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피해피 고문재단-83화 (83/209)

< off the record : #6 >

연구원의 프라이버시 존중과 보안 유지를 위해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개인룸. 그곳에서 이두근은 스마트패드의 홀로그램 통화를 하고 있었다.

-남은 자들은 어떻게 됐나?

"가드-079는 딱히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가드-079를 돕고 있던 정체불명의 기동타격대 대원은 상당한 적의를 보이더군요."

-가드-079에게 해를 끼치려 했다는 걸 그 자가 알고 있었다는 얘기로군?

"예. 어떻게 알아차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와 제 부하들에게는 적의를 품지 않았습니다. 그 사실을 미루어보건대, 스스로 적대적 대상을 명확히 구분하는 듯 했습니다."

-역시 ES인가?

"현재 제 6 처리시설의 모든 시스템 제어 권한이 변조 AI에 의해 넘어간 상황이라 자세한 건 알 수 없습니다. 일단 C 게이지 측정을 해봐야 정체를 확인할 수 있겠지만...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그건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잘 훈련받은 기동타격대 대원이라면 인간 한 둘 잡아죽이는 것쯤은 일도 아닐 터. 어떻게 인간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나?

"사람을 죽이는 행위에 일체의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명령에 따라 철저하게 적을 도살하거나, 모든 흔적을 지워버리는 개미 부대도 '인간적인 면'이 남아있습니다. 신체 강화 시술과 혹독한 훈련,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지독한 세뇌 작업으로도 인간의 본성은 쉽게 사

라지지 않는 법이잖습니까?"

-그렇지. 개미 부대도 완벽하진 않아. 오히려 병기로써의 완벽함은 사이보그쪽이 조금 더......

"그건 완벽했습니다."

-......

홀로그램 너머의 통화 상대, 제임스 마커스 FCD 최고 위원은 눈을 치켜 떴다.

-완벽했다?

"예. 저는 생물학자가 아니라서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힘듭니다만, 그건 생명체의 '극'에 달한 존재였습니다. 상황 판단 능력, 움직임, 스스로의 욕구를 절제하며 인내할 수 있는 이성적 사고. 그 모든 것을 갖춘 것도 모자라 인간이 감히 대적할 수 없는 힘을 선보였습니

다. 가드-079도 일반인이 보이기 어려운 움직임을 보여줬지만, 그건 정말...상상이상이었습니다."

-나는, 우리는 조사관인 자네의 안목을 믿네. 조사관들은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냉철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데이터를 수집하지. 자네가 그렇다면 우린 그런 거라고 믿을 수 밖에 없어.

"과분한 칭찬 감사드립니다."

꾸벅 고개를 숙여보인 이두근은 손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이 놈의 다한증은 시도때도 없이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우리가 어떤 선택을 내려줬으면 하지?

"제 6 처리시설을 불가침 영역으로 지정해주십시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건 아닐텐데. 진심인가?

"제 일생의 그 어떤 순간보다도 진심입니다. 반드시 그러셔야만 합니다."

-이유를 듣고 싶군. 현재 TF에서 지정된 불가침 영역은 딱 두 곳 뿐이야. 거기서 하나를 더 추가하려면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해.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해도 모든 FCD 의원들이 납득해줄리는 없겠지만.

이두근은 조금 전의 노조 협상 놀이부터 자신의 목을 옥죄고 있던 넥타이를 조금 느슨하게 풀었다.

다시 한 번 이마의 땀을 닦아낸 그는 순수하게 조사관이라는 입장에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여기에 인간 이두근의 생각은 1%도 섞이지 않았다.

"가드-079는 극도로 위험합니다."

-위험 수준은?

"최소 보안 등급 1급으로 지정해야 합니다."

-이유는?

"이론상 모든 ES와 상호작용을 합니다. ES가 그를 공격하지 않는 것도, 그의 말에 순순히 따르는 것도, 그를 보호하려는 것도 그 상호작용의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덧붙여서 이 ES 상호작용설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유광조 연구원의 실험을 통해 밝혀졌습니다." -즉 그가 마음만 먹으면 시설내의 모든 ES와 상호작용해서, TF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

"TF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전 세계 인류에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제임스 마커스는 옅은 침음을 흘렸다. 지금까지는 그저 조금 특별할 뿐인 인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알고보니 그 어떤 ES보다도 위험한 인물이었다니.

게다가 이는 객관적으로 주변을 분석하는 조사관의 간언이었기에 쉬이 넘길 얘기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두근은 바로 그 현장에서 제임스 마커스와 통화를 하고 있지 않나.

