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피해피 고문재단-69화 (69/209)

< 기동타격대 작전 일지 : 언제나 충성(1) >

TF 대한민국 감시지부에 소속된 소규모 기동타격대는 최근 일이 많이 늘었다.

정전미로(Blackout Maze)가 또 출현해 충청북도 오창에 위치한 산업단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정전미로가 가장 열받는 점은 사고가 터졌다는 걸 알아도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지만, 그 이전에 사전징후 같은 것도 느낄 수 없어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씨발!"

기동타격대 소속 진도형 중사는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캐비닛을 후려갈겼다.

이미 몇 번이고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반증하듯, 그의 캐비닛은 군데군데 우그러진 곳이 많았다.

다른 팀원들은 그가 애먼 캐비닛에 화풀이 하는 걸 이젠 일상처럼 생각했다. 일이 안 풀릴 때 마다 주먹에 피가 나도록 캐비닛을 두들겨대는데 익숙해지지 않을리가 있나.

이번달에만 해도 정전미로에 의해 잃은 사람들의 수만 무려 기백은 되었다.

정전미로 국내 1호 생존자였던 한 얼간이를 제외하면 피해자밖에 없는 결과다.

당장 어제만 해도 정전미로의 출현을 감지한 감시지부의 명령을 받고 현장에 출동했는데, 시커멓게 타서 숯검댕이가 된 시체만 수거해야 했다.

사람 몇 명 죽은 것 뿐이라면 자연재해나 다를 바 없는 놈에 의해 피해자가 나왔다고 한들 신경쓰지 않았을 것이다. 2급 이상의 ES는 날고 기는 기동타격대라고 해도 막을 수 없으니까.

자연의 순리 같은 거다. 약한 인간이 강한 ES에게 잡아먹히고 끝나는 단순무식한 생태계 구조 처럼.

'설마 초등학교에서 현장 체험학습을 나왔을 줄이야!!"

요즘 같은 세상에 수학여행이 아니면 학생들이 단체로 학교를 벗어날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열정적인 교육열을 자랑하는 한 교사가 학생들은 직접 보고 배우는 게 있어야 한다며 현장 체험학습을 강력히 주장했다.

자라나는 미래의 꿈나무들이 단순히 최첨단 기술의 특혜를 누리기만 하는 것이 아닌, 어떻게 과학 기술이 발전하고 있는지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껴야 한다나 어쨌다나.

결과, 한 학급의 초등학생들과 현장 인솔을 맡은 교사 두 명 모두 산업단지에 고립되었다.

교사 둘은 숯검댕이가 된 시체 상태로 수거할 수 있었지만, 아이들은 단 한 명도 찾지 못 했다. 시체 한 구, 아니. 손가락 하나라도 나왔다면 '어쩔 수 없다'고 애써 합리화했을 텐데.

30명에 달하는 아이들만 실종 상태로 찝찝하게 작전을 종결지어버렸다.

"씨발!"

쾅! 다시 한 번 휘두른 주먹이 스트레이트로 들어가 캐비닛의 문짝을 크게 우그러뜨렸다.

평소에는 홧김에 두들긴 것에 불과하다면 이번에는 진심을 담아 주먹을 휘둘렀다.

팀원들은 아예 엮이기도 싫다는 듯이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그의 곁을 벗어났다.

라커룸에 남겨진 것은 혼자 분을 삭히고 있는 진도형과 끌끌 혀를 차고 있는 중위 계급의 남자였다.

"아주 세상의 모든 짐은 혼자 다 떠맡으셨구만. 누가보면 십자가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님인 줄 알겠어."

"...젠장."

기동타격대가 국가에 귀속된 군대는 아니지만, 정규군과 같은 계급을 사용한다. 그 편이 편하기 때문이다.

다만 '대장'의 직위를 맡지 못한 자는 계급의 여하를 막론하고 모두 기동타격대 대원으로 통일된 직급을 가진다. 그리고 TF에서 규정한 바에 따르면 대원급은 모두 4급 보안등급으로 고정된다.

대장 직위를 단 사람은 팀장과 동일한 대우의 3급, 현장 지휘관은 2급, 사령관은 1급의 보안등급을 가진다.

즉 진도형이 TF에서 먹은 짬밥이 바로 옆까지 다가온 소대장보다 높다고 한들, 실제 군대는 아니기 때문에 계급 파워에 밀려 찍소리도 하지 못 한다.

"젠장? 젠장 하나로 되겠어? 젠장 할애비를 데려와도 모자랄 판인데!"

또 시작이다.

TF 산하의 전문사관학교를 거쳐 임관한지 이제 고작 2년 반밖에 되지 않은 자칭 엘리트주의자가 현장에서 구른 사람을 상대로 비아냥대는 꼴이란. 아주 질리지도 않는 단골 시츄에이션이다.

