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비 업무 일지 : 공백(空白) >
"끄으으읍?! 으으읍?!"
호국은 자신의 손에 입이 붙들린 채 발버둥 치는 침입자의 옆구리에 주먹을 박아넣었다.
한창 작업을 진행하고 있던 침입자와는 달리 이 자는 그리 대단한 장비를 걸치고 있는 것도 아닌지라 여기저기 허점 투성이였다.
애초에 작은 소리가 들린 것 만으로도 거리낌없이 어둠 속으로 걸어들어온 놈 답게 그렇게 철두철미한 성격도 아닌 듯 했다.
호국은 다른 자들이 눈치채기 전에 그를 화장실에 몰아넣고 주먹으로 복부를 몇 번 갈겨주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입을 틀어쥐고 있었기 때문에 비명소리는 새어나오지 않았다.
호국도, 어쩌면 이 시설의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 했을 갑작스러운 외세 침투 사태. 호국이 해야 할 일은 안전 확보보다,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보험을 만들어두는 것이었다.
'얼빠진 놈일수록 심문하는 게 쉽다고 했지.'
행보관은 현역으로 뛰던 시절에 '그런' 종류의 일을 많이 해봤는지, 호국에게 직접 고문이나 심문 기술을 알려주면서도 대상을 파악하는 것을 잊지 말라고 했었다.
가령 무자비한 폭력을 당하고도 덤덤한 태도를 취하거나, 일부러 허세를 부리는 놈들은 정신력이 강한데다 특별한 훈련을 받은 놈들이니 고문으로 입을 열게 하는 건 무척이나 어렵다.
반대로 고문자가 자신보다 우위라고 판단해 찡찡 대는 놈이나, 횡설수설 하는 놈들은 억압에 취약한 겁쟁이들이 잘 조지면 많은 정보를 캐낼 수 있다고 배웠다.
'PX 냉동 걸고 고문 내기빵도 했었지.'
호국이 30분간 고문을 버티면 행보관이 생활관 모두에게 냉동을 쏘고, 행보관이 30분간 고문을 버티면 호국의 훈련량이 배로 늘어나는 우스꽝스러운 내기였다.
물론 그 내기는 호국이 이겼다.
빡!
마지막으로 상대의 안면을 후려쳐 반쯤 넋이 나가게 만든 호국은 그를 변기 위에 앉힌 뒤 권총을 겨눴다. 개미부대에서 쓰던 것이라 그런지 소음기가 달려있는 권총이었다.
"지금부터 내가 묻는 질문에 똑바로 대답해야 해."
행보관은 적을 생포했을 때 고정적인 질문 3개는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1. 이곳에 침투(공격)한 이유(목적)가 무엇인가?
2. 침투(공격)한 부대의 규모는 얼마나 되는가?
3. 소속이 어디인가?
호국이 리스트대로 질문을 읊자 상대는 당황스러워하다가도, 호국의 복장을 보고서 안색이 거무죽죽하게 죽어버렸다.
'개미부대!'
호국이 입고 있는 검은 작업복에는 개미부대를 상징하는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개미부대는 TF내외를 막론하고 알아주는 청소부들이었다.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증인도 남기지 않는다. 그들이 파견되는 지역은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다는 양 태초의 풍경으로 되돌아 간다는 말이 있었으니, 상대가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게다가 나를 제압하는 솜씨나, 저 무미건조한 태도를 보건대...개미부대 내에서도 정예다!'
사내는 자신이 더이상 살 가망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이를 악물었다.
비록 자신은 정예 전사들처럼 특출난 교단원은 아니었지만,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교단에 대한 신앙심과 거짓된 세상을 거부하는 용기를 높게 평가 받아 이번 작전에 차출되었다.
교단원들은 특별한 계급을 가지지 않는 한, 남성은 형제, 여성은 자매라고 불린다. 즉 자신이 눈 앞의 개미부대원에게 정보를 털어놓는 순간 형제 자매는 물론이고 교단을 배신하는 것과 같았다.
'마, 말할 수 없다......!"
