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피해피 고문재단-95화 (95/209)

< 경비 업무 일지 : 매드맥스(5) >

촬영용 캠이 돌아가는 것을 막 확인한 모글러는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소음에 인상을 썼다.

"밖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야?!"

"그게...아무래도 침입자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무전을 받은 부하가 그리 보고하자 모글러는 눈을 크게 떴다.

난데없는 침입자라니? 이곳이 비록 인류퇴화연맹의 본부는 아니지만 나름 중요한 연구 자료와 기밀들이 존재하는 전초기지이기 때문에 은폐성은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었다.

위성 사진에도 찍히지 않게끔 할스 크릭의 외곽에 동떨어진 거대한 바위산에 굴을 파내어 지하 기지를 만들었다. 보급은 항상 한밤중에 헤드 라이트를 끈 소수의 차량들을 통해서만 받았으며, 특별한 일이 없으면 기지 내의 인원은 초병을 제외하고 상시 기지내에서 대기한다.

애초에 외부 세력이 접근할 것 같았으면 바위산 근처에서 경계 근무를 서고 있던 초병이 무전으로 알려줬어야 정상이건만, 그러기도 전에 먼저 침입자의 침투를 허락해버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수는? 추정되는 세력은?"

"추정되는 세력은...TF 소속 FCD 산하의 '개미부대' 라고 합니다. 개미부대 특유의 검은 작업복과 모자를 착용하고 있답니다."

"미친!!"

바로 근처에 최고의 인질들인 김선열과 이세령이 의자에 묶여있었지만, 모글러는 너무나도 쉽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다.

그만큼 충격적인 보고였다.

차라리 자신들과 적대적 관계인 미스터리 콜렉터가 기습적으로 습격을 가했다면 모를까, 설마 그 TF라니. 그것도 FCD 산하의 직속 처리 부대인 개미부대가 직접 움직였을 것이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개미부대가 이곳에 침투했다는 건...이미 이곳의 위치가 노출되었다는거나 다름없지. 설마 그렇게까지 빠르게 우리의 계획을 눈치챘다고?"

"그럴리가 없습니다. 저 둘을 납치할 때는 완벽히 흔적을 지웠을뿐더러, 충성심 높은 위장요원 둘을 배치해두고 왔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개미부대가 침투했잖아! 그렇다는 건 이미 이 근방에 TF의 기동타격대가 쫙 깔려있을게 뻔 한 것 아닌가?!"

"그게...좀 이상합니다."

"뭐가?!"

부하는 스마트패드를 몇번 조작한 뒤, 메인 갱도에 설치된 CCTV의 녹화 자료를 보여주었다. 불과 몇분 전에 찍힌 것이었다.

"침입자가 단 한 명 뿐입니다."

"......?"

처음 이상한 트럭을 몰고 난데없이 갱도의 입구를 부수며 등장한 침입자는, 이윽고 앞길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박살내며 중간 구역 바로 앞까지 돌진했다.

중간중간에 CCTV 화면에 노이즈가 끼면서 잘려나간 부분 같은 것이 있었지만, 어쨌든 침입자를 막기 위해 정면으로 나선 동료들은 모두 무력화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한 명...고작 한 명이라고? 지금 우릴 골리는 건가?"

"보안실에 연락을 넣어보니 할스 크릭 일대에 TF의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본부측에서도 호주에 특별한 일은 없었다고......"

부하가 말끝을 흐리며 뭔가 이상하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모글러가 느끼기에도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다.

분명 영상 속의 침입자는 개미부대의 트레이드 마크인 검은 작업복에 모자를 착용하고 있었다. 몸놀림도 예사롭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전형적인 신체 강화 시술을 받은 인간이었다.

그런데 침입자는 단 한 명이며, 그외에 다른 TF 병력은 일체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상황. 모글러는 각기 다른 두 가지 가설을 추측해보았다.

