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피해피 고문재단-155화 (155/209)

< 경비 업무 일지 : 사내 평가 시즌(2) >

-제 236XX 관측 보고서(인터뷰 포함)

-'버려진 것들' 에 대한 제 2 연구 시설 소속 칼 조니안 3급 6 연구팀장이 직접 조사, 관측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 ES 6-321(당시 임시 명칭은 ES X-321)은 2032년 1월 1일, 중국 베이징에 위치한 모 지하 하수도에서 관측되었다. 당시 중국 전역은 신년을 맞아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라 있었으며, 수많은 지역에서 신년맞이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 날은 상당량의 쓰레기가 버려졌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쓰레기는 온전히 쓰레기통에 들어가, 쓰레기 수거차량이 수거한 것보다 강이나 하수구, 변기통으로 버려진 것이 더 많았을 것이라는 비공식 집계 보고가 있었다.

문제는 이 날 버려진 쓰레기들이 너무 많았던 탓에 베이징의 특정 하수관이 막혀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몇몇 하청업체의 청소부들이 현장에 출동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었으나, 그들이 복귀했다는 기록은 남겨져 있지 않았다.

이후 몇 번이나 청소부를 파견하고, 끝내는 조사를 위해 공안을 비롯한 공무원들이 파견되었으나 이렇다 할만한 소득은 올리지 못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를 수상히 여기고 해당 지역의 C 게이지 상승 수치를 확인한 익명의 4급 조사관은 시급히 기동타격대의 지원을 요청하는 연락을 남기고 종적을 감췄다.

해당 지역은 중국 정부의 도움을 받아 정보를 철저하게 차단했으며, 2개 소대 규모의 기동타격대가 양방향에서 이상현상이 관측되고 있는 중심으로 향했다.

약 10분 뒤 무전을 통해 격렬한 총성과 함께 끔찍한 비명 소리가 울려퍼졌다. 흡사 영화 속 괴수가 울부짖는 듯한 소리도 들려왔다. 당시 상황을 관측하고 있던 동료 오퍼레이터들은 무언가가 인간을 뼈째 씹어먹고 있다며 겁에 질려 관측반에서 뛰쳐나갔다.

결국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낳고서야 상층부에선 '문제가 발생한 하수관'을 통째로 지반과 함께 들어올려서 은폐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수 백대의 공업용 안드로이드와 중장비, 수송용 헬기가 투입되었다.

내부를 조사하기 위해 숱한 연구원들이 달려들었으나 하수관 내부는 그저 대량의 오물과 쓰레기가 쌓여 있다는 사실만을 알아냈다. 무엇이 존재하는지, 무엇이 침입자를 공격하는지 끝내 밝혀낼 수 없었다.

우리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수관 내부를 조사하려 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드론, 안드로이드, 동물, 인간. 그 어떤 것의 침입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정확히 문제가 발생했던 하수관만은 파괴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따라서 최종적으로 제 6 처리 시설에 은폐하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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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있는데?"

-맞아요. 조금 전 설명했다시피 ES 6-321은 거대한 하수관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걸어서 이동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어요. 게다가 하수관 내부에는 CCTV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쪽에선 가드님의 스마트패드 카메라를 이용해서 내부를 확인할 수 밖에 없어요.

그 말대로 엘리베이터 입구 근처에는 CCTV가 존재했지만, 은행 금고의 입구처럼 튼튼한 금속문으로 봉인되어 있던 안쪽 구역은 CCTV가 존재하지 않았다.

호국은 보기 편하라고 자신의 가슴팍에 스마트패드를 부착했다. 비록 정면밖에 보지 못 하겠지만, 김세희의 말로는 내부를 정확히 관측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시야만 확보되면 상관없다고 했다.

호국은 모니터룸 쪽에서 잠금을 해제해 준 금속문 너머의 광경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전등 하나 달려있지 않은 어두컴컴한 동굴이 아가리를 벌린 채 일행을 맞이해주었다.

"냄새가 독하네."

-하수도니까요. 게다가 외부에서 관측한 전체 규모와 내부의 실제 규모가 다를 거라는 보고도 있었어요. 내부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으니 조심하도록 하세요.

"전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길을 잃어본 적이 없어요."

호국이 길을 잃는다는 것은 인간이 공기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 만큼이나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김세희의 충고를 가볍게 일축시킨 호국은 미리 엘리베이터 입구 앞에 마련된 선착장으로 향했다.

선착장이라고 해봐야 그렇게 규모가 큰 것도 아니었지만, 거대한 동굴 같은 하수도로 이어져 있기 때문인지 일단 갖출 건 다 갖춘 상태였다.

"캬...감시용 보트를 여기서 보네."

다들 호국을 산 속에만 처박혀 있던 수색대라고 생각했겠지만, 호국은 행보관을 따라 동해안에 가서 군용 보트나 고속정을 몰아본 경험도 있었다.

해안경비대나 특수부대도 아니지만 침투 작전과 차단 작전은 몸에 익혀두는 게 좋다며 반 강제로 배웠던 것이다. 덕분에 사람 손을 탄 흔적이 없어보이는 고속 보트도 호국에겐 낯설지 않았다.

