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비 업무 일지 : 냄새(3) >
"아니, 그건 좀......"
호국은 어지간해선 남들에게 잘 보이지 않는 혐오 가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누구 좋으라고 치즈 냄새 날 것 같은 서양인 아재를 노예로 부려먹는단 말인가. 호국은 튼튼하고 말 잘 듣는 굳건이를 좋아했지만, '아저씨'는 좋아하지 않았다.
군대에서 아저씨를 워낙 많이 봤기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아! 왜! 나정도면 어디 가서 꿇릴 인재가 아니라고! 나로 말할 것 같으면 300번대 넘버링을 자랑하는 전 콘스탄틴으로서! 룬 마술의 달인! 수백년 간 축적된 지식의 보고! 시장에 혜성처럼 등장한 경험 많은 신입이라고!!"
333번은 호국이 나눠준 도시락을 허겁지겁 입에 쑤셔넣으면서 열렬한 자기 PR을 했다.
"개인적으로 일손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아저씨는 외부인이잖아요. 제가 하는 일은 외부인이랑은 엮이면 안 되는 일이거든요."
"그러고보니 지난 번에 경비인지 뭔지라고 말했었지. 혹시 보안 회사 직원이냐? 그정도라면 그냥 지인 추천으로 어떻게 안 될까? 힘 쓰는 일은 자신 있거든."
"저도 지금 내부에서 찍힌 상태라 손 쓰기 힘들어요."
누가 감히 호국을 찍을 수 있겠느냐마는, 호국은 그런 쪽으로 눈치가 빨랐다.
자신이 농사왕과 플라스틱 장난감들을 임시 직원으로 받아들인 탓에, 그걸 어떻게든 처리해주려던 이두근의 주름살이 더 깊어졌던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껏 호국이 성실하게 일을 했기에 망정이지, 폐급 중에서도 에이스급인 개폐급이었다면 어림도 없었을 특례였다.
하지만 333번은 어떻게든 호국과의 연결고리를 끊고 싶지 않았는지, 프롯이 싼 사각김밥을 우걱우걱 씹어대며 끈덕지게 매달렸다.
"다른 게 아니라 너한테서 나는 냄새가 독특해서 그래! 내가 진짜 어지간하면 민간인한테 이렇게까지 신경써주지 않는데, 너한테선 특이한 냄새가 난다고! 전 콘스탄틴인 내가 그걸 어떻게 보고 지나칠 수 있겠어?!"
냄새라는 말에 호국은 즉시 자신의 팔을 들어 냄새를 맡아보았다. 뙤약볕을 쬔 덕분에 살짝 땀냄새가 나고 있었다.
"땀냄새밖에 안 나는데요."
"그거 말고! 너한테서 나는 냄새는 아니지만, 네 주위에 있을 때만 맡게 되는 그런 특유의 냄새가 있어.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그래, 쉽게 말하자면 넌 태즈메이니아데블이야."
"...예?"
기억력이 좋은 호국은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봤었던 한 동물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해냈다.
태즈메이니아데블. 설마 타인에게서 자신이 그런 매니악한 동물 같다는 말을 들을 줄 몰랐던 호국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구체적으로는 초등학교 시절 옆자리 짝꿍이 대뜸 울음을 터뜨렸던 것과 비슷한 수준의 대미지였다.
"그래. 태즈메이니아데블은 평상시에는 냄새가 잘 나지 않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주 고약한 냄새를 흩뿌리지. 스컹크보다 한 수 위로 평가될 만큼 악취가 심하기로 유명하기도 하고."
"이제 제가 화낼 차례인가요?"
"화내라고 하는 소리 아니니까 끝까지 들어. 내가 네 옆에서 맡았던 냄새의 패턴이 딱 그랬어. 뭔가가 널 자극하거나, 네가 자극을 받았다고 느낀 순간 냄새가 확 뿜어져 나온다고. 바로 조금 전처럼."
그 말에 호국은 의아한 표정으로 333번을 바라보았다.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호국은 딱히 특별한 자극을 받지는 않았다.
그냥 더럽게 덥고, 치즈 냄새가 날 것 같은 아저씨가 자신에게 치근덕대고 있다는 것만 빼면 평범한 피크닉이었으니까.
"조금 전에 내가 손을 쓰자마자 냄새가 사라진 걸 보면 역시 내 추측이 맞아."
"아, 조금 전에 뭘 던지신 게......?"
"그걸 봤어?"
"봤죠."
총알 만큼 빠른 건 아니었지만, 호국은 333번이 트렌치코트 속에서 꺼내든 비수를 옆으로 휙 던지는 걸 포착했다.
자신을 기습하려는 적의나 악의가 느껴지지 않았기에 가만히 내버려두었지만, 그 비수는 처음부터 호국이 아닌 다른 상대를 노리고 있었다. 물론 그게 누구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알고 있었으면 네가 잡지 그랬어. 널 지켜보고 있던데."
