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비 업무 일지 : 해피해피 프로젝트(1) >
"원하던 상황은 아니었지만 차라리 잘됐어."
B41의 저위험군에 위치한 엘리베이터 앞에 비스듬하게 기대 선 남성이 대뜸 입을 열었다.
지상에서부터 B40 까지 이어지는 대형 화물 엘리베이터는 16명의 인원도 충분히 탑승할 수 있었지만, B41부터 B80까지 이어지는 작업용 엘리베이터는 중량제한 탓에 절반만 이용할 수 있었다.
뒤에 남겨진 이들은 장비 점검을 하며 엘리베이터가 되돌아오는 것을 기다렸다.
가드-079와 대립각을 세울 마음이 아주 없지는 않았으나, 지금까지는 FCD의 명령으로 그를 감시하는 선에서 그쳤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이 사태의 주범인 가드-079를 제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만장일치로 지지를 받았다. 고맙게도 뒷배 하나만 믿고 까불던 유광조가 친히 '명령'을 내려주었기에, 다들 뒷일 걱정할 필요없이 가드-079의 말살 작전에 참여햔 것이다.
"생포하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잘 됐다고?"
"어쩔 수 없이 죽여버렸다고 하면 지가 뭐 어쩔거야? 이미 CCTV까지 먹통인 상황인데."
"하긴."
피식 웃으며 맞장구쳐준 것은 A-003.
개미부대에게도 정식 명칭은 존재하지만 매 작전마다 투입되는 인원과 팀이 달라지기 때문에 코드네임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바뀐다.
가령 이번 작전에서 팀내의 권한이 3번째로 높은 사람이 A-003의 코드네임을 가져가는 방식이다.
"다들 그렇게 가드-079에 대해 떠들어대길래 나도 궁금하긴 했어. 대체 그깟 놈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다들 그렇게 죽고 못 사는건가 싶었으니까."
"실제로 A-017부터 A-020까지 전부 당해버렸으니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게 증명된거지. 안 그래?"
"증명은 무슨. 놈의 움직임은 나도 봤지만 그건 체포조가 처음부터 방심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했던 거야. 우린 사이보그와 달리 급소 방어가 안 되는데, 급소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줬으니 그렇게 당하는거지."
"방심만 안 하면 이길 수 있다?"
"두 번 말하면 입 아프지."
A-005의 비아냥에 003은 히죽 웃으며 자신의 전용 장비의 손질을 마저 했다.
톱날이 달린 60cm 길이의 검. 장검이라고 할 만큼 긴 편은 아니지만 단검처럼 너무 짧지도 않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정글도에 가까웠지만, 검신의 두께나 칼날의 강도는 훨씬 더 대단했다.
손잡이에 달린 스위치를 누르며 내려찍으면, 코끼리의 두꺼운 다리도 3초가 걸리지 않아 잘라낼 수 있을 만큼 절삭력이 대단하다.
놈이 또 다시 폴짝폴짝 뛰어다니던 꼴을 볼 수는 없으니 처음부터 다리를 깔끔하게 잘라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우리 차례가 있는 건지 모르겠어. A-001이 이끄는 선발대가 먼저 갔는데 국물이나 남아있겠어?"
"거긴 숨을 곳이 많아. 게다가 놈이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진 않았다고 했으니 그 층 어딘가에 숨어있을 게 뻔하지. 우리도 빨리 내려간다면 구석에 숨어있는 놈을 끌어낼 수 있을 거라고."
먼저 내려간 8명이 그 넓은 층 전체를 이잡듯이 뒤지려면 시간 깨나 잡아먹을 것이다.
"오, 왔다, 왔어!"
엘리베이터 앞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던 005가 때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대충 사무실 의자 위에 아무렇게나 앉아있던 자들이 하나둘씩 일어나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아래에서 아무도 올라오지 않았으니, 선발대가 아직 가드-079를 발견하지 못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 놈도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것 같긴 했는데, 다수의 개미부대를 상대로는 씨알도 안 먹힌다는 걸 곧 알게 되겠지."
