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피해피 고문재단-82화 (82/209)

< 경비 업무 일지 : 공백(空白) >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쾅! 쾅! 쾅!

유광조는 악을 쓰며 엘리베이터의 벽에 발길질을 해댔다.

가드-079가 ES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정확한 기작은 모르지만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 까지 파악하는 건 성공했다.

그게 판명된 순간 유광조는 지금껏 그 어떤 연구원도 경험해본 적 없는 새로운 연구의 지평선을 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수석 연구원이라는 직책에 걸맞게 직접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면서 가드-079와 ES의 비밀을 낱낱이 파헤치고, 모두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임시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은 진짜 실력자, 전설과 비견해도 꿇릴 것 없는 초신성, TF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위인!

대단한 칭호들이 따라붙는 유광조 수석 연구원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었었다.

"그런데 이게 뭐냐고...빌어먹을!!"

죄다 망해버렸다.

가드-079를 생포해서 실험체로 쓰는 것도, 가드-079와 ES간의 연관성을 밝혀내는 것도, 모두를 자신 앞에 무릎 꿇리고, 자신을 우러러보게 만드는 것도.

예전부터 그랬다.

대단한 대기업 총수의 손자로 태어나 실질적인 재벌 3세로써 보장된 미래가 준비되어 있었지만, 정작 자신이 손대는 것은 하나도 남김없이 실패로 끝났다.

형들은 아주 쉽게 주워먹는 계열사도 자신은 받지 못 했다. 승계 자격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닌, 순수하게 경영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FCD로 지내는 조부는 가문에 흠집을 낸 자가 승계를 받아선 안 된다며 작은 계열사 하나 내주는 것조차 거부했다.

남들은 다 가지는 계열사를 하나라도 주워먹고 싶다면 실력으로 증명해보이라며 해외에 유학을 보내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정말 미친듯이 노력했다. 재벌 3세지만 남들처럼 인생을 즐기는 대신 피똥을 쌀 만큼 공부했다.

결국 노력이 결실을 맺어 TF에 입사할 수 있었다. 정식으로 TF 연구원이 되었을 때는 좀 어깨를 피나 싶었는데.

"왜...왜 또 실패를 해버린 거야! 왜!!"

남들은 평생을 걸려서도 얻지 못할 천재일우의 기회를 얻었다.

전설의 인정, 본부의 백업, 자신에게 유리하게 흘러가던 상황. 모든 것이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해서 거침없이 몰아붙였다.

하지만 그 알량한 계획이 가드-079에 의해 박살난 순간.

유광조는 자신이 짧은 인생 동안 쌓아온 위태위태한 탑이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것을 느꼈다.

"좆같은 세상!"

쾅!

신경질적으로 휘두른 주먹이 거울을 때렸다.

쩌적 하고 갈라진 균열 속에선 무수한 수의 유광조가 그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느껴진다. 수많은 이들의 시선이. 자신을 비웃고, 험담하고, 깎아내리는 악의가 사방팔방에서 덮쳐드는 것 같은 기분이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야. 난 제대로 했어. 전부 그 자식 때문이야. 그 자식이...그 자식이......!"

날뛰지만 않았다면?

자신의 말대로 순순히 실험체가 되었더라면?

아니, 어떤 논리를 들이밀더라도 가드-079에게 잘못은 없다. 그것은 그저 자기방어에 지나지 않았으며, 항상 '패배자'였던 유광조는 자기방어만 했던 저능아조차 이기지 못 해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다.

다만 인정할 수 없을 뿐.

띠링!

익숙한 전자음에 고개를 처든 유광조는 일그러진 얼굴로 웃었다.

B1에 도달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이제 좁고 긴 복도를 지나 계단을 타고 올라가기만 하면 지상이다. 바깥으로 나갈 수만 있다면 외부와 연락할 수 있다.

'비록 임무에는 실패했지만...아직 만회할 수 있어!'

대규모 기동타격대를 호출해서 가드-079를 생포한다음 프로젝트를 재개하면 된다.

한 번 실패했다는 오명을 씻을 수는 없겠지만,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연구자라는 칭호도 나쁘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훨씬 낫다!

단 한 번도 패배해보지 않은 천재 승리자는 남들의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지만, 숱한 패배를 겪고서도 결국 승리자가 된 범재는 존경과 숭배의 대상이 된다.

자신의 조부도 항상 말하지 않았던가? 실패와 패배는 얼마든지 용납할 수 있다. 단 포기는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고.

그렇기에 조부도 유광조를 가문의 흠집이라고 말할지언정 내치지는 않았다. 실력으로 증명해보이라며 기회를 주었다.

즉 자신은 살아있는 한 얼마든지 실패하고, 패배자 소리를 들으면서도 재도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 난 아직 완전히 패배한 게 아니야! 게임 오버 된 게 아니라고. 몇 번이고 재도전할 수 있어!'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마자 유광조는 단거리 육상 선수처럼 빠르게 치고 나갔다.

