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비 업무 일지 : 행보관(1) >
"염병. 이 병신같은 동방예의지국은 단점이 뭔 줄 알아?"
"......"
"독한 담배를 안 팔아. 우리 같은 흡연자들이 친히 세금까지 웃돈으로 내가면서 비싼 담배 구입하시겠다는데, 니코틴 함량이 쥐꼬리보다 못해."
치익. 기껏해야 한 두번쯤 빨아들였을 가는 담배를 입에서 빼낸 노년의 남성이 투덜거렸다.
"이게 응? 생각해보면 참 괘씸하거든. 우리가 독한 술 마시고 사고 내는 게 걱정되니까 맹탕 같은 소주나 파는 거라면 이해를 하겠는데, 담배로 뭘 하겠어? 이걸로 사람을 죽이기라도 하겠어?"
담배로 걱정할 수 있는 최대 규모의 범죄라고 해봐야 안전 부주의로 인한 화재 사고밖에 없다.
하지만 술이 관련된 범죄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다.
당장 교도소에서 썩어가고 있는 강력 범죄자들만 족쳐봐도 술 마셔서 우발적으로 범죄 저질렀다는 놈들이 태반일테니까. '니코틴에 중독된 나머지 실수로 그만......' 같은 사례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 나라가 참 아쉬우면서도 한심하다고 생각해. 국민들이 세금 꼬박꼬박 바쳐가면서라도 즐기겠다는 걸 필사적으로 막는 놈들 투성이거든. 그런데 이게 뭐야? 이깟 0.1mg 담배로 폐에 기별이나 가겠냐고!"
"끄아아아아아!!"
치이이익. 불붙은 담배 끝을 의자에 묶여있는 남자의 눈에 쑤셔박히자 꾹 다물고 있던 입이 비명을 터뜨렸다.
"술병으로 맞는 것 보단 덜 아플텐데 엄살 부리기는. 내가 알고지내는 놈들 중에서 칼로 배떼지 쑤셔도 비명 조차 안 지르는 놈도 있다."
"크흐으으......!"
"꼬우냐? 꼬우면 나한테 잡히지 말았어야지."
핏물에 절어 불이 꺼진 담배 꽁초를 신경질적으로 내던진 노년의 남성은 주머니를 더듬더듬 뒤졌다.
홀애비 냄새가 물씬 풍겨나올 것 같은 그의 군복에는 원사 계급장과 함께 조원석이라는 이름이 오버로크 되어 있었다.
"아이구 씨발. 재수가 없으려나. 0.1mg 는 폐에 기별도 안 올 것 같아서 막 펴댔더니 방금 게 돗대였네. 축하한다. 넌 포로 신세가 됐으면서도 날 빡치게 만들었으니 성공한 포로가 된 거다."
신음을 흘리는 포로의 머리를 손으로 툭툭 치던 그는 물흐르는 듯한 움직임으로 빈 담뱃갑 대신 군용 단검을 뽑아들었다.
늙은 외형과는 정반대로 시종일관 가벼운 말을 내뱉던 그가 다짜고짜 단검을 뽑아 포로의 허벅지에 힘껏 박아넣었다.
일련의 과정이 너무나도 짧았던 탓에 신음을 흘리던 사내는 비명을 내지르는 것조차 잠시 잊어버렸다.
"꺼, 허...어어어?"
"이야, 숨이 꼴딱 넘어가겠네. 그러니까 솔직하게 비밀 이야기좀 털어놓고 친구 했으면 서로서로 피곤할 일 없을 텐데, 왜 이렇게 주둥이가 무거우실까. 이 늙은이 고혈압으로 확 뒈져버리라고 수 쓰는 거 아냐?"
"말 할 건...없...다!"
"지금 말하고 있잖아 이 새끼야! 그건 말이 아니라 소냐?!"
칼날이 보이지도 않을 만큼 허벅지 깊숙이 단검을 박아넣은 조원석은 아예 손잡이를 잡고 빙글 돌렸다. 칼날에 꿰뚫린 근육과 혈관, 신경이 한 번에 찢겨나가면서 어마어마한 격통을 유발했다.
인간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우면 반대로 비명이 나오지 않는다. 안면 근육이 급격하게 수축되고, 때문에 입이 제대로 열리지 않아 떼떼떼떼떼! 하는 괴상한 신음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다행히 눈 앞의 포로는 그렇게까지 하면서 조원석을 웃겨 죽일 생각은 없었는지, 잇몸에서 피가 새어나오도록 고통을 감내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장 혀를 깨물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그는 조원석이라는 사내를 눈앞에 두고서 굳이 멍청한 짓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이 자가 어째서 고문을 자행하면서도 태연하게 자신의 입을 자유롭게 해뒀겠나? 정말로 정보를 캐내고 싶어서? 포로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혀를 깨문다면 출혈로 사망하기 전 까지 그는 최대한, 성심성의껏 그를 고문할 것이다. 출혈로 정신이 혼미해질 틈도 없이, 사망하는 그 순간까지도 고통에 몸부림 치게 되리라.
