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비 업무 일지 : 그 남매의 파티 즐기는 법(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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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요즘 신수가 훤하다?"
"언니도 역시 그렇게 보여요?"
제 6 처리 시설의 연구원 전용 휴게실에 나란히 앉아 티타임을 즐기고 있는 두 여성이 있었으니, 바로 희대의 신입이라 불리우는 김세희와 의무관인 신지혜였다.
애초에 이두근이 이끄는 조사단은 임무와 상황에 맞춰 특정한 직급을 지닌 재단 직원으로 위장을 하는데, 이는 감찰단과 매우 비슷한 성질을 띄고 있어 다른 이들 입장에선 큰 차이를 느끼지 못 한다.
특히 날카로운 인상과는 달리, 재단의 일에 큰 흥미를 느끼고 매사에 열심히 노력하는 김세희는 아주 당연한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신지혜는 김세희가 일반적인 재단 직원에 불과했다면 적당히 신입 대우를 해주면서 부려먹으려 했겠지만, 그녀가 가드-079의 친동생이라는 걸 알았을 때 부터 그런 마음은 싹 접었다.
이두근에게서 특명이 떨어졌던 것이다. 김세희에게 업무적으로 잘못된 것이 있으면 따끔하게 혼을 내되, 그 이외의 사적인 일로는 신경을 건드리지 말라고.
남탕이나 다름없는 조사단의 인원들은 여자를 대하는 게 어려웠기 때문에 알아서 슬슬 피했고, 팀내에서도 직급이 높은 사람들이나 김세희에게 업무적인 일로 자주 어울렸다.
거기서 신지혜만이 '너 좋아 보인다?' 라고 사적인 질문을 던질 정도로 김세희와 사이가 깊어진 것이다. 그래서 최근 들어 김세희와 사적으로도 어울리는 건 신지혜가 전담하다시피 했다.
축구 용어로 말하면 밀착 마크나 다름 없다.
"그럼. 너 요즘 나 몰래 좋은 거 바르는 거 아니니? 암만 젊다지만 어쩜 그리 피부가 좋을까......"
"에이, 언니가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시면 큰일나요. 남들이 배부른 소리 한다며 뭐라 할 거라니까요?"
"빈 말이지만 고맙네 동생~"
이렇게 여자들 특유의 추켜세워주기 같은 '겉치레' 대화를 나누면서도, 신지혜는 김세희의 적응력이 생각보다 뛰어난 것에 내심 놀랐다.
그 가드-079의 여동생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다들 낯빛이 굉장히 어두웠는데, 의외로 그녀는 연구원 훈련생 수석 출신인 것 치곤 비교적 평범한 업무 태도를 보였다.
가드-079처럼 사고를 치지도 않았고, 가드-079처럼 상식에 벗어난 요구를 하지도 않았으며, 가드-079처럼 매우 특이한 능력을 지닌 것도 아니었다.
한때는 보다못한 이두근이 신지혜에게 개인적으로 이런 질문을 했을 정도였다.
-저 두 사람 정말 친남매 맞는지 DNA 검사 가능해?
신지혜는 웃으며 그를 의무실에서 내쫓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도 궁금하긴 했다.
그 가드-079다. 다른 인물도 아니고 그 괴짜에 비밀이 가득한 남자의 친동생으로 알려져 있으면서 정말 아무것도 없을까? 사실은 하나 둘 정도는 감추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신입은 다들 받는 거라며 건강검진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그녀의 몸을 철저하게 조사했던 적도 있었다. 너무나도 평범하면서 건강한 몸이라는 결과만 나왔지만.
'그래, 가드-079랑 똑같지 않은 게 어디야. 오히려 다행스럽게 여겨야지.'
이렇게 대화를 나누면서도 그녀가 또래의 여성들과 별 다를 것 없는 20대 초의 풋풋한 여성이라는 게 실감된다.
신지혜는 어느덧 30줄에 접어들긴 했지만, 이렇게나 풋풋한 아이가 정말 친동생처럼 애교를 부리며 자신과 어울려주는 게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동생, 이번엔 정말 진지하게 물어보는건데. 요즘 들어 살짝 텐션이 올라간 것 처럼 보이는데 왜 그런 거야?"
"음, 역시 언니 눈은 못 속이겠네요. 의사 선생님이라 눈썰미가 좋으신 건가?"
"내가 카운셀링도 겸하고 있잖니. 혹시라도 안 좋은 일인데 일부러 텐션 올리고 있으면 큰일나니까 꼭좀 알고 싶어서 묻는 거야."
이건 순수하게 농담 반 진담 반이 섞인 질문이었다.
의무관의 '역할'을 부여받은 신지혜는 일반 재단 직원을 철저하게 속이기 위해 감찰관이나 할 법한 위장 교육을 모두 이수했다.
