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비 업무 일지 : 집주인 아줌마.mkv(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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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가드-079에겐 정신 오염이 그리 대단한 게 아닙니다.
호국이 지니고 있는 스마트패드와의 접속이 끊어져 강제로 모니터룸으로 되돌아온 프롯이 겨우 운을 떼었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지금 이 상황을 보고도 정신 오염이 그리 대단치 않다는 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해?!"
이미 몇몇 연구원들은 끔찍한 광경을 견디지 못 하고 리타이어 해버렸다. 그들이 차례차례 의무실로 실려가버리고, 이두근과 상두를 비롯한 몇몇 강심장들만이 모니터룸에 남아 있었다.
그 가드-079 조차 ES 6-199가 만들어낸 환상 속에 깜빡 속아넘어가지 않았던가. 심지어 '그런 것'까지 먹었을 만큼.
-TF에선 오래전부터 인간의 정신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개체(ES)들을 별도로 분류하여 '정신오염체'라고 명칭해왔습니다. 해당 개체의 모습이 담긴 그림이나 사진, 동영상을 보기만 해도 환각 증세를 일으킬 만큼 높은 정신 오염을 유발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해야만 정신 오염 효과가 나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위험한 것 아니냐고! 애초에 인간의 정신을 쥐락펴락 하는 게 얼마나......"
열 받은 이두근이 홧김에 소리쳤으나 프롯은 아랑곳하지 않고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건 필시 고지능 AI가 스스로 다양한 정보와 실험 사례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가설임이 분명했다.
-지금껏 TF에서 정신오염체들에게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 했던 이유는 정신 오염을 버틸 수 있을 만큼 강인한 '정신력'을 지닌 인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건 단순히 정신력의 강약 문제가 아니야. 우리야 경험이 쌓일 대로 쌓인 놈들이라 어찌어찌 버티고 있는 거지, 지금도 무서워서 오금이 저릴 지경이라고."
-AI인 제 기준에서 보면 정신력이 강한 인간은 가드-079 한 명뿐입니다.
"그러니까 그 가드-079도 6-199가 만들어낸 환각에 시달리는 걸 봤잖아. 그게 정신력이랑 대체 무슨......"
-지구상의 모든 인류는 가상 현실에 접속할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TF가 자랑스럽게 전 세계의 인류를 대상으로 내놓은 기술의 혜택을 즐기지 못 하는 자는 없습니다. 가드-079를 제외하면.
"그건......!"
뜬금없이 가상 현실 이야기가 왜 나오느냐고 속으로 외치던 이두근은 문득 뇌리를 스치는 한 가지 가능성에 눈이 번쩍 뜨였다.
"상두야."
"왜 그러십니까?"
"가드-079의 프로필에서 가장 특이한 점이 뭐였지?"
"기억력이 엄청나게 좋다, 가상 현실에 접속하지 못 한다, IQ는 이상하리만치 낮다...그정도 아닙니까?"
"그럼 가드-079가 가상 현실에 접속하지 못 하는 이유는?"
상두는 왜 그런 뻔한 질문을 하냐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분고분 답해주었다.
"그야 가드-079의 공간 지각 능력이 미친듯이 좋아서 그런 것 아닙니까. 의사들은 가드-079가 현실을 너무나도 완벽하게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가상 현실의 '가상'에 속지 않는 거라고......어?"
거기까지 말하던 상두도 무언가를 눈치챈 듯 자신이 했던 말을 곱씹어보았다.
"잠깐, 그러니까. 가드-079가 현실을 너무나도 완벽하게 인지하고 있으니까...ES의 정신 오염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아니, 하지만 조금 전에는 분명히 환각에 속아넘어갔는데?"
스스로가 만든 질문의 미로 속에 갇힌 상두를 구하기 위해 이두근이 대신 답을 내주었다.
"가드-079는 그걸 진짜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거야."
"......!"