"하늘을 봐! 아주 많은 젠장 운석들이 떨어지면서 우리 모가지를 싸그리 꺾어버릴 기세야!"

"...소대장님께서 파견 부대와 우리 소대가 충돌하지 않게끔 잘 조율해주셨더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조율 같은 소리 하고 앉았네 무식한 새끼."

그는 신경질적으로 진도형의 옆에 서류철을 내던졌다.

"어차피 잡지도 못할 정전미로 잡겠답시고 현장 관측하던 조사관들 심기를 거스르면 어쩌자는거야! 그 사람들이 어디서 파견나온 부대인지도 모르겠어? 제 1 연구시설에서 파견나왔다고!!"

제 1 연구시설의 위상은 높다 못해 하늘을 뚫을 기세다. 매일같이 현장에서 구르며 피비린내와 화약내에 찌들어 사는 진도형이라도 그정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초등학생이 서른 명이나 실종당한 마당에, 태연하게 정전미로가 만든 이현상을 관측하겠다고 돗자리 깔고 앉은 놈들도 제정신은 아니었다.

"현장 종사자도 아니라 현장 체험학습을 나온 애들 30명이었습니다. 자그마치 30명이나 실종당한 상황에서 기동타격대인 우리가 가만히 있었어야 했다는 게 정상이란 말입니까?"

"당연히 가만히 있어야지! 이미 골든 타임도 놓친 마당에 우리 같은 소규모 부대가 뭘 할 수 있었는데? 국내 1호 생존자가 어째서 국내 1호 생존자인건지는 알고 있는 거냐?!"

듣기로는 전세계를 통틀어서 최단시간에 정전미로를 빠져나온 1호 생존자라고 들었다.

극소수의 생존자들이 정전미로에서 빠져나온 시간을 고려해봤을 떄, 골든타임은 많이 잡아도 3분. 3분 안에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정전미로에 갇힌 사람들은 사실상 사망 처리 된다.

하지만,

"지난 기록상 정전미로는 산업단지만 공격했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을 공격 대상으로 삼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번에 어른아이 30명이 실종되었으니 사실상 첫 사례였던 겁니다. 그렇다면 혹시 모를 예외를 염두하고 작전에 임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닙니까?"

"작작좀 해 이 새끼야! 너만 작전 뛰냐? 너만 ES 잡아? 너만 피해자들 시체 보고, 그 사람들 유족에게 어떤 거짓말로 가족이 사망했는지 알려줄 고민을 하느냐고!!"

"우리가 기동타격대인 이유가 뭡니까?! 신속하게 움직여서 적을 타격하니까 기동타격대 아닙니까! 그런데 적을 타격하지도 못 하게 하면 그게 어딜 봐서 기동타격대입니까? 기동구경꾼들이지!!"

진도형도 지지 않고 맞섰다.

장교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는 건 아니다. 사건이 발생한 현장의 뒷처리도 해야 하고, 상층부에 보고서도 써서 올려야 한다. 사망자가 나왔다면 유족들을 어떻게든 잘 속여먹여야 한다.

기억소거제 같은 건 한 번에 많이 만들지 못 하기 때문에 아껴써야 하니까.

하지만 그것이 장교들의 눈치게임을 정당화해주는 건 아니다. 편한 진급을 위해, 높은 사람들과 연줄을 만들기 위해 꼬리치면서 부대를 운용하는 모습은 역겹기 짝이 없었다.

그들의 노고까지 없던 것으로 만들 생각은 아니지만, 그들이 보인 작태에 마냥 침묵할 생각도 없었다.

"소대장님이 진급을 노리고 계시다는 건 압니다. 현장 지휘관님의 부관으로 들어가면 앞길이 탄탄대로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적인 일로 부대를 좌지우지 하시면 곤란합니다. 최소한 우리가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해주셔야 하는 게 정상 아닙니까?"

대한민국에서 무슨 일이 터지면 항상 해외에서 파견부대가 들어온다. 대한민국에 자리잡은 기동타격대는 규모가 너무 작기 때문인데, 그래도 잘만 운용하면 '기동타격'의 의미를 잘 살릴 수 있었다.

소규모 정예일수록 운용이 쉽고 신속함은 배가 되는 법이니까.

하지만 진급에 눈이 먼 사람에겐 그런 당연한 사실도 보이지 않는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이리라.

"말 잘했다. 그렇게나 작전작전 씨부릴거면 당장 현장으로 튀어나가! 이상징후가 감지되었다고 연락 들어왔으니까!"

진도형은 그제야 자신의 발치에 떨어진 서류철이 지금 막 접수된 이상징후에 대한 보고서라는 것을 깨달았다.

"소대장님은 같이 안 가십니까?"

"어떤 새끼가 싸질러 놓은 똥 치워야 하거든! 그리고 근속 2년 조금 넘은 샌님이 어딜 건방지게 현장에 머리통을 내밀겠어? 그렇지?"

