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피해피 고문재단-70화 (70/209)

< 기동타격대 작전 일지 : 언제나 충성(2) >

"대한민국 감시지부 소속 기동타격 1소대 부소대장 진도형 중사입니다."

"아, 반가워요."

가벼운 어조로 인사를 받아준 인물은 현장 지휘관 치고 상당히 젊은 남자였다.

러시아 소속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그의 지휘관 견장에는 'RUS' 라는 이니셜이 쓰여 있었다.

같은 한국인이라면 모를까, 외국인의 이름까지 외우고 있는 경우는 보통 드물다. 하지만.

'모르슬락 보리스. 러시아 최연소 현장 지휘관이라고 했던가. 최근 동아시아 전역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더니 한국에도 들어왔군.'

그가 이끄는 파견 부대는 러시아 극동에 위치한 블라디보스토크에 거점을 둔 덕분에 동아시아 전역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업무상 한국에서 마주친 건 진도형도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TF 내부에서 떠도는 소문들이 자자했기 때문에 아주 모르는 인물은 아니었다.

게다가 일전에 제주도의 제 6 처리시설에서 현장 지휘관이 사망한 사건 때문에 대한민국 기동타격대의 위상은 바닥까지 떨어진 상황. 블라디보스토크에 거점을 둔 보리스가 진도형의 소대를 겸사겸사 지휘하게 될 수도 있다는 루머가 돌았다.

여러 의미에서 만나면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뒷맛이 씁쓸해지는 인물이었다.

"정전미로 사건은 잘 해결됐나요?"

악의가 없는 질문이었지만 진도형은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그게...뒷수습은 잘 끝났습니다."

소대장이 어떻게든 해줄테니 뒷수습이 잘 끝났다는 말이 아주 거짓말은 아니었다.

싱긋 웃어보인 그는 다시 작전지도로 시선을 돌렸다. 슬라브계의 피를 진하게 물려받은 그는 특유의 옅은 금발과 오똑한 코, 살짝 갸름한 얼굴이 군인보단 모델을 연상케 했다.

그런 주제에 나이는 고작 31세로 진도형과 동갑이다. 현장 지휘관의 평균 임관 연령대가 40대 초중반인 것을 감안하면 최연소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만큼 진급이 빨랐다.

"저 건물에서 빠져나온 사람이 총 몇 명이죠?"

"지금까지 확인된 사람만 마흔 넷입니다."

"마흔 넷의 처후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나요?"

부관에게 의도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그의 행동은 지식 부족 탓이 아니었다. 속으론 이미 모든 결정을 내렸지만 부관들의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자꾸만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우선 증언을 수집하고, 면밀한 검사를 위해 인원을 나눠서 각기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다들 극도로 긴장한 상태인데다, 어떻게든 현장에서 떨어지고 싶어할 정도로 강한 반발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안정을 시키는 것이 최우선 사항입니다."

"나쁘지 않네요. 하지만 병원으로 이송시킬 게 아니라 감시지부의 구치소에 보내는 게 더 낫겠어요. 마흔 네명 중에 외상을 입은 사람은 전무한데다, ES에 의해 강한 정신오염을 당했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병원에 보내는 건 너무 위험해요. 정신오염은 전염된다, 기본적인 사실이잖아요?"

"...죄송합니다. 정신오염보다는 단순한 공포에 의한 혼란 상태라고 섣부른 판단을 했습니다."

"알았으면 이송 시작하세요. 마흔 넷에 달하는 민간인을 한 번에 수용하는 건 힘들겠지만, 그건 대한민국 감시지부와 연계하면 어떻게든 되겠죠."

보리스가 턱짓을 해보이자 부관이 헐레벌떡 움직여 의무병들이 돌보고 있는 민간인들에게 달려나갔다.

저들 모두 귀중한 증인들이면서, 어쩌면 TF에서 '처리'해야 할지도 모르는 불쌍한 피해자들이다.

'그래도 최소한 저 사람들은 ES로부터 살아나왔군.'

어린아이 30명은 끝내 살아돌아오지 못 했건만.

