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비 업무 일지 : 매드맥스(3) >
"이런 씨발!!"
자신의 스마트패드로 한창 다크다크 레인보우의 연구 결과를 살피고 있던 이두근은 갑작스러운 경고음에 화들짝 놀랐다.
오죽 놀랐으면 비스듬하게 앉아있던 의자에서 미끄러진다음 두 번이나 굴렀을 정도였다.
"뭐야? 뭔데! ES가 탈주하기라도 했어?!"
"탈주한 게 맞습니다!"
"?!"
어차피 또 가드-079가 무슨 사고를 친 탓에 경고음이 울린 것이리라 생각했던 이두근은 부하의 보고에 눈을 크게 떴다.
"타, 탈주...탈주 했다고?"
"ES 6-173에 붙여둔 위치 추적기의 신호가 한순간에 소실했습니다. 또한 가드-079의 소재도 파악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개, 개소리! 개소리 하지마 씨발놈아!!"
한달음에 달려나가 부하의 멱살을 움켜쥔 이두근은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눈은 초점이 맞질 않았다.
"구라지? 만우절은 이미 지나간지 오래지만 그냥 만우절 장난이지? 제발 구라라고 말해!"
"...사실입니다."
"어떻게? 어떻게 그게 사실일 수가 있는데?! 너 씨발, 여기서 이미 점멸 분쇄기가 탈주했다는 거 알면서도! 어떻게 나한테 그런 보고를 할 수가 있어?!"
"......"
위장 신분이긴 해도 이들 사이에선 이두근의 직급이 가장 높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프롯에게 장악당한 제 6 처리시설은 표면적으로는 잘 굴러가고 있었지만, 실질적인 관리자는 가드-079가 꿰찬 상태였다.
이두근은 유광조와 함께 이곳에 들어왔던 파견 연구원들을 무사히 돌려보내면서 일종의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는데, 사실 중재자보다는 그냥 가드-079의 감시역에 가까웠다.
이두근이 감시를 시작한 이래, 가드-079는 자잘한 사고를 치긴 했어도 기본적으로 평범하게(?) 업무를 수행해왔다.
허가없이 시설을 벗어난다거나, 같은 인간이라며 목격자들을 풀어주려 한다거나, 사심으로 ES에게 접근해 좋지 않은 의도를 품고 행동한 적은 단언컨대 한 번도 없었다.
게다가 오늘은 월급을 두둑하게 받았다며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니지 않았나? 그런 인간이 갑자기 ES와 함께 이 시설을 탈주했을리가 없다.
"뭔가...잘못된거겠지. 사실은 기계 고장이었다던가?"
"시스템은 모두 정상입니다. 이제 슬슬 현실을 직시하시는 게......"
"나더러 순순히 인정하고 '처리' 당하라고?"
"그런 식으로 말한 건 아닙니다만......"
"그게 그거지 씨발놈아! 전 연구팀장이란 새끼가 싸지른 똥 때문에 점멸 분쇄기가 탈주한지 아직 한 달도 안 지났어! 그런데 내 차례에 6-173과 가드-079가 나란히 탈주? 지금 나랑 장난하냐?!"
"하지만 사실입니다."
멱살을 붙들린 채 앞뒤로 목이 흔들리면서도 부하는 사실만 골라서 했다.
"이, 이이...사실만 처 지껄이는 새끼!"
"그보다 얼른 상층부에 보고드리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6-173의 갑작스러운 탈주도 문제지만, 가드-079의 소재도 파악되지 않는 건 그냥 넘길 사안이 아닙니다."
"나 대신 보고 해주면 안 되냐?"
부하는 말없이 이두근의 손길을 뿌리쳤다. 손절도 남들보다 배는 빨랐다.
하는 수 없이 스마트패드를 집어든 이두근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전에 유광조의 야심을 막아내고-자신은 기껏해야 중재만 했지만-, 가드-079의 신변을 무사히 보호한 덕분에 상층부에선 이두근의 팀을 높게 쳐주긴 했다.