"내 말 맞지? 가드-079는 처음부터 환각 따위에 영향을 받고 있었던 게 아니야. 그냥 상대가 보여주는 풍경을 그대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 뿐이라고."
-맞습니다. 가드-079은 진짜와 가짜의 괴리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령 당신들이 귀신이라고 불리는 영적 존재를 무서워하는 이유가 뭡니까?
"그런 게 현실에 존재할리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자연스럽게 의문을 품던 뇌가 과부하를 일으키고 괴리감 속에 빠져서 '공포'를 느끼는 거지."
-가드-079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인지하는 만큼 그것을 가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입에 대지도 못할 것을, 그는 먹음직스러운 디저트로 인지하면서 꾸역꾸역 먹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맛이 없다' 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 모두 게워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이 먹은 것이 평범한 디저트가 아닐 거라고 의심부터 하지만......
"가드-079는 그냥 맛없는 디저트라고 생각하는 거야. 왜냐하면 그게 '현실'이니까."
자신이 보고 느꼈던 것을 여과없이 그대로 받아들인다. 거기에 의심 같은 것은 없고, 의문도 품지 않는다. 자신의 상식 밖을 벗어나는 것과 조우해도 단순히 자신의 지식이 부족한 것이라고 치부해버린다.
왜냐하면 가드-079에게 있어서 '가짜'란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까.
"과연. 그래서 가드-079는 ES를 상대할 때 그렇게나 태연할 수 있었던 겁니까. 지금껏 그냥 간덩이가 부었거나 너무 멍청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완전히 핀트를 잘못 잡고 있었던 거야. 애초에 일반인은 TF라는 단체도, 이런 시설도, 온갖 괴상하고 흉악한 ES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해. 대부분은 각고한 노력과 긴 시간을 통해 적응할 뿐이지. 그걸 못 하는 놈들은 일찍 죽거나 미쳐버리는거고."
생각해보라.
촉수처럼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괴식물, 살아움직이는 손가락 크기의 장난감 병정들, 거대한 바퀴벌레, 제 몸을 잘라내고도 태연하게 움직이는 허수아비. 그 모든 것들을 맨 정신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인간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가드-079는 그 모든 게 거짓 한 점 없는 현실이니까, 너무나도 당연한 거니까 그냥 덤덤하게 받아들인거야."
세계에서 유일하게 가드-079만 가상 현실에 접속하지 못 하는 이유? 이 지독한 현실도 그의 인지능력을 뒤집지 못 하는데, 하물며 한낱 기계 따위로 그의 뇌를 속여 가상의 현실을 보여줄 수 있을리가 없기 때문이다.
괴리감이라는 것에 대해 알고, 그 차이를 구분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가상 현실에 접속할 수 있다. 가상 현실이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드-079는 그것을 가짜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VR기기가 그의 뇌에 어떠한 자극도 주지 못 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단순한 문제였다.
-그러니 당신들이 가드-079를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가 보고 있는 광경이 우리가 보고 있는 것과는 다소 다를지라도, 결과적으로는 그가 인지하고 있는 현실이 곧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왜냐하면 그에겐 극복도, 적응도 필요없기 때문입니다.
극복도, 적응도 필요없다는 말이 두 사람의 사고를 크게 흔들었다. 그리고 씁쓸함을 느꼈다.
가드-079는 어딜 어떻게봐도 정상이다. 감정 조절을 못 하는 정신병자도 아니고,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 하는 싸이코패스도 아니다. 그저 아주 조금 상식이 부족할 뿐인, 지극히 '멀쩡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에 불과하다.
다만 그는 평생토록 괴리감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살아야 한다. 죽을 위기에도 처해도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으며, 비정상적인 상황도 정상적으로 인지해야만 한다.
평생 무지(無知)함을 느끼며, 공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공포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언젠가 가드-079도 죽게되겠지만, 그는 죽기 전까지 무섭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죽을 것이다.
그건 누가 일깨워주고 가르쳐서 얻을 수 있는 지식 같은 게 아니다. 본능적으로 느끼는 원초적인 감정이다.
