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피해피 고문재단-130화 (130/209)

< 경비 업무 일지 : 집주인 아줌마.avi(4) >

호국은 멀쩡하고 건장한 20대 청년이다.

조금만 힘을 줘도 슬렌더한 압축 근육이 두드러질 만큼 머슬가이 특유의 육체미가 살아있으며, 군에서 구랏빛으로 태운 피부는 지하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덕분에 살짝 옅어져서 건강미까지 돋보였다.

그런 호국에게도 당연하지만 3대 욕구가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성욕. 호국에게 성욕이 없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안 그래도 배출 욕구가 남다른 호국이 정기적으로 '칙칙폭폭'을 하지 않을리가 없다. 단지 성욕이 끓어 넘쳐도 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을 뿐이다.

육체적 활동이 활발한 20대 청년이 하늘하늘한 실크 잠옷을 걸치고 있는 금발 서양인 여성을 보고서 아무런 반응이 없을 가능성은 딱 두 가지 뿐이다.

발기부전이거나, 여자에겐 일절 관심없는 소방차 게임 전문가인 경우들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다행히 호국은 아침마다 에베레스트 산맥을 세울 만큼 건강했다. 게다가 평범하게 노말 섹슈얼이었다. 그러나 호국은 조금도 반응하지 않았다.

호국의 '눈'이 마치 희뿌연 안개가 낀 것 같은 특수한 효과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덕분에 집주인 아줌마가 야시시한 잠옷을 입고 있다는 걸 알아도, 가장자리만 간신히 보일 만큼 뿌연 모자이크 때문에 무엇 하나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다.

No 유모. 보지 않습니다, 다운로드 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호국은 모자이크(유모)에 쥐약인 남자였다. 아무리 야릇한 상황이 연출되어도, 흥분되는 목소리를 듣는다고 해도 모자이크가 있다면 호국의 호국은 버로우 상태를 유지했다.

'이 병신같은 눈깔!'

안 그래도 여자와의 접점이 적어서 우울한 20대 초반의 청춘을 덧없이 흘려보내고 있건만, 이젠 '눈'마저 자신을 배신하기에 이르렀으니 호국이 열받지 않는 게 이상했다.

남들은 가상 현실에서 즐길 거(?) 다 즐기는데, 홀로 현실에 남아있어야 하는 호국은 남들의 반에 반도 못한 청춘을 보내야만 했다. 그런 적적함과 억울함을 달래주었던 몇 안 되는 요소가 바로 시각과 청각으로 즐길 수 있는 것들이었는데.

지금 막 호국의 '눈'이 가상 현실 미성년자 보호 시스템을 적용한 것 마냥 말도 안 되는 방해 공작을 펼쳤다.

아주 잠깐, 1초도 되지 않는 찰나의 순간이라도 눈으로 볼 수만 있었다면 평생 지워지지 않는 기억 속에 저장해뒀을텐데. 호국의 '눈'은 최소한 자비마저 베풀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집주인 아줌마에게 양해를 구해 자연스러운 투샷 사진이라도 찍어 물리적으로 기억을 보존하고 싶었으나, 카메라 기능이 달린 스마트패드는 먹통이 된 상태였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호국에게 엿 먹이는 걸 너무 좋아했다.

작게 한숨을 내쉰 호국은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이 '눈' 덕분에 굉장한 눈썰미가 몽골인 뺨치는 시력을 가질 수 있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모자이크를 연출했다고 해서 마냥 화를 내긴 뭣했다.

게다가 지금은 엄연히 업무중인 만큼 사사로운 욕정에 휩쓸리는 것도 좋지 않았다. 사실 휩쓸리고 싶어도 휩쓸릴 수 없었지만.

지금 호국의 눈 앞에 보이는 것은 '필요한 만큼 보여줬다, 더이상은 보여주지 않는다' 라고 말하는 듯한 광경이었으니까.

결국 건전한 집값 얘기를 하기 위해 앉을 자리를 찾던 호국은 문득 지천에 널려있는 아기 용품들에 눈길이 갔다.

'한 번도 쓴적 없는 것들이네.'

딱히 포장되어 있는 것도 아니라 보통은 누가 아기를 키우나 보다 싶겠지만, 호국은 특유의 눈썰미로 주변의 모든 아기 용품에 사람의 손길이 닿은 적 없다는 것을 눈치챘다.

가령 아기들이 끊임없이 물고 빠는 쪽쪽이나 젖병 같은 것은 슬쩍 보기만 해도 구분할 수 있다. 그외에도 아기의 목에 걸어주는 천, 바닥에 깔아주는 천, 배를 덮어주는 천, 모두 펴보기나 했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깔끔한 새것이었다.

이 저택에 들어오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거대한 초상화. 거기엔 틀림없이 귀부인의 손에 갓난아기가 들려 있었다.

하지만 호국은 그녀에게 아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의 작위를 이용해 '아랫 사람'에게서 빼앗았다면 모를까.