A 가설, 저 침입자는 TF가 인류퇴화연맹을 골리기 위해 보낸 일종의 '선물'이다. 이미 이 기지의 위치는 파악되었으며, 폭격이든 뭐든 이 기지를 언제라도 끝장내버릴 수 있다는 TF의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즉 저 자를 처치하고 재빨리 병력과 자료를 옮기기 위해 행동에 나선다고 한들, 결국 이 기지와 함께 단원들 모두 불길 속에 사라질 운명의 전조다.

B 가설, 저 침입자는 개미부대 소속인 건 맞지만, 상층부의 허가 없이 독자적으로 행동에 나선 회색분자다. 인류퇴화연맹의 전초기지 소재를 파악했으면서도 공격에 적극적이지 않은 상층부의 미온적 태도에 열 받은 나머지 혼자 공격에 나선 것이다. 극단주의자일 가능성이 높으며,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TF의 적을 괴멸하고 싶어하는 미치광이일 것이다.

'이 경우 후자에 가깝겠지. TF가 이 기지를 쓸어버릴 예정이었다면 최소한 어떤 움직임이라도 보여줬어야 해.'

궁지에 몰린 적을 놀리는 건 놀리는 것과는 별개로, 진정한 책사라면 적이 빠져나갈 틈도 주지 않고 일격에 끝장내기 마련이다.

하지만 본부측의 답변을 통해 TF가 그 어떤 준비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졌으니 전자의 가능성은 한없이 낮아진다.

"협박 영상의 제작은 계속 한다. 여긴 우리들만으로 충분하니, 너흰 나가서 그 빌어먹을 침입자를 잡아와. 죽이든 살리든 상관없다."

경례를 해보인 몇몇 단원들이 각자의 소총을 들고 감금실을 빠져나갔다.

이 감금실 앞에는 감금된 자들을 이용해 한 번에 실험하려는 용도로 만들어진 대형 실험실이 존재한다. 그곳은 특히 방비가 굳건하기 때문에 설령 미치광이 침입자가 운 좋게 도달한다고 한들, 단원들의 맹공에 가로막혀 체포, 혹은 사살될 것이다.

단원들이 문을 닫고 나가자 모글러는 손으로 머리를 쓸어넘기며 캠의 상태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협박 영상 속에 등장할 주인공은 자신을 포함해서 총 다섯 명이다.

그중 두 명은 인질로 잡힌 퇴보자의 부모들이며, 나머지 둘은 그들의 뒤통수에 총구를 겨누고 있을 단원들, 그리고 모글러 빈 본인이었다.

사실 특정 단체에서 제작되는 선전 영상과 협박 영상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선전 영상이든 협박 영상이든 특정 단체의 소속 인원이 적을 분쇄하거나, 잔인하게 고문하거나, 전장으로 돌격하는 모습이 자주 나오기 때문이다.

이번에 제작하게 될 퇴보자를 대상으로 한 협박 영상도 그와 비슷한 양상을 띨 것이다.

인류퇴화연맹 소속 단원들이 어떤 방식으로 적들을 분쇄하고, 타 세력을 무너뜨리는지 홍보처럼 보여준 뒤, 하필 그 세력에게 자신의 부모가 사로잡혀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면 된다.

피도눈물도 없는 인류퇴화연맹에 납치된 가족들! 그들을 구하려면 자신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생각에 결국 김호국은 TF를 버리고 인류퇴화연맹으로 올 수 밖에 없을 터.

TF의 방해가 있다고 해도 상관없다. TF때문에 김호국이 부모와 만날 수 없게 된다면, 그들이 인질로써 가지는 가치가 나날이 높아져 갈 테니까.

오히려 나중에는 인류퇴화연맹이 퇴보자의 부모를 성심성의껏 돌봐줬다는 모순적 논리를 이용해 스톡홀름 증후군을 유발할 수도 있다. TF가 방해를 하면 할수록, 퇴보자가 TF에게서 등 돌리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좋아, 셋 세면 녹화를 시작한다."

좀 꺼림칙하긴 하지만, 모글러는 얌전히 묶여있는 두 인질의 사이에 서서 자세를 잡았다.

셋, 둘, 하나......"

콰아아앙!!