가볍게 혀를 찬 진도형은 진입 루트를 설명하기 시작한 보리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알파-1은 시설 옥상에서 내부 진입을 시도하세요. 헬기를 대기시켜둘테니 위험하다 싶으면 즉시 빠져나올 수 있을거예요. 델타-7은 2층 벽에 브리칭을 시도해서 내부 시야 확보와 ES의 소재 파악부터 하세요. 반대편 건물에서 대기중인 저격팀이 최대한 엄호해줄거예요. 그리고 1층 현관 진입은......"

보리스의 시선이 올라가고, 자연스럽게 진도형과 눈이 맞았다.

이럴때는 눈치 빠른 사람이 임자다.

"1층 진입은 저희 소대가 맡겠습니다. 소대원 모두 TF 공식 훈련을 통해 최대 3급 정신오염에 대한 내성을 길렀습니다. 다소의 정신오염은 감수하면서 작전을 지속할 능력이 있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하지만 장비가 열악하고 상대적으로 인원이 적어서 단독으로 진입 작전을 맡기는 힘들 것 같은데......"

"모두 최소 5년 이상 기동타격대에서 근무한 베테랑 대원들입니다. 훈련은 단 한 번도 빼먹지 않았으며, 현장 경험 다수, 지난 5년간 전체 대원의 사망율은 10% 미만입니다."

"단순히 대한민국에서 극도로 위험한 ES의 출현율이 낮았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요?"

"해외 파견을 나간 적도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진도형의 충성심이 다분한 발언에 보리스는 의미심장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충성심과 사기가 하늘을 찌르는군요. 그렇게까지 원한다고 하니 기회를 드려야죠. 그럼 가장 먼저 진입하세요. 순차적으로 옥상을 통해 알파팀을 진입시킬테니."

"결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각자의 포지션이 정해지자, 보리스는 부관이 가져온 유랑가(家) 건물의 설계도에 매직으로 표시를 해나갔다.

"1층과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딱 하나뿐인데, 이 계단도 상당히 좁아요. 전략적인 측면에선 진입 자체가 위험하기 때문에 포기를 하는 게 맞지만, ES가 2층에 도사리고 있다면 진입하지 않을 수 없겠죠. 좋은 방법 있나요?"

"더미를 쓰겠습니다."

"더미 좋죠. 또 다른 방법은요?"

"소음 발생기, 홀로그래픽 트랩, 스파이더 봇, 써먹을 수단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ES의 시선을 잠깐 돌릴 수만 있다면 좁은 계단을 돌파하는 것도 2초면 충분합니다."

장정 10분이나 이어진 토론 끝에 최종적으로 진도형 소대의 방침이 정해졌다.

우선 진도형 소대가 1층 현관을 통해 진입해서 내부 안전 확보후, ES를 수색한다.

1층에서 ES가 발견된다면 섬광탄과 연막탄을 터뜨려 시야를 봉인하고 후퇴, 여의치 않다면 외벽에 설치해둔 C4를 터뜨려 건물 벽을 부수고 탈출한다.

반대로 2층에서 ES가 발견된다면 직접적인 교전은 피하되, 외부 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건물 옥상에서 지원팀이 진입, 외벽에 매달린 팀은 즉시 브리칭을 시도해서 2층의 모든 외벽을 철거, 저격팀이 활약할 기회를 마련해준다.

현재 동원된 기동타격대의 숫자만 해도 무려 70명에 달한다. 비상시 사용할 전투용 안드로이드와 공격 헬기까지 포함한다면 어지간한 중대 규모의 군대도 쌈싸먹을 수 있는 수준.

'게다가 민간인들도 죽이지 못 했을 만큼 살상력이 극도로 떨어지는 ES라면 생포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브리핑을 끝마친 진도형은 소대원들과 함께 유랑가(家)의 현관 앞으로 집결했다.

굳게 닫혀있는 현관문은 보통 통짜 유리문이어야 정상일텐데, 기이하게도 통짜 금속문이었다. 심지어 조금 전에 민간인들이 대피했음에도 불구하고 잠겨 있었다.

"브리칭."

진도형의 신호를 받은 돌격대원이 금속문의 손잡이에 브리칭차지를 설치했다.

목재문이었다면 브리칭 샷건을, 유리문이었다면 락픽으로 잠금을 직접 따거나 절단기로 잘라냈을 것이다.

하지만 금속문은 절단하기엔 너무 오래 걸리고, 샷건을 쐈다간 산탄이 튈 위험이 높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폭발물을 사용한다.

