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비 업무 일지 : 집주인 아줌마.mp4(1) >
먹힌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호국은 지금 아기에게 먹히고 있었다.
사다리에서 튕겨나온 호국이 거대 아기의 손에 붙들려 머리부터 집어삼켜졌다. 아기들은 손에 닿기만 하면 뭐든 입에 넣고 본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우훗! 좋은 조임이다."
머리부터 집어삼켜진 탓에 사방팔방에서 조여오는 살덩어리들이 과도한 업무(?)로 지친 호국의 목 근육을 적당히 지압해주었다. 대형 백화점에 가면 한 번씩 시승해볼 수 있는 마사지 의자 같았다.
-가드, 서둘러 나가야 합니다.
"애가 심심해하는 것 같은데 잠깐 놀아주고 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놀아주는 것 치곤 이미 상반신이 먹힌 상황이었지만 호국은 태연하게 손전등으로 아기의 목구멍 속을 비췄다.
이만큼 큰 아기는 실물 소방차 정도는 사줘야 밀고 다니면서 놀 수 있을텐데, 바늘 천지인 이곳에 그런 장난감이 있을리가 없었다.
호국은 필시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아기가 자신을 놀이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민 지원을 통해 연로한 노인들과 많은 접점을 가진 그였지만, 종종 보육원에 가서 아이들과 놀아준 적도 있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들은 스펀지와 같아서 뭐든 제대로 배우기만 하면 금세 익힌다. 이는 놀이도 마찬가지인데, 제대로 놀아본 적 없는 아이들과 즐겁게 놀아주면 반응이 굉장히 좋았던 것으로 기억했다.
"애들은 어차피 금방 지쳐. 조금 놀다가 지쳐서 잠들겠지."
-크기가 자동차와 맞먹는 아기가 지쳐 잠들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까? 애초에 이런 건 아기가 아닙니다.
"그럼 뭐 이 상황에 자장가라도 불러볼까? 아직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아기의 고막에 대고 비트 좀 쪼개봐?"
그러는 와중에도 호국의 몸은 점점 더 깊숙한 곳까지 집어삼켜져, 마침내 긴 목구멍을 타고 거대한 가죽 주머니 같은 공간에 안착했다. 인간으로 치면 위장에 해당하는 위치였다.
비위가 좋은 호국도 목구멍에선 어찌어찌 버틸 수 있었지만, 위장으로 떨어지니 퀴퀴하고 눅눅한 곰팡내가 진동하는 것 같아 결국 마스크를 착용했다.
-이대로 영영 빠져나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건 아니야. 일단 내 몸은 멀쩡하잖아."
바로 옆에 놓여있는 해골 하나를 집어 배개 삼은 호국은 비스듬한 자세로 누웠다.
어디 뼈가 부러진 것도 아니고, 과다 출혈이나 독에 중독된 것도 아닌 이상 호국을 물리적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사실 지금이라도 이곳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었다.
악독한 행보관이 설계한 각종 함정지대에서 생존하고, 재난에서 탈출한 경험이 있는 호국에게 그정도는 껌이었다. 그런데 프롯은 영 믿지 않는 눈치였다.
-가드의 신체 능력이 우수한 것은 본 AI도 인지하고 있습니다만, 지금 이 상황은 어딜 어떻게봐도 평범한 상황이 아닙니다. 실제로 행동에 큰 제약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난 어릴 때 종종 옷장에 들어가곤 했어."
호국은 해골 옆에 놓인 갈비뼈를 양 손에 하나씩 잡고 드럼 스틱처럼 통통 두들기며 말했다.
"옷장은 어둡고, 조용하고, 답답한데다 좁기도 해. 그런데 왜 나는 굳이 옷장으로 기어들어 갔을까?"
-...가정 학대를 받았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맞아. 우리 부모님은 나랑 여동생을 IQ로 좀 차별하긴 해도 기본적으로 좋으신 분들이거든. 정답은 그리웠기 때문이야."
-그리웠다? 어째서 그런 공간을 그리워 하는 겁니까?
"옷장에 쌓여있는 이불과 배개에서 가족들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모두 가상 현실로 떠나버리고나면 집에 혼자 남겨진 내가 가족들을 느낄 방법이 그것 밖에 없었거든."
-......
"무엇보다 안심이 돼. 좁지만 내게 딱 맞고, 어둡지만 쓸데없는 게 보이지 않았으니까. 조용해서 듣고 싶지 않은 것을 들을 필요도 없었고. 답답함은...숨구멍만 있으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어. 중요한 건 지금도 내가 그런 분위기를 좋아 한다는 거야."