자신의 생사여탈권은 눈 앞의 적에게 쥐여져 있었으나, 사내는 필사적으로 용기를 쥐어짜냈다. 소리를 지르면 그가 총을 쏴서 자신을 침묵시키겠지만, 그건 반대로 고문을 할 수 없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말하지 않으면 죽일 거다, 그런 이차원적인 사고방식으로 정보 누설을 거부한 탓에 사내는 입에 휴지가 뭉텅이로 쑤셔넣어졌다.
"으읍? 읍?!"
"나도 여기서 밥 빌어먹고, 돈도 마당에 궃은 일을 마다할 순 없잖아. 그러니까 말하고 싶어지면 오른 손을 들어. 말하기 싫으면 왼 손을 들고."
"?!"
다음 순간, 개미부대원은 사내의 허벅지 살을 단검으로 그어낸 뒤, 갈라진 살점 속에 칼날 끝을 밀어넣어 마구 헤집었다.
"끄으으으으읍?! 으으으으으!!"
단순히 특정 신체 부위에 칼날을 처박는 것 보다, 칼날 끝으로 노출된 신경 다발과 뼈를 헤집는 게 훨씬 더 고통스럽다는 건 당해본 사람만 아는 사실이다.
'그땐 너무 아파서 행보관이랑 계급장 떼고 붙을 뻔 했지.'
결국 30분을 어거지로 버티고 행보관에게 복수해줬기 때문에 지금은 그다지 신경쓰고 있지 않지만, 호국은 사실 이렇게 하면 '왜' 아픈 것인지는 잘 몰랐다.
그냥 이렇게 하니까 아팠다는 사실만을 기억하고 있을 뿐. 당시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상처가 말끔하게 아물었기 때문에 잠깐 아프기만 하고, 생각보다 별 거 아닌 상처라고 생각했었다.
"병원에 실려갈 정도로 심각한 상처는 아니야. 그냥 좀 아픈 것 뿐이지."
호국도 훈련 도중에 다쳤다고 해서 딱히 병원에 실려간 적은 없었다. 행보관이 그깟 상처는 빨간약을 바르면 낫는다고 하길래 발랐더니, 실제로 다음날 상처가 말끔히 나았던 것이다.
그런 추억(?)을 떠올리면서 호국은 사내의 허벅지에 박은 칼날을 뽑았다. 이번엔 반대편 다리를 헤집어 주려 했더니, 갑자기 사내가 눈물과 콧물이 범벅된 얼굴로 오른 손을 들어올렸다.
호국은 그럼 그렇지, 하고 그의 입에 물려있던 휴지 뭉텅이를 빼주었다. 역시 행보관이 가르쳐 준대로 하면 대부분의 일은 해결할 수 있었다.
1. 이곳에 침투(공격)한 이유(목적)가 무엇인가?
"지, 진실의 파편을 찾기 위해 와, 왔다......!"
2. 침투(공격)한 부대의 규모는 얼마나 되는가?
"대사제 1명...정예 전사 5명, 그리고 나와 같은 일반 교단원 12명과 전문 엔지니어 4명, 크흡! 그, 그리고 안드로이드 4대......!"
3. 소속이 어디인가?
"...진리교단. 나는 인도 지부 소속이었지만 본거지는 모른다."
거기까지 들은 호국은 골똘히 머리를 굴려보았다. IQ가 84밖에 안 되는 놈이 머리를 굴려봐야 얼마나 굴리겠느냐마는, 그래도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아낼 수는 있었다.
'역시 지난 번에 온 놈들이랑 같은 놈들이잖아!'
설마설마 했던 침투 맛집 루트였을 줄이야. 진리교단인지 나발인지 하는 놈들은 호국이 경비로 일하고 있는 이 시설을 빈집이나 다름 없다고 여긴 게 분명했다.
그러니 이 으슥한 야밤에 침투한 것도 모자라, 남의 일터에서 시끄러운 공사 장비까지 동원해가며 난리를 치고 있는 것이겠지. 게다가 무기까지 지참한 것으로 보건대 절대 좋은 의도를 품고 있는 게 아니었다.
'가드 매뉴얼에 따르면 허가받지 않은 침입자는 특별한 사유가 없을 경우 즉각 사살후 보고하라고 되어 있었지.'
