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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해피 고문재단-149화 (149/209)

< 경비 업무 일지 : 행보관(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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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으으윽. 확실히 안에서 먹는 술이랑 바깥에서 먹는 술이랑 다르구만. 안 그러냐?"

"전 일할 때 술 안 마시는데요."

"미친 놈. 넌 대체 하는 게 뭐냐? 다 큰 놈이 술도 잘 안 마셔, 담배도 안 태워, 그렇다고 유흥을 즐기는 것도 아니야. 무슨 낙으로 사는 거냐?"

두 사람은 2차로 간 꼼장어 집에서 또 신나게 붓고 마신 뒤, 알딸딸하게 취한 상태로 밤거리를 나섰다.

낮에는 지옥처럼 더운 계절이지만, 한밤중에는 약간이나마 서늘한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술 기운에 몸을 맡긴 두 사람은 킬킬대며 웃는 것 만으로도 흥에 겨웠다.

"오랜만에 마시는거니...남자라면 3차는 가야지. 한국인은 삼세번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괜찮으시겠어요, 어르신? 저는 젊은데 어르신은 이제 그럴 연세가 아니시잖아요. 아니면 막판 스퍼트를 내시는 건가?"

"흐흐, 내가 딱 20년만 젊었으면 너 같은 건 한 주먹에 머리통을 깨버리는 건데."

20년이란 세월을 허비한 것이 정말로 아쉬운 듯, 조원석은 입맛을 다시며 조금 앞서 걸었다. 자신이 아는 가게로 3차를 가려는 듯, 밤거리를 비척비척 걸어가면서도 행동에 주저함은 없었다.

두 걸음 정도 앞서 걷던 조원석은 뜬금없이 호국에게 말을 던졌다.

"야, 넌 궁금하지 않냐?"

"뭐가요?"

"그냥 모든 게! 자신은 누군지, 인생은 왜 이모양인지, 앞으로 자신은 어떻게 되는 건지. 난 젊을 때 부터 그게 몹시도 궁금했다."

"미리 알면 재미없잖아요."

"그렇지. 미리 알면 재미없지. 왜냐하면 안 좋은 일은 피해버릴 수 있고, 좋은 일은 독점할 수 있으니까. 그래도 난 궁금했었다! 시작이 그 모양 그 꼴이었는데, 과연 끝은 어떨지. 그게 너무나도 궁금해서 밤잠도 못 이루전 시절이 있었어."

어지간한 취객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과한 오버액션을 보이며 조원석이 고래고래 떠들었다.

다행히 두 사람은 번화가에서 벗어난지라 주변의 시선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술에 취하면 남자들은 으레 흥에 겨워서 큰소리를 지르거나 펄쩍 뛰어다니고 싶은 법이다.

"그런데 내가 그 사실을 알아내려고 백방을 돌아다녀봤는데, 좀처럼 답이 나오질 않더라고! 이 조원석이, 자기 미래가 궁금해서 미쳐 돌아가시겠다는데! 가르쳐 주는 놈들이 하나도 없어!!"

"그런 건 복채라고 하던가? 돈 많이 들잖아요. 돈 떼먹힐 거 아니까 알려주지 않았던 게 아닐까요?"

"그래서 예약제도 신청해봤는데 망할 놈들이 내 예약은 절대로 안 받아주더라고. 사람 차별하는 것도 아니고!"

길거리를 굴러다니는 빈 깡통을 힘껏 발로 찬 그는 열불이 나는지 등산복 상의를 거칠게 벗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세상은 나를 버려도 가족은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족이 있으셨어요?"

뒷돌려차기가 날아들었지만 호국은 술에 취한 상태임에도 능숙하게 고개를 젖혀 피해냈다. 코 끝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는 군화의 밑창이 시야에 훤히 들어올 정도로 깔끔한 일격이었다.

제대로 맞았다면 그대로 턱뼈가 아작나고 목뼈가 꺾였겠지만, 두 사람 모두 개의치 않았다.

