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비 업무 일지 : 종양 제거(3) >
"저래야 내 후임이지."
지가 무슨 두더지도 아니고 어떻게 땅굴을 파서 기어올라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호국은 그 농땡이 부리기 좋아하는 신입이 직접 나섰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기뻤다.
역시 사람이나 짐승이나 매로 다스리다보면 결국 말을 듣게 된다는 게 입증되지 않았나. 비겁한 괴롭힘보다는 정당한 매질이 효과가 있다는 사실도 알았겠다, 호국은 한창 날뛰는 신입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언제봐도 참 때려주고 싶게 생겼어.'
손목 각도를 45도로 맞춘 뒤 적당히 힘을 넣어 후려쳐주면 찰싹! 하고 헬멧 뒤통수에 손뼉이 들러붙는다.
그 차진 감촉이 좋아서 녀석이 말을 안 들을 때 마다 종종 시전해주곤 했는데, 이젠 오히려 말을 잘 들어도 때려주고 싶어졌다. 그야말로 마성의 뒤통수다.
"야! 네가 무슨 강손, 약손만 날리는 얍삽이냐?! 어퍼컷 한 방 먹였다고 폼 떨어지는 거 봐라! 아,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고!!"
거대 괴수를 밀어붙이기 시작한 신입은 아주 단조로운 움직임으로 주먹만 휘두르고 있었다. 미련하기는 또 어찌나 미련한지, 때렸던 곳 또 때리고, 또 때려서 상대가 자꾸만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AI와 격투 게임을 즐겨본 적 있는 호국은 상대가 움츠러들수록 게임이 루즈해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때렸던 곳을 또 때리는 게 아니라, 매 공격마다 변화를 주면서 상대방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게 격투 게임의 핵심이었다.
-강손, 약발, 어퍼컷, 로우킥, 로우킥 연속 두 번인데 상단 막았죠? 그럼 맞아야죠? 어? 이 상황에서 잡기? 선 넘네? 바로 반격으로 풀어주고 태클! 모르면 또 맞아야죠!
모 VR 스트리머가 격투 게임을 하면서 날린 멘트는 아직도 호국의 심금을 울리는 명언으로 남아있었다.
답답하면 본인이 직접 뛰라는 말도 있었으니 호국은 봉화처럼 성냥불을 들고 달려나가려 했다. 해피가 땅강아지마냥 구멍을 파헤치고 나타나지만 않았더라면.
흙이 잔뜩 묻어 더러워진 몸체를 전동마사지기마냥 진동시킨 해피는 순식간에 흙먼지를 털어냈다. 헤드뱅잉을 하며 몸에 묻은 것을 털어내는 개들에 비하면 훨씬 더 효율적이었다.
"해피 넌 저 미련한 놈을 닮으면 안 되지. 멀쩡한 길 냅두고 왜 땅을 판거야?"
-가드를 추적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땅굴로 이어지게 됐습니다. 만약 해피와 신입이 땅굴을 파지 않았더라면 저희는 수만 년 뒤에 화석으로 발견됐을 겁니다.
"그럼 해피한테 상을 줘야겠는데...뼈다귀가 없네."
-해피는 '전력'을 먹습니다.
"개는 뼈다귀 좋아해."
해피의 등에 부착되어 있는 스마트패드속 프롯에게 일침을 가한 호국은 자연스럽게 녀석을 챙겼다.
경비 업무 중일 때는 항상 한 손에 프롯을 들고 다니지 않으면 어딘가 허전했던 것이다. 마침 경비견과 신입도 있겠다, TF의 안전을 책임지기엔 더할나위 없이 충분한 구성이었다.
"그런데 내 장비는?"
-해피의 측면 적재함을 열어보십시오.
야만스럽게 해피의 갈빗대라도 뜯으라는거냐며 따지려던 순간, 해피의 측면(옆구리)이 제멋대로 열렸다. 그 안에서 튀어나온 것은 호국이 애지중지하는 장비들이었다.
-일전에 가드가 대책없이 호주로 날아가버린 사태를 겪은 이후, 꾸준히 해피의 몸체를 개조했습니다. 해피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임시 장비를 조달할 수 있을 겁니다.
"해피 한 마리면 신입 열 놈이 안 부럽다니까."
해피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호국은 즉시 장비를 착용했다. 자랑하는 개미부대의 검은 작업복과 충격 진압봉, 권총, 소총, 기타 등등. 제주 감귤이 프린트된 잠옷이나 입고 돌아다니던 머저리의 완벽한 변신이었다.
깊게 숨을 들이키자 작업복과 무기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몸에 착 달라붙으면서도 신축성이 뛰어난 작업복은 제 집 같은 안락함이 느껴졌다. 손에 익은 총기는 애인처럼 사랑스러웠고, 휘두르는 맛이 있는 진압봉은 절로 식욕을 돋구는 별미 중의 별미였다.