누가 출발 신호를 준 것도 아닌데 헐레벌떡 입구까지 달려간 그는 수동 개폐 장치를 조작해 입구를 개방했다.

바깥은 어두웠다. 저녁이니까 당연히 어둡겠지.

제주도의 밤하늘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밖으로 나온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

분명 제 6 처리시설의 입구는 한라산의 초입에 있을 텐데.

짜증날정도로 시야를 차지하고 있는 푸른 산림이나 귀를 시끄럽게 하는 풀벌레 소리가 인상적인 곳이 바로 산이다.

하지만 푸른 산림은 둘째치고 정겨운 풀벌레의 울음소리조차 들려오지 않는다.

"대체 이게......?"

짙은 어둠 아래에 존재하는 것은 황량한 황무지가 전부다.

그 황무지조차 최소한의 면적을 차지하기 위해 남아있는 무가치한 땅에 가까웠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무풍지대에서 적어도 발 딛고 설 땅은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한 무대 장치.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던 유광조는 문득 자신이 걸어나온 제 6 처리시설의 입구를 돌아보았다.

입구는 존재했다. 다만 매우 낡고 녹슨 문이 찌그러진 채 활짝 열려있었으며, 계단 아래의 공간에는 무너져 내린 돌무더기만 가득했다.

"말도 안 돼."

아무리 정신적 충격이 컸다고 해도 그렇지, 자신이 이렇게까지 미쳐버릴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단 말인가?

이 모든 것이 사실은 반쯤 미쳐버린 자신의 환각이라고 생각한 유광조는 서둘러 스마트패드를 꺼내들었다. 적어도 연락은 되겠지.

하지만 그가 꺼내든 것은 스마트패드가 아닌 한 권의 책이었다.

제목이 쓰여있지 않은 낡은 고서적.

무심코 첫 장을 펼친 유광조는 헛숨을 들이켰다.

-집행 목록

4. 약속을 지키지 않은 썅년

5. 해를 끼친 천하의 건방진 썅년과 그 부하들

6. 더러운 진물을 흘리며 자비를 구한 썅년

그 아래로 7에 해당하는 명단이 새롭게 새겨졌다.

종이에서 스스로 솟아난 검붉은 잉크가 벌레처럼 기어다니는 움직임으로 한 줄의 글귀를 만들어냈다.

7. 너.

"씨발!"

화들짝 놀란 그가 책을 바닥에 떨구자, 놀랍게도 책이 산산조각나며 크고작은 벌레들로 변해 사방팔방으로 기어다녔다.

정확한 종을 알 수 없는 벌레들은 곧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잠시 뒤, 기껏해야 수십 마리의 벌레들이 기어다니는 것 이상의 기이한 소음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스스스, 스스스.

수백 명의 인간들이 멀쩡한 땅에 빗질을 해대는 것 같은 소음이었다.

"아니야. 이건...이건 현실이 아니야."

분명 자신은 정신적 충격을 이기지 못해 엘리베이터에서 기절해버렸을 것이다.

어쩌면 그대로 골아떨어져서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좆같은 것 밖에 없는 세상천지 만물이 자신을 괴롭힌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으니, 이런 악몽도 충분히 있을 법하다.

그래, 걱정할 필요 없다.

악몽이야 원래 다 이런 법이지.

조금 고통스럽긴 하겠지만 참다보면 결국 꿈에서 깰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선 도망부터 쳐야......'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대량의 벌레들이 눈에 밟혔다.

꿈 속이라곤 해도 저런 것들과 몸을 섞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어디든 좋으니 꿈에서 깨기 전까지 도망칠 생각으로 몸을 돌린 찰나, 가녀린 양 팔이 유광조의 몸을 감싸 안았다.

"헤헤, 헤...제가, 잡았어요."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특유의 귀염성 있는 이 목소리를 분명 들어본 적 있다.

분명 어딘지도 모를 팀에서 파견을 나왔다며 짧은 기간 동안 자신과 함께 했던 여성 연구원의 목소리다.

작은 체구이면서도 몸매의 비율이 그런대로 괜찮았던 여성. 유광조의 팀에 머물렀던 기간이 좀 더 길었더라면 작업을 걸어볼 생각이었던 만큼 기억은 선명했다.

나중에 알게 된 건 그녀가 진짜 연구원이 아닌 TF의 독립 기관 중 하나인 감찰 본부 소속 감찰관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임지영씨?"

고개를 아래로 떨군 유광조는 무심코 구역질이 올라오려는 것을 참아야 했다.

자신의 몸을 붙들고 늘어진 것은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여성이 아니었다.

군데군데 무언가에 의해 파먹힌 흔적이 있는 몸뚱이, 머리카락이 반쯤 뽑혀나가 훤히 드러난 두개골. 부러진 건지 짓이겨진 건지 알 수 없는 다리는 축 늘어져 있었다.