조원석은 기습을 날리면서도 맞을 거라는 기대는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고, 호국은 감정표현이 서투른 노인네가 다소 과격한 방식으로 장난을 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쨌든, 세상에서 버림 받은 나는 가족을 찾았다. 그리고 가족 중 한 명에게서 답을 찾아낼 수 있었지."

"가족 중에 점쟁이가 있으셨나봐요?"

"비슷해. 그래서 지금 그리로 가고 있다."

"3차로 점집을 간다고요? 그건 좀 신박한데......"

"거긴 공짜 술도 준다."

"당장 가죠."

도박은 싫어하지만 공짜는 누구보다도 좋아하는 호국은 별 다른 의심없이 조원석의 뒤를 따라나섰다. 그가 이끄는 장소는 화려한 번화가로부터 한없이 멀리 떨어진, 택시를 부르면 오기나 할지 의심스러운 장소였다.

몇 개의 낡은 건물과 주택가를 지나쳐, 거미줄처럼 얽힌 어두운 골목길을 가로지른 두 사람의 앞에는 네온사인이 빛나는 바가 나타났다.

"이런 곳에서 장사가 될까요?"

"누님은 그런 거 신경 안 쓰신다. 일단 들어가자."

창문도 달려있지 않은 금속문을 밀고 들어가자 조원석의 어깨 너머로 은은한 불빛이 새어나왔다.

번화가에서 볼 수 있는 고급스러운 멋이 있는 바와는 달리, 이곳은 괴짜, 외톨이들을 위해 만든 음침하고 조용한 느낌의 바였다.

원래 바라는 것이 조용하면서도 처음 만나는 사람과 교류도 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어색하지 않은 화려함을 즐길 수 있는 장소다보니 '고급' 이라는 이미지가 깔려 있다.

그에 비해 이곳은 고급이라고 하기엔 미묘한 점이 많았다. 우선 네온사인의 센스부터 꽝이었으며, 내부 인테리어도 차분하고 깔끔하다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조원석의 뒤를 따라 가게로 들어온 호국은 자신의 오른쪽 눈을 노리고 날아든 다트를 손가락 두개로 캐치했다.

다트는 장난감이라 그리 위험하지 않았기에 호국은 크게 신경쓰지 않고 날아들었던 장소에 되던져주었다.

팍! 하고 다트판의 중앙에 꽂힌 다트는 던진 사람의 어깨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휘유."

다트가 스쳐 지나간 어깨를 먼지 털듯이 손으로 털어낸 남자가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이 푹푹 찌는 여름에도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그는 실내에서도 선글라스와 인터컴을 착용하고 있었다. 영락없는 사설 경비 업체의 경호원이었다.

그 모습을 빤히 지켜보던 조원석은 피식 웃으며 경호원에게 면박을 주었다.

"맞추지도 못 할 거면서 던지긴 왜 던지나? 그 실력으로 누님한테 잘도 돈을 받아먹는군."

"...마담께선 동생 분을 더이상 가게로 들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들이지 말라고 하면, 그걸 그대로 실행할 자신은 있고?"

조원석이 가볍게 손목을 꺾으며 뚜두둑, 하고 소리를 내자 경호원이 인터컴으로 콜사인을 중얼거렸다.

그러자 손님이라곤 한 명도 없는 바의 안쪽에서 그와 같은 복장의 경호원들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다들 하나 같이 정장이 잘 어울리는 슬렌더한 체격을 소유했지만, 조원석이나 호국 같은 부류에겐 익숙한 체격이었다.

헬스 트레이닝을 통해 뻥튀기한 풍선 근육이 아닌, 실전과 고도의 훈련을 거듭하면서 다진 효율적인 체격이었으니까.

"하나, 둘, 석삼, 너구리...열둘? 이걸로 되겠어?"

"안쪽에 더 있습니다만, 해보시겠습니까?"

"안 될 거 없지. 들어올 새끼부터 들어와. 새끼들이 오랜만에 못난 동생이 누님 얼굴좀 보겠다는데 강제로 이산 가족을 만들고 있어. 여기가 북한이냐?"

