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비 업무 일지 : 공백(空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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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으아아아! 떼줘! 빨리 이것 좀......!"
-명령 접수 완료.
키잉! 철컹!
드릴을 집어넣은 안드로이드가 엔지니어의 안면을 움켜쥔 손을 역으로 붙잡았다.
취이이이익! 안드로이드의 등 뒤에서 터져나온 대량의 수증기는 순간적으로 발생한 서스펜션의 압력을 조절하기 위한 열 배출 작업이었다.
수톤의 무게도 가볍게 들어올리는 안드로이드가 순간적으로 기어 압력을 최대치로 올려야 했을 만큼 엔지니어의 안면을 붙든 상대의 근력은 강했다. 정작 그런 근력으로 인간의 안면을 박살내지 않은 점이 신기하다면 신기했다.
-동체 압력 한계치까지 증가. 기어 일부 손상. 물리력으로 속박을 해제할 수 없다고 판단. 원흉을 제거합니다.
주름진 손을 역으로 움켜쥔 안드로이드는 자신의 반대편 팔에서 절삭용 톱을 꺼내들어 단번에 내려쳤다.
카아앙!
인간의 팔을 절삭용 톱으로 내려쳤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시끄러운 금속음이 울려퍼지고, 무엇이든 잘라낼 수 있을 것 같았던 절삭용 톱은 산산조각나며 허공에 비산했다.
-이해할 수 없는 내구도.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안드로이드 답게 즉시 새로운 대처법을 계산해냈는지 이번에는 팔의 외형을 고속철갑포로 바꿨다.
사실 말이 좋아 '철갑포'인 것이지, 그 원리는 과거 대형 군함에나 장착했던 레일건을 안드로이드 사양에 맞춰 소형화한 것 뿐이었다.
아주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안드로이드에게 내장되어 있는 복합 배터리의 전력을 이용해 40mm 철갑탄을 연발로 쏴재끼는 흉악한 무기였다.
다만 배터리 소모가 심해 충분한 보급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선 잘 사용되지 않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물론 사용하기만 하면 최신예 전차의 측면을 단번에 꿰뚫어버릴 정도로 대단한 위력을 자랑했다.
-경고한다 괴생명체. 즉시 본 교단 소속의 엔지니어를 해방하도록 해라. 그렇지 않으면 매콤한 맛을 보여주겠다.
허나 안드로이드의 경고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어둠 속의 상대는 손에 아주 약간 힘을 준 것으로 대답했다. 악력을 아주 약간 추가했을 뿐인데, 안면을 붙잡힌 엔지니어의 머리통은 수박처럼 터져버렸다.
그렇게 흘러나온 대량의 피와 뇌수는 벽이나 바닥으로 튀기는커녕 마치 제 살 길을 찾았다는 것 처럼 상대의 손으로 빨려들어갔다.
동시에 안드로이드의 철갑포가 무지막지한 폭음을 터뜨렸다.
-목표 분쇄?
까드드드득.
순간적으로 주변의 공기를 태워버릴 만큼 강력한 포격이었으나, 상대는 어느덧 주름이 사라진 부드러운 손으로 찌그러진 철갑탄을 움켜쥐고 있었다.
-어림도 없음을 확인. 차탄 장전!
차탄 장전이 조금 더 빨랐더라면, 같은 뒷맛이 찝찝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차탄의 장전이 빨랐든 늦었든 상대의 손아귀는 눈 깜짝할 사이에 안드로이드의 팔을 잡고 꽈배기처럼 꼬아버렸기 때문이다.
기긱, 기기긱. 비틀린 금속 동체가 이윽고 엿가락처럼 끊어지며 단순한 고철덩어리로 전락했다. 이미 계산된대로 안드로이드는 남은 팔을 휘둘러 반격을 가했으나, 그마저도 효과적인 타격을 주진 못 했다.
오히려 남은 팔 한짝마저 통째로 뜯겨나가며, 멀쩡했던 안드로이드를 쓰레기 매립지에나 굴러다닐 법한 용모로 만들어버렸다.
-손상! 손상! 엔지니어는 즉시 해당 기체의 동력을 차단하고 긴급 복구 작업을 진행해주십......!
퍼엉!
결국 충격으로 인한 부품 손상과 그에 따른 과부하를 이기지 못한 안드로이드는 배터리와 함께 머리통이 폭발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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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놈의 다리는 갑자기 발정기라도 왔나, 동네 바둑이마냥 가만히 있질 못 하네."
자신을 가로막던 진리교단원 셋을 차례대로 때려눕힌 호국은 애꿎은 다리를 주먹으로 쾅쾅 내려쳐서 진정시켰다.
