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피해피 고문재단-157화 (157/209)

< 경비 업무 일지 : 사내 평가 시즌(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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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아아아 씨발!"

-꺄아아아악!

김호국, 김세희 남매가 왜 사이 좋게 비명을 지르고 있는가. 그것은 멀쩡한 사람도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에 빠뜨릴 만한 무언가와 마주쳤기 때문이다.

"내 보트에 똥물 튄다!!"

-역겨우니까 카메라부터 잠시 꺼주시면 안 돼요?!

"지금 그딴 게 중요해요?! 내 보트에 똥물이 튀고 있는데!!"

차일드 킬러라는 이름의 고철 덩어리 거인을 무난하게 회피한 호국 일행은 수백 미터 가량 전진했을 즈음, 똥물 속에서 갑자기 튀어오르기 시작한 정체불명의 물고기 떼와 만났다.

아니, 그것은 물고기 떼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역겨웠으며, 무엇보다 더럽고 혐오스러웠다.

"대체 왜 콘돔이 펄떡펄떡 뛰어오르고 있냐고!!"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대량의 '사용이 끝난' 콘돔을 잘 묶어서 하수도에 버린 듯 했고, 지금은 그것들이 바다의 날치 떼처럼 열렬하게 수면 위로 뛰어오르고 있었다.

이곳은 살아있는 지옥이다. 그것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을 만큼 호국은 수 미터 위로 뛰어오른 콘돔 덩어리를 바라보았다.

"누, 눈도 깜짝 안 한다!!"

사실은 눈을 감고 현실 도피를 하고 싶었지만, 호국은 충격 진압봉을 꺼내들어 날아오르는 콘돔을 마구 후려쳤다.

오물이 잔뜩 묻은 탓에 비쥬얼적으로 눈 뜨고 보기도 힘든 물건이지만, 그 이전에 콘돔 안에 들어있는 정체불명의 액체가 호국의 분노 게이지를 태워 올렸다.

"막아! 이거 못 막으면 너희 둘다 똥통에 머리통 처박게 할 테니까!!"

신입은 어디서 꺼내온 건지 쓰레기를 수거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뜰채를 마구 휘둘러, 호국을 노리는 사악한(?) 콘돔 군단의 돌진을 저지했다.

농사왕은 농사왕대로 가축의 분뇨보다 더 더러운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곡괭이와 낫을 양 손에 쥔 이농기구류(二農器具流)를 선보였다.

낫이 한 번 허공을 베면 황금빛 물결처럼 출렁이는 가을의 벼를 베는 것처럼 콘돔이 찢겨나갔다. 뚝심있는 곡괭이의 일격은 콘돔의 필사적인 몸부림을 정면에서 깨부수며 다시 오물 속으로 처박아주었다.

"오오, 캡틴. 마이 캡틴......!"

평소에는 부려먹으면 오만상은 있는대로 쓰면서 띠꺼운 태도를 보이던 녀석이,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듬직했다.

-카메라좀 꺼달라니까요?!

"아 시끄러워! 성교육을 헌터물로 배운 것도 아닐텐데 콘돔 하나가지고 더럽게 쫑알대네!!"

-가드님도 애처럼 울어댔잖아요!

"누가 울었는데요? 증거 있어요? 없쥬? 추하쥬?"

-짜증나!!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겉으로는 눈물을 요만큼도 흘리지 않았지만, 그저 마음 속으로 어린아이마냥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을 뿐이다.

날치처럼 날아오른 더러운 콘돔이 자신의 몸에 닿는 순간, 단숨에 단검을 뽑아 콘돔이 닿은 부위를 도려내리라고 각오했을 만큼 끔찍했으니까.

기적적으로 호국의 몸에 콘돔 날치가 돌진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수백, 수천마리의 콘돔 날치떼가 휩쓸고 지나간 보트의 풍경은 좋게 쳐줘도 거지꼴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업무인 줄 알았다면 차라리 다리 부러뜨리고 쉴걸."

-제가 아는 사람이랑 똑같은 말을 하시네요. 그 사람도 군대 가기 싫으니 다리 부러뜨리면 안 되냐고 부모님한테 말했다가 뒤지게 맞았는데.

"......"

실제로 그랬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호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시 파릇파릇한 고졸 미필이었던 호국은 대한민국 남성들이라면 당연히 끌려가게 될 군대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으로만 접했었다.

인터넷에서 묘사된 군대는 지옥이나 다름없었고, 빠질 수만 있다면 십자인대 파열이든 뭐든 하라는 충고도 있을 정도였다. 호국은 그걸 부모님한테 말했다가 뒤지게 얻어맞고 얌전히 군에 입대했다.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그럴 수도 있죠."

-가드님은 군대 다녀오셨나봐요?

