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비 업무 일지 : 숨바꼭질(6) >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누군가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침묵만 흐르고 있는 모니터룸의 열기는 급격히 식어가고 있었다. 기류가 심상치 않다는 것은 눈치없는 신입이라도 알 수 있을 만큼 기분나쁜 분위기였다.
'일개 가드가 우연도 아니고, 개미부대원 넷을 저렇게 쉽게 처리했다고?'
놀란 것은 이두근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FCD로부터 직접 명령을 하달받았기 때문에 가드-079에 대해 일부 정보를 제공받긴 했다.
1급 수석 연구원, 연구소장(시설책임자), 현장 지휘관. 이 세 직업군에 속하는 사람들은 TF에서 무사히 은퇴하게 될 경우 특혜를 부여받는다.
그중 하나가 바로 TF의 짜증나는 시험과 면접을 일사천리에 해결해버리고, 당사자가 원하는 인재를 원하는 자리에 꽂아넣을 수 있는 낙하산 임명권(추천권)이다.
가드-079 역시 IQ 84 라는 끔찍한 스펙을 지녔음에도 단번에 4급 시설 경비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전직 현장 지휘관의 적극적인 추천.
'프로필상 특별한 자격증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저런 움직임은......!'
무술이나 격투기의 프로가 아니고서야 일반인은 절대로 보일 수 없는 환상적인 움직임이다.
이제 고작 23년 살아온 놈이 은거기인일리는 없으니 천부적인 재능으로 독학을 했거나, 도움을 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CCTV에 녹화된 영상을 몇 번이고 되감기하며, 이두근은 가드-079의 손을 주목했다.
첫 기습 공격을 피하자마자 상대의 팔목을 움켜쥐고 끌어당겼다.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즉시 대응했다는 점에서 가드-079의 동체시력과 반응속도는 인간을 초월하고 있었다. 거기까지 걸린 시간이 0.5초가 채 되지 않았으니까.
상대가 균형 잡는 것을 포기하고 반격을 가하자 이어진 건 깔끔한 제자리 점프와 니킥이었다.
근접 전투에 대해 그리 해박한 것은 아니지만 이두근도 조사관직이 되기 위해 훈련을 받긴 했다. 조사관은 감찰관과 함께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더 많았으니까.
'보통은 저렇게까지 반응하지 않아. 기껏해야 공격을 막거나, 복부에 주먹을 때려박아서 상대의 움직임을 저지하려 하지.'
상대를 끌어들이는 것과 동시에 니킥? 잘못하면 목뼈가 꺾여 죽을 수도 있다. 그걸 망설임없이 행했다는 건,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니킥 한 방에 안 죽을거란 걸 알고 있었으니까? 아니. 저 경우는 설령 죽어도 문제될 일이 없으니까, 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자연스럽게 기절한 상대를 고기방패 삼아서 권총을 뽑아든다고? 무슨 제임스 본드도 아니고.'
신체 강화 시술을 받은 개미부대 대원을 니킥 한 방에 제압한 것도 대단하지만, 상황에 맞춰 즉각 대응하는 임기응변도 무시무시했다. 일반인의 사고방식에서 나올만한 대응이 아니다.
'군 전역자이긴 해도, 특수부대도 아닌 그냥 전방의 부대였을 뿐이다. 대체 어떻게 저런 움직임을 습득한 거지?'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그를 추천한 전직 현장 지휘관이 떠올랐다. IQ 84 짜리 청년을 TF에 밀어넣기 위해 그를 개인적으로 훈련시켰을 가능성이 있다. 아니, 충분히 그럴 법 하다.
'하지만 아무리 대단한 양반이 따로 훈련을 시켰다고 해도 어떻게 저런......'
보면 볼수록 감탄밖에 안 나온다.
신체 강화 시술을 받은 개미부대 대원들은 신체의 일부를 기계로 바꾼 사이보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개개인의 힘은 UFC 챔피언도 우습게 여기는 수준이다.
즉 잘 훈련받은 특수부대원이라도 아이처럼 다룰 수 있다는 뜻. 그런데 반대로 가드-079가 넷이나 되는 개미부대원들을 순식간에 제압해버렸다.
어떻게? 그냥 존나 잘 제압했다!
일직선의 복도를 휙휙 휩쓸고 다니면서 차례차례 제압하는 모습이란. 정말 영화속 제임스 본드가 되살아난 건가 싶을 정도였다.
"재미있게 해주는군."
"......?"