고작 이정도로 날뛰었다고 해서 지칠 만큼 호국이 약골인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뜻대로 제어가 안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쉽게 예를 들자면 어머니의 손길에서 치킨버거 하나만 시켜먹으려다 충동적으로 치킨버거 세트를 구매한 것과 같다. 좋은 게 좋은 거라지만 이렇게 제어가 안 되어서야 영 미덥지 못 하다.
문득 호국은 자신이 만든 참상을 가늘게 뜬 눈으로 살펴보았다.
한 명은 회전력을 이용해 옆구리에 돌려차기를 먹인 탓에 몸이 'ㄷ'자로 꺾여 있었으며, 나머지 두 명은 각각 복부와 턱에 니킥을 얻어맞고 미간에 권총탄이 박혀 있었다.
적들이 기동 슈트인지 뭔지 하는 깡통을 걸치고 있어 몸뚱이를 타격해봐야 큰 피해를 주지 못 할 거라 생각했는데, 무슨 백만불짜리 다리도 아니고 철덩어리를 두들기고도 호국의 다리는 멀쩡했다.
어쩌면 군 시절에 연병장과 산을 너무 뛰어다닌 탓에 반쯤 돌아버린 다리가 자아를 가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뇌의 지배에서 벗어나겠다 HOGUK!' 같은 논리를 내세웠을 수도 있다.
"어림도 없지. 넌 평생 IQ 84의 지배를 받아야 해."
폭력 앞에선 어쩔 수 없었는지 '다리'가 겨우 잠잠해졌다.
그러다 문득 이들이 한창 6-01의 방에 무단침입 하기 위해 드릴로 문을 뚫고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한 호국은 6-01 은폐실을 확인해보았다.
은폐실은 때마침 문이 열려있었는데, 그 앞에는 어떤 변태가 옷만 벗어두고 갔는지 널부러진 옷가지와 장비 같은 것들이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었다.
'적중에 할배 취향을 가진 싸이코 변태새끼가 있었나?'
의자에 묶인 할배를 괴롭히기 위해 드릴까지 동원해 문을 뚫는 미친 놈을 허용했다? 호국의 경비 커리어에 절대로 새길 수 없는 치명적인 오점이었다.
"할아버지!"
재빨리 방 안으로 뛰어든 호국은 권총을 겨누다 말고 의아한 얼굴로 눈을 끔뻑였다.
미쟝쉔 샴푸를 사용한 것 처럼 찰랑거리는 은발, 살짝 잡아당기기만 해도 고무줄처럼 늘어날 것 같았던 주름진 피부 대신 아기처럼 뽀얀 피부, 반쯤 얼렸다 빼낸 것 같았던 동태 눈깔은 초롱초롱한 빛이 돌아와 있었다.
호국은 눈 앞의 건장한 미청년이 회춘한 6-01임을 그리 어렵지 않게 눈치챘다. 외형이 크게 바뀌어도 특유의 냄새는 기억 속에 남아 있었으니까.
"...피부가 아주 탱탱해지셨네. 저 없는 동안 몸에 좋은 걸 한 트럭째 챙겨드셨나......?"
생각해보니 배고프면 양껏 먹으라고 카지노에서 카드까지 쥐여준 적도 있었고, 그 외에도 따로 식사 시간이 되면 호국이 이것저것 챙겨주곤 했다. 올바른 식습관과 충분한 영양이 곧 만병통치약인 법.
부모에게도 보인 적 없었던 호국의 지극정성이 통했는지, 마침내 6-01이 회춘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옛 어른들 말씀 틀린 거 하나 없다더니.'
밥만 잘 쳐먹어도 잔병치레 할 걱정 없다던 어른들의 말씀 속에는 사실 숨겨진 비밀이 있었던 것이다. 밥 잘 쳐먹고 건강도 잘 챙기면 회춘까지 한다는 놀라운 비밀이!
'혹시 중간에 직장에서 잘리면 내 이름 따서 회춘 업소 운영해야지.'
먹고 살 길이 하나 더 생겼다는 사실에 호국은 흐뭇하게 미소지었다. 갑자기 회춘한 6-01이 자신의 입에서 송곳니를 맨 손으로 뽑아내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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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 미친 새끼! 떨어져!!"
"막스! 정신차려, 막스!!"
"당장 떼내! 저 놈 때문에 라이프라인이 흔들리잖아!!"
"이 불쌍한 놈들! 너흰 듣지 못 하는 거냐?! 귀가 있다면 그분의 목소리를 들어보란 말이다! 리쓴 업!!"
귀에 단검을 박아넣은 놈이 할 소리는 아니었지만, 정예 전사들은 우선 라이프 라인에 엉겨붙은 막스를 떼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썩어도 준치라고, 그 역시 정예 전사였기 때문에 팀원 모두가 허공에 매달린 상태로 덤벼들어도 쉽사리 떼낼 수 없었다. 오히려 침과 핏물을 질질 흘리면서 한층 더 격한 광란의 발작을 일으켰다.
