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피해피 고문재단-165화 (165/209)

< 경비 업무 일지 : 대충 심각한 사건(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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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겟과 접촉했습니다."

"계속 주시해."

한 여성 오퍼레이터의 보고에 스스로를 존이라고 밝히기 좋아하는 남자는 짧은 명령을 던졌다.

하와이 같은 유명한 관광지엔 알로하 복장이 딱 어울리겠지만, 공교롭게도 그는 알로하 복장을 갖출 만큼 위트 있는 남자는 아니었다.

스스로 그럴 기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하와이의 멋진 해변에서 미녀들을 잔뜩 끼고, 양주로 폭탄주를 만들어가면서 즐길 수도 있으련만. 자칭 존은 그런 퇴폐적인 유흥보다 TF의 일에 더 흥미를 느끼는 남자였다.

TF의 중책에 오른 그가 맡게 되는 일은 각양각색의 미스터리 투성이다. 고위 관료들의 신변을 보호하는 입장인 만큼, 고위 관료들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적들에 대한 정보를 자연스럽게 접하기 때문이다.

그가 지켜야 할 고위 관료들은 너무나도 많은 적을 두고 있다. 비유를 하자면 2차 세계대전 당시 지독한 암살 시도에 시달렸던 히틀러보다 더욱 많은 적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게다가 FCD의 적들 중 대다수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사이비 종교에 심취한 광신도, 모든 인류가 스스로 퇴보의 길을 걸어 멸종하길 바라는 정신병자, 희귀하고 값진 것이라면 그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는 변태, 그리고 지금도 TF가 은폐하기 위해 모든 전력을 쏟아붓고 있는 ES.

'심지어 최근에는 적대 세력이 더 늘어났다는 보고도 들어왔었지.'

아직 자세한 것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정보에 민감한 존은 이미 몇몇 보고를 우선적으로 받았다.

가령 인간의 관리를 벗어난 안드로이드가 기괴한 살덩어리가 입혀진 형태로 황무지나 폐허가 된 도시를 배회하고 있다던가, 이미 완전히 파괴된 것으로 추정되는 TF 산하 시설에서 원인모를 생체 에너지가 감지되고 있다던가.

하나의 적을 상대하는 것도 힘든 일인데, 그 적의 수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으니 TF 입장에선 하루가 멀다하고 개미부대나 척살부대, 기동타격대를 쪼아대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하지만 TF의 미래가 점점 더 어두워진다던가, 산더미 같은 일거리가 몰려온다는 얘기들은 존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 했다.

'오히려 환영하는 바다.'

적이 늘어난다는 건 이 거대한 도박판에서 더욱 많은 호구들이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새로운 판돈을 걸고, TF는 자신의 장기말을 이용해서 적의 판돈을 따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 과정에서 존은 이 흥미로운 도박판을 즐길 수 있으면 그만인 남자였다.

솔직히 말해서 너무 즐겁다. 자신은 안전한 곳에서 커피나 홀짝이며 돌아가는 판을 지켜보기만 하면 되고, 자신을 위해 대신 움직여줄 충성스러운 장기말들은 지천에 널려 있으니까.

FCD들이 맛보는 기분이 딱 이런 기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까지 밝혀진 가드-079에 대한 정보는 객관성이 가미된 입증이 필요하다.'

지금껏 가드-079에 대해 밝혀진 정보는 하나같이 놀랍기 짝이 없으면서도 그 사실여부를 정확히 파악하기 힘든 것들 뿐이었다.

가드-079의 초기 입사 시절에 대한 것은 제 6 처리 시설의 연구팀장으로 있던 이홍선이 보내준 자료 덕분에 어느정도 검증이 가능했지만, 임시 책임자가 이두근으로 바뀌고나서부터 그러한 일이 뚝 끊겼다.

'명색이 조사관이라는 놈이 대체 무슨 이유 때문에 정보를 감추고 있는 건지 이 기회에 알아낼 필요도 있고.'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꽂힌 것은 넓은 컨테이너 박스 안에 설치된 수 십개의 모니터들 중 하나였다.

이미 하와이 전역에는 CCTV 부터 새나 벌레로 둔갑한 소형 로봇, 자판기 등으로 위장한 안드로이드가 다수 배치되어 있었다. 어딜 가나 TF 경호국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은 없었다.

