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피해피 고문재단-91화 (91/209)

< 경비 업무 일지 : 매드맥스(1) >

-제 21XXX 실험 보고서

-제목 : 겉모습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귀물

-내용 : 이 귀물은 어딜 어떻게 봐도 평범한 5톤 화물 트럭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실체는 인간의 사고로는 감히 이해할 수 없으며, 또한 현 인류의 기술력으로도 파헤칠 수 없는 무한한 가능성과 비밀을 내포하고 있다.

2010년대에 일본에서 집중적으로 붐이 일어나기 시작한 '이세계 전생 소동'의 주 원인으로 꼽히고 있으며, 이 트럭에 치인 인간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이 세상에서 완벽하게 모습을 감춘다.

실제로 이 트럭에 치일 경우 이세계로 가게 되는 것인지는 재단 측에서도 아직 파악하지 못 했다. 다만 이 트럭에 치여 모습을 감추는 존재는 반드시 인간으로 한정되어 있으며, 그 인간은 대부분 가정 환경이 좋지 못 하거나 삶에 대한 미련이 적은 사람들 위주라는 것을 알아냈다.

-추가 내용 : 이 화물 트럭이 언제, 어디서, 어떠한 목적을 지니고 제조되었는지 판명되지 않았다. 또한 소유주를 확인할 수 없는 것은 물론, 트럭내에 인간의 지문이나 희미한 DNA 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놀랍게도 이 트럭은 최신예 자율 주행 시스템을 탑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유롭게 도로를 주행하는 것이 확인되었으며, 목표물(이세계 전생 희망자)을 발견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다.

일본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젊은 층의 인구 감소의 한 원인으로 보고, 재단 측에선 3급 보안 등급으로 규정하고 제 6 처리시설에 은폐했다.

추가로 여러 연구원들에게서 이 트럭에 걸맞는 명칭을 제보받았으나, FCD 측에선 '연구만 하는 샌님들의 작명 센스는 믿을 수 없다'며 이 트럭의 명칭을 '디멘션 점프 트럭'으로 지정했다.

현재까지 큰 위험 사례은 보고되지 않았으나, 차량이 정차중일지라도 전면부에 인간이 접촉할 경우 즉시 소실된다는 사실을 추가로 확인했다. 그 어떤 인간도 접촉하지 못 하도록 특수 컨테이너에 보관 은폐하도록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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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이 들어왔다.

"세상에...이게 얼마야?"

공(0)을 하나씩 세어보던 호국은 자신의 전자계좌 잔고가 순식간에 천만 단위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았다.

천만이라니!

군의 노예로 일하며 최저 임금만 받다가, 사회에 나오자마자 취직한 첫 정규 직장에서의 첫 월급.

사회 초년생이라면 누구나 첫 월급이 만족스러울 수 없다는 것쯤, 사회 생활의 초짜인 호국이라도 알고 있었다.

더럽게도 한국 사회는 사회 초년생들의 노동력을 최대한 빨아들인 다음, 최소한의 비용만 지불하는 악덕 업주 마인드가 만연해있는데, 때문에 대기업 사원이 아니라면 첫 월급이 빠방할 거라는 기대를 해선 안 됐다.

물론 호국이 첫 달 부터 열심히 일을 하긴 했지만, 만약 TF가 여느 중소기업과 같은 마인드로 직원들을 부려먹는 회사였다면? 절반이나 제대로 받았다면 다행이었을 것이다.

눈을 몇 번이나 비비고 재차 확인해봐도 잔고에 찍힌 것은 천만 단위의 어마어마한 액수. 사회 초년생이 첫 월급으로 가질만한 액수가 아니었다.

'역시 여기서 일하길 잘 했어. 이 기세라면 딱 1년만 빡세게 일해도......!'

최소 연봉 1억. 10년 일하면 이것저것 다 고려해서 최소 15억 이상은 벌 수 있을 것이다.

단 10년이면 김호국이란 인간의 인생 계획이 완성되는 것이다. 집도 사고, 차도 사고, VR 기기도 산다면 그 다음부턴 국가의 부양을 받으며 살아도 충분할 테니까.

남는 돈으로는 부모님께 드려서 효도를 하는 것도 괜찮으리라.

"아니지. 여동생 취업 준비에 시집 갈때 필요한 혼수 비용까지 고려해야 하니까...좀 더 일해야 하나?"

10년이든 15년이든 상관없다. 어쨌든 이 기세라면 호국의 잔고는 0으로 가득 차서 빵빵해질 게 분명하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이렇게 많은 월급을 받은 이유가 무엇인가 싶어 사내 메일로 받은 월급 명세서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호국의 직책은 경비에서 경비팀장으로 격상되어 있었다. 때문에 기존의 경비 월급이 경비팀장으로 뛰어오른 것은 물론, 거기에 각종 추가 수당들을 더해서 천만 단위의 월급이 지급된 것이다.