모두가 괴리감을 느끼고, 공포를 느끼는 비일상속에서, 그만 아무것도 느끼지 못 하고 가상 현실에 접속할 수 없는 상태로 고립되는 셈이다. 그건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지독한 외로움이었다.
"우리가 가드-079에 대해 이해를 못 했던 게 아니야. 그 사람이 우리가 뭘 이해 못 하는지 몰랐을 뿐이지."
이두근은 플라이 캠을 조작해서 지하실을 한참 돌아다니다가 다시 올라온 가드-079의 모습을 잡았다.
유해 가스 중독을 방지하기 위해 개미 부대에게 따로 지급되는 마스크를 착용한 그가 2층으로 향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그의 뒷모습은 위축되어 있기는커녕 위풍당당한 걸음걸이로 방해꾼들을 따돌리고 있었다.
일반인이 봤더라면 오줌을 지렸을지도 모르는 끔찍한 몰골의 괴물들을 그는 고작 '방해꾼' 정도로 생각한 것이다.
"항상 보는 광경이지만, 미쳤다는 말 밖에 안나오는군."
"저런 사람을 도와줘야 하느니 마니 떠들었다는 사실에 웃음이 나옵니다."
돕는다? 누가 누굴?
가드-079에게 필요한 것은 도움이 아니었다. 그저 열심히 그의 뒷구멍(?)이 헐도록 빨아줄 아첨꾼들과 높으신 분들의 인정, 그리고 합당한 노동에 따른 대가(월급)만 있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갑자기 마음에 편해졌어. 아무것도 고민하고 싶지 않아."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런 걸 '버스 탄다' 고 한다는 모양입니다."
"시대에 뒤쳐진 새끼. 버스 탄다가 뭐냐 버스 탄다가. 쩔 받는다고 해야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잔뜩 흥분해있던 두 사람은 얌전히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올려다보았다.
생각해보니 자신들은 그저 관찰하고 기록하는 잡무 담당에 지나지 않았다. 정신 오염이고 뭐고 그런 건 현장에서 뺑이 치는 가드-079에게 맡겨두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저건 뭐하는 거냐?"
"저한테 묻지마십쇼. 괜히 심란해지니까."
무난하게 볼펜 하나로 괴물 집단을 제압한 가드-079가 마침내 허튼 수작질을 부렸던 6-199의 방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순간, 모니터에 잡힌 광경은 아늑한 침실과 잠자리 준비(?)를 끝마친 6-199의 야시시한 모습이었다.
"솔직하게 말해도 되냐?"
"결혼도 하신 분이 허튼 소리 입에 담지는 맙시다."
상두의 일침에 이두근은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어가면서 초월적인 인내심을 발휘했다.
물론 한창때인 20대 초의 젊은이, 가드-079도 그런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을지 어떨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지만.
"가드-079 선수. 남자라면 그냥 넘기기 힘든 시츄에이션을 어떻게 넘길 것인가. 게다가 상대는 비인간! 무려 2급 ES!!"
해설자 모드로 들어간 이두근은 긴장과 적막감이 감도는 상황 속에서 사운드를 비우지 않기 위해 되는대로 떠들어댔다. 누가 보면 뜨고 싶어 안달난 하꼬 BJ로 착각할 것 같았다.
사실 모니터룸에 남아있는 소수의 인원들은 내심 가드-079가 '뭔가' 저질러줬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없지는 않았다.
따지고보면 약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가드-079가 보여준 모습은 모두 나사가 하나둘쯤 빠진 것 같은 모습 뿐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그가 일반적인 남자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법이나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저런 상황에서 반응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가드-079의 사고가 아주 엇나간 게 아니란 걸 알 수 있을테니까.
그래서 상두도 이 분위기에 편승하기로 했다.
"가드-079 선수 움직입니다."
그 날, 가드-079의 취향 맞추기 내기에 10만 단위의 크레딧 카드 십수 장이 판돈으로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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