호국에게 다트를 던졌던 남자가 턱짓으로 신호를 보내자 열둘이나 되는 경호원들이 두 사람을 향해 포위망을 좁혀왔다. 무기를 들지는 않았지만, 전신이 무기인 사람들이라 위험도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담께선 그 날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셨고, 더이상 얼굴 보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통보하지 않으셨습니까. 지금이라도 조용히 나가주신다면 해를 입히진 않겠습니다."

"음, 가만보니 취한 상태로 열둘이나 병신으로 만드는 건 힘들겠다."

"그럼 어서 나가주십......"

"나 대신 네가 처리해라. 여기 있는 놈들 중에 깨끗한 놈은 없으니 죄다 병신으로 만들어도 된다."

한 발 물러나 호국의 어깨를 두들겨준 조원석은 먼지 쌓여있는 바에 들어갔다. 바텐더는 없었지만 그는 제 집이라도 되는 양 양주를 따서 잔에 따랐다.

갑자기 자신의 일행에게 일을 떠넘기는 조원석의 행태에 기가막힌 경호원은 호국을 바라보았다.

'조원석이 데리고 다니는 걸 보면 평범한 놈은 아닌데......'

위험한 기운이 느껴지기에 거의 본능적으로 다트를 집어 던졌는데, 그걸 손가락으로 낚아채고 되던지는 솜씨는 가히 일품이었다. 눈썰미가 좋은 건 둘째치고 반응 속도가 너무 빨랐다.

사이보그이거나, 강화시술을 받은 인간, 혹은 조원석의 전성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TF의 특수부대 대원. 셋중 하나는 확실해보였다.

특히 조원석이 명령을 내리자 이유도 묻지 않고 자세를 잡는 시점에서, 이미 눈 앞의 청년은 아수라장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당황한 경호원은 양주를 홀짝이기 시작한 조원석에게 쏘아붙였다.

"마담께서 이 일을 아시면 그냥 넘어가실 것 같습니까? 당신이 아무리 전직 TF 소속이었다고 해도 무사할 순 없을 겁니다."

"누가 뭐랬나? 그냥 우릴 얌전히 들여보내줄 건지, 아니면 그 놈이랑 한바탕 하고 죄다 반병신이 될 건지 결정하라고. 난 특등석에서 관람할테니까."

"......"

경호원은 자신을 바라보는 동료들의 시선에 난처함을 느꼈다. 상대는 새파랗게 젊은 애송이 한 명인데, 위험도는 야생에서 만난 맹수따위와는 비교가 안 된다.

굳이 비교하자면 전차와 마주친 개미 신세라고 할까? 머리로는 상대가 별 것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몸은 이미 굳어서 쉽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자신과는 달리 '영감'이 없는 동료들은 어서 처리해버리자는 시선으로 재촉하고 있었지만, 경호원은 끝내 두 사람을 흠씬 두들겨패서 끌어내라는 명령을 내리지 못 했다.

자신이 마담에게 고용되어 이 가게의 수문장 역할을 맡게 된 이유도 그런 위험을 구분할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본분을 잊고 멋대로 행동하는 것은 곧 고용주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과 같다.

'애초에 다 무시하고 달려든다고 해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일반인은 느낄 수 없는 종류의 공포. 그는 결국 손을 들어 동료들을 물러나게 했다.

그 때를 맞춰 인터컴을 통해 마담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이제 됐으니 두 사람을 들여보내도록 하세요.

"...예."

마담의 명령을 그대로 전하자 동료들은 말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박장대소를 한 조원석은 술잔을 내려놓았다.

분한 얼굴로 커다란 네온사인 아래의 버튼을 눌러 비밀 문을 열어준 그에게, 조원석이 다가가 비웃음 섞인 조롱을 보냈다.

"개인적으로는 그냥 덤벼들었으면 했는데, 참 아쉬워. 사내자식이 쪽팔리지도 않나?"

"마음대로 떠드십시오. 어차피 마담께서 이 일을 그냥 넘기시진 않을 겁니다."

경호원이 이를 악물고 씹어뱉듯이 답했다. 그러나 조원석의 입가에서 여유가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그건 두고봐야지."

여유롭게 비밀 문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가는 조원석의 뒤를 호국이 따라나섰다.