-운전을 할 수 없다면 자동 항행으로 맞춰두세요. 아마추어가 보트를 잘못 운전하면 전복 사고나 선체 파손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

"자동 항행은 쫄보들이나 하는 거고요~."

운전대 안쪽 적재함에서 키를 찾아낸 호국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시동을 건 뒤 기기를 점검했다.

이 고속 보트는 그럭저럭 최신형 모델이라 그런지 연료와 배터리를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복합형 엔진을 갖췄다. 우선 연료를 사용하다가, 연료가 바닥나면 충전된 배터리로 동력을 즉시 전환하는 방식이었다.

굳이 두 가지 기능을 보트 따위에 끼워넣을 필요가 있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건 방산비리를 기획하신 분들이나 알만한 것이라 호국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엔진 소리 좋고!"

-진짜 닮았네......

작게 투덜거리는 김세희의 말을 무시한 채, 호국은 후방 기관총 거치대에 신입을, 보트 전방에는 농사왕을 배치했다.

성인 남성 체격을 지닌 셋이 올라타고도 보트는 비교적 널널했는데, 배로 치면 갑판에 해당하는 적재함을 열어보면 다양한 도구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고속 보트 치고 제법 묵직했던 느낌이 들었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으리라.

"플라스틱 폭탄에 신관, 발파기, 기관총 탄약과 보트 예비 부품, 이게 무슨 고속정인줄 아나."

정작 위기 상황시 사용할 수 있는 구명 조끼나 튜브가 없다는 사실에 투덜거리면서도 호국은 부드럽게 보트를 몰았다.

오랜만에 몰아보는 보트라 살짝 어색한 감이 있었지만 정확한 기억을 이용해 빠르게 적응했다.

곧 보트는 코를 찌르는 오물로 들어찬 하수도에 진입했다. 슬쩍 손전등을 비춰보면 온갖 오물들이 뒤섞여서 부유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냄새만 맡아도 끔찍한데, 몸에 닿기라도 했다간 온갖 괴상한 피부질환을 유발할 것 같아 역겨움이 절로 올라왔다.

다행인 점은 호국에게 개미부대 전용 마스크가 있었다는 것이고, 이 마스크의 기능이 워낙 탁월해서 악취 같은 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호국은 조심스럽게 보트를 몰면서, 조금 전 입구에서 간략하게 전해들었던 업무 내용을 다시 한 번 상기했다.

-업무 내용은 간단해요. 가드님을 포함한 경비팀 인원이 6-321에 진입해서 내부를 조사해주세요. 오퍼레이터인 저도 함께 내부를 확인하게 되겠지만, 통신 상태가 양호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최우선적으로 내부 탐색에 힘써주시라는 의미예요.

청소를 하라거나, 시설 유지 보수를 하라는 내용이었다면 호국도 납득했겠지만, 내부 탐색만 하고 오라는 사실에는 조금 찝찝함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내부 탐색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업무 시간도 따로 정해주지 않았어. 즉 나는 이 똥통에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갇혀지낼 수도 있다는 거지.'

호국은 현역 시절, 공익근무요원계의 특수부대라고 할 수 있는 하수처리장 근무자들의 삶에 대해 짧게나마 들은 적이 있었다.

'하루종일 몸에서 썩은 내가 안 빠져서 고생한다지.'

그 맛있는 치킨, 피자도 그들 앞에선 똑같은 똥쓰레기처럼 보인다고 하니, 온갖 오물과 쓰레기로 넘치는 곳에서 근무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음?"

고속 보트이지만 안전을 위해 비교적 저속으로 항행하고 있던 호국은 저 앞에서 다가오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야, 2호. 저 앞으로 전등 불빛 좀 비춰봐."

'눈'으로 직접 보고도, 자신이 정말 제대로 본 건지 의심이 든 호국이 농사왕에게 명령을 내렸다.

녀석은 마지못해 보트 앞에 탑재된 야간등 탁탁 두들겨서 불빛을 비췄다. 그러자 저 앞에서 어둠을 헤치고 꾸물꾸물 다가오던 것의 정체가 밝혀졌다.

"...오리 인형?"

-오리 인형이네요. 그것도 상당히 낡았어요.

기껏해야 농구공 크기 정도일까. 하필 만난 장소가 이런 곳이 아니었다면 좀 더 귀여웠을 오리 인형은 유유히 오물 위를 헤엄치고 있었다.

상당히 낡아서 노란색 페인트칠은 죄다 벗겨졌고,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부리는 삭아서 검게 물들어 있었지만, 기름이 유출된 바다에 빠진 것 같은 오리처럼 보이긴 했다.

"대체 하수도에 저런 쓰레기를 버린 게 누구야? 개념이 없어, 개념이. 꼭 자기 차례에 샤워하고 배수구에 머리카락 가득 집어넣어둔 애 같다니까."

-머리카락이 길면 그럴 수도 있죠.

"그쪽한테 말한 거 아닌데요. HOXY......?"