'얼마나 대단한 실력인지 꼭좀 구경하게 해줬으면 좋겠군.'

그는 다 마신 커피잔을 내려다보곤, 바로 옆에서 멍 때리고 있던 사내에게 커피잔을 내밀었다.

"333번, 커피 한 잔 더 타주겠나?"

"아이구,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퍼뜩 정신을 차린 덥수룩한 금발의 사내는 활짝 웃으며 커피잔을 받아들었다.

스스로를 '333번'이라고 밝힌 이 사내는 약 두달 전쯤에 누군가의 소개를 받아서 TF에 입사 지원을 한 인물이었는데, 놀랍게도 신원 정보가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완벽한 신원말소자였다.

그런데 저런 수상쩍은 놈이 대체 어떻게 된 건지 각종 시험을 통과하고, 서류 전형까지 합격해서 면접 심사를 받게 된 것이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굉장한 권력자의 소개를 받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는 모양.

경호국의 일부 원칙주의자들은 당연히 정체도 알 수 없는 자를 받아선 안 된다고 했지만, FCD에서 '추천인'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다며 반 강제로 그의 입사를 밀어붙였다.

결국 저 띨띨해보이는 놈은 경호국의 말단으로 입사해서 S-333 이라는 기괴한 코드 네임을 부여받았다.

그가 인근의 커피점으로 달려나가는 모습을 본 한 부하가 조심스럽게 존에게 말을 걸어왔다.

"존 팀장님. 정말 저 놈을 이번 작전에 참관시켜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이런 중요한 일에선 배제시켜두는 편이......"

"옛말에 이런 말이 있지.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욱 더 가까이 두라고. 저 놈이 우리의 친구가 된다면 그것대로 좋은 거고, 우릴 기만하는 적이 되려 한다면 더더욱 좋은 일 아닌가?"

"그래도 감시 하나 붙여두지 않은 것은 조금 걸립니다."

"보안 등급도 4급에 불과한데다, 놈이 가진 전자기기는 모두 우리 측에서 제공한 것들 뿐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지.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는 모든 것을 보고 듣는 자들이잖나."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이렇게 몇 마디 말로 부하를 안심시켜주기만 해도 자신의 라인을 잘 탔다는 생각을 들게 해줄 수 있다. 이게 바로 정치다.

"그리고 여차하면 저 말단에게 아무 죄나 뒤집어 씌워서 유배지로 보내버리면 그만이야."

영원히 지구의 육지를 밟을 수 없는 마리아나 해구, 영원히 지구로 돌아올 수 없는 우주정거장, 달 기지, 혹은......

어쨌든 죄인들을 한큐에 보내버릴 곳은 차고 넘친다.

그리고 약 10분 뒤, 존은 자랑스러운 얼굴로 민트초코라떼를 사온 333번을 매우 아니꼬운 얼굴로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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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은 나이 좀 먹은 사람들일수록 '라떼는 말이야~' 나, '옛말에 따르길~' 같은 말을 많이 한다고 들었던 적이 있다.

그렇다면 23세에 불과한 호국이 옛말에 따르길 웃는 얼굴에 침 뱉을 수 없다, 는 말을 떠올리며 부들부들 하고 있다면 그것은 꼰대에 노땅인 것일까? 아니면 평범한 것일까?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을 수 없다면 주먹으로 갈기면 되는 것 아닌가?'

마리 앙뚜아네뜨가 했다던 근거없는 망발과 비슷한 논리를 떠올리면서, 호국은 사이좋게 앞서 걷고 있는 세 남녀를 바라보았다.

저 종자들은 여기에 일을 하러 온 건지, 관광을 즐기러 온 건지 분간하기 어려운 모습을 보였다. 몇 가지 문제점을 꼬집자면 우선 복장이었다.

누가봐도 지금 이 순간을 즐기다 죽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지는 알로하 복장에 선글라스, 심지어 목에는 디지털 카메라 대신 스마트폰을 걸고 다니면서 즐겁게 사진까지 찍고 있었다.

"어흐, 칵테일도 마실만 하네."