자신의 직급이 경비팀장으로 바뀌었다는 건 프롯을 통해 이미 들은 바 있다. 다만 첫 월급은 경비 월급으로, 다음 월급부터 경비팀장 월급으로 지급될 줄 알았는데, TF측에선 쿨하게 경비팀장 월급을 줘버린 것이다.

"감사합니다...태스크 포스(TF)!"

앞으로 TF를 위해 분골쇄신하는 마음가짐으로 일하겠노라 선언한 호국은 마음 속 깊이 TF를 찬양했다.

밥 제때 줘, 직원 의견도 잘 들어줘, 월급도 빠방하게 줘, 심지어 진급도 잘 시켜주는 회사다. 이런 회사에 자신 같은 멍청이가 취직할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천운이 작용한 것이리라.

들뜬 기분으로 장비를 챙긴 호국은 우선 부모님의 공동 계좌에 300을 입금한 뒤, B40 아래로 향했다.

좀비 같았던 몸 상태로 하루 아침에 말끔히 나았으니 병가를 낼 필요는 없었다.

평소처럼 아침을 먹고 순찰 업무를 시작한 호국은, 만나는 이들마다 자신이 진급했다는 사실과 월급을 두둑하게 받았다는 사실들을 자랑하며 오전을 보냈다.

특히 그간 신세졌던 바텐더에겐 외상값을 한 번에 지불했다. 물론 카지노에서 외상값을 지불하는 것 외에 그 어떤 용도로 돈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최고의 눈썰미와 기억력이면 카지노의 모든 게이밍 테이블을 씹어먹을 자신이 있었지만, 도박은 절대로 해선 안 되는지라 깔끔하게 밥만 먹고 나왔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을 꼽자면, 만나는 사람들 모두 호국이 자랑을 듣고선 잡동사니들을 건네주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언제나처럼 구속복에 묶여있던 6-01은 자신의 어금니를 단숨에 뽑아 건네주었고, 기억력 싸움에서 진 중년 신사는 낡은 권총 한 자루를 주었다.

비쩍 마른 의사 양반은 흰 가루가 든 약병을, 드레스 차림의 귀부인은 투박한 짚인형과 바늘 세트를 내밀었다.

마치 먼 길을 떠나려는 용사에게 아이템을 바리바리 챙겨주는 NPC들처럼, 말없이 잡동사니를 건네주는 광경은 황당함을 넘어서 약간의 집단 광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어쩌면 단순히 축하의 의미로 줬을지도 모르지.'

손때 묻은 리볼버 권총은 허리춤에, 흰 가루가 든 약병은 파우치에, 짚인형과 바늘 세트,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뾰족한 어금니는 구토 봉지에 잘 싸서 따로 보관했다.

-꼭 양로원의 노인네들이 자원 봉사를 온 학생들에게 계피 사탕을 쥐여주는 느낌이었습니다.

"난 항상 홍삼 사탕만 받았었어."

호국은 엘리베이터의 거울 앞에서 살짝 볼멘소리를 했다.

노인들의 주머니에서 항상 튀어나오는 홍삼 사탕은 전부 호국이 받았었으니, 다들 호국을 애늙은이로 봤던 것이 분명했다.

사실 호국의 취향은 계피 사탕이었지만 홍삼에 길들여진 나머지, 이제는 홍삼 사탕이 아니면 만족할 수 없는 몸이 돼버렸다.

'그러고보니 여기 오고 나서부턴 항상 감귤맛 초콜릿만 먹는 것 같은데......'

먹어도 먹어도 줄질 않으니 슬슬 제주도 감귤 농가가 원망스러워지고 있었다.

-첫 월급도 두둑이 받으셨고, 축하도 잔뜩 받았으니 들뜨신 것은 이해합니다만, 오늘은 새로운 구역으로 가보셔야 합니다. 아직 순찰을 해보지 못한 구역은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는 만큼, 냉정을 되찾아주시길 바랍니다.

"알아, 알아. 그보다 그런 소리는 내가 아니라 신입한테 해야 하는 거 아냐? 걔가 진지했던 적은......"

덜컹!

엘리베이터가 B44에서 멈추는 일 없이 쭉쭉 내려가는 상황에서 갑자기 천장의 작업자용 문이 열렸다.

그 위에서 훌쩍 뛰어내린 것은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신입이었다. 대체 엘리베이터 위에서 뭘 하다 온 건지, 몸을 움직일때마다 흩뿌려지는 먼지의 양이 상당했다.