정당방위에 의거해 목숨을 빼앗았던 개미부대원들과는 달리, 이들은 TF 소속이 아닌 외부 세력이었다. 허가 같은 건 당연히 받지 않았을테니 죽여도 무방했다.
덧붙여서 특별한 사유라고 하는 것은 TF 소속이지만 허가를 받지 않은 재단 직원이 시설에 침투한 경우를 의미했다. 그럴 경우엔 우선 경비가 해당 직원을 포박한 뒤 보고를 하도록 별도의 매뉴얼이 존재했다.
호국은 다시 한 번 상대의 입 안에 휴지를 뭉텅이로 쑤셔박은 뒤, 그 틈으로 권총 소음기를 밀어넣었다.
자고로 총기란 것은 아무리 대단한 소음기를 장착해도 일정 수준 이상의 소음이 발생하는 법이기 때문에 소음과 피가 튀는 것을 방지해줄 완충재가 필요했다.
퓨캇!
휴지 뭉텅이 속에서 발포된 탄환은 그대로 상대의 머리통을 꿰뚫었다.
이전에는 순수하게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정당방위로 싸웠던 것인데, 지금은 단지 TF에서 정해준 매뉴얼 만으로 상대의 목숨을 빼앗았다는 것이 차이라면 큰 차이였다.
'이상할 정도로 머리가 맑은데?'
호국은 평소처럼 삐이이이이, 하고 들려왔어야 할 이명이 생각보다 덜한 것을 느끼고, 이내 그러려니 했다.
군대에서 특수한 훈련을 받은데다, 사람을 죽인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호국은 자신이 고문관 스타일도 아닌 만큼 이런 상황에 빠르게 적응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 적응하는 것이 정상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지식이나 경험이 없다는 점도 한몫했으리라.
호국은 사내의 품 속을 뒤져 쓸만한 것들을 긁어모았다. 가드에게 지급된 기본 전투 장비가 생각보다 부실해서 노획한 무기로 싸울 수 밖에 없었다.
프롯과 연결이 되었다면 기계 팔을 이용해 추가 장비들을 지급받았겠지만, 아쉽게도 프롯이 호국을 도우러 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호국은 잘 익은 수박처럼 통통, 하고 맑은 소리를 자아내는 머리를 두들기며 쓸만한 장비들을 분류했다.
조금 전에는 멀리 떨어진 장소의 소리가 들리지 않아 꽤 불편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새삼 쓸데없는 소음이 들리지 않는 게 이렇게 편할 줄은 몰랐다.
너무 많이 먹으면 폭식(暴食)이듯, 너무 많이 듣는 것은 폭청(暴聽)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으로부터 뭐든지 과하게 욕심낸다고 해서 좋을 거 하나 없다고 들어왔던 만큼, 호국은 적당한 것이 가장 좋다는 걸 경험으로 알았다.
그러니 지금 이 상황이, 지금 이 상태가 딱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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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웨에에에엑!"
모니터룸에 모든 직원들을 집합시킨 총 든 무리들중, 갑자기 한 남성이 바닥에 토혈을 쏟아냈다.
하지만 그가 갑자기 영화처럼 픽 쓰러지거나, 혼미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왜 토한 건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뭐지? 뭘 잘못 먹었나?"
"미친 놈! 피를 한웅큼 토해냈는데 그런 태평한 소리가 나와?!"
"풍토병 같은 건가? 이 땅은 우리의 성역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잖아!"
"진정들 해. 몰리토의 상태는 괜찮아. 황반도 없고...눈이 충혈된 것 같지도 않아. 그렇다고 몸이 떨리거나 기침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정말 뭘 잘못 먹은 거 아냐?"
"여기 오기 전엔 전투식량 밖에 안 먹었다고!"
그들이 서로를 향해 언성을 높이는 사이, 이두근은 팔이 뒤로 묶인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새벽 3시쯤이었을까. 갑작스러운 통신 장애가 발생함과 동시에 시설에 한 무리가 침투했다.
통신 장애 때문에 외부에 지원 요청을 할 수 없었던 이두근은 재빨리 야근을 하고 있던 직원들과 총기 보관함으로 달려갔으나, 상대는 모니터룸 안쪽 기숙사에서 자고 있던 사람들을 끌고와 인질로 잡았다.