특히 자신을 강백산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인간이 술을 얼마나 퍼마셔야 급사하는지 실험이라도 하고 싶어하는 모양이었다. 호텔에서 병나발을 불던 것이 바로 조금 전인데, 어느새 길거리에서 칵테일을 마시기 시작했다.

호국은 만약 여동생 쇼핑에 따라가기 vs 이 양반들이랑 하루종일 같이 다니기. 라는 선택지가 주어지면, 여동생쪽에 과감한 한표를 던질 수 있을 만큼 심각한 정신 오염 증세에 시달렸다.

보다못한 호국이 그들 사이에 슬쩍 끼어들어 불평을 던졌다.

"제한 시간이 3일인데 언제까지 놀기만 할 거예요? 이럴 게 아니라 당장 탐문이든 뭐든 해봐야죠."

그러자 강백산이 끄윽, 하고 트림을 하더니 호국의 어깨를 친근한 척 두들기며 대답했다.

"젊은 친구가 이런 쪽으로는 영 익숙하지 않아서 뭘 모르나본데, 이것도 엄연히 탐문 수사의 일환이야."

"목적없이 돌아다니면서, 술 퍼마시거나 사진만 찍는 게 탐문 수사라고요?"

"그렇지.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하와이라는 배경 속에 잘 녹아들었거든. 하와이를 찾는 관광객이 뭐 별 거야? 술 마시고, 헌팅하고, 사진 찍고, 바다에서 노는 게 전부인데. 즉 우리는 이런 행동을 하는 것으로 상대에게 의심을 받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조사할 수 있다는 것 아니겠어?"

'그럴싸한데...아니지!'

또 다시 팔랑거릴 뻔 했던 자신의 팔랑귀를 부여잡으며, 호국은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로 지적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비효율적인 것 같은데요. 이렇게 돌아다닌 것 치곤 수집한 정보가 없잖아요. 심지어 나눠준 프로필 속의 사람들과는 단 한 명도 만나지 못 했고."

"흐흐...그래서 똥줄이 탄다 이 말인가?"

"제한 시간이 짧으니까요."

이 양반들은 의뢰에 실패해도 그냥 편하게 비행기 타고 돌아가겠지만, 호국은 일 하나 제대로 못 한다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조인트나 까일 게 뻔했다.

호국은 완벽주의는 아니지만, 최소한 자신이 일 못 한다는 말을를 듣는 것 만큼은 사양하고 싶은지라 이 상황이 몹시도 불만스러웠다.

"흐흐, 이렇게 설명해줘도 잘 모르는구만. 젊은 친구. 지금 우리가 다짜고짜 명단 속의 사람들과 만나려고 뭐 빠지게 돌아다니면 어떻게 될 것 같아?"

"그야...그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겠죠. 그럼 일처리도 빠를테고."

"그게 아니야. 우리가 노골적으로 누군가를 찾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찾아야 할 놈을 찾기가 더욱 힘들어진다는 거야. 그러니 우선은 자연스러움이라는 위장으로 우리의 신분과 의도, 목적을 감추는 게 우선 아니겠어?"

'그럴싸한데?'

이번에는 정말로 그럴싸했다.

역시 전직 형사라 그런지 지능형 범죄자를 상대하는데 도가 텄다는 것일까, 호국의 팔랑귀를 자극하는 솜씨가 아주 일품이었다.

'그래도 실제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건 사실이야. 이러다 제시간에 150명을 다 만나보지도 못 하면......'

호국이 그런 걱정을 하고 있던 찰나, 남은혜와 함께 주변 풍경을 촬영하고 있던 차태준이 돌아와 슬쩍 자신의 스마트폰을 호국에게 보여주었다.

스마트폰에는 몇몇 풍경과 함께 절묘하게 찍힌 어느 인물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는 다짜고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영(靈)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이 사진 속에 찍힌 인물들 중에 수상쩍은 기운을 품고 있는 자들이 있다는군요. 우선 이 사진에 찍힌 인물들의 숙박지와 유흥을 즐기는 장소를 알아내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사진에 찍힌 사람들은 모두 남자니까 제가 접근해서 작업을 해볼게요!"

놀랍게도 사진 속에 찍힌 몇몇 인물들은 호국이 기억하고 있는 프로필 속의 인물들이었다.

'...그럴싸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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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비 업무 일지 : 대충 심각한 사건(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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