"곰도 때려잡는 수색대라고 들어는 보셨는지?"

호국의 몇 안 되는 인생 업적 중 하나를 자신있게 떠벌렸지만 돌아온 반응은 싸늘했다.

-콘돔은 못 잡았잖아요.

호국은 말없이 스마트패드의 스피커를 음소거로 설정했다.

'하여간 이 지지배는 도움이 안 돼요.'

하나뿐인 오빠가 똥물을 튀기며 날아오르는 콘돔 떼 속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으면 빈말로도 응원하지는 못할 망정, 보기 싫다고 카메라나 꺼달라니.

역시 김씨네 가족 자식 농사는 자신 하나만 대박을 쳤다며, 호국은 멋대로 정신 승리를 했다.

"일단...후우. 이걸 어떻게 할 수도 없으니까 이대로 움직이자."

하나못해 깨끗한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는 수도꼭지라도 준비되어 있다면 보트의 더러움을 씻어냈겠으나, 당장은 마실 물도 아까운 상황이라 호국은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했다.

"너희들이 생각해도 지금 우리 꼴이 말이 아닌 것 같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신입 1, 2호는 모두 방금 세탁을 마친 것 처럼 뽀송뽀송하고 깨끗한 상태를 자랑했다. 그 격전(?) 속에서 조금의 오점도 용납하지 않은 결과였다.

이것들도 꼴에 깔끔을 떠는지 호국만큼이나 역겨운 것들을 질색하는 눈치였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여기에 기어들어왔을까."

차라리 보물이나 찾아오라며 보물지도를 받았다면 그럭저럭 의욕이 생겼으련만.

농사왕이 전등을 비추는 곳마다 더럽지 않은 곳이 없었고, 금방이라도 녹이 슬어 무너져내릴 것 같은 하수관의 벽은 지치지도 않고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이런 곳에서 값진 것을 찾느니 차라리 호국의 옷장을 뒤져서 잡동사니를 찾아보는 게 더 효율적일 것 같았다.

탐색이라는 목적성을 띈 업무이지만, 동시에 무엇을 어떻게 탐색해야 하는지, 언제쯤 끝낼 수 있는 건지 확실치 않은 상황은 스트레스만 유발했다.

그러다 문득 호국은 다시 한 번 십자형 길목에 들어섰음을 눈치챘다.

혹시 이번에도 천장에서 난데없이 철창이 추락하는 게 아닌가 싶어, 조심스럽게 보트를 전방으로 몰았다. 같은 환경에서 좌우, 후방에서 철창이 떨어진다는 것을 학습했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행동했다.

하지만 안전하게 가려는 호국과 달리, 신입이 그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집요하게 오른쪽을 가리켰다.

기어이 철창이 떨어지는 걸 보고 싶은 건지, 호국은 한숨을 쉬면서도 보트의 방향을 살짝 바꿨다. 그러자 여지없이 철창이 콰앙! 콰앙! 하고 떨어졌다.

단, 이번에는 왼쪽과 후방, 그리고 전방의 길이 막혔다.

"......?"

호국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전방과 우측을 번갈아보았다.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완전히 똑같은 십자형 길목에서,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났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마주한 십자형 길목과 이번에 마주한 두번째 십자형 길목은 정말 완벽하게 똑같았던 것이다. 수도관 벽의 녹이 슨 흔적이나 오물이 튀었다가 말라붙은 흔적까지, 심지어 무언가에 긁힌 듯한 스크래치도 밀리미터 단위로 일치했다.

호국의 완벽한 눈썰미와 기억력이 처음으로 쓸모가 없어진 것이다.

조용히 스마트패드의 음량을 키운 호국은 똑똑한 김세희에게 해답을 구하기로 했다. 자신의 모자란 머리로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으니까.

한참동안 후면카메라로 주변을 살피던 김세희는 마침내 운을 뗐다.

-혹시 파블로프의 개에 대해 알고 계세요?

"혈통이 좋은 개인가요?"

-...그냥 쉽게 설명해드릴게요. 고전적 조건형성이라고도 불리는 행동심리학 이론의 일종인데, 조금 전에 우리가 마주했던 환경에서 철창이 내려와 좌우와 후방을 가로막는 일이 발생했잖아요? 그런데 다시 한 번 똑같은 장소에 도달했으니 가드님은 무의식적으로 '그런 일이 또 일어날 것이다' 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그런데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으니 크게 당황하신거고요.

해박한 지식을 이용한 복잡한 응용에는 약한 호국은 타고난 눈썰미와 경험을 통해 터득한 기억력에 의존하는데, 하필 이것이 독이 되었던 것이다.

"쉽게 말해서 날 가지고 놀았다?"