설마 그 일로 이번 임무가 끝나면 진급이 확정적일 거라는 얘기를 들을 줄은 몰랐지만, 미래의 진급도 이 보고로 인해 물거품처럼 사라질 게 분명했다.
'잘 가라, 내 진급. 잘 가라, 내 노후.'
-당장 보고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두근의 스마트패드로 침투한 프롯이 통화를 중간에서 차단해버렸다. 이 시설에 있는 한 프롯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기에, 이두근은 이미 진이 빠진 얼굴로 되물었다.
"어떤 의미에선 가드-079가 사라진 게 6-173의 탈주보다 더 큰일이야. 그걸 감추자고?"
-찾을 방법이 있습니다. 다만 외부 시스템을 좀 써야 하는지라 연산처리능력을 좀 많이 할당해야 하는 일입니다.
"요점만 말해, 요점만. 지금 여기 있는 인간들 모가지 날아가게 생겼으니까."
책임자 본보기로 '처리'당하는 거 아니냐는 한 부하의 눈치없는 혼잣말이 들려왔지만, 이두근은 깔끔하게 무시했다. 죽을 땐 죽더라도 다 같이 죽는 거다. 왜냐하면 팀이니까!
-6-173의 교통사고 욕구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가드-079가 6-173과 접촉했습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소실되었으니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추적하려면 TF의 인공위성 감시 시스템과 제어할 안드로이드가 필요합니다.
"대체 어쩌다 그런 일이 벌어진거냐고 묻진 않겠어. 요컨대 외부 시스템과 연결만 해달라 이거 아냐."
-맞습니다. 가능하겠습니까?
"어렵지 않지. 어렵진 않은데...들키면 죽지."
시설 하나를 통째로 장악한 변조 AI 프로그램이 외부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삶을 포기하지 않고서야 어지간한 마음가짐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 일을 해결 못 하면 어쨌든 죽어.'
멋대로 흙발로 비집고 들어와 개입한 유광조는 이두근의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었으니 정상참작이라도 해주겠지만, 이번 사건은 어딜 어떻게봐도 관리부실과 부주의로 인한 사고였다.
사실 그것도 좀 억울한 감이 없지 않았는데, 프롯이 24시간 감시 체제를 차단하면서 원활한 감시가 힘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높으신 분들은 그런 변명거리를 들어주지도 않고, 이해해주지도 않는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해결하라며 등을 떠미는 게 높으신 분들이 하는 일이지 않은가.
"좋아. 대신 이번 일은 서로 비밀에 부쳐두자고. 이번 일이 잘 해결되면, 이 시설은 평소처럼 평화로웠던거야."
-그나마 말이 통하는 인간이라 다행입니다.
극적으로 프롯과 조사관 팀의 동맹이 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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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열과 이세령 부부는 꽤 이른 나이에 속도 위반 결혼을 했다.
혈기가 끓어넘치던 두 20대 남녀는 평범한 새내기 커플들처럼 대학 캠퍼스에서 눈을 맞은 것도 아니었다. 순수하게 자신들의 취미였던 등산을 즐기다 산 정상에서 눈이 맞아버렸다.
물론 좀 더 파고들어가보면 두 사람의 취미가 아주 같은 것만은 아니었다.
호탕하고 모험심이 강한 김선열은 캠핑 도구를 바리바리 싸들고 이 산 저 산 돌아다니며 남몰래 캠핑을 즐기던 타입이었다.
낯선 산악지대에서 길을 잃는다거나, 얼어죽을뻔한 적도 있었지만 자연이 주는 감동을 잊지 못해 끝없이 산을 오르고 올랐다. 그 과정에서 단련된 강인한 육체와 정신은 오락과 유흥에 빠져 사는 또래 20대들보다 훨씬 더 성숙한 인간으로 만들어주었다.