호국이 능글맞은 어조로 김세희를 놀리고 있던 그때였다. 저속으로 움직이는 보트가 낡은 오리 인형을 가볍게 치며 지나가려는 순간, 오리 인형이 펄쩍 뛰어올랐다.

"내 보트에 똥물 묻히지 마라."

콰득!

호국이 던진 한 마디에 즉시 팔을 내뻗은 농사왕이 오리 인형을 한 손으로 움켜쥐고 터뜨렸다. 안은 텅 빈 채로 바람만 가득 들어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검은 진물이 피처럼 주르륵 쏟아져 나왔다.

"지지다, 지지. 버려."

호국이 손을 휘휘 젓자 농사왕이 화풀이라도 하듯 반쯤 뜯겨나간 오리 인형을 저 멀리 던져버렸다.

풍덩, 하고 고요한 하수도 속에서 울려퍼진 물소리에 분위기마저 확 바뀐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작 오리 인형에게 습격당할 뻔 했던 당사자인 호국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전방만을 주시했다. 보트를 모는 손길에 떨림은 없었고, 비명을 지르거나 말을 더듬지도 않았다.

호국의 시야에 들어온 이상 '갑자기' 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야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움직임이 정확히 보이기 때문에 당황하는 시간은 극도로 짧고, 분석하고 대응하는 시간이 극도로 길어지기 때문이다.

정작 호국의 가슴팍에 달린 스마트패드 카메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김세희는 심장마비가 올 뻔 했지만.

-미친...흠흠! 가드님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방금 그게......!

"여기서 오래 근무하다보면 저런 건 익숙해져요."

-얼마나 근무하셨는데요?

"거의 두달 다 됐죠."

근무한지 두달도 안 된 인간이 경비팀장이라는 사실도 믿기 힘들었지만, 그 이전에 김세희는 호국의 덤덤한 말투에서 이유모를 불쾌함을 느꼈다.

정말 자신과 같은 인간이기는 한건지, 혹시 세간에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과 아주 흡사한 형태의 안드로이드를 만들어내는 것에 성공한 게 아닌지, 그런 의심마저 들었을 정도였다.

김세희가 자신을 어떻게 보건 말건, 호국은 적막감이 마음에 들지 않아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노래는 더럽게 못 부르면서 콧노래나 휘파람은 기가막히게 잘 부르는 호국이었다.

나중에는 김세희도 흥을 타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저 혼자 부끄러움을 느끼고 얼굴을 홍조를 띄웠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돌아다녀도 조사를 할 만한 건덕지가 없는데, 그쪽은 좋은 생각 없어요?"

-저도 전해들은 건 그냥 조사만 하라는 내용 뿐이어서 자세한 건 몰라요.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조금 전의 그 오리 괴물은 틀림없이 조사 대상이었어요.

"더러운 거 말고 특별할 건 없는 놈이었는데요 뭘."

-인형이 살아 움직였잖아요!

"전 파래무침이 살아 움직이는 것도 봤어요."

호국 입장에선 고작 오리 인형 따위가 살아 움직이는 것보다, 수백 마리의 파래무침이 살아 움직이는 게 더 큰 공포였다.

-...아무튼 나중에 보고서는 확실히 써주셔야 해요. 제가 전담 오퍼레이터가 된 이상 대충대충 넘길 생각은 꿈도 꾸지 말아요.

'응 프롯이 대신 써줄 거야~'

여동생이 아무리 똑똑하다고 한들 초지능 AI에게 비견될 수준은 아닐 터. 호국은 속으로 낄낄대면서 보트의 움직임을 조작했다.

때마침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뉜 하수관의 접합부에 도달한 것이다.

T자형도 아니고 무려 십자가형이 길목이라 신중하게 방향을 결정해야 했다.

'이런 건 재수없으면 힘들게 갔다가 막힌 길에서 되돌아와야 할 수도 있어.'

결국 한참을 고민하던 호국은 후방의 기관총을 잡고 있는 신입에게 바통을 넘겨주었다.

"너도 2호 선임이 됐으니까 이제 일좀 해야지. 어디로 가면 좋을지 네가 정해봐. 대신 막힌 길이면 나중에 얼차려 받는다."

신입은 '선임'이라는 단어에 혹했는지, 아주 당당하게 오른쪽을 가리켰다.

"그래, 그럼 오른......"

콰앙!

-꺄악!

호국이 보트를 오른쪽으로 돌리려던 순간, 하수관 천장에서 하수관 사이를 막는 철창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추락했다.

만약 조금만 더 빠르게 움직였다면 철창에 찍혀 보트가 반토막 났을 것이 분명했다.

"너 이 새끼......"

콰앙! 콰앙!!

호국이 신입을 갈구기도 전에 일행이 왔던 뒤쪽, 그리고 왼쪽의 길목까지 차례대로 철창이 떨어져 내렸다.

돌아갈 수도, 옆으로 빠질 수도 없게 된 일행에게 남은 선택지는 오로지 전진 뿐이었다.

< 경비 업무 일지 : 사내 평가 시즌(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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