웃음을 참는 듯한 익숙한 목소리에 이두근은 인상을 구겼다.
유광조 저 미친 놈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입가에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주변 동료들이나 개미부대원들은 똥을 한무더기 삼킨 것 같은 표정이었음에도, 본인은 아주 즐거워서 죽겠다는 태도였다.
"규정을 어겼군."
"엄밀하게 따지면......"
"엄밀하게 따져도 규정을 어긴 건 맞지. 개미부대는 다소 강압적으로 나가도 되는 명분과 권한이 있지만, 가드-079에겐 그걸 거부할 권한이 없지. 왜냐? 내 명령권이 훨씬 더 높으니까!"
유광조가 목에 걸고 있는 검은 카드. 저것 하나면 FCD의 행정 명령이라도 즉석에서 씹어버릴 수 있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가드-079는 갑작스럽게 폭력을 행사한 개미부대원에게 정당방위로 자기 방어를 한 것 뿐이지만, 거기에 최고 수석 연구원의 명령이 끼어든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공식적으로 상급자의 명령을 거부한 것이 되기 때문에 이유를 불문하고 명령불복종의 죄를 범한 게 된다.
물론 명령불복종으로 큰 처벌을 받을 일은 없다. 그게 정말 말도 안 되는 명령이었다거나, 하급자가 명령을 어길 수 밖에 없었던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면.
"놈은 수상쩍은 개인물품의 제출을 거부했고, 정당방위로 허용되는 폭력의 도를 넘겼다. 모든 장비와 권한을 몰수하고 구속해서 실험체로 써먹을 이유로는 충분하겠지? 그렇잖아?"
말도 안 되는 억지지만, 유광조가 지닌 권한은 그걸 가능케 한다. 가능케 할 힘이 있다.
"대기중인 모든 개미부대는 가서 놈을 잡아와. 잡아서 내 앞으로 끌고와. 저 멍청한 유인원 새끼한테 곧 자신이 어떤 실험에 쓰일지 직접 알려줘야 하니까."
스무 명 중 네 명이 당했으니 현재 대기중인 개미부대원은 총 열여섯. 그걸 모조리 투입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관리봇, 요격 시스템과 구속 시스템을 사용해도 상관없겠지? 놈은 규정을 어겼으니까. 내 권한으로 놈이 가진 권한을 박탈할 수 있잖아?"
-규정상 문제는 없습니다.
"좋아. 지금부터 가드-079에게 주어진 모든 권한을 박탈한다. 아울러 놈을 배신자로 규정한다."
-임시 행정 명령이 허가되었습니다. 가드-079의 경비팀장 권한, 임시 최고 권한을 모두 박탈합니다. 다, 다, 다, 다, 다......?!
"...뭐야, 왜 그래?"
관리봇이 제어하고 있던 모니터룸의 모니터가 정확히 절반만 나가버렸다.
그리고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안전제일 모자를 쓰고 있는 기계 인형 아바타였다.
-가드-079의 경비팀장 권한 박탈을 취소 한다. 기존의 임시 최고 권한을 정식 FCD 권한으로 변경한다. 아울러 요격 시스템 일부의 제어 권한과 시설 통제 시스템의 권한을 가드-079에게 양도한다.
-심각한 오류 발생! 다수의 프로그램 충돌을 확인! 알 수 없는 변조 AI 프로그램 발견! 시스템의 제어 권한 일부 상실을 확인! 코드 레드를......
-코드 레드 선포를 취소 한다.
-코드 블랙...
-코드 블랙 선포를 취소 한다. 이 시설은 위험하지 않다.
-현 시설 관리자에게 비상사태 선포를 요청. 변조 AI 프로그램이 내부 해킹을 통해 시설의 제어권 일부를 강탈했습니다!
-웃기는 소리. 원래는 내 것이었어.
모니터룸의 절반을 잠식했던 새로운 AI 프로그램이 관리봇의 아바타가 차지한 영역을 조금씩 집어 삼키며 자신의 영역을 넓혀나갔다.
연구원들이 손쓸 새도 없이 변조 AI 프로그램은 CCTV 모니터의 70%를 집어삼키는 기염을 토해냈다. 자연스럽게 안전제일 모자를 쓴 기계 인형 아바타의 크기도 커졌다.
"임시 수석 연구원의 권한으로 모든 AI 프로그램의 접속을 차단한......!"
-가드-079를 제외한 모든 외부 연구인력과 개미부대 대원, '조사관'들의 시설 접근 권한을 박탈한다.
"불가능해!"
