."

그의 질문에 대신 대답한 것은 소리소문 없이 문 앞으로 다가온 무장 세력들과 그들을 이끄는 경호국 팀장이었다.

"우선 VIP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그리고 혹시 모를 기습에 대비해서 현장의 경호 요원들에게 섣불리 움직이지 말 것을 지시했습니다. 사고가 터졌다고 죄다 우르르 몰려가면 경호에 빈틈이 생기기 때문이지요."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세희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이들의 출동이 굉장히 빨랐던 것을 눈치챘다.

자신들이 비명 소리를 들은 게 1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무려 이번 경호국에서 파견된 이들중 팀장급이 이렇게 빨리 나타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존은 자신을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는 세희를 눈치챘는지, 별 것 아니라는 어조로 말해주었다.

"이 근처에 모니터룸이 존재합니다. 아무래도 경호해야 할 대상이 이곳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팀장인 저를 비롯한 기동 1팀이 상시 대기중이었습니다. 다행히 늦지는 않았던 것 같군요."

비명 소리를 듣고 바로 튀어나온 세희 일행에 비해, 저들은 CCTV와 무전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달려나왔을테니 이정도면 충분히 빠른 게 맞았다.

"그럼 현장을 조사하고 정리도 해야 하니...이만 자리를 비워주시겠습니까?"

존이 에둘러 축객령을 내리자 핏물이 스며든 티슈를 손에 쥔 가드-079와 신입도 미련없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물론 그들이 가지고 있던 티슈는 모두 경호 요원들이 수거해갔다.

"제인 양에게는 못 볼 꼴을 보여드린 것 같아 송구스럽군요. 제 2 연구 시설 소장이신 크리스 박사님께는 나중에 제가 따로 사과하는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이미 반쯤 넋이 나간 제인에겐 귓등으로 들리지 않을 말이었으나, 그는 VIP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 답게 선은 확실하게 그었다.

화장실을 나와 다시 파티장으로 돌아온 호국은 소매 속에 감춰두었던 예리한 포크와 나이프를 만지작 거렸다.

"빠른데?"

호국은 눈과 귀가 아주 좋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코도 나름 괜찮은 성능을 자랑했다. 눈과 귀만큼은 아니지만, 일반인보다는 예민한 수준.

아주 특별한 건 아니지만 조금 대단한 정도?

'그거면 충분하지.'

평소에는 눈과 귀를 통해 정보를 얻는 호국은 식사를 즐길 때를 제외하면 코를 잘 사용하지 않는데, 자주 개미부대표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아껴두었던 후각도 남김없이 사용했다.

그래봤자 눈과 귀에 비견할 바는 아니었지만, 혈향 속에 묻힌 희미하면서도 자극적인 냄새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마치 눈과 귀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들의 도움만 받다가, 시험삼아 코도 써볼까? 하는 느낌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그런 호국이 비명 소리를 듣자마자 모든 감각을 사용했으나, 정작 여자 화장실에서 그런 만행을 저지른 놈은 호국이 뒤를 쫓기도 전에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르던지, 환풍구와 수도관을 넘나들며 초고속으로 이동하는 소음에 호국의 귀도 당황할 정도였다. 적어도 인간이 낼 수 있는 움직임이나 스피드는 아니었다.

'그런 건 들짐승이나 가능한데......'

들짐승 중에서도 작고 날렵한 설치류.

재빠르기로는 타고났다는 고양이조차 쉽게 쫓지 못 하는 다람쥐나 청설모 같은 것들이 그에 준하는 속도를 자랑한다.

만약 화장실에서 마주쳤다면 총기가 없어 미리 날을 갈아둔 포크와 나이프를 써야 했겠지만, 막상 상대가 호텔에서 빠르게 벗어난 탓에 호국은 입맛만 다셨다.

짐작컨대 자신이 찾아야 할 ES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첫날에 그걸 잡았으면 남은 기간 동안은 실컷 먹고 마시고 놀 수 있었는데......!'

남몰래 주먹을 불끈 쥔 호국은 조용히 분노했다.

사실 그 괴도루팡 같은 놈을 잡지 못 해서 화가난 것도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욱 빡치는 일은 호국이 놈의 흔적에서 아주 짜증나는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다.

호국조차 간신히 맡았을 만큼 희미했지만, 그렇기에 더욱 그런 상황에 존재해선 안 될 냄새였다.

'그건 틀림없는 민트 초코 냄새였어.'

그 어떤 첨가제도 넣지 않은 순수 코코넛 열매로 만든 음료보다 더 짜증나고, 피자에 파인애플을 올리는 것 만큼이나 혐오스러우며, 치약 만큼 몸에 좋은 것도 아니면서 치약보다 더한 맛과 향을 자랑하는 그것.

핏덩어리 속에서 호국은 희미한 민트 초코 향을 놓치지 않았다. 왜냐하면 코가 일반인보다는 좋았으니까.

만약 동물만큼 후각이 예민했다면 좀 더 강렬한 민트초코향을 맡고 코가 비틀어져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미뤄봤을때 눈과 귀보다는 덜떨어진 코가 만족스러웠다.

"후우...일단 파티는 망했네."

안 좋은 소식이 퍼지면서 고위 인사, 연구원들 사이에선 벌써부터 불편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우연인지 다행인지 FCD라 불리우는 TF 최고 권력자들은 모두 가상 현실의 아바타 상태로 참석했기 때문에 TF의 근간이 흔들릴 일은 없었다지만, 파티 첫날 부터 피바람이 불었으니 남은 일정이 즐겁게 진행될 일은 없었다.

말마따나 겁에 질린 파티 참석자들이 파티 참석을 거부하면 당연히 파티에 나오는 음식의 질이나 양도 현저히 낮아질테고, 호국은 기껏 힘들게 일하고서도 파티를 파티답게 즐길 수 없게 된다.

하지만 호국이 일을 해결해주면 경호국 사람들은 일이 편해질테니 잘 먹고 잘 놀다가 돌아갈 터. 결국 죽 쒀서 개 주는 꼴이 된다는 얘기다.

"내 생애 첫 해외 여행을 이렇게 망칠 수는 없지."

호국은 삼삼오오 모여 웅성거리고 있는 사람들 몰래 신입과 세희를 턱짓으로 불러들였다.

얼간이 트리오가 이 사건을 해결해주길 기다리느니, TF 최정예 트리오가 직접 해결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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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비 업무 일지 : 민트초코 냄새(1)(수정 완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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