"무기가 없어서요."
원칙상 장비는 모두 반납하고 휴가를 나와야 했기 때문에 호국은 자신의 몸을 지킬 수단이 없었다.
필요하다면 위스키 병을 깨서 날카로운 조각을 칼처럼 이용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호국은 그렇게까지 하진 않았다. 그저 자신을 감시하고 있는 상대라면 꼭 죽여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실력은 있는 것 같은데 이상한 고집이 있네. 저런 귀찮은 것들은 깔끔하게 처리해둬야 밤에 편하게 잘 수 있는 거야. 첩보전이란 건 그런 거라고."
"지금 첩보전 중이었어요?"
깜짝 놀란 호국이 눈을 휘둥그레 뜨자 333번은 마른 세수를 했다.
분명 눈 앞의 청년은 괜찮은 실력을 가지고 있고, 그걸 타인에게 들키지 않을 만큼 잘 갈무리하고 있었다. 그런 주제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방금 내가 손을 쓰지 않았다면 네 일거수일투족이 얼굴도 모르는 변태새끼한테 보고됐을 거다. 그럼 넌 기분도 나쁜데, 네 개인적인 정보의 보안까지 잃게 되는 거지. 당장 머리통에 바람구멍이 뚫려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고."
333번이 열변을 토하듯 설명하자 호국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격수는 없길래 괜찮은 줄 알았죠."
"저격수가 없으면 괜찮긴 하...아니.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333번은 벙찐 얼굴로 되물었다.
호국은 뭘 새삼스러운 걸 묻느냐는 듯, 싱싱한 깻잎이 들어간 참치김밥을 입에 넣으며 대답했다.
"이런 도심에서 저격 포인트는 한정적이니까요. 저격이 실패할 수 밖에 없는 포인트와 성공할 수 밖에 없는 포인트는 자로 잰 것처럼 나뉘어져 있는데, 도심 속에서 대담하게 저격을 할 수 있을 만큼 실력이 뛰어난 저격수는 포인트 선택에 실수를 하지 않아요. 그리고 그 포인트만 미리 확인해두면 저격수가 저를 노리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있잖아요."
무슨 개소리야, 하고 대답하려던 333번은 다시 특유의 냄새가 코끝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을 눈치챘다.
자세히 보면 333번과 대화를 하면서도 호국의 '눈'은 쉴새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 한가하게 텐트 안쪽에 앉아있는 자신을 정확하게 노릴 수 있는 저격 포인트를 '하나하나' 훑어보고 있는 것이었다.
'미쳤군.'
그는 눈 앞의 청년에 대한 평가를 대폭 수정했다.
대체 뭘 배우고 자랐길래 한가하게 한강변에서 술과 도시락을 까먹으면서도 '저격'을 경계하는 건지. 숱한 위기에 시달려왔던 그조차 깜짝 놀랄만한 방어기제였다.
'더 소름끼치는 건 혹시 모를 저격이나 기습을 주의하면서도, 결코 피하거나 숨지 않는다는 점이야.'
텐트 안 쪽에 앉아있는 호국은 얼핏 보면 적의 기습에 완전히 노출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우선 텐트 뒤나 옆에선 호국이 어디에, 어떤 자세로 앉아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남은 건 정면에서의 저격이나 기습 뿐인데, 그건 매의 눈보다도 무시무시한 '눈'으로 확실하게 감시하고 있었다.
즉 있을지도 모르는 정체불명의 적에게 일말의 공포를 느끼지도 않는다는 얘기였다. 오히려 피하거나 숨을 가치도 못 느낀다는 양 대놓고 피크닉을 즐기고 있으니, 강심장을 넘어서서 심장이 아예 없는 수준이었다.
룬 마술의 천재이자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머리에 처박은 자신이라면 가능할까?
'불가능하지. 왜냐하면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기엔 부적절한 행동이니까.'
휴식을 취하려면 안전이 확보된 상황에서 취해야 한다. 심적 불안감은 곧 스트레스로 이어지고, 사고와 행동을 둔하게 만드니까.
그걸 이 청년은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고 있는 것이다. 333번은 청년이 자신의 부탁을 완곡하게 거절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만한 실력이니 나같은 놈은 짐덩이처럼 느껴진다는거겠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인생 선배라는 걸 제외하면 자신이 청년보다 더 나은 점을 찾기가 힘든 수준이다. 노예로 받아주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정작 당사자는 사내 동료들의 눈치가 보여서 그런 것이었음에도.
"후우,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내 조직도, 동료도, 내 비밀 계좌도 싹 증발해버렸는데."
"갈 곳도 없어요?"
"그래. 완전 떨거지 신세라고."
"그럼 취직을 하세요. 저도 IQ 84였지만 지금은 이렇게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 있잖아요."
"어디냐? 나도 좀 취직해보자."
"TF요."