반면 이세령은 가슴뛰는 모험보다는 마음의 안정을 중요시하는 힐링파 산악가였다.
직접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던 그녀는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자신이 직접 만든 음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는 것을 인생의 큰 낙으로 여겼다.
벚꽃이 피는 5월이면 벚꽃나무가 가지런히 심어진 거리로 향하는 게 아니라, 아무렇게나 벚꽃이 피어있는 산에 올랐다.
여름이면 풀벌레 소리와 개울가의 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도시락을 먹고 싶었고, 가을과 겨울에는 추위 속에서도 몸을 따뜻하게 덥혀주는 국물과 튀김 요리를 즐겼다.
각자 자연을 느끼고 즐기는 방식은 달랐지만, 산을 오른다는 행위 자체에 큰 의의를 두고 있었던 두 사람은 서로 죽이 잘 맞았다.
우연찮게도 서로 가까운 지역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두 사람의 러브러브 등산 모험에서 속도위반 결혼식까지 2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로부터 23년이 흐른 지금, 두 사람은 남들의 눈을 피해 매우 위험한 작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거 위험하지 않을까?"
"어휴, 괜찮다니까. 내가 이런 거 한 두번 해본 줄 알아?"
치이이이익. 기름 튀는 소리와 함께 구수한 냄새가 좁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이세령의 현란한 손목 스냅 한 번이면 프라이팬 위의 베이컨도, 볶음밥도 알맞게 불맛이 입혀졌다.
전직 수제 도시락 제작자, 현직 9단 주부답게 그녀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걸 알면서도 최대한 음식이 타지 않도록 신경쓰며 프라이팬을 흔들었다.
하지만 음식 냄새가 사방 천지에 진동하면 꼬리가 잡히는 법.
굳게 닫아두었던 문이 열리고, 총을 든 사내들이 어처구니 없다는 시선으로 두 부부를 바라보았다.
"대체 어떻게 빠져나온 겁니까?"
"옛날 자물쇠라 그런지 너무 조잡하더라고. 그보다 아직 식사 안 했으면 댁들도 같이 좀 들지 그래. 우리 아내가 딴 건 몰라도 요리는 진짜 잘해."
"후우......!"
선두에 선 더벅머리의 사내가 한숨을 내쉬면서 스카프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이곳은 호주 북부에 위치한 할스 크릭(Halls Creek)의 바위산에 감춰진 인류퇴화연맹의 수많은 전초기지중 하나였다.
대한민국내에 암약하고 있던 연맹 단원들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차선 목표였던 두 사람은 생포했지만, 최우선 목표였던 김호국과 김세희는 생포하지 못 했다.
그래도 부모를 생포하는 건 성공했으니, 일단 상층부에선 두 사람을 대외에 흩뿌릴 협박 영상 제작 전까지 감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이 둘은 대체......!'
스카프로 땀을 훔친 남자, 모글러 빈은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대한민국에서 성공리에 납치한 다음 밀수용 선박에 실어 필리핀 까지 이동, 그곳에서 경비행기를 이용해 인도네시아를 경유해서 호주까지 들여오는 것 자체는 어려움 없이 성공했다.
하지만 진짜 어려운 일은 두 부부를 납치하는 게 아니라, 납치한 뒤 감시하는 일이었다.
"베이컨은 대체 어디서 난겁니까?"
"최근까지는 가상현실에 처박혀 있긴 했지만, 내 개코가 아직 죽진 않았더라고."
분명 기지 안쪽에 감춰진 식량 창고를 털었으리라. 나중에 당번이었던 자를 꼭 족치겠다고 다짐하며, 빈은 김선열의 옆에 적당히 앉았다.
마음 같아선 손가락 몇 개를 잘라서 겁박을 하고 싶었으나, 상층부에선 가능한 두 사람이 온전히 살아있기를 원했다. 이는 단순히 두 사람이 '퇴보자'의 부모라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퇴보자의 가족 전원을 한 자리에 모은 다음, 인류퇴화연맹의 긍정적인 면을 전세계에 널리 퍼뜨릴 선전 영상을 찍어야 한다.