가드 전용 기숙사가 존재함에도 호국은 여전히 좁은 침낭 속으로 기어들어가서 잠을 잔다.
편안한 침대를 놔두고 침낭에서 자는 이유가 뭐냐고 주변에서 캐물은 적이 있었지만, 호국은 군에 전역한지 얼마 되지 않아 침낭이 더 익숙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실 좀 이상하더라고."
-이상하다고 하신다면?
"여기선 달콤한 냄새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아."
호국은 사실 B61에 들어섰을 때부터 예민한 코가 달콤한 냄새를 감지했다는 것을 인지했다.
어디서 흘러나오고 있는지 뻔히 알 수 있는 냄새. 벌과 나비가 꽃 향기에 이끌리듯 십자가상을 넘어 고위험군에 들어선 순간 반쯤 확신하고 말았다.
코가 삐뚤어질 정도로 달콤한 냄새가 진동하는 것 치곤, 저택 주변이나 저택 내부에서 달콤한 향기의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한창 식사 준비중이라 그런 냄새가 풍겼겠거니 싶었다. 이만한 크기의 대저택에서 준비하는 식사라면 분명 규모가 굉장해서 그런 냄새가 풍겨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당장 대인원 식사를 준비하는 군대에서만 해도 식사 시간이 가까워지면 밥 짓는 냄새가 꽤 멀리 퍼져나오기도 했다.
그러다 귀부인에게 안내 받아 함께 티타임을 즐기면서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건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호국의 코를 괴롭혔던 달콤한 향기의 원흉이었다.
"완전히 단절된 공간에 들어와서야 냄새가 간신히 사라질 줄이야. 만약 네 말대로 다시 밖으로 나갔다면 정말 코가 삐뚤어져 버렸을 거야. 그렇지?"
-......
호국은 이어셋과 연결되어 있던 자신의 스마트패드를 꺼내들었다. 프롯을 담아두는 전용 스마트패드임은 틀림없었지만, 공교롭게도 지금은 전원이 꺼져 있는 상태였다.
아마 저택 내부에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아 스마트패드의 전원이 나가버린 것이리라. 덕분에 프롯 역시 호국에게 직접적으로 대화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터.
그렇다면 귀부인과 합석했을때부터 지금까지, 호국과 대화를 하고 있던 것은 대체 누구였는가? 아니. '무엇'이었는가?
-당신의 프로필을 처음 봤을 때 부터 범상치 않다고는 생각했는데, 설마 이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언뜻 신사적인것 같으면서도 장난기가 섞인 경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이어셋은 이두근으로부터 받은 것이었고, 연결 대상은 프롯 뿐이었다. 제 3자가 통신에 간섭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저는 오래 전부터 당신을 관찰했어요. 유독 혼자 동떨어져서 헛짓거리를 하고 있던 당신이 무척이나 신경쓰였기 때문이죠.
"그래서?"
-당신이 프롯이라고 이름지은 그거, 제가 만들었다는 건 아시죠? 당연히 그것에 대한 접근, 통제 권한도 가지고 있어요. 왜냐하면 저는 그것의 창조주 이니까요.
호국은 이어셋을 빼들고 손으로 으깨버리려 했다. 프롯의 LA 스토리에서 자주 등장하곤 했던 '창조주'인 듯 했지만, 호국은 그에게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그저 신성한 업무 수행 중이었던 자신을 교묘하게 방해하려 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 그것도 같은 팀원인 프롯의 목소리까지 훔쳐 쓰면서.
-이러나저러나 당신은 이미 귀부인의 영역 안에 있어요, 가드-079. 당신이 숨 죽인 채 숨어있는 아기의 뱃속에 실패자들의 유해가 보이지 않나요? 모두 그녀의 정신 오염을 피하기 위해 옷장 속으로 숨어들었지만, 결국 빠져나갈 방법을 찾지 못해 그렇게 된 거예요. TF 역사상 최고의 트러블 메이커인 당신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요?
잔뜩 비꼬아대는 듯한 상대의 거슬리는 말투에 호국은 코웃음을 쳤다.
"난 무려 월급 천 만원이나 받는 사람이야."
일을 잘 하니까 월급을 천 만원이나 받는 것이고, 그렇기에 여전히 호국은 TF 소속 경비를 맡고 있다. 즉 호국은 TF내에서 만큼은 인정받은 노예인 셈.
-긍정적인 태도 좋아요. 그러니 어서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해보세요. 그리고 제 기대치를 더욱 더 높여주세요! 저는 '당신들'중 '당신'이 가장 낫다고 생각하니까요!
빠직.
이어셋을 뭉개버린 호국은 파편들을 훌훌 털어버렸다.