결국 제대로 싸워보기도 전에 모조리 인질 신세가 된 그들은 현재 30분이 넘도록 포박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미친. 설마 TF 산하 시설을 이렇게 대놓고 습격할 줄이야......"
"일전에 이홍선 그 병신 새끼 때문에 노출된 시설이 한 번 습격받은 적 있잖습니까. 방비가 약한 걸 보고 다시 쳐들어온 겁니다."
이두근의 불평에 상두가 속삭이듯이 원흉을 얘기해주었다.
생각해보니 이두근은 더욱 화가 나서 이미 불귀의 객이 된 이홍선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그 놈이 가드-079에게 엿 한 번 먹여보겠답시고 시설의 모든 시스템을 차단해버린 덕분에 모든 방화벽 시스템이나 '은폐' 기능이 사라져버렸고, 덕분에 외부 세력에게 위치가 노출되었던 것이다.
그래도 첫 습격은 어찌어찌 마무리되었고, 이후엔 자신들이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었으니 문제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게 안일한 판단이었다는 걸 지금 막 깨달은 참이지만.
사실 이두근도 억울한 점이 몇 개인가 있었다. 우선 제 6 처리 시설은 그 특수성 때문에 추가 경비 인원이 투입되지 않았다. 기껏해야 경비 안드로이드 몇 대와 추가 물자가 지급되었을 뿐.
여차하면 시설이 종말 프로토콜에 의해 싹 날아가는 구조인지라 상층부에서도 구태여 제 6 처리 시설을 지키려 하지는 않았다.
가드-079의 희소성이 어마어마한데다 잠재적 가치가 대단하다는 것은 입증되었지만, 하필 제 1 연구 시설이 습격받고 최고 수석 연구원이 잠적해버린 마당에 가드-079를 연구할 전문가가 없다는 점이 악재로 작용했다.
덕분에 가드-079는 그대로 제 6 처리 시설에 처박아두고, 여차하면 그냥 다른 ES들과 함께 날려버린다는 선택지에 자동적으로 끼게 된 것이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그래도 우리가 진짜 연구원들은 아니라서 다행이군.'
정확히는 가드-079의 여동생인 김세희를 제외한 모두가 실제로는 조사관들이었다.
감찰관처럼 혹독한 훈련을 받지는 않았어도, 제 몸 하나 지킬 호신술이나 위기 상황시 대처법 같은 것은 철저하게 배웠다. 그래서 이런 상황임에도 다들 크게 당황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저 놈들 갑자기 왜 저러는 거지? 한 놈은 방금 피를 쏟던데."
"그런 것 치곤 멀쩡해보입니다. 보통 피를 쏟는 이유는 내장이나 폐를 다쳤다는 얘기인데...행동에 위화감이 없잖습니까."
상두가 말한 대로 피를 쏟은 한 남자는 잠시 복면을 벗었을 뿐, 딱히 상태가 심각해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피를 쏟은 것 치곤 너무나도 멀쩡해보였다.
그때 누군가의 스마트패드가 삐, 삐, 삐 하고 큰 소음을 자아냈다.
적막감이 내려앉은 모니터룸에서 갑작스럽게 터져나온 소음은 모두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급기야 무장 괴한 중 한 명이 소음을 자아내는 스마트패드를 집어들어 연구원 중 한 명에게 툭 던져주었다. 그리고 태연하게 총구를 들이밀며 물었다.
"무슨 상황인지 말해라."
"아, 그러니까......"
하필 총구가 겨눠진 것은 신입 연구원인 김세희였다. 그리고 신입은 아직 '그쪽' 으로는 교육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신입이 저걸 알고 있을리가 없지!'
저 소음 패턴은 아직 배우지 못한 김세희를 제외한, 모든 조사관들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소음이었다.
시설 전체에 자리잡고 있는 감지 센서가 특정 수치를 뛰어넘은 C 게이지를 감지 했을 때만 내는 소음이었으니까.
쉽게 말하자면 인트라넷을 통해 사내 메일이 도착했을 때 발생하는 메세지 알림음과 같다. 통신 장애 속에서도 저것 만큼은 확실하게 듣기 위해 별도의 시스템을 구축해뒀을 정도였으니까.
"C 게이지 수치...8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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