애초에 아기를 가진 어머니들은 아기 용품을 이런식으로 방치해두지 않는다. 호국도 보육 시설에 몇 번인가 봉사활동을 간 적이 있었고, 남는 시간에 이웃집 아기를 돌봐준 적도 있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아기를 가진 여성이 아니지만, 몹시도 아기를 원하는 듯 했다.

아기를 원한다는 것이 이상한 의미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호국은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에서 '색욕'적인 의미가 아닌, 다른 의미의 감정을 느꼈다.

그래, 천천히 호국에게 다가온 그녀가 호국의 손에 딸랑이를 쥐여주고, 목에 천을 걸어주는 이유가 필시 그런 감정 때문이리라.

그리고 설마했던 공주님 안기로 그녀에게 번쩍 들어올려진 호국은 푹신하고 넓은 침대 위에 눕게 되었다. 딸랑이를 든 채.

여성에게 안겼다는 감각에 설렐 법도 하건만,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호국은 조금도 설레지 않았다. 오히려 후버 댐처럼 영원할 것 같았던 20대 남성의 자존심과 소중한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설마 이런 플레이를 하게 될 거라곤 전혀 예상치 못 했던지라, 호국은 급격하게 밀려오는 자괴감과 자살 욕구로 인해 속 안에 시커먼 무언가가 쌓이는 듯 했다.

다 큰 남성이 아기같은 행동을 하고, 다 큰 여성이 그것을 스스럼없이 받아주면서 즐기는 행위. 호국도 그런 매니악한 플레이가 있다고 들었었다. 다만 지극히 노말 취향이라 그런 쪽으로는 아예 손도 대지 않았을 뿐이지.

너무 황당한 나머지 잠시 침대 위에 굳어있던 호국은 곧이어 집주인 아줌마의 부산스러운 움직임에 식은땀을 흘렸다.

미리 준비해둔 찻주전자의 뜨거운 물과 가루 분유를 젖병에 타서 흔들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어색하지만 어머니의 그것을 표방하고 있었다.

'저걸 마시면 내 인생은 끝난다.'

설마 집주인 아줌마와 건물 리모델링을 논의하러 온 자리에서 이런 하드코어 매니악 플레이를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젖병 물리기라는 최후의 일격 만큼은 피해야 했다.

섣불리 큰 움직임을 보였다간 상대가 눈치채고 더 강하게 반발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호국은 우선 얌전히 침대에 누워 분유가 준비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것 같은- 젖병을 들고 돌아온 그녀에게서 잠시 광기의 편린이 보인 듯 했으나, 호국은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입을 향해 찔러 들어오는 젖병을 재빨리 낚아챘다.

어느 한 쪽이 항복하거나, 어느 한 쪽이 만족하지 않으면 절대로 끝나지 않을 저세상 플레이. 그러나 호국은 항복할 생각도, 만족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반대로 되돌려주자고 마음 먹었다.

그녀 역시 항복은 하지 않겠지만, 만족이라도 시킨다면 다시 건물 리모델링 이야기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거칠게 호국은 다소 거칠게 집주인 아줌마의 가녀린 손목을 휘어 잡아 침대에 눕혔다. 호국을 번쩍 안아올렸을 때는 여성답지 않게 꽤 힘이 느껴졌는데, 그런 것 치곤 너무나도 쉽게 제압당했다.

"전 이미 등산 매니아 부부의 자식이니까 다른 사람의 자식이 되어줄 수는 없어요. 그러니 저에게서 '그런 걸' 원하셔도 응해드릴 순 없어요."

호국은 그녀에게 딸랑이를 쥐여주고, 그녀의 모자이크로 뒤덮인 목을 더듬어 간신히 천을 묶어주었다.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것 같은- 새하얀 액체가 담긴 젖병을 들었다.

"어른이나 애나 누구나 다들 힘들어 할 때가 있어요. 스트레스에 짓눌려서 죽어버릴 것 같으면 반쯤 정신이 나가서 미친듯이 폭식을 한다던가, 이유없이 화를 내는 등 비정상적인 행동을 한다고 들었어요."

어린 시절 호국을 병원에 가둬둔 의료인들 중 심리 상담을 담당했던 한 의사가 그런 말을 했었다.

병원에 갇혀지내다시피 했던 호국이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는 모습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괴로운 게 당연하다'는 등 이해자의 위치에서 상담을 해주었던 것이다.

물론 결과적으로 병원에서 갇혀지내다시피 했던 생활이 조금도 바뀌지 않아 호국에겐 효과가 없었지만, 지금 집주인 아줌마에게는 그럭저럭 잘 먹힐 것 같았다.

여러 피부로 뒤섞여 바느질된 거대한 아기의 뱃속에 발견한 낡은 액자. 그 안에는 존재했던 아기의 부모는 집주인 아줌마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초상화에 마치 자신의 아이인양 아기를 그려넣었고, 단 한 번도 사용해본 적 없는 아기 용품들을 이렇게 잔뜩 준비해두었다.