-신입은 저를 도와 시설의 '종양'을 제거하고 있습니다. 그는 항상 진지합니다.

"...뭘 한다고?"

-허락없이 가드를 훔쳐보는 눈, 훔쳐듣는 귀를 말하는 겁니다. 제가 정식으로 관리봇이 된 이후에 곧바로 스캔을 했었는데, 시설 전역에 깔려있었습니다. 가드가 뭘 하는지 어지간히도 궁금한 모양입니다.

"상층부 허가 없이 그런 일을 막 해도 되는 거야?"

-그정도는 제 재량으로 가능합니다. 애초에 막지도 못 합니다.

화장실 증축만 해도 직접 담판을 지어야 했을 만큼 중대한 사안이었는데, 프롯과 신입이 함께 움직이며 시설을 마구 헤집었다는 사실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그런 재미있는 걸 지들끼리만 했다고?'

자고로 허가받지 못한 행위를 몰래 하는 것 만큼이나 꿀잼인 것도 없는 법. 호국은 엘리베이터 통로를 통해 이곳저곳 돌아다녔을 신입을 시기와 질투심 섞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 썩을 배신자가 선임을 깨워서 함께 즐기지는 못할 망정, 저 혼자 실컷 재미를 보고 있었을 줄이야.

'나도 PX랑 식당은 선후임들이랑 꼭 같이 다녔는데.'

이래서 으-리를 중요시 여기지 않는 것들이란.

"나 경비팀장은 신입에게 실망했다."

자신이 군대에 있었을 적엔 이런 일이 없었다며 핀잔을 준 호국은 때마침 B59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동시에 귀를 찢는 듯한 엔진음에 호국은 다시 물러섰다.

엘리베이터 아래로 곧장 이어진 계단과 관중석. 그리고 저 아래에서 펼쳐지는 격렬한 카 레이스의 현장!

F1도 방불케 하는 극적인 상황 속에서 호국은 매우 기이한 광경을 목격했다.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은 일반적인 승용차, 그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는 것도 전부 승용차였다.

하지만 탑승자들 모두 평범한 인간이었으며, 그들은 놀랍게도 좌석에 꽁꽁 묶인 채, 차량의 자율 주행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설마 이걸 F1 이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TF판 F1이 맞습니다. 그리고 ES 6-173을 이 시설에 최대한 오래 붙들어놓기 위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이 대형 레이스 경기장을 짓기 위해 저위험군과 고위험군의 경계를 없앴으며, 도로의 전체 길이는 약 3km에 해당합니다.

"그거랑 차 안에 사람을 묶어두고 계속 달리게 하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ES 6-173은 탑승자 없이 스스로 주행하면서 지속적으로 사람을 들이받으려는 특성이 있습니다. 들이받힌 인간은 즉시 이 세계에서 소실하는 탓에, 6-173보다 빠른 차량에 실험용 '목격자'를 태워 3km 반복 코스를 무한하게 주행하도록 유도합니다. 정기적으로 차량과 실험용 목격자의 교체, 그리고 연료 충전을 위해 관리봇이 24시간 감시, 관리해야 하는 중요 구역이기도 합니다.

"6-173이라면...저 트럭 말하는 거야?"

-맞습니다. 정식 명칭은 디멘션 점프 트럭이지만, 연구원들 사이에선 이세계 전생 트럭으로 불립니다.

호국은 눈을 가늘게 떠서 저 멀리서부터 맹렬한 속도로 접근하고 있는 한 대의 트럭을 바라보았다.

비록 최고 속력이 안 나오는 탓에 승용차들의 꼬리만 쫓아야 했지만, 커브 코스를 정확히 돌면서도 속도를 거의 줄이지 않는 광경은 실로 대단했다.

-경기를 진행함으로써 6-173의 교통사고 욕구를 최대한 충족시켜줍니다. 그 뒤 기계 팔을 이용해 특수 컨테이너에 보관한 뒤, 다시 날뛴다 싶으면 경기를 재차 진행합니다.

"재밌어 보이네. 나도 하고 싶지만...운전 면허가 없어서 안 되겠어."

이래서 운전 면허 없는 남성이 쓸모없다는 말이 생긴 것일까.

그래도 이 레이스의 열기와 숨막히는 속도 경쟁을 포기하는 건 너무 아까웠다.

'운전 면허가 없으면 운전석이 아니라 조수석에 타면 되는 거 아닌가?'

누가봐도 미친 생각이었지만 호국은 양 손을 슥슥 비볐다. IQ 84를 뛰어넘는 희대의 아이디어라고 생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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