"질질 짜면서 한 번만 봐달라고 하면 어떡하지? 손대중 하기 힘들 것 같은데......"
"고민할 필요가 있나? 일단 사지부터 끊어놓고 TF를 적으로 돌리면 어떻게 되는지 몸소 느끼게 해줘야지."
"아직 저녁 안 먹었으니까 더러운 짓 할 생각은 마라. 너때문에 식욕 사라지면 손가락을 죄다 분질러버린다."
"어이구 무서워라~...어?"
B41에서 잘 내려간 엘리베이터는 B44의 저위험군에서 갑자기 멈춰섰다.
선발대가 B44에서 내린 것도 아니고, 당연히 가드-079가 B44로 올라오지도 않았었다. 그건 이미 관리봇을 통해 확인한 사항이니까.
"설마 관리봇의 엘리베이터 제어권마저 빼앗긴 건가?"
"그건...안 좋은데. 그러면 멀쩡한 엘리베이터를 박살내야 하잖아." 개미부대원들은 누구처럼 엘리베이터에 갇힌다고 해서 문을 두들기며 질질 짜는 타입은 아니었다.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멈춘다고 해도 즉시 천장을 뜯어내고 엘리베이터 통로 내부의 비상 계단을 이용할 만큼 프로의식이 남다르다.
물론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엘리베이터가 그냥 멈춘 것은 아니었다. B44의 저위험군 앞에서 제멋대로 문이 열린 것이다.
"......"
열린 문 앞에 서있는 것은 기동타격대 복장을 갖춘 한 남성이었다.
풀페이스 헬멧을 착용하고 있어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체격이나 분위기나 어딜 어떻게 봐도 가드-079였다.
'아니, 가드-079는 아직 B55에 있을텐데?'
'그럼 이건 누구야?'
'기동타격대 인원이 최근에 들어왔다는 보고는 없었어.'
'예전에 발생했던 대탈주 미수 사건을 막기 위해 들어왔던 기동타격대중 누군가가 잔류했던 건가?'
'CCTV에서도 잡힌 적이 없었던 인물이다.'
각자의 생각을 품으면서, 그들은 넓은 엘리베이터 벽에 바짝 붙어 길을 터주었다.
기동타격대 복장을 갖춘 남자는 그대로 걸어들어와 떡하니 엘리베이터의 중심부에 섰다.
그리고 스스로 '닫기' 버튼을 누른 정체불명의 사내는 이어서 'B55'의 버튼을 눌렀다.
자신들과 목적지가 같다는 사실에 잠시 당황한 개미부대원들이었지만, 곧 빠르게 평정심을 되찾았다.
기동타격대의 잔류 대원이 아니다. 손에 무기도 쥐고 있지 않으며, 관등성명을 대지도 않았다. 게다가 B55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B55를 목적지로 택했다?
이건......
"어이, 너 대체 누구......"
뽕!
005가 그의 어깨를 잡아채려는 순간, 상대가 품 속에서 꺼낸 수성 사인펜의 뚜껑을 시원하게 뽑아냈다. 그건 편의점에서 파는 흔하디 흔한 수성 사인펜이었다.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수성 사인펜으로 엘리베이터의 매끄러운 금속문에 글귀를 써나갔다.
-한바탕 하기 전에 나가고 싶은 놈 있어?
"......"
"......"
"......"
짧지만 강력한 메시지.
힘 쓰는 게 전문이긴 해도 글귀의 의미를 모를 만큼 개미부대원들은 멍청하지 않았다.
"하아아압!!"
가장 먼저 주먹을 내지른 건 004였다. 등 뒤에서 정확히 경추를 노리고 내지른 정권은 풀페이스 헬멧으로는 막을 수 없는 약점을 정확히 노리고 있었다.