하지만 이렇게 입을 다물고 고문을 계속 받고 있으면 결국 의심만 하다가 다른 부대로 넘겨줄 것이다.
혀를 깨물 정도로 각오가 된 포로는 충성심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서 더욱 가열차게 고문하겠지만, 끝까지 고문에 버티기만 하는 놈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고 착각해줄 게 뻔하니까.
그것만 믿고......
"끄으으으으...아아아아!!"
"하여간 이 조그마한 나라에 뭐 그리 주워먹을 게 있다고 DMZ 까지 넘어서 침투해오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흐으! 흐으! 흐으으으으......!"
치이이이이! 단검으로 마구 헤집어 놓은 상처에 투명한 액체가 몇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이어지는 별천지 축제. 폭죽이 뻥뻥 터지는 것 처럼 시야에서 불똥이 튀고 격통으로 뇌가 마비될 것 같은 착란증세마저 느꼈다. 뒤늦게 포로는 자신의 환부에 황산이 부어졌다는 것을 눈치챘다.
"이, 개애애애애애새......!"
"역시 사탄도 한수 접어주는 범죄자 새끼들은 발상이 창의적이라니까. 황산을 사람에게 사용하면 이렇게 효과적이란 걸 그 새끼들이 몸소 보여줬으니까."
스포이드로 황산을 톡톡 떨어뜨린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녹아내리는 포로의 허벅지를 바라보았다.
멀쩡한 피부 위에 황산을 끼얹기만 해도 피부가 녹아내리건만, 단검으로 헤집어 놓은 환부에 황산을 떨어뜨렸으니 이 다리는 무조건 잘라내야 할 것이다.
"그래, 그러고보니 그 놈한테 아직 황산은 안 써봤네. 이번 기회에 술에 타서 한 번 먹여볼까?"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포로는 자신이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멍청한 사고방식을 수정하기로 했다.
눈앞의 싸이코는 자신을 처음부터 멀쩡하게 죽여줄 생각도, 남에게 넘겨줄 생각도 없었다. 고통에 못이겨 정보를 뱉어내면 좋은거고, 입을 다물어도 고문을 즐길 수 있으니 그걸로 만족하려는 심산이었다.
심지어 태연하게 고문을 하면서도 포로를 바라보고 있지도 않다. 그의 시선과 생각은 이미 완전히 다른 인물에게 향했다.
그렇게 옛 북한 영토를 통해 DMZ를 넘어 한국으로 침투하려던 미스터리콜렉터의 '심부름꾼'은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한때는 TF 최고의 기동타격대 현장 지휘관이었던 남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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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휴가 무사히 다녀오십시오."
"직원 휴가 가는 걸로 배웅까지 하실 필요는 없는데......"
자신들을 진리교 소속이라고 밝혔던 좀도둑 집단이 겁도 없이 제 6 처리 시설에 침투했던 날로부터 정확히 3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농사왕과 신입, 그리고 플라스틱 병사들이 시설 곳곳을 미친듯이 뛰어다니며 좀도둑들을 모조리 '처리' 해버렸고, 호국과 해피도 그들 못지 않게 B80에 침입한 떨거지들을 잡아내면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파괴된 시설은 프롯을 필두로 한 경비팀 79기가 빠르게 복구해두었기에, 연구팀도 그 사건을 질질 끌거나 하진 않았다.
결과적으론 좀도둑들을 모두 잡아서 처리했고, 외부로 기밀 정보가 새어나가지도 않았다. 오히려 시설 바깥에서 방해 전파를 흩뿌리던 안드로이드를 노획해서 진리교에 대한 짧막한 정보까지 캐냈을 정도였다.
일도 잘 마무리 됐겠다, 호국을 제외하면 다친 사람도 없겠다, 지금이야말로 2번째 휴가를 쓸 때라고 판단한 호국은 행여나 누가 말릴까봐 바로 스케줄을 잡았다.
혹시 모를 2차 공격에 대비해 농사왕과 신입은 시설에 잔류, 이번에는 해피가 프롯과 함께 호국을 따라가는 것으로 휴가 인원이 정해졌다.
"해피에 대한 건 제주공항 쪽에 미리 얘기해뒀습니다. TF ID 카드만 제시하면 공항 직원이 편의를 봐줄겁니다."
"그건 다행이네요. 얘가 생긴 게 이래서 사람들이 오해하면 어쩌나 싶었거든요."
'생긴 건 네가 더 이상하게 생겨먹었지.'