-정식 임무는 아닙니다만, 이곳에 존재하는 ES들은 TF에서도 예의주시하고 있는 위험 개체들입니다. 이미 조우하셨을지도 모르겠지만 TF에선 그 존재들을 '슬렌더 맨', '피리부는 사나이', '우물 속의 여인' 그리고 '불가사리'로 명명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다 때려잡으라는 거잖아."
-...생포해서 은폐하면 좋은 일이지만, 아예 지구에 발도 들일 수 없도록 철저하게 분쇄한다면 더더욱 좋은 일입니다. 무엇보다 그 존재들은 종양과도 같아서, 미리 제거해두지 않으면 금세 다시 번져나갈 겁니다.
"내가 또 박멸 청소는 전문이지. 한 번은 부대내 생활관에서 흰개미가 엄청 나온 적이 있었는데, 세스커도 부르지 않고 모조리 내가 처리했었다니까?"
당시 호국은 안드로이드에게 맡기면 되는 것 아니냐고 했었지만, 행보관이 책임지고 호국에게 흰개미를 모조리 처리해놓으라고 엄포를 내렸었다.
건물을 파괴하지 않고 적들에게 사로잡힌 인질을 구출하는 것과 비슷한 훈련이라나 뭐라나.
-뜬금없지만 흰개미는 어떻게 박멸했습니까?
"청소기 썼어."
그 말을 끝으로 호국은 더이상 흰개미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눈 앞에 흰개미보다 더 거대하고 강해보이는 적이 있었으니까.
"저게 피리부는 사나이나 우물 속의 여인 같은 건 아닐테고, 설마 불가사리야?"
-불가사리는 옛 민간 설화 속에 등장하는 쇠를 먹고 자라는 짐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그 실체는 그저 무한 증식하는 세포를 지닌 돌연변이 개체에 불과한 것이었으며, 실제로 섭취한 것도 쇠가 아니라 세포 증식의 에너지에 쓰이는 열량, 즉 생명체였다고 합니다. 또한 세포를 불로 태우는 것으로 무한 증식을 억제했기에, 잘못 전승된 '불로 쇠를 녹여서 죽였다'는 설도 사실은 올바른 방법이 맞습니다.
"그럼 이건 어때?"
호국은 자신이 남겨두었던 성냥갑을 프롯에게 보여주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이 건물 저 건물 마구 태우느라 성냥이 몇 개 남지 않았다.
-특이한 인화물질이 발려 있군요. 일반적인 성냥이 아닙니다. 시설에 가져가서 따로 성분분석을 해봐야겠지만, 잘 꺼지지 않는 불꽃을 만들어낼 것은 분명합니다.
요컨대 가능하다는 얘기였다.
더 따질 것도 없이 성냥에 불을 붙일 준비를 한 호국은 천지가 요동치는 듯한 폭음에 시선을 돌렸다.
콰앙!
포탄처럼 날아들어 호국의 옆을 스치고 지나간 것은 신입이었다.
"어이구 미련한 새끼. 얍삽이처럼 강손 약손만 쓸때부터 알아봤다."
지면에 반쯤 처박혀있는 신입에게 핀잔을 준 호국은 한층 더 거대해진 불가사리를 올려다보았다. 조금 전에는 5층 높이의 건물 크기였다면, 지금은 작은 아파트 크기로 성장한 참이었다.
놈의 거대한 입안에서 와그작 와그작 씹히고 있는 백색의 덩어리들은 여지껏 건물 안에 숨어있던 망령들이리라.
저만한 크기라면 불을 붙이러 달려가는 도중에 발길질에 짓밟혀 납작 쥐포 신세가 될 것이 뻔했다. 쉽게 끝낼 수 있었던 게임을 굳이 어렵게 만든 신입의 잘못이 컸다.
꿀꺽. 입 안 가득 씹고 있던 것을 목울대가 출렁일 정도로 시원스럽게 삼킨 불가사리는 한층 더 몸집을 키우면서 '부흐흐흐흐흐' 하는 역겨운 웃음소리를 흘렸다.
딴에는 옅게 흘린 웃음소리였겠지만, 지상에 있는 일행에겐 폭풍이 휘몰아치는 것 마냥 거대한 진동을 자아내는 광소(狂笑)였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원초적 공포를 이끌어내는 지옥의 비명소리와도 같았다.
신기하게도 아주 잠깐이지만 '귀'가 막혔던 호국은 놈의 웃음소리를 듣지 못 했다. 대신 불가사리의 입가가 비틀리는 것을 보고 명백하게 자신을 비웃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야, 신입. 일어나봐."
드그그그극. 지면 속에 파묻혀 있던 신입이 돌가루를 떨어뜨리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렇게 쳐맞고도 멀쩡하게 일어서는 걸 보면 호국 못지 않게 맷집이 좋은 듯 했다.
"아까보니까 힘 깨나 쓰던데, 나 좀 던져봐."
자신을 돌아보며 의아한 시선을 보내는 신입에게 호국은 직접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날 여기서, 저 놈 머리통 위까지 던져보라고."
-위험합니다.
"그래도 해야겠어. 내가 저 놈 머리 꼭대기 위에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고."