-ES 6-321이 사실은 평범한 하수관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물이나 다름없다면 그랬을 가능성이 높아요. 지금 경비팀 79기는 독 안에 든 쥐, 아니지. 뱃속에 든 먹잇감이나 다름없는 신세잖아요. 착각을 유발해서 혼란을 가중시키고, 그 사이사이에 함정이나 기습을 넣어서 힘을 빼려는 의도가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사냥중이라는 거네요."

-ES 6-321이 하수관 안으로 침입한 사람들을 모두 먹잇감으로 간주한다면,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높겠죠.

호국은 김세희의 그럴듯한 설명을 들으면서도 시야 한구석에서 스멀스멀 다가오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건 낡아빠진 오리 인형이었다.

분명 농사왕이 갈기갈기 찢어발겨서 두 번 다시 희생 불가능한 상태로 만든 뒤 오물 속에 내던진 것이었다. 호국의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야, 2호."

농사왕이 낫의 날을 갈다말고 불타는 눈동자로 호국을 돌아보았다.

"저거 내 앞으로 끌고와. 두 번 다시 헤엄치지 못 하게 아주 작살을 내서."

호국이 명령을 내리기가 무섭게 농사왕은 거침없이 오물의 바다로 다이빙했다. 오물이 짚단을 파고드는 감각이 기분 나쁠 텐데 녀석은 개의치 않고 오리 인형을 향해 헤엄쳤다.

그 기세가 죠스 못지 않았는지라 호국은 말없이 밀짚 모자를 벗어서 옆에 걸어두었다. 역시 밀짚모자의 주인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꿰에에에에!"

농사왕이 일정 반경 이내에 접근하자 오리 인형은 처음 그랬던 것처럼 개구리마냥 펄쩍 뛰어 올랐다.

이번에는 보트와 꽤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목표 대상은 농사왕이었지만, 녀석은 처음부터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곡괭이를 위에서부터 찍어내려 허공에서 블로킹을 시전했다.

곡괭이에 가로막힌 오리 인형은 제대로 점프하지도 못 하고 수면에 처박혀, 농사왕의 우악스러운 손길에 붙들렸다. 그리고 호국과 신입이 지켜보는 앞에서 0점짜리 시험지마냥 갈기갈기 찢어졌다.

다시 보트로 돌아온 농사왕은 호국의 발치에 원형조차 남아있지 않은 오리 인형의 잔해를 던졌다.

-그 기분 나쁜 오리의 몸 속에서 흘러나온 물이 하수도에 흐르는 물이랑 비슷한 것 같지 않아요?

"비슷한 게 아니라 똑같은 거예요."

발끝으로 오리 인형의 잔해를 툭툭 쳐서 헤집던 호국은 보트 아래에서 흐르는 오물과 오리 인형을 구성하고 있는 검은 물이 같은 성분임을 깨달았다.

겉보기엔 점성이나 농도, 색의 차이가 확연했지만 냄새는 완전히 똑같았던 것이다.

-일부 ES에게서도 흔히 나타나는 '재생 반응'이네요. 그 검은 물이 파괴되었던 것을 재생시키는 능력이 있을지도 몰라요. 샘플을 회수해주시겠어요?

호국이 공구함에서 샘플 용기를 꺼내 오리 인형의 피(?)를 조금 받아냈다.

"그럼 오리 인형 다음에는......"

-이미 한 번 결과가 바뀌었잖아요. 단순하게 넘겨짚지 마세요.

다음에는 차일드 킬러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생각하자마자 김세희의 주의를 받았다. 역시 똑똑한 사람은 달라도 뭐가 달랐다.

'여동생 IQ 115, 내 IQ 84, 그리고 뇌 없는 허수아비랑 생각을 하는 건지도 의심스러운 띨빵한 신입의 힘을 합치면......'

결과적으로 IQ 199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호국은 팀내 최고의 두뇌를 믿기로 했다.

"내가 어릴때부터 게임 같은 걸 많이 해서 이런 상황에 어울리는 클리셰를 몇 개 알고 있어요."

-하고 싶은 말이 뭐예요?

"클리셰대로 따르면 딱봐도 이건 퍼즐형 어드벤쳐인데, 보다시피 우리가 머리 쓰는 건 좀 약해요. 그러니 머리 쓰는 건 그쪽이 맡으시고, 몸 쓰는 건 우리가 할게요. 어때요?

-제 가치를 알아주신 것 같아서 다행이긴 한데, 괜찮으시겠어요? 저라고 해도 이 뒤죽박죽 반복형 미래를 공략하지 못 할 수도 있어요. 그럼 가드님을 포함해서 경비팀 79기는 그대로......

"큰 산이든 작은 산이든 올라봐야 알죠."

아버지가 해준 말이다.

호국은 권총을 뽑아들고 다음에 튀어나올 적을 대비했다.

< 경비 업무 일지 : 사내 평가 시즌(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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