덕분에 의학적 지식도 두루 갖추고 있으며, AI와 로봇 의료기기의 힘을 빌린다면 자체적으로 외과 수술까지 할 수 있을 정도다. 팀내에서 심리상담사 역할을 자처하는 것도 당연했다.
최근 김세희는 연구팀에서도 유독 눈에 띌 정도로 분위기가 좋아 보였다.
혼자만 꽃밭을 뛰어다니는 것 같다고 할까? 일부 연구원들은 그녀가 너무 큰 충격을 받은 탓에 일부러 저러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은 허무하게 빗나갔다.
"사실 이번에...'파티'에 초대받았거든요. 가드님이랑 페어로."
"어머......!"
각 시설에서 치러진 사내 평가 시즌이 무사히 종료되고, 얼마전에 우수 직원이 발표되었다는 소식을 듣긴 했었다.
하지만 김세희는 얼떨결에 진급했지만 경험상으로는 여전히 신입 딱지를 떼지 못 했기에, 상류층 인간들이 모이는 '파티'에는 다른 인원이 차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설마 그녀가 가드-079와 함께 페어로 당첨되었을 줄이야. 신지혜는 여러 의미로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얘는 가드-079가 자기 오빠라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을 텐데.'
중요한 자리에 나가는 만큼 그에 걸맞는 드레스 코드를 갖춰야 한다. 쉽게 말해서 가드-079처럼 칙칙한 검은색 작업복을 걸치고 갈 수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상류층의 인간들이 모이는 자리인 만큼 신원 확인이 확실해야 하기 때문에 가면, 선글라스, 모자 등은 일체 착용할 수 없다.
몸이 안 좋아서 직접 참석하기 어려운 인원은 가상 현실의 아바타 형태로 참석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도 가드-079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즉 눈앞의 순진한 사회초년생 동생은 가장 기쁘고 감격스러운 날에 자신의 오빠와 참석하게 되는 것이다.
'알려줘야 하나?'
선의로 알려주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지만, 그래선 사단이 나도 단단히 날 것 같았다.
김세희가 입사한지 거의 2개월이 다 되어가는 지금, 가드-079는 자신의 여동생이 자신보다 낮은 직급이라는 사실을 알고서 그녀를 엄청나게 골려먹었다.
자기가 무슨 암살자도 아니고, 소리소문없이 B5에 침투해서 그녀의 커피에 소금을 타질 않나, 그녀의 식사 메뉴인 샐러드에 드레싱 대신 꿀을 부어놓질 않나, 심지어는 아침 운동 중에 만나서 그녀보다 우월한 피지컬을 자랑하며 대놓고 놀린 적도 있었다.
'분명 남매 사이가 안 좋았던 거겠지.'
신지혜는 말없이 커피를 들이키면서 김호국과 김세희 남매의 일상을 상상해보았다.
적어도 자신이 보기에 김세희는 굉장히 매력적이면서도 훌륭한 마인드를 지닌 신세대 여성이었기에, 반대로 숨길 것 없는 남매의 일상에선 어떤 모습일지 어느 정도 예상되었다.
아마 가드-079가 TF에 취직하기 전까지 김세희에게 꽤 무시를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가드-079는 그것을 보상받기 위해 지금의 지위를 이용해 그녀를 괴롭히는 것이고.
'역시 알려주면 안 되겠네.'
이런 남매의 공통점은 남들 앞에선 서로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지만, 남의 시선이 없는 곳에선 개와 고양이 못지 않은 수준으로 크게 싸운다.
즉 경비 팀장과 연구원 간의 한바탕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얘기.
그래도 역시 김세희가 모르고 당하는 건 너무 불쌍해서, 신지혜는 지나가는 어투로 그녀를 살짝 떠보려 했다.
"그럼 이번 파티엔 가드-079랑 같이 가게 될 텐데, 좋겠네?"
여기서 표정이 굳으면 김세희가 가드-079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이며,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라면 귀띔을 해줘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김세희는 신지혜도 에상치 못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꼬, 꼭 좋지만은 않은 것 같은데요? 그 사람 살짝 매너가 없잖아요! 저한테 맨날 막말하고!"
'그럼 왜 얼굴을 붉히는데?'
신지혜는 저도 모르게 커피를 내뿜을 뻔 했다.
사실 따지고보면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객관적으로, 정말 한 치의 사심도 없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가드-079라는 인물에 대해 분석해보자. 그는 일반적인 여성들에게 어떤 남성으로 비춰질까?
정답은 '꽤 괜찮은 남성'이다.
첫째로 운동신경이 뛰어난 탓에 체격이 좋다. 탄력적인 근육과 군살이 없는 몸매, 항상 답답해보이는 작업복을 걸치고 있어서 그렇지 한꺼풀 벗겨놓으면 어지간한 모델 뺨치는 몸을 자랑할 것이다.