-하지만 그의 IQ는 상당히 낮아. 게다가 보고에 따르면 지나칠 정도로 순진하다던데. 게다가 전과나 정신질환 병력도 없어. 그가 TF, 나아가서 세계를 적으로 돌리는 행위가 정말 가능하다고 보는가?

"그가 그럴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극단적인 예로 종말론자들은 강대국의 대통령들이 핵전쟁을 일으킬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다만 그들에게 핵 미사일 발사 권한이 있느냐 없느냐를 더 중요하게 여길 뿐이다.

그리고 핵 미사일과 그걸 발사할 권한이 존재하는 한, 전 세계는 아주 낮은 확률이라도 핵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염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가드-079 또한 그것과 다르지 않다.

"게다가 그는 지나칠 정도로 순수합니다."

-순수한 것이 어째서 문제인가?

"타인의 악의나 살의를 굉장히 잘 파악합니다."

-...아하.

그제야 이두근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알아차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즉 이런 얘기다. 어느 누구든지 미친 유광조처럼 가드-079에게 악의나 살의를 품고 행동한다면, 가드-079는 즉각적으로 반응할 것이라고.

"또 다른 누군가가 TF와 전 인류를 위한 일이라며 가드-079를 실험체로 써먹으려 한다면, 다음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확실히 위험하군.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불가침 영역으로 지정하기에 다소 어폐가 있어. 가드-079 보다 훨씬 더 위험한 존재들을 가두고 있는 몇몇 시설도 불가침 영역으로 지정되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제 1 연구시설은 불가침 영역으로 지정되지 않았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정말 몰라서 묻나? 당연히 최고 수석 연구원의 프로젝트가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

"가드-079도 방해받지 말아야 합니다. 그가 어떤 방식으로 ES와 상호작용을 하는지, 그가 어떤 사상을 품고 있으며, 어떤 미래를 생각하고 있을지 명확히 알아내기 전까지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아선 안 됩니다. 그걸 위한 불가침 영역 지정입니다."

-일리있군.

당장 이번 사태만 해도 유광조가 최고 수석 연구원의 권한을 등에 업고 난입한 탓에 불미스러운 사고로 끝을 맞이했다.

불가침 영역으로 지정된 시설은 해당 시설의 책임자에게 모든 권한을 부여한다. 그 어떠한 외부 간섭도 거부할 수 있지만 필요하다면 외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모순적인 권한.

하지만 FCD에선 제 1 연구시설에 그 권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고, 실제로 만장일치로 가결되었다.

그렇다면 제 1 연구시설이 그러했듯, 제 6 처리시설 또한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독립 시설이 될 수 있다는 의미.

이두근은 설령 최고 수석 연구원이라도 감히 간섭을 생각할 수도 없게끔, 불가침 영역이라는 방패를 세우자고 건의한 것이다.

"솔직히 저는 무섭습니다."

-그건 조사관의 의견이 아닌 것 같네만.

"예, 인간 이두근의 의견입니다. 그리고 이건 거짓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사직서를 쓰고 평생 TF와 연관되는 일 없이 조용한 시골에 내려가 살고 싶을 만큼 무섭습니다."

-무엇이 그리도 자네를 공포에 떨게 만드는가? 가드-079를 자극하지만 않는다면 특별히 위험한 일은 없을 텐데.

"가드-079와 엮이고나서부터 누군가에게 항상 감시당하는 기분입니다.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피해망상일 수도 있지만, 저는 한낱 피해망상으로 치부하고 싶지 않습니다."

-뭔가를 느낀 모양이군?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제 영혼에도 실체가 있다면, 그 영혼을 속박당한 느낌입니다."

-다른 조사관들도 자네와 같은 것을 느꼈나? "......예."

-어쩌면 가드-079와 상호작용한 ES가 벌인 수작일지도 모르지. 그게 아니라면 그와 접촉한 탓에 정신오염이 발생했거나. 우선 조금 쉬도록 하게. 나는 자네의 보고를 토대로 FCD 정기 의회에 이 안건을 올려볼 테니까.

"감사합니다."

통화를 종료하려는 순간, 번뜩 무언가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이두근은 다급히 제임스 마커스를 다시 불렀다.

"의원님! 의원님!!"

-갑자기 왜 그러나?

"굉장히 실례되는 이야기라는 걸 알면서도 개인적으로 꼭 드릴 말이 있습니다."