"말 안 해도 그럴 거야."
남의 돈 받아먹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호국은 마스크와 연결된 휴대용 소형 산소통의 잔량을 체크했다. 90% 정도 남아있었으니 대충 30분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전히 전원이 꺼져 있는 스마트패드를 가슴팍에 착용한 뒤, 꾸물거리는 위장벽을 손으로 잡고 목구멍을 거슬러 올라갔다. 발치 아래에서 낡은 사진이 들어있는 작은 액자가 보였으나, 구태여 집어들지는 않았다.
사진 속의 중앙에 앉아있는 귀부인과 그녀의 뒤에 서있는 젋은 집사, 그리고 그의 옆에서 갓난아기를 팔에 안고 있는 젊은 하녀의 모습은 이미 기억 속에 담았기 때문이다.
"집주인 아줌마가 히스테리 부리면 다들 피곤해지지. 나도 우리 아파트 부녀회장님이 히스테리 부리는 거 경험해봐서 알아."
"아부부부부......!"
입 속에서 빠져나온 호국은 흉물스럽게 바느질되어 있는 거대 아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이와 애완동물의 공통점은 비단 귀엽다는 것만이 아닌, 쓰다듬는 것도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여전히 침을 질질 흘리는 아기는 이번엔 사다리를 후려치지 않았다.
용케 끊어지지 않은 사다리를 다시 붙잡은 호국은 대체 얼마나 많은 이들을 찌르는데 사용되었을지 모를 바늘 지옥을 빠져나왔다.
지독할 정도로 달콤한 향기가 감도는 저택에 이상할 정도로 짙은 피비린내가 묻어있는 바늘은 어울리지 않았다.
"행보관 가라사대, 서로 정반대되는 것들이 같은 장소에 놓여있는 상황이라면 대부분은 좆된 것이니 최대한 발버둥치라고 하셨지."
가령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위험 지역에서 유독 행복해보이는 '멀쩡한' 민간인을 발견한다면, 그들은 매우 높은 확률로 민간인으로 위장한 테러리스트다.
가령 행복한 냄새와 혐오스러운 냄새가 뒤섞인 비밀스러운 대저택이라면,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집값이 지하 밑바닥까지 추락하게 될 것이다.
"집주인 아줌마는 이제 큰일난거야."
호국이 나선 이상, 이 대저택의 집값이 떨어지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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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곳에 감춰진 벙커치곤 그 위치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자신을 포함해서 무려 둘이나 된다.
그 사실에 사내는 실소를 금치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비밀스러운데, 한 명이 알고 있어도 많이 알고있는 것을 무려 둘이나 알고 있다니!
과연 그러고도 '세상에서 가장' 이라는 타이틀을 쓰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객관적으로 보면 충분히 그런 타이틀을 쓰고도 남겠지만, 사내에겐 불만스러운 사실이었다.
그래도 사태가 이 지경이 되었으니, 세상에서 가장 비밀스럽지만 무려 두 명이나 위치를 알고 있는 시설에 숨지 않았다면 위험할 뻔 했다.
-No signal
거대한 모니터를 가득 메우고 있는 한 줄의 영어.
하지만 그것이 시사하는 바는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무슨 말을 못 하게 하네요."
보통은 다들 '넌 누구냐?', '뭐가 목적이냐?' 같은 진부한 대사라도 읊는 법이건만.
사내가 잠깐이나마 직접 연결되었던 청년은 그런 진부함과는 굉장히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클리셰를 혐오하기라도 하는양 사내의 말을 듣는둥 마는둥 하더니 급기야 통신을 끊어버렸다.
프롯인지 뭔지 하는 실패작의 목소리부터 말투까지 완벽하게 따라했건만, IQ가 84밖에 안 되는 것 치곤 꽤 빨리 눈치챘다.
그건 평범한 인간이 가진 직감 따위가 아닌, 조금 다른 종류의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마치 오랫동안 전장에서 굴러먹던 베테랑 용병이나 가질 법한 눈치였다.
"어쨌든 이제 훔쳐 듣는 건 못 하겠군요. 꽤 재미있었는데."
제 6 처리시설에 심어둔 마지막 '귀'까지 모두 제거되자 사내는 미련없이 채널을 돌려버렸다.
이 세상을 독자적으로 즐기고 있는 자들은 무수히 많았다.
모든 인류가 '낙원'으로 가기까지 아직 조금 더 시간이 남아있으니, 사내 또한 남은 시간을 여유롭게, 효율적으로 즐길 생각이었다.
가끔은 자신처럼 머리 쓰는 자들도 적당히 쉬어줘야 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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