콰아앙!

폭발력에 의해 안쪽으로 튕겨나간 금속문이 테이블에 부딪치며 박살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매케한 연기와 먼지가 차올랐지만, 대원들 모두 기동타격대 전용 풀페이스 헬멧을 착용한 덕분에 문제는 없었다.

"진입한다."

선두인 진도형의 뒤를 아홉명의 대원들이 따라 들어갔다.

사실 규모만 따지면 기껏해야 분대급이지만, 기동타격대 한 명이 평범한 군인 서넛을 상대할 수 있다는 논리하에, TF에선 기동타격대 10명 기준 1개 소대로 규정한다.

진도형은 펄스라이플의 라이트를 켜서 내부를 살폈다.

자욱한 먼지 속에서 보이는 것은 이상한 액체가 담겨있는 그릇과 칙칙한 색의 테이블이 전부였다.

'상호명도 그렇지만, 정말 식당이 맞긴 한 건가?'

음식과 식사를 하는 테이블이 있으니 일단 식당은 맞겠지만, 진도형은 이런 기분나쁜 곳에서 식사를 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다.

창문은 하나도 없지, 깜빡이는 전등의 색도 미묘하게 어두워서 기분나쁘지, 주방으로 추정되는 장소는 기분나쁜 액체가 담긴 냄비가 아직도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우욱."

풀페이스 헬멧 덕분에 냄새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팀원 중 한 명이 냉동고를 열자마자 가볍게 헛구역질을 했다.

현장에서 제법 구른 베테랑조차 기겁하게 할만한 것이 냉동고에 있었단 말인가?

"빌어먹을 민트초코."

"......"

냉동고에서 대량으로 쏟아져나온 것은 싼값에 팔리는 대용량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이었다. 브랜드도 없는 것으로 보아 모 노브랜드 마트에서 떨이로 파는 것을 구입한 것이 분명했다.

보기만 해도 헛구역질이 나오는 광경에 진도형은 손짓으로 얼른 치워버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차라리 시체가 나왔다면 덤덤하기라도 했으련만.

가게의 안쪽은 설계도대로 사람 두 명이 간신히 지나다닐 수 있을 법한 좁은 계단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 1층의 수색이 끝나지 않았다.

"탐지기 상태는 어때?"

"미쳐 돌아가고 있는데요? 정전미로가 나타난 곳에서도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헬멧의 바이저 덕분에 외모의 최대 흠집인 뿔테 안경이 보이지 않는 대원이 말끝을 흐렸다.

C 게이지 측정기는 단순히 ES가 근처에 있냐 없느냐를 구분하는 것 외에도 주변의 오염 정도를 파악하는데도 쓰인다.

수치가 미쳐 날뛰고 있다는 건 이미 자신들의 몸도 어디선가 박살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거 작전 시간 30분만 넘겨도 우리 다 죽겠는데요......?"

"불길한 소리 하지마라."

지금 자신들은 체르노빌 원전 사태 초기에 겁없이 달려든 인부들과 같다.

기본적인 보호 장구는 갖췄지만, 체내에 침투하는 오염을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임무를 끝내고 현장에서 벗어나야 한다.

'장기 한 두개쯤 새로운 것으로 교체하는 일이야 일상다반사다. 지금은 임무에 집중할 때야.'

의료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아예 오염의 영향을 받지 않는 기계 장기로 바꿀 수도 있고, 신선한 새 장기를 이식받는 것도 가능했다.

이는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기동타격대에게만 주어지는 TF의 특혜. 여차하면 위나 대장이 죄다 녹아내리더라도 시간만 맞춘다면 병원에서 다시 눈을 뜰 수 있을 것이다.

"식료품 창고 이상없습니다."

"사무실 이상없습니다."

2인 1조로 움직여 내부를 살피고 돌아온 대원들이 차례차례 보고를 했다.

"확실하게 확인했겠지?"

"꼼꼼하게 확인했습니다. 문제 없었습니다."

4명의 대원들이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했다. 이제 남은 건 2층을 확인하는 것 뿐이라며, 진도형은 스파이더 봇을 꺼내들었다.

작전 도중 가상현실에 잠깐 접속해서 스파이더 봇과 연결한 후, 원격으로 제어하는 정찰 방식이다.