-한 번 말해보게.

"제 6 처리시설에 가드 전용 사내식당과 화장실 증축 계획을 허가해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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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처리시설의 방비가 허술하다는 정보는 사실이었습니다."

척 봐도 낡고 오래된 흔적이 엿보이는 석실의 정중앙에 한 쪽 무릎을 꿇은 남자가 대답했다.

"하지만 정보의 출처가 불분명해 최소한의 인원과 커스터마이징한 안드로이드 2기를 우선적으로 파견했습니다만, 이는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었습니다."

"쓰디 쓴 실패를 경험한 사람 치고 할만한 대답은 아니군요."

이글이글 타오르는 횃불의 광원이 닿지 않는 석실 끝의 계단 위. 흡사 마야 문명의 의식용 제단을 연상케 할 만큼 높은 위치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최소한의 희생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알아냈으니 완전한 실패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실패는 실패. 우리가 그토록 찾아 해매던 진리는 편린조차 손에 넣을 수 없었고, 용맹한 전사들은 헛되이 전장을 떠나야 했어요."

"하지만 우리가 의도가 완전히 읽힌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얼마든지 기회가 있습니다."

"어떻게 확신할 수 있나요?"

"만약 TF가 우리의 의도를 알아차렸다면, 지금쯤 제 6 처리시설은 그 어느 때 보다도 굳건한 방어망을 형성했을 겁니다. 하지만 형제단을 보내 조사한 결과, 최근까지 제 6 처리시설에 추가된 인원은 30명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라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자신들이 집요하게 노렸던 제 1 연구시설과 제 1 처리시설만 해도 상주하는 경비 병력이 최소 수백명 단위이며, 대대 규모의 기동타격대 기지가 인근에 위치해 있다. 게다가 첨단 방위 시스템과 인공위성을 통한 24시간 감시 체계까지 도입된 상황.

하지만 제 6 처리시설에 추가된 인원이 기껏해야 30명을 조금 웃돈다는 것은, TF가 자신들의 의도를 읽어내지 못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어떤 시설이든 세간에 절대 공개되어선 안 될 '진실'이 가득할 텐데, 그정도의 인원으로 방어망을 형성한다는 건 다소 어폐가 있다.

"베넥트 대사제. 제 6 처리시설을 다시 한 번 공략하고 싶은 건가요?"

"이번에는 확실합니다. 일전의 작전은 실패했지만, 여전히 그들의 방비가 허술한 것은 사실이며, 현장에 파견한 형제단도 시설의 허점을 파악해두었다고 합니다. 다수의 정예 병력과 커스터마이징이 끝난 안드로이드 1개 팀을 지원해주십시오. TF에서도 설마 작은 나

라의 섬에 위치한 시설까지 집요하게 노릴 거라곤 생각하지 못 할 겁니다."

실제로 그 사건 이후 재차 방비를 굳힌 흔적이 없었으니, 시설의 책임자가 TF에 자신들의 침투를 감췄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침투를 허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책임자 여럿의 모가지가 날아갈테니, 필사적으로 감출 수 밖에 없었겠지. 그렇다면 차라리 잘 됐다.

한 번 실패했으니 다시는 오지 않겠지, 하고 방심하고 있을 제 6 처리시설을 다시 한 번 노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모든 '진실'을 캐내, 세상에 '진리'를 설파할 것이다.

일이 잘 풀린다면 먼저 전장을 떠난 형제들도 기뻐해주겠지.

"좋아요."

짧막한 대답.

하지만 베넥트 대사제의 확신에 찬 대답을 듣고 상대 역시 신뢰를 품은 듯 했다.

"그대에게 3개 탐색단과 1개 형제단, 그리고 1개 안드로이드 팀을 지원해주겠어요. 추기경들도 그정도라면 반대하지 않겠죠."

"...감사합니다!" "단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았으면 해요. '그분'께서도 제게 말씀하고 계세요. 한 번의 실패는 실수지만, 두 번의 실패는 무능한 것이라고."

"절대로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진실과 진리를 위해, 우리는 기꺼이 혼돈 속으로 뛰어들 것을 맹세합니다."

자리에서 일어선 베넥트 대사제는 허공을 날아 자신에게로 떨어진 빛나는 증표를 받아들었다.

그것은 소용돌이 치는 태풍의 '눈'을 표현한 금속 악세사리였다.

"모든 진실을 파헤치고, 끝없이 진리를 탐구하세요."

"모든 것이 끝날 때 까지 멈추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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