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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해피 고문재단-117화 (117/209)

< 경비 업무 일지 : 40일째(1) >

"후우! 간만에 스트레스 좀 풀었네."

우드드드득.

잔뜩 뭉쳐있던 어깨 근육을 풀어준 이두근은 흘가분한 표정으로 자신의 일터인 제 6 처리시설에 복귀했다.

FCD 의원과 최고위원회가 개최하는 본부 회의에서 가드-079의 능력과 효용성을 입증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실제로 증명할 수 있는 데이터가 있었고, 또 가드-079는 몇몇 FCD가 눈여겨 보고 있던 존재라 암묵적인 가산점이 있었던 것이다.

현재 그의 정식 직급은 경비팀장이지만, 정작 당사자인 가드-079는 팀장이나 일반 경비나 거기서 거기 아니냐는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오히려 월급이 올랐다는 사실을 더 기뻐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그냥 시설 관리비 명목으로 가드-079에게 지원금을 더 땡겨주는 것으로 내부에서 합의보았다. 또한 그의 직급은 경비팀장으로 두는 대신, 특별한 권한을 하나 더 추가하기로 했다.

본래 2급 이상의 현장지휘관, 연구소장, 처리소장 등에게만 허용되는 독립 부대의 지휘 권한을 주기로 한 것이다.

이두근이 면밀히 관찰한 가드-079는 정당한 업무를 수행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을 좋아하는 천성 노동자였으며, 또한 누군가와 함께 일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혼자 일하는 게 편하다고 말하면서도 정체모를 존재를 부하로 두고 있거나, 어디서 구해왔는지도 모를 괴상한 안드로이드와 AI를 동료로 삼았다.

때문에 심리학을 전공한 한 FCD가 그에게 독단적으로 지휘할 수 있는-FCD가 통제할 수 있는-부대를 일시적으로 거느리게 해보자는 의견을 냈다.

그가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된다면, 더욱 더 많은 노동력을 손에 넣게 된다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잠재적 가치를 발견할 수도 있을 거라는 논리였다.

가드-079는 기본적으로 메뉴얼을 중시하며, 부당한 명령이 아니라면 상명하복을 철저하게 따른다. 또한 높은 연봉과 빵빵한 복리후생을 자랑하는 TF에 상당한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대뜸 TF에게 총부리를 돌릴 일은 없을테니, 이두근의 감시하에 비밀스러운 실험을 진행하게 된 것이다.

'분명 기뻐하겠지. 그런 성격이라면 아주 껌뻑 죽을 거야.'

돈도 주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아랫것(부하)들도 준다. 게다가 특수 임무를 통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도 증명되었으니, 인력의 보충 또한 자연스럽게 진행시킬 수 있었다.

우선은 오랜만에 재회할 그에게 선물부터 건네주기 위해 당당하게 모니터 룸에 진입했다.

서류가 휘날리고, 비명소리가 울려퍼지고, 자신의 부하들은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

비상벨만 울리지 않았다 싶을 뿐이지, 마치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보였다.

"아 팀장님! 이제야 오시면 어떡합니까?!"

"다들 쉬라고 휴가까지 준 사람한테 다짜고짜 짜증부터 내는 거야? 대체 무슨 일이길래......."

자연스럽게 시선을 대형 모니터로 향한 이두근은 아찔한 느낌에 눈을 질끈 감았다.

"또 가드-079야?"

"아닙니다. 아니...맞나?"

"말을 하려면 똑바로 해. 가드-079가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으면 그건 가드-079가 원인인거야."

"그럼 가드-079가 맞습니다."

아이고. 기껏 사온 제주 감귤 선물 세트를 바닥에 내던진 이두근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어떻게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없냐? 분명 특수 임무 끝난지 얼마 안 됐으니까 나 돌아올 때 까지는 적당히 쉬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

"가드-079는 잘 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실종되고 나서부터......"

"실종됐었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대체 나 없는 동안 무슨 꿀잼 스토리가 있었던 거야? 보따리에 싸두지만 말고 전부 풀어!!"

"말하려면 좀 복잡한데...일단 CCTV 기록부터 확인해보십쇼."

부하가 가져온 스마트패드에서 사건 당일 가드-079를 집중 관찰하고 있던 CCTV의 녹화 영상이 재생되었다.

배속으로 돌려본 영상은 그가 하루종일 먹고 자고 놀기만 반복하는 지루한 일상이었다. 그 놈의 제주 감귤이 프린트 된 잠옷은 또 어디서 구한건지, 하루종일 잠옷만 입고 돌아다녔다.

그러다 오늘로부터 정확히 이틀 전에 해당하는 날, 이두근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던 꿀잼 스토리가 전개되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에 오른 호국이 B40으로 올라가다가, 그대로 자취를 감춘 것이다. 시설 내부의 CCTV란 CCTV는 다 돌려봤지만 그의 모습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다 프롯과 해피라는 이름의 경비견, 그리고 CCTV 영상에서 유독 노이즈를 자주 일으키는 희끄무레한 존재가 B40에서 합류했다.