"내게, 내게 오라고 손짓하신다! 그분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들려! 싸버릴 것 같은 감미로운 목소리가!!"
"이 미친 새끼가 대체 뭐라는 거야?!"
빡!
급기야 한 정예 전사가 그를 공중에서 힘껏 걷어찼다. 다른 이들의 라이프 라인에 작정하고 거머리처럼 엉겨붙은 놈을 떼낼 방법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두들겨 패는 것 뿐이었다.
허나 두들겨 맞으면 맞을수록, 그는 귀에 걸릴 듯한 미소를 지으며 희번뜩이는 눈으로 정예 전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래, 넌 그분의 목소리를 듣지 못 했으니까 가르침이 부족한거야! 가르침이 부족하면 그럴 수도 있지! 이해해!!"
거미처럼 손과 발을 움직여 라이프 라인을 기어내려온 그는 대뜸 한 정예 전사의 얼굴을 붙들고 귀에 손가락을 쑤셔박았다. 좁은 외이도에 남성의 굵은 검지 손가락이 파고들자 금세 피부가 상하며 핏물이 베어나왔다.
"으아아아악! 이 미친 새끼가!!"
참다못한 정예 전사가 그의 목덜미에 권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처음부터 총으로 제압을 할 수 있었다면 마음이 편했겠지만, 그래도 같은 교단원인지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금까지 총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탕! 탕!
시끄러운 총성과 함께 권총탄이 그의 목덜미를 찢어 발기자 척추와 경추의 연결이 툭 끊어졌다.
중요 혈관과 더불어 신경계, 골대까지 한 방에 나가버렸으니 더는 날뛰지 못 할 거라 판단한 순간, 막스는 목을 덜렁거리면서도 손에서 힘을 풀지 않았다.
"이, 이 새끼...어떻게?!"
"가르치므으으을, 그르르륵, 주어어야아아아......"
"정신차려 막스!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시는 건 오직 '진리' 뿐이라고!!"
'진리'라는 말에 덜컥 움직임을 멈춘 막스는 갑자기 자신의 손으로 직접 덜렁거리는 목을 잡아 뒤로 꺾었다.
막스가 돌아본 장소에는 B80의 특수 격벽을 열기 위해 낑낑대는 엔지니어와 안드로이드, 그리고 대사제 베넥트가 있었다.
"거기 있었구나."
목이 터지고 성대가 손상되어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을 막스의 입에선 중성적인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노인처럼 연배가 느껴지면서도 아이처럼 순수한 앳됨이 있었다.
그것은 여성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남성처럼 거친 면모가 있었다.
그것은 모든 것을 통달한 지식인의 멋스러움 속에서도 바보같은 천진난만함을 보여주었다.
"대사제님......!"
금방이라도 대사제에게 달려들 것 같은 흉흉한 분위기를 풍기기에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불렀으나, 베넥트는 개의치 않고 목에 걸어두었던 악세사리를 꺼내들었다.
"물러가라, 사악한 것아."
그가 내민 것은 소용돌이 속에서 홀로 고고하게 모든 것을 주시하는 눈동자가 새겨진 팬던트형 목걸이였다.
그것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막스'는 히죽 웃더니, 이내 자신의 귀에 엉성하게 박혀있던 두 개의 단검을 양손으로 있는 힘껏 찔러 넣었다. 마침내 뇌를 관통한 단검은 막스의 몸에 깃들어있던 미약한 생명의 흔적마저 완전히 지워버렸다.
"그건 나의 사랑스러운 아버지가 가질 물건이다."
그 말을 끝으로 '막스'의 몸이 축 늘어져 아래로 추락했다. 엘리베이터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밑바닥에 내리꽂힌 막스의 시체는 철푸덕, 하고 기분나쁜 소리를 터뜨리며 어둠 속에서 홀로 식어갔다.
"대사제님, 조금 전의 그건 대체......?"
"대체 그건 뭐였습니까? 아무리 봐도 막스는 아니었습니다!"
"애초에 어떻게 그 상태로 그런 목소리를...빌어먹을! 영문모를 것들이 한 두개가 아니야!!"
"...지체할 시간이 없다. 다들 혼란스러운 건 이해하겠지만 우선은 진실의 파편을 확보하는 것에 집중하도록. 이곳을 빠져나간 뒤에 그 얘기를 해도 늦지 않다."
지금은 구질구질한 격려나 위로 같은 것 보다 냉정한 명령이 더 먹힌다는 것을 알고 있는 베넥트는 그들을 다시 채찍질했다.
그리고 때마침 엔지니어의 기쁨에 찬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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