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피해피 고문재단-126화 (126/209)

< 경비 업무 일지 : 귀부인(5) >

"우욱 씹!"

누군가 헛구역질을 하며 책상 앞에서 뛰쳐나갔다.

점멸분쇄기가 제 6 처리시설을 빠져나갔다는 걸 알았을 때도, 쌍둥이세포가 완전히 제 힘을 되찾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다들 심각한 반응을 보였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 거대한 모니터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실시간 녹화 영상은 일반인의 정신으로는 감히 버틸 수 없는 것이었다.

언제 도래할지 모르는 미래의 위협을 알게된 것과 참을 수 없을 만큼 지독한 역겨움을 온전히 관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으니까.

"상두야."

"...예."

"분명 정신 오염 필터링 켜져 있다고 하지 않았냐?"

"켜져 있는 겁니다. 지금도 프롯이 실시간으로 보정해주고 있는 겁니다. 프롯이 보정해주지 않았더라면......"

"그런데 이정도라고? ES 6-199에 대한 정보가 아무리 부족했다지만 정신 오염 능력이 이정도로 강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없는데."

이두근은 눈을 질끈 감은 채 손가락으로 눈두덩이를 가볍게 문지르며 말했다.

연구원으로 위장한 이곳의 인원들이 모두 베테랑 조사관이긴 해도 근본적으로 다루고 있던 분야가 다른 건 어쩔 수 없었다. 토끼 사육사가 하루 아침에 사자 사육사가 된 기분이라고 할까.

"진짜 상층부는 죄다 미친 놈들밖에 없군. 이런 건 전문 인력에게 맡겼어야지. 이홍선 그 병신 같은 놈한테 여지껏 맡기고 있던 말이야?"

"그러니까 제 6 처리 시설이 재단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곳 아닙니까. 솔직히 말해서 저희도 처음 임무 받았을 땐 반쯤 죽으라고 내보낸 줄 알았잖습니까."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자신의 자리에 석상처럼 굳어버린 신입에게 들리지 않도록, 상두가 소근거리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차라리 통제관을 붙이는 게 더......"

"그럼 필시 가드-079랑 마찰을 빚게 될 겁니다. 그 놈들은 시설 전체를 통제할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거 아시잖습니까. 개미부대보다 더한 놈들인데......"

엄밀히 말하자면 개미부대는 뒷처리와 은폐에 능한 청소부였다. 반면 통제관이란 것들은 사람이 아닌 것들을 상대하기 위해 TF에서도 많은 윤리적 문제를 포기하면서 만들어낸 인공적 존재들이었다.

인공 생명체와 기계를 융합. 거기에 대량의 약물과 의료 기술을 섞어서 창조한 궁극의 생명체. 아니, 생명체라고 부를 수나 있는지 의심스러운 것들.

그들은 오직 대규모 ES 탈주 사건이 발생하거나, 1급, 혹은 2급 ES를 처리, 은폐하기 위해서만 출동하는 특수부대였는데, 명령권자는 단 두 명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TF 최초 설립자와 최고 수석 연구원. 심지어 두 사람 모두 찬성해야 움직일 수 있는 TF내 최고의 전력. 그걸 불러들일 수 있다면 제 6 처리 시설도 안전해지겠지만......'

이두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3급 조사관이 많이 알아야 얼마나 알겠느냐마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건 너무 위험했다.

세계에서 단 둘뿐인 인공모체에서 만들어낸 호문클루스를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악의 형태로 진화시킨 존재는, 어떤 의미에선 대량의 핵 미사일보다도 위험했다.

머릿속에 제어 칩을 박아두지 않았더라면 ES보다 먼저 인류를 절멸시켰을지도 모른다고 알려진 것들이다. 동물원의 동물들이 좀 날뛴다고 전차를 몰고 올 수는 없는 법.

"그래. 내가 생각해도 통제관은 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저건 그냥 넘길 수 없는 문제야. 그 가드-079의 정신이 오염되고 있잖아."

"지금이라도 돌아오라고 명령합니까?"

"안 들리겠지."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전체 방송으로 가드-079를 불러들이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창가에 비친 그는 여느 때처럼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먹어선 안 될 것'을 먹고 있었으니까.

찻잔에 담긴 시뻘건 액체가 무엇인지, 접시 위에 놓인 붉은 덩어리들이 무엇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아마 ES 6-199에게 지급된 목격자들이 희생되었을 것이다.

"그럼 어떡합니까? 저대로 내버려두면 당할 겁니다."