이후 그들은 엘리베이터의 문을 강제로 개방해서 내부로 진입했으며, 마찬가지로 이틀 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다들 뭘 한 거야?"

"저희도 그게 궁금해서 몇 명이 방호복을 입고 확인하러 갔습니다만...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 앞뒤가 안 맞잖아.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어떻게든 알아봐야 했을 것 아냐."

"탐사용 안드로이드까지 파견했지만 헛수고였습니다. 엘리베이터도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고, 기계실이나 내부 통로를 철저하게 뒤져봐도 개미 새끼 한 마리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팀장님이 복귀하시기 전에 가드-079도 돌아온 겁니다."

"그럼 다 된 거 아냐. 뭐가 문제이길래 다들 이렇게 정신사납게......"

최근까지 녹화된 마지막 영상을 확인하던 이두근은 말을 하다말고 굳어버렸다.

"뭐야 이거."

훤히 열려있는 엘리베이터의 문 너머에서 엉금엉금 기어나온 가드-079는 몸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있었다.

우스꽝스러운 잠옷에서 평상시의 작업복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은 둘째치고, 그와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존재가 이두근의 시선을 강렬하게 끌어당겼다.

흰색과 검은색이 적절하게 뒤섞인 거대한 점액질 덩어리가 엘리베이터 통로에서 빠져나오기가 무섭게 인간의 모습으로 변화했다. 뒤돌아선 가드-079는 눈치 못챈 듯 했지만, 영상 속에는 노이즈 하나 없이 깔끔하게 잡혔다.

"이, 이거...이거...그거지? 그거 맞지?"

"바로 조금 전에 확인해보려고 제 1 처리시설 측에 검증 자료 요청했습니다. 근데...아마 맞을 겁니다."

"말도 안 돼. 이게 여기서 왜 나와? 아니, 이거 이미 '처리'된 거잖아! 최고 수석 연구원 양반이 책임지고 처리해서 제 1 처리시설 소장이 처리 완료 보증까지 섰는데?!"

TF에서 짬밥 좀 먹은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이야기가 몇 개 있다.

매년, 특정 분기마다 모든 시설에서 진행되는 특수 임무가 그중 하나이며, 그밖에도 주로 제 1 연구시설과 관련된 것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누구도 처리는커녕 은폐조차 실패할 거라는 얘기가 자자했던 존재. 쌍둥이 세포를 최초로 '처리'하고, 제 6 처리시설에 은폐시켜버린 유명한 일화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리가 없다.

ES보다는 조사 대상(지역, 인간)에 집중해야 하는 조사관과 감찰관들조차 그 일화는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왔다.

어쩌면 TF가 정말로 ES를 상대로 승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심어준 '1급 ES 처리' 최초 사례였으니까.

인간이 만든 무기로는 절대로 죽일 수 없고, 무력적으로 대응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쌍둥이 세포. 그것을 V-XX 라는 정체불명의 약물로 제압한 뒤 수많은 고문 실험을 거쳐 간신히 처리할 수 있었다고 들었다.

그런데 지금, 그 무시무시한 존재가 떡하니 잃어버렸던 자신의 반신을 되찾은 상태로 돌아왔다.

"괘, 괜찮겠죠? 예전에도 V-XX 로 제압하고 처리한 전례가 있으니까...이번에도 최고 수석 연구원님이 어떻게든 해주실 것 아닙니까?"

"그 방법은 이제 못 써."

"왜 못 쓴다는 겁니까?"

"저 놈은 한 번 당한 공격에는 완전한 내성을 갖거든. 당시 네이팜탄으로 아주 흔적도 없이 지워버리자는 의견이 나왔었는데, 실험 결과가 어땠는 줄 알아? 처음에는 엄청난 열기에 증발하는 듯 하다가, 어느 순간 모든 열에너지를 집어 삼켰다더라고."

"그래도 최고 수석 연구원님이라면......"

"그 양반이 모든 방법을 시도해서 간신히 반만 죽여버렸는데, 지금 되돌아왔잖아. 그 양반 할아버지가 와도 안 돼."

때마침 이두근이 들고 있던 스마트패드에 제 1 처리시설로부터 발송된 메일이 표시됐다.

메일에 첨부된 것은 실험 검증 파일이었는데, 완전히 혼탁한 색을 띄고 있는 백색의 덩어리를 연구원들이 특수한 케이스에 담아 운반하는 모습이 촬영된 사진이 가장 먼저 보였다. 또한 해당 세포를 사멸시키기 위해 시행된 각 고문 실험에 대한 내용도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이것만 보면 틀림없이 쌍둥이 세포의 절반은 처리된 것이 맞았다. 아무렴 누가 진행한 일인데 대충대충 했을까?