텁, 빠악!
등 뒤에 눈이 달려있기라도 한 건지, 상대는 즉시 상반신을 옆으로 비틀며 왼 손으로 004의 주먹을 잡아챘다. 그리고 빠르게 이어진 카운터 펀치는 004의 안면을 단숨에 찌그러뜨렸다.
"죽여!"
"붙들고 있어!!"
주먹 한 방에 동료가 나가떨어지는 광경은 분명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매 순간마다 동료가 어떤 공격에, 얼마나 허무하게 죽었는지를 신경썼다간 이 바닥에서 오래 살아남기 힘들다.
동료가 죽어도 자신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면 그만이고, 자신이 죽더라도 또 다른 동료가 자신을 대신할 것이다.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전투에 임하는 것이 개미부대원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는 전투에 대한 희열,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보단 죽이기 위한 처절함을 앞세운다.
005는 가드-079에게 써먹겠노라 다짐했던 절삭검을 상대의 정수리 위로 정확히 내려찍었다. 그깟 풀페이스 헬멧이 방탄 성능이 좀 대단하다고 한들, 코끼리 다리도 우습게 잘라내는 절삭검이라면 능히 반으로 쪼개버릴 거라 믿었다.
자신이 오랫동안 다루었던 반신과도 같은 장비에 대한 절대적 믿음!
숱한 생명체들을 썰어봤기 때문에 예상할 수 있는 감촉과 희열!
하필 다른 쪽에서 치고들어온 발길질에 얻어맞아 벽으로 내몰린 상대는 미처 피할 새도 없이 절삭검에 머리가 찍혔다.
카가아앙!
요란한 금속 마찰음과 함께 튕겨나온 것은 상대의 뼛조각과 뇌수가 아닌 절삭검의 톱날이었다.
'무슨.....?!'
그깟 헬멧이 뭐라고!
있는 힘껏 내려찍은 절삭검을 막아낸 것도 모자라 톱날을 죄다 망가뜨렸다. 덕분에 사방으로 튄 톱날 조각들이 엘리베이터 내부를 마구 헤집었다.
"으악 씨발!"
"이 새끼야! 똑바로 못 해?!"
"이깟 놈 대가리 하나 못 쪼개서......!"
005를 옆으로 밀친 003이 상대의 명치에 팔꿈치를 박아넣으며 한 번 더 벽으로 몰아붙였다.
상대가 즉시 주먹을 휘둘러 반격해왔으나, 기가막힌 타이밍에 옆에서 달려든 012가 놈의 팔을 진압봉으로 내려 찍었다.
주먹의 궤도가 비스듬하게 비틀리자,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깊숙이 파고든 003이 놈의 복부에 권총을 박아넣고 미친듯이 방아쇠를 당겼다.
방탄복을 입고 있다고는 해도 초근거리에서 권총탄을 몇 발이나 맞아댔다간 내장이 파열될 터.
탄약이 전부 소모될 때 까지 방아쇠를 당기던 003이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반대쪽에서 날아든 주먹이 아슬아슬하게 그의 모자를 스치고 지나갔다.
"스턴!!"
주먹을 휘두르느라 자세가 흐트러진 상대의 옆구리에 미리 충전해둔 스턴건이 처박혔다.
파즈즈즈즈즈!
푸른 전류가 불꽃놀이처럼 타닥타닥 튀어올랐지만 상대는 잠시 부르르 떨기만 했을 뿐, 무릎을 차올려서 스턴건을 날려버렸다.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그냥 때려박아!!"
좁은 엘리베이터인지라 도탄의 위험을 우려해 대원들은 소총을 꺼내지 못 했다.
그 대신 각자 상대의 팔 다리를 하나씩 부여잡고 권총으로 주요 관절을 쏴갈겼다. 아주 걸레짝으로 만들어서 움직이지도 못 하게 만들 생각으로 시원하게 퍼부어준 것이다.