스파이더 봇과 연결하기 위해 헬멧에 추가 VR 파츠를 장착한 진도형은 갑작스럽게 밀려오는 압박감에 헛숨을 내쉬었다.

'무슨......?'

목 언저리에 느껴지는 기이한 압박감. 그렇게 강한 것도 아니고, 마치 어린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장난스럽게 움켜쥐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짬밥을 먹을대로 먹은 내가 현장에서 긴장을 했다고? 아니, 그럴리가.'

긴장을 했다면 진입하기 전부터 했겠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지금, 갑자기 긴장으로 호흡 곤란이 온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가상현실에 접속하면 한결 나아질거다.'

신체의 안정을 위해 VR 기기가 자체적으로 뇌파를 조절해 뇌가 처리해야 할 신체 기능을 대신 처리해준다. 자연스럽게 호흡하는 것 조차 기계가 대신 해주는 셈이다.

요즘은 인간보다 기계가 훨씬 더 믿을만하다. 그런 생각으로 VR 접속 버튼을 누른 순간, 눈앞에서 불꽃이 튀었다.

파지지직!

"어흑?!"

풀페이스 헬멧과 함께 스파크를 일으키며 VR 파츠가 박살나버렸다. 정수리에서 느껴지는 따끔한 통증으로 화상을 입었음을 짐작케 했다.

"괜찮으십니까, 진 중사님?!"

"씨발...이거 불량품 아냐?! 왜 갑자기 폭발하고 지랄이야!!"

"부, 분명 정비팀에서 정비 끝났다고 했었습니다. 준구 네가 정비팀에 맡겼었잖아! 안 그래?!"

"예! 정비팀에서 정비 완료 보고서까지 받아서 올렸었습니다!"

"그럼 이게 왜...어휴, 씨발!"

서둘러 다가온 의무병이 덜 박살난 헬멧을 완전히 걷어내고 응급조치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대로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기에, 진도형은 바로 옆의 뿔테 안경 똑똑이에게 대신 스파이더 봇의 조종을 맡겼다.

"여분 장비 있지? 네가 대신 해봐. 스파이더 봇 2층으로 잠깐 올려보내서 위에 뭐가 있는지 확인만 하면 돼."

"진짜 제가 하라고요? 전 스파이더 봇 울렁증 있는......"

"시간 없으니까 빨리 해! 이 새끼야!!"

진도형이 거세게 다그치자 뿔테 안경은 하는 수 없이 여유분으로 챙겨온 VR 파츠를 자신의 헬멧에 장착했다.

의무병을 제외한 다른 대원들은 혹시라도 계단에서 ES가 내려올까봐 총구를 겨눈 채 경계 태세를 취했다.

"아오, 쓰읍! 총에 맞은 것 보다 아프네."

"운 좋으신 줄 아십쇼. 자칫 파편이 두개골로 파고들었으면 큰일날 뻔 했습니다."

"우리 부대 새끼들은 하루라도 재수없는 소리를 안 하면 입에 가시가 돋냐? 아! 살살 좀......!"

기동타격대 의무병은 매일매일 전쟁터에 끌려다니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3년차만 돼도 최고의 야전의가 된다.

거창한 수술까지 진행하진 못 해도 박힌 총알 빼기, 찢어진 상처 꿰메기, 출혈 잡고 안정시키기 정도는 할 줄 알았다.

부상자의 골든 타임을 지켜주는 든든한 아군이긴 했지만, 그 의무병 역시 TF 소속이라 거칠기는 참 거칠었다. 맘스터치가 약손이라면 의무병의 손은 회귀한 천마의 손이다.

"야, 잘 돼가고 있냐?"

슬슬 스파이더 봇을 올려보냈을 타이밍이기에 시선을 돌린 진도형은 자신의 눈앞에서 흔들거리는 군화를 보았다.

'군화?'

서서히 따라 올라간 시선은 어느 순간 멈췄다.

VR 파츠를 착용한 뿔테 안경의 목에는 천장에서 빠져나온 두꺼운 전선이 감겨있었다.

전선이 쭉 이어져 내려온 천장의 작은 틈새. 어두컴컴해서 잘 보이지도 않는 그곳을 통해 진도형은 '시선'을 마주쳤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