천지를 요동치게 만드는 듯한 폭음에 모글러와 단원들은 깜짝 놀랐다.

설마 그 침입자가 폭발물이라도 가져와 자폭을 한 건가 싶었으나, 폭음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쾅! 쾅! 쾅!!

두꺼운 금속문을 찢어발기고 중장비마냥 벽을 박살내는 진동이 감금실까지 그대로 도달했다.

마치 이곳에 영화속 괴수가 등장하기라도 한 것 처럼 단원들이 무차별적으로 난사하는 총성과 비명소리, 무언가가 또 박살나는 소리가 울려퍼지다가, 어느 순간 잠잠해졌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게 단원들이 침입자를 제압해서인지, 아니면 역으로 제압 당해서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다만 무전기는 여전히 침묵 상태를 유지했다.

모두가 숨죽인 채 감금실의 문을 노려보고 있던 그 순간, 쾅! 소리와 함께 문의 중심부가 크게 우그러졌다.

겁에 질린 단원들이 인질 협박용으로 쓰려던 총구 방향을 바꿨다. 모글러 역시 권총을 뽑아 정면을 향해 겨눴다.

'신체 강화 시술을 받은 개미부대의 악명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단 한 명의 힘이 이정도였나?'

바깥에선 더이상 총성이 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요격에 나선 단원들 모두 당한 것이리라.

어쩌면 문 밖에서 으르렁대고 있는 저것이 사실은 TF에서 감춰두었던 신종 비밀병기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제발 뚫리지 마라, 제발 뚫리지 마라,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우그러진 금속문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문 밖의 존재는 그들의 바람을 정면으로 깨부수며 금속문을 비집어 열었다.

끼긱, 끼이이이익!

단단한 잠금 장치조차 우지끈! 하고 박살나더니, 결국 문이 열렸다.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놀랍게도 개미부대로 추정되는 침입자가 아닌, 동료인 레니 저먼이었다. 잠깐 휴식을 취하겠다며 근처의 빈 방에서 한숨 자고 오겠다던 녀석이었다.

"레니......?"

"크르르르르......!"

아니, 저건 레니가 아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빨리 깨달은 모글러는 권총의 세이프티를 해제했다.

누구의 것인지 대충 짐작이 가는 피를 전신에 묻힌 채, 시뻘건 눈과 날카롭게 솟아오른 송곳니가 특징적인 존재. TF에서도 꽤 오랫동안 감추었던 그 존재가 떠올랐다.

인류는 이 세상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 따라서 신 인류인 ES를 제외하고, 구 인류인 자신들은 모두 멸망해야 한다. 그것을 이념으로 정한 인류퇴화연맹에선 꽤 많은 ES의 정보를 다루고 있었다.

'신 인류가 더러운 구 인류의 몸을 이용하다니, 이 얼마나 참담한 일인가......!"

신 인류는 더러워져선 안 된다. 구 인류가 지구상의 모든 죄를 끌어안고 한낱 한시에 멸망해야 한다.

신 인류는 구 인류가 존재하지 않는 신세계에서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갈 것이다. 거기에는 아주 작은 흠집(구 인류)조차 용납할 수 없다.

"쏴라!!"

타카카카카카!!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단원들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레니의 육신을 뒤집어 쓴 '신 인류'는 이미 걸레짝이 된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민첩하게 움직여 탄환의 궤적에서 벗어났다.

눈 깜짝할 사이에 측면으로 치고 들어와 김선열의 뒤에 서있던 단원의 목을 관수로 꿰뚫어 찢어버렸다.

"컥?!"

"젠장! 젠장!!"

바로 옆에서 동료의 목이 터져나가는 것을 본 또 다른 단원이 재빨리 총구를 돌렸다. 그러나 구 인류의 움직임이 신 인류보다 빠를 수는 없는 법.

모글러가 보는 앞에서 이세령의 뒤에 서있던 단원마저 머리통을 붙잡히고, 그대로 수박처럼 박살나버렸다.