"야, 잠깐......!"
프칵!
아래에서 치고 올라온 날카로운 관수(貫手)가 012의 턱을 꿰뚫었다.
"이 놈 어떻게 움직이느으으으윽?!"
012의 턱을 꿰뚫었던 관수가 그대로 턱뼈를 부수며 횡베기를 시전했다. 005가 조금만 더 고개를 앞으로 들이밀었다면 똑같이 턱뼈가 박살났을 터.
상대는 관절마다 박혀있던 탄두를 하나씩 빼내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수십 발의 권총탄이 인간의 몸 하나 꿰뚫지 못 했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었지만, 스스로 탄두를 빼내는 상대의 모습도 결코 정상은 아니었다.
"도어 브리칭 폭약 있냐?"
"있지."
"그럼 이 놈한테 붙여. 어떻게 돼먹은 놈인지는 몰라도 평범한 인간이 아니야." 신체 강화 시술을 받은 자신들도 '아직은' 인간의 범주에 속한다.
그런데 수십 발의 권총탄과 고출력 스턴건을 버티는 괴물이라니? 심지어 저 헬멧은 기동타격대의 규격 헬멧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튼튼했다.
'우리가 듣지 못 했던 사이보그인가?'
'사이보그라고 해도 조금 전의 스턴건을 버텼을리가 없는데......'
'어찌됐든 여기서 박살내야 한다.'
엘리베이터는 어느새 B50을 넘어서고 있었다.
"까!"
브리칭 폭약을 쥔 009가 살짝 옆으로 빠진 순간, 남은 다섯 명이 거의 동시에 달려들었다.
"칵?!"
제일 먼저 한 손에 목을 붙잡혀 척추째로 뽑혀나온 것은 005였다.
그 뒤를 이어 발길질 한 방에 복부가 꿰뚫리거나, 손날로 후려친 것 만으로도 두개골이 풍선처럼 터져나가는 희생이 발생했다.
"됐다! 붙였어!!"
"그럼 터뜨려!!"
남은 인원은 셋.
옆구리에 브리칭 폭약이 붙은 상대는 억지로 그것을 잡아뜯으려 했지만 원격 폭파 스위치가 당겨지는 게 더 빨랐다.
파아아앙!!
마치 크레모아처럼 한쪽 면(접착면)을 향해 모든 화력이 집중되는 브리칭 폭약이 놈의 옆구리에서 터져나갔다.
그 충격으로 엘리베이터가 심하게 흔들리며 남아있던 인원들도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순간적으로 엘리베이터의 전등이 꺼졌다가, 동력이 복원되어 다시 내부를 환하게 밝혔다.
다섯 구나 되는 시체더미 속에서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세 사람은 충격파로 어질어질한 머리를 부여잡았다.
"으윽...해치웠나?"
"잘 모르겠지만...아무리 괴물 같은 놈이라도 그 폭발을 견디진 못 했을 거야."
"젠장, 시체를 방패로 세우지 않았다면 우리도 다 죽었겠어."
너덜너덜한 동료의 시체를 옆으로 내던진 개미부대원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누구보다도 빠르게.
"빌어먹을. 강화 시술을 받아도 뇌진탕은 어쩔 수 없...그흑?!"
아직도 일어나지 못한 009의 머리통을 그대로 밟아 부숴버렸다.
"0, 003? 대체 무슨 짓을?!"
마지막 남은 대원의 앞에서 003의 신체는 아이스크림처럼 서서히 녹아내렸다.
녹아내렸던 몸은 주변의 모든 시체들을 집어삼킨 후에 다시 원래의 몸으로 돌아갔다. 기동타격대 복장을 갖춘 정체불명의 괴한으로.
"E, ES 6-......!"
띠링!
무사히 B55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활짝 열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처음 탑승한 인원은 8명이었지만, 걸어나온 것은 단 한 명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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