보통은 능력적으로 타인을 압도하면 '네 머리 꼭대기 위에 있다'고 말하는 편인데, 호국은 물리적으로 그것을 실천하겠노라고 고집을 부렸다.
어쩔 수 없이 호국의 몸을 짐짝처럼 짊어진 신입은 따로 신호를 주기도 전에 투포환처럼 던져 날렸다.
10m. 20m, 30m...1초가 지나기도 전에 고도가 휙휙 바뀌는 순간 속에서 호국은 어느새 자신을 올려다 보고 있는 불가사리를 내려다 보았다.
조금 지나칠 정도로 학생에 대한 평가가 신랄했던 한 초등학교 교사는 호국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IQ가 84인 사람은 절대로 남들 위에 설 수 없다고. 열심히 노력해도 남들 뒤를 따라가는 게 고작이라고.
그래서 가상 현실에 접속하지 못 하는 호국에게 노력이라도 하라며 숙제를 산더미처럼 안겨주었다. 그리고 거의 매일매일 호국을 방과후까지 남겨두면서 문제와 씨름을 하게 만들었었다.
하지만 보라!
지금 호국은 누가봐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확실하게 남의 위에 섰다!
턱! 호국은 느릿느릿 앞발을 들어올려 휘두른 불가사리의 공격을 피해 놈의 머리 위로 착지했다.
매끈매끈하면서도 끈적거리는, 살아움직이는 살덩어리의 산 꼭대기에서 호국은 성냥갑의 모든 성냥들을 털어 한꺼번에 불을 붙였다.
시커먼 성냥불은 마치 끈적거리는 석유 같은 불가사리의 두피를 무시무시하리만치 빠르게 집어삼켰다. 불길이 번지는 속도가 어찌나 빨랐던지 호국이 숨을 두 번 내쉬기 전에 불가사리의 머리통이 고스트 라이더마냥 변해버렸다.
'고스트 라이더는 명작이지.'
옛 영화의 추억을 되새기며 마구 몸부림치는 불가사리의 머리 위에서 몸을 던졌다. 작업복이 열기에 강한 탓에 화염의 열기 속에서도 어느정도 버티며, 놈의 등을 미끄러틈 삼아 내려올 수 있었다.
문제는 전신에 불이 붙고도 불가사리의 움직임이 도통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쿵쾅쿵쾅! 꼭 층간소음을 일으키는 철부지 아이마냥 날뛰기 시작한 녀석은 주변의 건물들을 닥치는대로 휩쓸었다. 운 좋게 낚아챈 망령이 있으면 집어삼켰지만 그래도 불길이 꺼지는 일은 없었다.
떨쳐낼 수 없는 고통이 계속해서 가중된다면 비단 육체만이 아니라 정신도 피폐해지기 마련. 결국 자신에게 붙은 불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눈치챈 불가사리는 지면에 우두커니 서있는 호국을 노려보았다.
"부오오오오오오!"
설령 빌딩일지라도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앞발이 하늘로 치솟았다. 저 기세라면 틀림없이 호국을 밟아 짜부러뜨리는 뻔한 미래만이 예상되는 상황.
하지만 호국은 곧 자신의 머리 위로 내려쳐질 거대한 앞발을 올려다보지도, 도망치지도 않았다. 그저 품 속에서 꺼내든 회중시계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3, 2, 1...한 시간 됐다."
드드드드드드드!
호국이 의도적으로 일으킨 트럭 자폭 공격보다도 훨씬 더 거대한 진동이 지역 전체를 휩쓸었다.
아파트 크기의 불가사리조차 그 진동에는 버틸 재간이 없었는지 앞발을 든 채 휘청거렸다.
하지만 일반적인 지진처럼 곧 진동이 멎는 일은 없었다. 직후, 모든 것의 눈과 귀를 멸해버릴 듯한 엄청난 대폭발이 바벨탑의 최하부에서부터 터져나온 것이다.
인간의 고막으로 인지할 수 있는 소음 이상의 폭음. 눈을 감아도 눈이 부실 만큼 밝은 광량. 타이밍 맞게 호국의 '눈'과 '귀'가 갑자기 막히지 않았더라면, 호국은 영영 앞도 못 보고 듣지도 못 하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폭발의 충격으로 날아가는 것 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어, 근데 이렇게 떨어지면 위험한 거 아닌가?'
뒤늦게 착지를 걱정한 호국이 눈과 귀를 되돌려받은 순간, 호국은 자신이 지면과 한없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든 낙법 자세를 취해 피해를 최소화하려 했지만,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이건 좀 무리인 것 같았다. 기린은 목이 길어 슬픈 짐승이고, 인간은 날개가 없어 슬픈 짐승이라는 말이 떠오른 것은 우연일까.
양 팔로 최대한 목과 얼굴을 감싸 충격에 대비하려는 순간, 누군가가 호국의 몸을 잡아챘다.
익숙한 기동타격대 복장과 헬멧, 놀라울 정도로 대단한 신체 능력.
하지만 그 색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순수한 백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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