이제는 완전히 더러워진 연구원 전용 가운만이 그녀가 과거에 어떤 직업을 연기하고 있었는지 알게 해주었을 뿐이다.

"...이거 놔! 이 빌어먹을 년!"

그렇게나 아름다웠는데.

웃는 얼굴이 참 귀엽고 깜찍했는데.

매번 패배하기만 했던 자신에게도 상냥하게 대해주며 이것저것 물어보던 친근한 여성이었는데!

이제는 아귀처럼 자신을 붙들고 늘어진 못난이에 짐짝으로 전락해버린 것을 유광조는 미친듯이 주먹으로 후려쳤다.

하지만 그것은 가녀린 팔에서 나온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한 힘으로 더욱 옥죄면서,

"아, 안 돼요...안 된다고 하셨으니까...가만히 계셔야 해요...벌을, 받아야, 해요......"

"닥쳐! 이 괴물년! 너도 결국엔 내 망상일 뿐이잖아!!"

무수한 실패 속에 추가되었던 실패한 첫사랑.

하지만 지금은 악몽 속에서 자신을 괴롭히고 있을 뿐인 추한 망상이다.

이 추하고 못난 것이 자신의 첫사랑일리 없다. 그래선 안 된다.

"급해보이십니다?"

옆에서 들려오는 남성의 목소리에 유광조는 목뼈에서 불길한 소리가 새어나올 만큼 거칠게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벌레들이 스스로 탑을 쌓으며, 서서히 인간의 형상을 갖추고 있었다. 그것은 미간에 구멍이 뚫린 남성이었다.

"하지만 안 됩니다."

"뭐가 안 된다는......!"

"당신이 생각하는 모든 것."

"!"

"'그 세상'엔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선 모든 것이 불가능합니다. 경우의 수따윈 없어요. 그냥 안 되는 겁니다."

"안 된다고 말하지 마! 이 개자식아! 난 아직 포기하지 않았어!!"

고작 망상따위가 자신의 뭘 안다고!

세상 그 누구보다도 '안 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 길을 달려온 인물이 바로 유광조다.

"날 무릎 꿇리고 싶어?! 어림도 없어! 난 포기하지 않을 거야! 살아만 있다면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남들은 가질 수 없는 재도전의 기회를 나는 무한히 얻을 수 있다고! 그런 신분을 가지고 있단 말이야!!"

"이해를 못 한 것 같군요."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부드러운 남성의 목소리.

그는 의무병을 나타내는 적십자 마크가 새겨진 장비를 걸친 지적인 인상의 사내였다. 얼굴이 날카로운 흉기에 죄다 찢겨나가 있어도 이상하게 그건 알 수 있었다.

"재도전도, 재시작도 안 되는 겁니다."

"대체 네가 뭔데!!"

"아직도 모르겠나요?"

이번엔 등 뒤에서 들려오는 또 다른 여성의 목소리다.

"당신을 봤고, 당신을 점찍었어요. 그럼 이제 매달릴 차례죠."

수십, 수백 마리의 벌레들이 유광조의 몸을 기어올라오더니, 목 언저리에 몰려들었다. 곧이어 벌레들은 억세고 굵은 밧줄로 변했다.

"용서도, 구원도, 끝도 없습니다."

"그분이 '끝'을 내주기 전 까지 무한히 이어지는 고통 속에서."

"추하게 몸부림치고, 후회하고, 용서를 빌고, 한탄하면서."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또 죽는 겁니다."

"그것 외엔 안 됩니다. 전부."

밧줄을 묶을 장소도 없을 텐데, 갑자기 확 조여진 밧줄은 유광조의 몸을 살짝 들어올렸다.

"커, 흐으윽?!"

목이 졸리면 점차 시야가 흐릿해지다가 의식을 잃어야 정상이건만, 유광조는 정신이 더욱 뚜렷해지는 것을 느꼈다.

전신을 물어뜯기 시작한 벌레들의 자비없는 공격 속에서, 신선한 피와 살점을 조금이라도 더 맛보기 위해 벌레들과 경쟁을 벌이며 들러붙는 인간들.

아니, 인간이었던 것들.

비명을 지르고 싶지만 목이 졸려서 그럴 수 없다.

정신을 잃고 싶지만 정신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고통을 망각하고 싶지만 뇌는 모든 것을 끊임없이 기억한다.

모든 것이 끝나기를 바라지만, 그조차 용납되지 않는다. 사라진 살점이 새롭게 돋아나며 지옥같은 고통은 끝없이 이어진다.

유광조는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간 시야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빛나는 별이라고 생각했던 그것은 커다란 눈이었다.

자신이 고통받는 것을 즐겁게 관람하는 관람객의 눈.

마치 앞이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대신해서 실컷 봐주는 듯한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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