차마 그런 말을 면전에서 내뱉을 수 없었던 이두근은 그저 허허 웃기만 했다.
놀랍게도 해피라는 이름의 안드로이드는 스스로 피해를 복구해서 3일만에 멀쩡한(?) 모습을 되찾았는데, 그건 호국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처음 봤을땐 진짜 사람이 맞나 싶었지.'
팔 다리에 구멍이 송송 뚫리고, 배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데도 태연하게 빨간약을 찾더니 덕지덕지 바르는 게 아닌가.
의무관도 깜짝 놀라서 당장 수술 준비를 하라고 외쳤지만, 그는 빨간약이면 충분하다는 말과 함께 의무관의 손길을 뿌리쳤다. 그리고 하루도 아닌, 단 한 시간만에 모든 상처가 아물어버렸다.
'ES는 아니야. ES 였다면 혈액 검사 결과에서 뭔가 검출됐겠지.'
이건 제 6 처리 시설에 은폐된 과거, 현재, 미래 삼자매와 비슷한 케이스였다. 따지고보면 그녀들도 ES가 아니라 초능력자에 가까웠으니까.
그렇다면 가드-079도 초능력자인가, 하고 자문한 이두근은 즉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건 초능력이고 뭐고 할 것도 아니었다. 그냥 탈인간이지.
이두근은 의무관과 함께 밤샌 토론을 펼친 끝에, 가드-079의 비정상적인 회복 능력이 다크다크 레인보우와 관련이 있다는 것으로 잠정 결론지었다.
실제로 그의 몸은 매 순간마다 파괴와 재생을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니까. 심하게 파괴되었다면, 당연히 지나칠 정도로 재생할 수도 있다. 오히려 그게 자연스럽다.
'모르겠다. 나와 팀원들도 다크다크 레인보우를 꾸준히 마시고 있지만 저런 상처를 한 시간만에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아......'
이두근은 그가 팀장급 휴가를 간 사이에 이 미스터리를 해결하기로 마음 먹었다. 필요하다면 다른 연구 시설의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답을 찾아낼 생각이었다.
신입 연구원인 김세희는 이른 새벽이라 교대자들과 함께 아직 자고 있을 시간이었다. 그녀가 가드-079의 정체를 알게 되는 날이 조금 더 늦어진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이두근은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가드-079가 산을 내려가자 한숨 돌린 팀원들이 이른 새벽의 신선한 공기를 즐기며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문득 궁금해진건데, 가드-079는 휴가 기간 동안 뭘 할까요? 그 사람 가상 현실에 접속도 못 하잖아요."
"친구가 있는 것 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친구 있는 사람은 저렇게 행동 안 하죠. 이런 말 하면 좀 미안하지만 업무 능력이 탁월한 거랑 사회성이 좋은 건 전혀 다른 문제니까요."
"그렇지? 근데 휴가 나가는 걸 엄청 기뻐하더라니까. 나가봤자 집에 틀어박혀서 하루종일 스마트 패드만 만지작 거릴 게 뻔한데."
"에이, 혹시 모르죠.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있으니까 비슷한 성격의 친구 몇 명이랑 만나서 밤새 술 마시고, 구식 게임도 하지 않겠어요?"
끼리끼리 라는 말을 내뱉은 한 팀원에게 모두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넌 가드-079랑 끼리끼리 엮일 만한 사람이 진심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냐?"
"그런 사람이 있을 확률은 로또 1등 연속으로 당첨되는 것보다 낮은 확률 아니냐?"
"그런 사람 있다면 내가 먼저 만나보고 싶다. 가드-079 심리 연구 할 때 엄청 도움 될 것 같은데......"
다들 너무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두근은 피식 웃었다.
말은 저렇게들 해도 다들 가드-079를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유능한 재단 직원이자 경비팀장인 그가 어디 가서 잘못 되거나 하진 않는지, 사람이 너무 순박(멍청)해서 사기 당하는 건 아닌지.
그 짧은 시간에 다들 미운정 고운정이 들어버린 것이다. 업무중에 사적인 감정은 잠시 내려둬야 하는 조사관들이면서도.
'특이하긴 해도 싫어할 수는 없는 사람이니까.'
괴짜 같은 면모가 있지만 그게 혐오스럽지는 않다. 오히려 괜히 장단에 맞춰주고 싶은 느낌이랄까? 이두근은 가능한 오래오래 가드-079와 일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었다.
"자, 그럼 다들 들어가서 일하자고. 저 양반이 밖에 나가서 사고칠 양반도 아니고, 어련히 알아서 잘 놀다 들어오겠지."
그들은 알지 못 했다.
제아무리 특이한 유형의 사람일지라도 끼리끼리 단위로 묶을 수 있는 상대가 최소 한 명 이상은 더 존재한다는 것을.
< 경비 업무 일지 : 행보관(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