캠을 조작하던 단원은 애초에 선전 영상 제작을 전문으로 하던 남자였기에 기껏해야 권총을 뽑아드는 게 전부였다. 캠과 연결된 삼각대가 옆으로 넘어지는 것과 동시에, 그의 복부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레니의 육신을 뒤집어 쓴 신 인류가 그의 복부에 양 팔을 쑤셔박은 것이다.

찌이이익, 촥!

인간이 안쪽에서부터 찢어지면 어떻게 되는지 여실히 보여주며, 마침내 신 인류의 시선은 마지막까지 총구를 겨누고 있던 모글러에게 향했다.

이미 탄창은 모두 비웠다. 다른 단원들과 달리 모글러는 정확히 그것의 머리통과 등에 탄환을 박았지만,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다.

"우리 모두가 멸망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동의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쯤에서 물러나 주시겠습니까? 싫어도 곧 우리가 멸망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되실 겁니다."

그것은 모글러를 빤히 바라보다가, 이 참흑한 광경 속에서도 태연하게 앉아있는 두 부부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에 무슨 의미가 있었는지, 아니면 아무런 의미도 없었는지는 누구도 알 길이 없었다.

그저 그것이 모글러의 눈 앞에서 순식간에 녹아내려 완전히 형체를 잃은 것으로 '목적은 달성했다' 라는 것만 간신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모글러는 이 참사 속에서도 용케 살아남은 자신을 스스로 칭찬했다.

신 인류와 직접 마주하는 것은 생애 처음이었지만, 인류퇴화연맹의 단원 교본에 쓰여진대로 행동하면 통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다 문득, 뇌를 스치고 지나가는 불안감에 모글러는 서둘러 탄창을 갈아끼웠다.

아니, 탄창을 갈아끼우려 허리춤에 손을 뻗는 순간, 누군가에게 손목이 잡혀 비틀렸다.

"크윽?!"

권총을 휘둘러 상대의 안면을 박살내주려 했지만 그마저도 실패했다.

상대는 모글러의 다리를 냅다 걸어 자빠뜨린 뒤, 권총을 쥔 손을 걷어찼다. 킥 한 방에 절묘하게 손가락 뼈가 조각조각 박살났다.

"크하아아악!!"

눈물이 나올 정도의 격통. 그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눈을 떠 상대를 올려다 본 모글러는 헛숨을 들이켰다.

지금껏 이 소동의 주범이라고 생각했던 개미부대 복장의 침입자가 모글러를 짓밟은 채 스산한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무어라 말했다. 모글러는 체내에 심어진 전자칩으로 자동 번역해 그의 말뜻을 단박에 이해했다. 그리고 심장마비가 올 뻔 했다.

"제가 그리 똑똑한 것도 아니고, 또 많이 배운 것도 아니라서 잘 모르겠는데. 왜 우리 부모님이 이런 흉흉한 곳에 있는 거죠?"

'부모...라고? 그럼 이 자가......?!'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있어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인류퇴화연맹에서 퇴보자의 사진은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밴드그룹이나 아이돌그룹의 사진보다도 더 많이 유통되고 있었다.

그의 아주 어린 시절을 담은 사진부터, 최근까지의 모습을 담은 사진까지 모두.

인류퇴화연맹이 전 인류와 함께 과거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만들어 줄 지정표이자 심볼, 혹은 구 인류의 미래에 대한 종식을 선언하게 될 존재. 그 위대한 자가 지금 자신을 짓밟은 채 내려다보고 있다.

"아, 아아......!"

"어서 말해보세요. 제가 지금 이래보여도 좀 많이 화가 났어요."

"퇴보자여! 당신을 봤으니 이제 여한이 없습니다!!"

구 인류의 끝을 인도하게 될 자를 두 눈으로 직접 봤으니 전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모글러는 기쁜 얼굴로 어금니 옆에 감춰두었던 극독을 씹었다.

그가 모든 구 인류에게 종말을 선사해주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왠지 모르게 자신의 여정은 여기까지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미련없이 '퇴보'를 택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호국만이 어처구니 없는 얼굴로 그의 멱살을 쥐고 흔들 뿐이었다.

"상황 설명은 해주고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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