누가 뭐래도 멍청한 것 만큼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 호국이지만, 고된 인생 짬밥이 어디 가는 게 아니라 눈치는 제법 있었다. 때문에 그녀가 미친듯이, 죽도록 아기를 원했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가짜 초상화를 만들면서까지 아기를 원했던 그녀의 울분과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려면 김호국이라는 아기가 필요했겠지만, 호국은 이 나이에 그런 플레이를 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그냥 그녀를 아기로 만들기로 했다.

모자이크 처리된 미녀 금발 여성을 아기처럼 대하는 하드코어 매니아 플레이 중인 23세 청년 김호국.

호국은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 자신의 기억을 저주하고 또 저주하면서, 마스크를 벗어 진짜 아기를 대하는 부모처럼 자애가 느껴지는 미소를 선보였다.

'자살 마렵다.'

그래도 불행중 다행이라면 집주인 아줌마에게 젖병을 물리는 모습을 누구에게도, 가장 믿을 수 있는 팀원인 프롯에게도 들키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이 끔찍한 비밀은 자신이 책임지고 무덤까지 가져갈 생각이었다.

창밖에서 소리없이 날아다니는 플라이 캠의 존재를 호국은 절대로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녹화된 영상의 제목이 '젊은 경비와 집주인 아줌마의 하드코어 매니악 플레이.avi'로 저장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죽어도 알지 못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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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준비가 끝났다."

대한민국이라는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도 육지와는 동떨어진 작은 섬 제주도에 도착한 사내가 중얼거렸다.

과거였다면 여름의 열기가 최고조에 달한 지금, 당연히 피서를 즐겼을 현대인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진실을 감춘 거짓된 세상으로 도피한 상태였다. 사실 여름 겨울 할 것 없이 1년 내내 지구상의 수많은 불신자들이 거짓된 세상에 현혹되어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쓸데없이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덕분에 사내를 포함한 진리교의 형제들이 한층 더 움직이기 편해졌다는 사실이다.

진리교단의 수장, 진리의 대변인이라고 불리는 '그녀'에게서 성전을 이끄는 자의 증표까지 받았다. 매사에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대는 늙은 추기경들도 이번 만큼은 그의 철저한 계획에 행동력을 보고 불만을 품지 않았다.

소용돌이 치는 '눈'이 새겨진 증표를 들어보인 남자, 베넥트 대사제는 망원경을 이용해 다시 한 번 산의 초입을 살폈다.

'시설 입구에 배치한 경비 안드로이드만 해도 4대로군. 시설을 지키기 위해 고정 배치된 기동타격대는 없는 듯 하지만 경비 안드로이드의 숫자가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 날 동안 탐색단 형제들을 통해 TF 산하의 제 6 처리시설 인근을 하나도 빠짐없이 꼼꼼하게 정찰한 베넥트는 경비 안드로이드를 크게 경계했다.

인간이 상대라면 쉽게 제압할 수 있다. 총 한 방만 맞아도 쓰러지거나 즉사할 만큼 약한 게 인간이니까. 하지만 경비 안드로이드는 EMP 쇼크로 회로를 싹 태워버리거나, 철저하게 박살내지 않는 한 좀비처럼 악착같이 덤벼들었다.

그런 게 입구에만 4대가 돌아다니고 있으니, 시설 내부엔 얼마나 더 있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탐색단 일부를 다른 곳에 풀어서 TF내부에 심어둔 첩자들과 접선시켜 추가 정보를 얻긴 했지만, 그마저도 제 6 처리 시설에 대한 정보는 그리 많지 않았다.

내부 첩자조차 제 6 처리 시설을 상당히 위험하다고 판단하는 모양인지, 아예 그쪽으로는 정보 수집을 하지 않으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유인즉슨 제 6 처리 시설은 현재 TF 내에서도 엄청나게 큰 주목을 받고 있는 핫스팟이라 자칫 섣불리 접근했다간 흔적이 남아 발각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TF의 감찰관들이 얼마나 독한 놈들인지 알고 있는 베넥트도 그 이상 첩자들을 몰아붙일 수는 없었다.

결국 자신들은 자신대로 준비를 끝마친 상태로, 최악의 경우까지 상정해두고 예정된 계획을 이행할 수 밖에 없다.

'탐색단은 사후 처리 작업에 쓸테니 남겨둔다고 치면 실질적으로 현장에 투입되는 병력은 안드로이드 1팀과 1개 형제단 뿐이지만...상대는 지난 날 동안 병력이 충원된 적은 없었다.'

경비 안드로이드야 내부에 준비된 것이 있거나, 따로 설비를 만들어 제작되고 있다면 얘기가 다르지만. 그래도 최소한 기동타격대나 추가 경비가 파견된 적은 없었다. 기껏해야 연구원으로 추정되는 젊은 여성 한 명이 충원된 게 전부였다.

베넥트는 지금쯤 차례대로, 소수로 팀을 나눠 제주도에 밀입국했을 형제단에게 무전을 날렸다.

"작전 결행일은 3일 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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