"가드-079가 그리 호락호락하게 당해줄 인간은 아니야. 어쩌면 저게 연기일수도 있어."

"가드-079가 아무리 인간같지 않다고 해도 명백하게 인간 맞습니다. 저게 연기면 세상 모든 스타 배우들은 길거리에 나앉아야 합니다."

부정할 수 없는 부하의 지적에 이두근은 침음을 흘렸다.

지금껏 그 어떤 ES와 마주해도 정신 오염에 중독된 증세를 보이지 않았던 가드-079가 너무나도 허무하게 당한 사실이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가드-079가 죽으면 우리도 다 죽는 겁니다."

상두의 말에는 한치의 거짓도 없었다. 가드-079가 죽으면 단순히 TF에서 해고를 당하는 게 아니라 정말 죽는다. 지금껏 그가 억제해주고 있던 ES들이 일시에 날뛸 것은 물론이고, TF 상층부에서도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테니까.

어느 쪽이든 죽는 것은 확정이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팬클럽까지 만들었는데, 그 모든 게 바로 지금 무용지물이 되려 하고 있었다.

"업무 중지 코드 발령해."

우선 사람부터 살리고 봐야지. 그렇게 중얼거린 이두근은 가드-079에 대한 기대치를 살짝 낮췄다. 정신 오염에 대한 내성이 상당히 낮아 관련 능력을 보유한 ES에겐 매우 취약하다는 평가도 더했다.

바로 그때.

"가드-079 움직입니다!"

"뭐라고?!"

"말도 안돼!"

"미친! 어떻게 움직이는 거야?!"

모든 이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외쳤다.

"우, 움직인다고? 어떻게? 정신 오염에 중독되었을 때는 주변의 도움 없으면 ES의 영역 밖으로 못 빠져나오는 것 아니었나?"

그래서 이두근도 업무 중지 코드를 발령하라고 한 것이다. 그냥 돌아오라고 명령하면 본인이 안 들을 게 뻔하니까,

하지만 업무 중지 코드를 발령하면 모든 시설의 시스템이 재단 소속 직원들의 안위를 최우선시 하여 가능한 모든 인원을 '강제로' 안전 구역까지 끌고 온다.

갑자기 천장이나 벽에서 기계 팔이 마구 튀어나와 무력화된, 혹은 당하기 직전의 재단 직원만 쏙 빼내가는 것이다.

다만 그런 짓을 저지르면 순간적으로 먹잇감을 빼앗긴 ES들이 굉장히 호전적으로 변하며, 폭동을 일으킬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치솟는다는 위험이 있었다. 그밖에도 관리봇의 연산 처리 능력을 재단 직원 구출에 사용하게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시설의 방비가 취약해질 수 밖에 없었다.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고급 인력(연구원)을 구하기 위해 긴급시에만 사용되는 프로토콜이었다.

ES의 간섭에 의해 정신이 오염된 재단 직원들은 크게 두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순식간에 광인이 되어 미쳐 날뛰거나, ES가 원하는대로 순순히 움직여주거나.

아마 ES 6-199는 가드-079가 계속 끔찍한 것들을 먹어줬으면 했을 것이다. 배가 터질 때 까지. 그러고나서 일시적으로 정신 오염을 풀어버려 큰 충격을 준 뒤, 절망을 심어주려 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단순히 자신의 티타임에 일반인이 끝까지 어울려주면서 탐스럽게 무르익는 것을 지켜보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러한 희생자를 메인 디쉬로 처리하는 것도 대부분의 ES가 지닌 특징 중 하나였으니까.

중요한 건 어느쪽이든 가드-079가 갑자기 자리를 뜨는 일은 없을 거란 소리다.

ES 6-199 역시 크게 당황했는지 떠나는 그를 향해 팔을 내뻗어 만류하는 제스쳐를 취했다. 내부 음성 역시 필터링 되어 들리지는 않았지만, 아마 평범한 인간의 청각으로는 버틸 수 없는 괴음이 발생했으리라.

눈과 입이 바느질된 누더기 노집사가 그의 앞을 막아섰으나, 가드-079는 가볍게 그를 밀치고서 방을 나섰다. ES의 '부속품'을 일반인이 힘으로 밀어내버린 것이다.

"미친."

"상층부에 보고합니까?"

"통제관 들이닥치는 꼴 보고 싶으면 해."

상두는 대답 대신 플라이 캠의 위치를 이동시켰다. 가드-079의 생체 신호를 따라 가니 저택의 1층 복도 끝에 도달했다. 3D 입체 구조도를 살펴보면 영락없는 화장실이었다.