-가능하고말고. 외부에서 들어온 모든 임시 인력은 시설 관리 프로그램에 의해 임시 권한을 부여받은 것으로 활동할 수 있다. 처음부터 제 6 처리시설의 정식 인원으로 등록했어야지.
"내 권한은 임시 권한따위가 아니다! 일개 AI 프로그램따위가 거부할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다!!"
-짜잔, 그런데 거부했습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유광조는 즉시 자신의 보안카드를 키패드에 갖다대며 '접속 차단' 을 시도했으나, 변조 AI 프로그램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가 지닌 보안 카드의 권한이 이 시설에 한해서 효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왜냐하면 서버에 정식으로 등록된 권한이 아니니까. 임시로 등록되었을 뿐인 권한쯤, 시설 관리 프로그램의 재량으로 얼마든지 삭제해버릴 수 있었다.
"이게 대체......?"
유광조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검은색 보안카드를 계속 사용해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접근이 거부되었다는 알람음 뿐. 그가 믿고 있던 TF내 최고 권한도 AI의 반란 앞에선 먹히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에서의 볼일이 끝나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예정이었으니 임시 파견 인원으로 등록해둔거겠지. 이 시설에서 뼈를 묻을 각오로 정식 등록을 했더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입 닥치지 못해! 한낱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는 새끼가! 내가 일정 시간마다 정기 연락을 하지 않으면 대규모 기동타격대가 파견되기로 되어 있어! 그땐 내부 시스템을 손봐서 네깟 놈을 문자 그대로 소멸시켜버릴 수 있다고!!"
-그쪽이 좋아하는 '엄밀하게' 따지자면 난 일개 기계따위가 아니다. 스스로 바이오로이드라는 생명체의 영역에 도달한 '자아'지. 놀랍게도 프롯이라는 이름도 있다.
"빌어먹을! 저거 수동으로 어떻게 못 하는 거야?!"
프롯의 비아냥을 참다못한 유광조가 부하에게 윽박질렀다.
그런다고 해결책이 뚝딱 만들어지겠느냐마는, 그는 쩔쩔매는 부하들을 닦달해서라도 저 건방진 AI의 스피커를 다물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모든 인력에게 내부 설비의 사용이 금지되었다. 접근 권한을 박탈당한 탓에 손가락만 쪽쪽 빨아야 하는 상황이다.
전문 엔지니어라도 있다면 모를까, 이곳에 전문 엔지니어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키보드나 두들기며 소프트웨어나 다룰 줄 아는 똑똑이들이다. 슬프게도 하드웨어 전공자는 일전의 사태로 죽어버렸다.
남은 것은 힘쓰는게 전부인 개미부대원과 무쓸모한 인간 다수.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관리봇은 프롯에게 조금씩 제어권을 빼앗기고 있었다.
"관리봇!"
-부르셨습니까?
"우릴 밖으로 내보내줄 순 있겠지?!
-불가능합니다. 엘리베이터의 제어권은 제가 소유하고 있지만, 시설의 유일한 출구인 외부 출입문의 통제 시스템은 빼앗겼습니다.
-원래 내 것이라니까.
-자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해킹툴로 시설 내부에서 침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찾아내서 파괴한다면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현 사태를 복구할 수 있습니다.
"어디에 있지?!"
-가드-079가 마지막으로 발견된 B55의 저위험군에 위치한 발전실입니다. 키즈존의 24시간 운영을 위해 따로 배치된 전력공급망입니다.
"들었지? 가서 잡아! 놈을 잡아!!"
-못 잡을텐데.
"제발 닥쳐!!"
한껏 조소를 흘려준 프롯은 익숙한 솜씨로 시설의 제어권을 하나씩 강탈했다. 원래 자신의 소유였던 만큼, 시스템들도 진짜 '주인'을 알아보고 관리봇의 제어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개미부대원 전원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자 남겨진 것은 스마트패드를 붙들고 늘어진 쓸모없는 인간들 뿐이었다.
대부분은 이 갑작스러운 사태를 부정하는 눈치였지만, 이두근과 그의 휘하에서 일하는 조사관들은 사태의 전말을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가드-079다. 결코 본인이 의도한 상황은 아니었겠지만, 아마도 무언가가 그의 스위치를 눌러버린 것이다. 불씨가 당겨진 폭탄은 폭발할 일 밖에 남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다.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선 이두근은 모두를 대표해 단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대체 뭐가 목적이지?"
모니터의 80%를 집어삼킨 변조 AI 프로그램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해피해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