무작정 TF를 향해 테러나 일삼는 진리교와는 달리 인류퇴화연맹은 현대사회의 깊숙한 면까지 파고들어 적들의 내부 동향이나 기밀 정보등을 빼오는데에 주력했다.
물리적으로 이길 수 없다면 정보에서 앞서야 하며, 정보로 앞서고 있다면 그것을 잘 활용해서 여론전을 유도해야 한다.
아무리 막강한 힘을 지닌 개인이나 단체라고 한들, 여론에서 밀리면 그 힘도 반감되는 법.
최종적으로 여론전에서 승리한다면 퇴보자를 앞세워 주요 국가들의 정권을 장악, 이윽고 세계 각지에서 핵 미사일을 발사해 전 인류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그 원대한 계획을 위해서라면, 눈앞의 두 부부가 감금실을 쥐새끼처럼 빠져나와 식량 창고를 털어 몰래 요리해먹고 있었다고 한들, 빈은 너그러이 봐줄 수 있었다.
사실 외국인인데다 무장까지 한 자신들에게 납치당한 것 치곤, 너무나도 자유롭게 행동하는 두 사람의 태도가 흥미롭기도 했다.
'보통은 기가 잔뜩 죽어서 숨 죽여 지내거나, 울고불면서 제발 살려 달라고 바짓가랑이를 붙드는데. 이 둘은 정반대야. 두려워하기는커녕 너무나도 당연하게 일상을 보내고 있어.'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건 아니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즐기는 낌새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저 이또한 지나가는 한 때의 폭풍인양 행동하는 것이 상당한 괴리감을 느끼게 했다.
빈은 체내에 삽입된 전자칩의 자동 번역 기능을 이용해 물었다.
"이런 식으로 멋대로 행동하는 게 자신들을 위험에 처하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안 듭니까?"
"들지. 들면서도 부모라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어."
잘 익은 볶음밥을 한 숟갈 퍼먹으며 김선열이 대꾸했다.
"어차피 우리 아들내미가 목적이잖아. 당신같은 사람들을 많이 봤어."
"...즉 자신들이 위험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으니 막 나간다는 겁니까?" 빈이 재차 묻자 김선열과 이세령은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총이라도 맞아봐. 아들이 과연 댁들이 말하는대로 하고 싶겠어?"
"......"
"오고가면서 다 들었어. 우릴 미끼 삼아서 아들을 끌어들이고 싶은 모양인데, 그러지 마. 20년 넘게 아들을 봐왔지만 그런 일을 벌인 게 댁들이 처음은 아니야."
과연.
빈은 살짝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허리춤에 가져다대던 손을 도로 돌려놓았다.
"홧김에 우리가 당신들 몸에 흠집이라도 냈으면 큰일날 뻔 했겠습니다."
"아쉽게 됐지. 쯧!"
식기를 내려놓은 두 부부는 얌전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 사내들의 손에 붙들려 감금실로 돌아갔다.
감금실로 끌려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빈은 자신의 인내심이 조금 더 강했던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겼다.
홧김에, 감정적으로 나가서 그들에게 해라도 끼쳤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겠나?
"미친 작자들."
부모의 자식 사랑은 끝이 없다지만, 설마 무장 세력에게 잡혀오고도 태연하게 자신들을 '희생'하려 들 줄이야.
저들의 의도에 속아넘어갔더라면 인류퇴화연맹이 퇴보자를 얻는 일은 영영 물 건너 갔을 것이다.
대체 23년 간 저들 부부는 어떤 마음으로, 어떤 사명감을 품은 채 퇴보자를 길러냈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느낀 것은 그저 부모의 무한한 사랑과 희생정신, 그리고......
광기(狂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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