"토하고 있습니다."

상두가 조심스럽게 음량을 증폭해보니 화장실 안에서 누군가가 격렬하게 토악질을 해대는 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들어왔다. 연구원들 모두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차마 입을 열지 못 했다.

"정말 연기였다고......?"

"그걸 얼굴빛 하나 안 바뀌고 다 먹었단 말이야?"

"나, 난 저렇겐 못 해. 사람이 어떻게 그걸 버텨? 절대 못해!"

"그럼 가드-079도 사실은 ES가......!"

"그만."

한순간에 밀물처럼 쏟아져 나오던 연구원들의 경악 서린 목소리들이 잦아들었다.

"지금은 가드-079가 안전하게 귀환하길 바라자고. 그리고 신입좀 챙겨줘라. 첫 근무부터 못 볼 꼴 보여준 것 같다."

조사팀 내에서 의무병에 해당하는 한 여성이 조심스럽게 그녀를 부축해 휴게실로 옮겼다. 교육 훈련을 무사히 완료했어도 아직은 초짜.

TF에서 적응하는 방법은 단 하나 뿐이다. 그저 이 모든 현상에 익숙해질 수 밖에. 지금도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약에 절어 살면서도 TF에 매달려있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오히려 가드-079의 여동생이라 기대가 너무 컸던거야. 저게 정상인 거라고.'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신입의 정신력이 약해빠졌다느니,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았다느니 같은 망발을 내뱉지 않았다. 이 바닥에서 구르고 구른 자신들도 이럴진대, 하물며 이제 막 사회 생활을 시작한 20대 초 아가씨가 버티면 얼마나 버티겠는가.

"감시는 계속 한다. 이거 전부 기록으로 남겨야 해."

"어차피 보고 하지도 않을 거면서 기록은 왜 남깁니까?"

"FCD에 보고하면 보나마나 가드-079를 잡아서 해부하라고 난리치겠지만, 최소한 두 사람 정도는 이 기록을 봐야 하니까."

오히려 이두근은 전 세계에 널리 퍼진 수많은 재단 관계자들 중에 믿고 보고할 사람이 딱 두 명 뿐이라는 사실에 참담할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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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부부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존재는 부부부, 하고 입술을 튀길 때마다 대량의 침을 내뱉는 아기였다. 그냥 아기도 아니고 거대 아기. 이른바 초(超) 우량아였다.

-가드. 즉시 대피를 권고합니다.

"애가 침좀 흘린다고 피하면 그림이 좀 이상하잖아. 애들이 침 흘리는 건 당연한 건데."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프롯이 경고했지만 호국은 신변의 위협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프롯을 묵살시켰다. 호국이 스릴 매니아가 아닌 이상 위협이 느껴지면 당연히 피하는 게 맞지만, 세상 어느 천지에 걸음마도 떼지 못한 갓난아기를 위험하다고 보겠는가?

'물론 크기가 좀 크지만...생김새가 좀 다르다고 차별하는 건 존나 나쁜 일이잖아.'

이 세상에는 무려 키가 1m도 안 되는 난쟁이 어른이 있는가 하면, 키가 2m 50cm를 훌쩍 넘는 거인도 있다. 그러니 자동차 크기만한 아기가 있다고 해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자동차 크기만한 아이를 낳는 빌라만한 크기의 인간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보다 애 상태가 조금......"

눈 앞의 거대 아기는 기저귀 대신 거적데기 같은 것을 허리춤에 두르고 있었다. 게다가 뽀얀 아기 피부 대신 거무죽죽한 피부나 때묻은 피부가 각자의 영역을 가진 채 아기의 전신을 뒤덮고 있었는데, 마치 서로 다른 피부를 덕지덕지 발라놓은 것 같았다.

"애를 이런 곳에 내버려둔 것도 그렇고, 건강 상태도 영 안 좋은 것 같은데...이게 말로만 듣던 아동 학대인가?"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내가 가정 범죄 다큐멘터리에서 봤어."

놀랍게도 배 아파 낳은 자식을 마구 때린다던가, 굶기고, 방 안에 가둬두는 어메이징한 정신머리를 가진 부모들이 실존했다.

"우선 사람부터 불러야겠어."

딱히 대피할 생각은 없었지만, 호국은 일단 이두근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사다리를 붙잡았다.

그 순간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고목같은 아기의 팔이 낡은 사다리를 후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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