취직 정보를 알려주는 것 정도는 문제 없으리라 판단한 호국이 스마트패드로 기업 정보를 찾아 알려주었다.
취업사이트에서 큼지막한 TF 로고를 누르면 연결된 URL을 타고 TF 취직 안내 사이트로 접속할 수 있었다. 총 3개의 전형이 존재했는데, 일반 연구직, 특수 경력직, 일반 경비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호국은 추천을 받아 취직한 사례였지만, 일반인이 TF에 취직하기 위해선 1차적으로 자신에게 맞는 전형을 골라 프로필을 제출한 뒤, 서류 심사에서 통과하면 면접을 보는 형태였다.
면접 심사까지 통과하면 훈련과 교육이 남아있어, TF는 그 명성답게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도 극히 일부만을 채용할 정도였다.
하지만 능력 있는 자들에겐 이보다 더 좋은 기업도 없으리라.
'신입 직원에게 첫 월급으로 천 만원을 주는 직장은 세계에서 여기밖에 없을테니까.'
비록 특례로 낙하산을 꽂아주진 못 할지언정, 자신이 몸 담고 있는 기업을 소개할 차례가 되자 호국은 매우 즐거운 얼굴로 TF의 장점만을 설명해주었다.
특히 복리후생이 빠방하고 돈을 많이 준다는 사실에는 333번도 귀가 팔랑거릴 정도였다.
"어때요? 괜찮죠?"
"그래, 듣고보니 엄청 괜찮은 것 같은데. 내가 몸 담고 있던 조직은 순수한 실적제라서 실적을 못 쌓으면 지원금은 한 푼도 주지 않았거든. 내가 자릴 비운 25년 사이에 이렇게 훌륭한 기업이 생겼을 줄이야......!"
호국은 TF의 위대함을 설파했다는 사실에 큰 만족감을 느꼈다. 인간이란 동물은 결국 특정 단체에 소속되어 있으면 소속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소속감 하나로 그 사람의 작업 능률을 향상시키고, 소속된 단체에 대한 자부심으로 멘탈 관리가 된다면 관리자 입장에선 별도의 관리비를 안 들이고도 원활환 관리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호국은 이미 TF의 광팬이었다.
"그래서 여기에 취직하려면 정확히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아."
겉모습이 30대인 수백살 먹은 늙은이를 가르치는 것도 호국에게도 꽤 어려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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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예요. 오늘은 그만두는 게 좋겠어요."
속살이 다 비칠만큼 하늘하늘한 천을 옷처럼 둘러입은 여성이 그렇게 말하자 옆의 사내가 인상을 썼다.
"지금 저렇게 멍청하게 빈틈을 보여주고 있는데 내버려두란 건가?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이런 기회가 생길 줄 알고?"
"저는 느낄 수 있어요. 제 '촉각'이 알려주었어요. '눈'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고."
"1.5km나 떨어져 있다. 내 '피부'의 위장을 눈치채지 못했을 터."
"'귀'가 주변의 소리를 모으고 있어요. 공기중의 떨림이 느껴져요."
"...쯧!"
사내는 할 수 없다는 듯이 고층 빌딩 옥상의 난간에 거치해두었던 저격총의 총구를 거둬들였다.
분명 아무것도 없는 장소에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사내는 옆의 여성과 달리 옷 한 벌 걸치지 않는 전라의 모습이었다.
햇빛에 잘 그슬린 구랏빛 피부와 기름을 바르면 번들거릴 것 같은 탄탄한 근육이 인상적인 거구의 사내였다. 머리를 짧게 자른 탓에 러시아의 스킨 헤드를 연상하기도 했지만, 그런 길거리 양아치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날카로운 눈매를 자랑했다.
"TF의 위세가 약해지면서 본격적으로 움직일 때라고 생각했건만, 또 이렇게 허탕을 치는군."
"당신의 '피부'와 저의 '촉각'은 한쌍과도 같은 것이랍니다. 조급해질수록 좋지 않아요."
"쯧, 이럴 줄 알았으면 가장 먼저 '뇌'를 처리할 걸 그랬어."
유품 중에서 포텐셜은 가장 높지만, 동시에 가장 약한 존재. 활동 시기가 맞지 않아 나중으로 기회를 미뤄뒀건만, 설마 이런 식으로 복병과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 멍청한 늙은이가 '다리'만 내주지 않았어도......"
아쉬움 섞인 한탄을 내뱉은 사내는 특수 케이스를 열어 정장을 꺼내 입었다.
일본 오키나와에 위치한 제 4 연구 시설에서 '영역화 선포'에 성공한 '입'이 둘에게 비밀리에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서로 좋은 게 좋은 거라며 합심해서 거슬리는 복병을 처리하려 했건만, 결국 이런 식으로 별 다른 소득 없이 돌아가게 생겼다.
신경질이 나는 게 당연했다.
< 경비 업무 일지 : 냄새(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