'그럼 이건 어떻게 설명할 거냐고! 빌어먹을!!'

며칠간 잊고 살았던 두통이 다시금 이두근의 뇌를 괴롭혔다. 이제는 진통제를 먹어도 이 두통은 어찌할 수 없을 만큼 친숙해졌다.

"후우...이거 위에 보고했냐?"

"아직 보고는 안 했습니다. 솔직히 이거 보고하면...어떻게 되는지 아시잖습니까."

잘 알다마다.

FCD 최고 위원회에서 직접 시설 종말 프로토콜을 작동시킬 것이다. 설령 가드-079가 프롯을 이용해서 무마시킬 수 있다고 해도, 그 뒤에는 더 큰 보복으로 돌아올 게 뻔하다.

이 자그마한 섬 하나를 날려버리기 위해 인명 피해따윈 신경쓰지도 않고 핵 미사일을 몇 발이나 쏴댈 것이다. 지나칠 정도로 안전에 예민한 FCD의 늙은이들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그냥 덮어?'

시설 내부의 모든 CCTV는 새로운 관리봇인 프롯에 의해 통제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만 입을 다물고 있는다면 이 일이 새어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타 시설과 CCTV 시스템을 공유해서 서로의 시설 관리 노하우를 자랑하거나, 교육용으로 쓰이는 오래된 관례도 현재는 프롯이 차단한 상태이기 때문에 역시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자신들 선에서 그냥 덮자니 스케일이 너무 크다. 당장은 FCD의 비호 덕분에 타 감찰관이나 조사관이 기어들어올 일이 없다고는 해도, 천년만년 숨길 수는 없을 터.

'농담이 아니라 정말 모든 관련자들의 구족을 멸해버릴 거야. 하지만 이제와서 알린다고 해도......!'

솔직하게 보고한다고 해도 방법이 없다.

본부 회의를 통해 알게된 것은 제 1 연구시설이 폭삭 망해버렸다는 것이었으며, 또한 최중요 인물인 최고 수석 연구원은 현재 위험을 피해 잠적한 상태.

TF의 최고 해결사인 그의 도움을 받기 어려울 뿐더러, 그가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다. 게다가 이미 한 번 당한 전례가 있는 쌍둥이 세포가 또 한 번 당해줄 리도 없고.

그야말로 총체적난국이다.

"다들 호들갑 그만 떨어!"

갑자기 크게 소리쳐 주변의 동요를 가라앉힌 이두근은 잠시 호흡을 골랐다.

"너희가 왜 당황하고 있는지 안다. 인류가 감히 감당할 수 없다고 파악된 1급 ES가 되돌아왔기 때문에 이제 큰일날 거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하지만 봐라! 지금 너희가 큰일 났냐?"

이두근이 확인한 영상이 몇 시간 전의 영상이라면, 그리고 쌍둥이 세포가 날뛰고자 마음 먹었다면 이 시설은 이미 난장판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시설은 여전히 멀쩡했고, 누구 하나 다친 사람도 없었다.

"쌍둥이 세포가 극도로 위험하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TF에서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모를리가 없지. 하지만 딱 한 명, 그걸 모르면서도 여전히 목숨이 붙어있는 사람이 있다."

이두근은 스마트패드를 들어 영상 속의 일중독자를 보여주었다. 김호국이란 이름의 매력적인 IQ를 자랑하는 청년이었다.

"가드-079에겐 ES와 통하는 뭔가가 있다. 여지껏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도 모자라 같이 어울리기도 한다! 그럼 가드-079라는 새로운 배로 갈아타는 것도 괜찮겠지!!"

불안감으로 가득했던 동요가 기대감으로 가득한 동요로 바뀌기 시작했다.

가드-079라면, 그 IQ 낮은 TF의 일꾼이라면 타계책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어디가서 꿇리지 않는 어른들이 젊은 청년에게 기대는 모습이었다.

"살고 싶다면...가드-079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라!"

"바짓가랑이!"

"바짓가랑이!"

"잡는다!"

"잡는다!"

다들 마음속 한켠에선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야 눈칫밥을 먹으며 악착같이 살아온 베테랑 조사관들인 만큼, 썩은 동아줄과 구명줄을 구분하는 건 꽤 쉬웠다.

"이참에 가드-079 팬클럽도 만듭시다!"

ES에게 죽기도 싫고, 핵폭발에 휘말리기도 싫었던 그들은 정말 눈물이 나올 만큼 처절하고, 필사적이었다.

"그럼 나는 팬클럽 총무 담당!"

"나는 드루이드!"

"나는 아홉시 폭탄 드랍!"

일개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커다란 문제에 직면한 탓일까. 그들은 반쯤 정신줄을 놓은 채 그렇게 몇 시간이고 가드-079 바짓가랑이 잡기 프로젝트를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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