둘째는 능력이다. 괴상한 능력이 아니라 순수하게 내세울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을 의미한다. 이번에 연봉 협상을 통해 그의 경비팀장 연봉에서 2천 4백이 추가되었다. 그는 이제 연봉이 약 1억 5천에 육박하는 능력있는 남성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셋째, 다소 엉뚱하고 멍청한 구석이 있지만 근본 자체는 나쁘지 않다. 즉 성격적으로 아주 상종 못할 인간은 아니라는 것이다. 화장실과 삼시세끼에 매우 집착하는 것만 빼면, 신지혜도 용납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위와 같은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놀랍게도 가드-079는 결혼 시장에 내놨을 경우 상위 5% 안에 거뜬히 들어가는 남성이 된다.
그게 친오빠라는 걸 모르는 순진한 사회초년생에게 팍 꽂힌 것은 필연적이었으리라.
어쩌다 그 날카로운 인상의 김세희가 가드-079를 상대로 얼굴을 붉히게 되었을까? 대체 어떤 계기로? 그것을 한참동안 생각하던 신지혜는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뭘 어떻게 생각해도 가드-079를 씹어먹을 놈으로 묘사했으면 묘사했지, 얼굴을 붉힐 만한 상대는 아니었으니까.
"너 혹시...그런 취향이니?"
"예, 예?!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언니!"
"아니, 취향 참 독특하다 싶어서."
"그런 거 아니예요! 그냥...일을 잘하니까 인정해주지 못할 건 없다는 거죠."
일 잘하는 남자가 좋으면 곰같은 타입의 머슴이 취향 아닌가? 신지혜가 인상을 찡그리는 걸 본 김세희는 오해를 풀어야겠다고 생각한 건지, 재빨리 부가 설명을 덧붙였다.
"진짜 엘리트인 언니 입장에서도 충분히 이해될 거예요. 저는 일 잘 하는데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일을 못 하면 괜히 신경질 나고, 꼴도 보기 싫고 그러잖아요?"
"그건 그래."
다만 사회 생활을 잘 하려면 그걸 티내지 않는 게 중요하다. 못난 놈이든 잘난 놈이든 결국 함께 일할 거라면 최소한 나쁜 사이는 되지 말아야 하니까.
"전 어릴 때부터 그런 일이 많았어요. 공부도, 운동도, 노력만 하면 뭐든 다 잘 했는데 주변 사람들은 제 방식에 따라오질 못 하더라고요."
"어머, 마음 고생 심했겠다~"
"그러니까요! 남자애들이야 털털하게 넘어가는 편이지만, 또래 여자애들 사이에선 진짜...하. 어쨌든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안 좋은 일 많이 겪었어요. 그러다보니 저도 신경이 예민해져서 주변 사람이 제 방식에 못 따라오면 금세 화를 내거나, 무시해버리는 일이 잦아졌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그렇게 까칠했던 거구나.'
만약 가드-079가 초장부터 그녀의 기를 꺾어놓지 않았다면 지금도 이두근을 비롯한 연구원들은 그녀의 기세에 눌려 지냈을지도 모른다.
능력적으로는 자신들이 더 대단할지라도,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여성이 부리는 히스테리 만큼이나 무서운 것도 없으니까. 신지혜도 한때 그런 적이 있었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가드님은 제가 뭘 어떻게 말해도 잘 알아듣고, 그대로 실행해주시더라고요. 시키면 시키는대로 잘 한다? 하나를 알려주면 하나만 알아듣지만, 절대로 실패하지는 않는다? 그런 느낌이예요."
"그건 동생이 제대로 봤네. 가드-079가 그런 타입이긴 해. 완벽주의자는 아닌 것 같은데, 하는 일은 하나같이 완벽하다고 할까? 우리도 처음엔 그 사람이 하는 일처리 보고 깜짝 놀랐거든~"
"그쵸? 그쵸? 가드님이 일 하나는 진짜 잘 한다니까요! 믿고 맡기면 뭐든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더 신뢰가 돼요."
너무 대놓고 좋아하니 신지혜는 그녀에게 가드-079는 사실 네 오빠야, 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랬다간 나도 목졸라 살해당할지도 몰라.'
지금껏 그런 중요한 사실을 숨기고 뻔뻔하게 모른 척 하고 있었냐며, 이 음흉한 노처녀 아줌마! 같은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신지혜는 그녀에게 진실을 알려주는 대신, 짧게나마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거짓을 골랐다.
"그럼 이번에 에스코트 제대로 받을 수 있게, 드레스에 어울리는 장신구나 같이 볼까?"
"언니가 직접 골라주시는 거예요? 저야 완전 좋죠!"
살려면 뭔들 못하겠는가.
신지혜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웃어보이며 스마트패드를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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