조금 전에는 당장이라도 경호원들과 사생결단을 낼 것 같았던 분위기를 풍겼던 청년이, 금세 적의를 말끔하게 지워버리고 조원석의 뒤를 따르는 모습은 전율이 느껴질 만큼 무시무시했다.

아래로 향한 두 사람은 좁고 긴 복도를 걸어 넓직한 입구로 들어섰다.

입구 근처에는 거무스름한 나무 막대가 일정한 간격으로 안내봉처럼 세워져 있었는데, 각 봉마다 금줄이 쳐져 있었으며, 그 중간에는 매듭지어진 부적이 존재했다.

호국이 봉 하나를 지나갈 때마다 봉이 불에 탄 재처럼 바스러지고, 금줄이 낡고 헤졌으며, 부적이 검게 변했다.

호국이 그 광경을 봤더라면 자신이 무슨 짓을 했나 싶어 크게 당황했겠지만, 앞만 보고 걷던 그에게 뒤쪽의 광경 같은 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뒤통수에 '눈'이 달려있는 것도 아니니까.

"이런 외진 곳에 이런 가게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유명한 가게인가요?"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가게지. 가상 현실이니 뭐니 하는 것이 상용화된 첨단과학시대에도 점 같은 걸 믿는 놈들이 세상에 넘쳐나니까. 지식인들은 유사과학이니 미신이니 하면서 비웃지만, 그런 양반들도 상류층 인간들이 이런 가게에 뺀질나게 다니는 걸 보면 할 말이 안 나올 거다."

"어르신도 점 같은 거 믿으시잖아요."

"진짜든 가짜든 정신적으로 크게 안정이 되기 때문이다. 종교랑 비슷하다고 생각해라."

그렇게 답한 조원석은 호국을 이끌고, 마치 나이트 클럽 같은 화려한 이벤트 홀을 지나서 'VIP 전용' 이라는 방으로 향했다.

그 앞에선 명품 옷을 걸친 여성이 가면을 쓴 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조원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VIP 전용 문패가 걸려있는 방문을 발로 걷어차서 열었다.

벌컥 열린 문 너머엔 기분 좋은 아로마 향이 감돌고 있었다. 그 중심부에서 열 명의 경호원에게 둘러싸여 있는 묘령의 여인이 수정구슬 앞에 앉아 있었다.

수정구슬 외에도 넓은 테이블 위에는 부적이나 부채, 방울, 해골, 짚인형 같은 것들이 가득했다.

당장 고개를 올려다보면 전등 대신 캔들이 잔뜩 올려져 있는 샹들리에가 존재했는데, 그 위로는 무시무시한 악귀나찰이 그려진 벽화가 위용을 자랑했다.

일반인이 이 미친 광경을 목도했더라면 정신이 아찔해졌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조원석에게 항의하려던 다음 차례의 손님이 방 안의 광경을 보고 기겁해선 뒷걸음질 쳤으니까.

"다들 나가주세요. 입구도 막아주시고."

"하지만 마담......"

"두 번 말하지 않겠어요."

겉보기에는 3~40대로 보이는 여성이 하늘하늘한 천 같은 것을 후드처럼 뒤집어 쓴 채 단호한 어조로 명령했다. 그러자 건장한 체격의 경호원들이 더이상 말을 잇지 못 하고 차례차례 방을 나갔다.

이윽고 입구가 닫히자 이곳은 바깥과는 완전히 단절된 공간이 되었다.

"더이상 날 찾아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오랜만에 동생이 찾아왔는데 자꾸 그럴거요?"

손님용 의자를 당겨와 자리에 앉은 그는 테이블 위에 놓여진 포도주 병을 집어들었다.

"내가 20년 전에 받은 '답'을 가져왔잖소. 오히려 나한테 고마워 하셔야지."

"뻔뻔하기는."

그녀는 높낮이가 거의 없는 어조로 쏘아붙인 뒤, 멍청하게 서있던 호국을 불렀다.

그리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점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호국은 스스럼없이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

동시에 그녀의 앞에 놓인 투명한 수정 구슬이 검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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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비 업무 일지 : 행보관(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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