자신은 쓴소리를 내뱉고 있을 윗분들의 심기를 맞춰줘야 하니, 현장은 진도형에게 맡기겠다는 의도였다.

어차피 소규모 부대인 이상 사람 한 둘 빠지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본인 말대로 현장 경험이 적은 샌님 장교가 끼어든다고 한들 도움이 될만한 것도 적었고.

진도형은 서둘러 자신의 장비를 챙겨입고 차량 격납고로 나왔다. 자신보다 먼저 나온 팀원들이 출동 준비를 끝마친 채 농을 주고 받고 있었다.

"서울시 한복판에서 균열(crack)수치가 300이나 떴다고 한다. 준비됐으면 얼른 차량에 탑승해라."

진도형의 단호한 어조에 팀원들은 웃음기를 싹 지우고 장갑차에 탑승했다.

분석 장비를 챙긴 뿔테 안경의 후임이 지나가는 어조로 중얼거렸다.

"C 게이지 300이라고? 오늘 집에 들어가긴 글렀네......"

"잔말말고 타라."

후임의 뒤통수를 가볍게 때린 진도형도 장갑차에 올라탔다.

잠깐 살펴본 보고서에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검은 원이 존재했다.

원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ES의 수가 많거나, ES의 크기가 거대하면 원의 크기도 자연스럽게 증가하니까.

정말 중요한 건 색이다.

일반적으로 감시지부가 하는 일은 인공위성을 경유해서 전국 각지에 심어둔 감시장치로 ES의 등장 여부를 파악한다.

ES가 민간인 거주 지역에 등장할 경우, 균열(crack)이 일어난다.

물론 문자 그대로 공간이 일그러지고, 깨지는 초자연적 현상이 아니라 단순히 땅이 오염되는 현상이다.

높은 보안등급의 ES가 오래 머무르고 있을수록 땅의 오염 수치는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고, 자연스럽게 C 게이지도 상승해서 이 세계에 균열이 발생한다.

생명체가 사는 지구에 얼룩처럼 존재하는 죽음의 땅. 그게 바로 균열이다.

'C 게이지 300에 검은색 원이면 최소치로 잡아도 2급이다. 정전미로가 갑자기 서울 도심 한복판에 출현했을리는 없고, 신종 ES인가?'

ES의 보안등급에 따라 원의 색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 3급의 ES라면 푸른색, 2급이라면 보라색, 1급이라면 검은색이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계산하는 건 아니었다.

ES가 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치느냐에 따라 C 게이지가 폭발적으로 상승할 수도 있고, 소수가 아닌 다수가 몰려나와도 종종 이런 일이 발생한다.

가장 쉬운 예로는 일본에서 등장했던 싸구려 백귀야행이 이에 해당한다.

놈들은 압도적인 물량을 자랑하며 갑작스럽게 일본 후쿠시마를 강타했다. 그리고 일주일도 안 되는 짧은 시간만에 후쿠시마 땅을 체르노빌에 버금갈 정도로 오염시켜버렸다.

세간에는 원자력시설 사고로 얼버무렸지만, 그 실상은 다수의 ES가 벌인 짓이었다.

'우리같은 소규모 부대에도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면 이미 파견부대는 먼저 움직이고 있겠군. 지금 가봤자 허드렛일이나 하는 신세겠지만...어쩔 수 없지.'

해외 파견부대 보다 느리게 움직이는 국내 기동타격대라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노릇이다.

상층부에서 단단히 찍혔기 때문에 공을 세울 기회를 받지 못 하는 것이겠지만, 그런 생각은 애써 지워없앴다. 실력으로 증명해보인다면 결국 어리석은 윗대가리들도 자신들의 노고를 인정해 줄테니까.

"거리 통제는 어떻게 되고 있지?"

"이미 해외 파견 부대가 경찰에서 협조를 요청한 것 같습니다. 유랑가(家)라는 가게를 중심으로 최소 500m는 확보했다고 합니다."

인구가 미어터지고 교통량도 죽여주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직경 500m나 되는 작전 구역을 확보했다? 아무리 시급한 일이라고 해도 서울 도심 한복판에 그만한 영역을 확보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전세계를 무대로 강력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TF라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 전세계에 기동타격대를 파견하고, 미친듯이 돈과 장비를 투입하는 것이니까. 덤으로 안드로이드도.

"도착 20초 전."

"하차 준비."

"하차 준비!"

어찌어찌 뚫어놓은 도로를 내달려 현장에 도착한 진도형의 소대는 장갑차의 정지와 동시에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하차했다.

비록 성과는 적고 부대 규모도 적을지언정, 매일같이 빡센 훈련을 하는 전우들에게 이정돈 당연했다.

진도형은 자신의 소대원들과 함께 먼저 작전을 진행중인 파견부대와 합류했다.

아직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그는 임시 막사에서 부관들과 한창 작전을 짜고 있는 현장 지휘관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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