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피해피 고문재단-58화 (58/209)

< 경비 업무 일지 : 복구작업(2) >

아무리 재능이 없는 남자라도 군대만 다녀오면 딱 하나 잘 하게 되는 게 있는데, 그게 바로 삽질이다.

부수적인 스킬들은 선임보다 먼저 일어나기, 초고속으로 환복하기, 황천의 뒤틀린 쓰레기 튀김을 꾸역꾸역 먹기 등이 있지만, 역시 가장 돋보이는 건 작업 스킬이었다.

작업용 안드로이드가 떡하니 있는데 어째서 병사들이 생고생을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누구도 선뜻 답을 낼 수는 없다.

군대란 원래 그런 곳이다. 진지공사를 한답시고 다짜고짜 멀쩡한 땅을 미친듯이 파헤치거나, 예초기가 있어도 군인들에게 일일이 손으로 잡초를 뽑게 만드는 것 처럼.

그냥 높으신 분들은 전투대비 훈련이라는 명목하에 '병사' 라는 이름의 도구를 마음껏 쓰고 싶은 것 뿐이다.

때문에 2050년에 달한 지금도 대한민국 군대는 무거운 짐을 나를 때만 작업용 안드로이드를 사용했다. 남은 작업들은 전부 병사들의 몫이었다.

덕분에 호국은 허구한 날 작업을 몰아주는 행보관에 의해 다양한 막노동 기술을 터득했다.

'잔해를 치울 때 일일이 손으로 퍼나르는 것 만큼이나 멍청한 짓도 없지.'

군대에서 처음 작업을 배울 때 들었던 말이었다. 물론 그때의 멍청이는 호국이었다.

양손으로 번쩍 들어야 할 만큼 무겁고 커다란 돌덩이라면 애초에 들면 안 된다. 허리나 무릎이 아작날 수도 있으니까. 그런 건 기계의 힘을 빌리던가,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서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손으로 옮길 수 있을 만큼 자잘한 것들은 오히려 손을 쓰면 무식하다고 욕 먹는다.

1m 넘게 쌓였던 눈을 제설용 삽으로 팍팍 퍼나를 때 처럼, 넓은 삽을 이용해 한 번에 쓸어담아야 한다.

이 또한 요령이 있는데, 뭣모르고 냅다 무식하게 잔해의 틈에 삽날을 박아버리면 큰일난다.

지면을 파는 것과 달리, 널부러진 잔해들을 쓸어담을 때의 삽날 각도는 가급적 수평에 가까워야 한다.

화덕에서 굽는 피자처럼, 삽날을 재빠르게 아래로 찔러넣어 단숨에 잔해를 퍼올린 다음, 수레나 부대자루에 퍼담는 것이다.

이 일련의 과정을 작업의 규모에 따라 대충 수백 번 정도 반복하면 된다. 작업의 규모가 적거나 동원된 인원이 많다면 삽질보단 운반에 더 많은 힘을 쏟게 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삽질에 어마어마한 노력을 쏟아야 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기억은 1년 하고도 3일 전에 벌어진 경기도 외곽 지진 사태였다.

경기도 외곽이라 민간인 피해는 적었지만, 그 지역 일대의 산업단지나 물류업체의 건물들이 상당한 피해를 입었었다. 인근의 도시도 지반이 흔들리면서 몇몇 건물 붕괴가 있었기에, 사실 운이 좋았다는 말을 하는 것도 조금 그랬다.

대민지원으로 동원된 군인들이 안드로이드와 함께 지진 피해를 복구한 건 아직도 꽤 유명한 사건이었다.

문득 자신의 선임이 호국에게 허리 멀쩡하게 전역하고 싶으면 적당히 여유 부려가면서 일을 하라고 충고했던 것도 떠올랐다.

어차피 호국이 죽도록 열심히 해도 누구 하나 고마워하는 사람은 없고, 그로 인해 입게 될 피해를 국가에서 제대로 보상해줄 일도 없을 거라고 했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

호국은 삽으로 시설 내부의 잔해들을 카트에 퍼담으며 과거의 기억을 더듬었다.

대민지원에 동원되었던 군인들 대부분은 정말 개미처럼 죽어라 일만 해야 했다.

작업도중 다친 사람은 부사관이나 장교들에게 눈총을 받으면서 병원에 실려가야 했고, 그마저도 경상에 그쳤다면 잔소리와 함께 작업에 재투입되었다.

대민지원이 끝난 뒤에는? 적절한 타이밍에 군을 동원하여 빠르게 민간피해를 복구한 높으신 분들에게 모든 공이 돌아갔다.

가상현실에 푹 빠져있던 사람들에겐 군인들이 현실에서 얼마나 열심히 일했든 딱히 신경쓸 일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호국을 포함해서 그때 당시의 군인들이 대단한 뭔가를 얻을 수는 없었다. 얻은 건 그저 삽질이 전부였다.

쓰으윽! 쓰으윽!

넓은 삽날이 잔해를 파고들어갈 때 마다 거슬리는 마찰음을 자아내며, 크고 작은 콘크리트 덩어리나 금속 쪼가리들을 담았다.

B50부터 B80까지 이런 대참사가 펼쳐져 있다. 전부 농사왕의 소행인 것은 아니겠지만, 전부 치워야 한다는 사실에 변함은 없었다.

그래도 딱 하나, 변한 것이 있긴 했다.

대민지원을 나간 군인들은 고생에 따른 적절한 보상도, 열심히 일한 것에 대한 명예도, 피해 입은 자들에 대한 감사도 받지 못 했지만 호국은 받을 수 있는 게 많았다.

'추가 작업을 통한 특수 급여!'

시간외 근무는 보통 야간근무나 특수근무에 해당하는데, 가드 메뉴얼에 따르면 가드가 자발적으로 일을 찾아서 하는 것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예를 들어 청소는 가드에게 있어서 당연한 작업이지만, 시설이 붕괴된 것을 본인이 직접 손본다면? 당연히 가드의 업무에 없는 작업이므로 추가 작업이 성립된다!

그렇게 들어오는 특수 급여는 무려 기존 시급의 2배!

계산이 서투른 호국이라도 딱 맞아떨어지는 배수에 두근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시급이 2배면 효율도 2배, 월급명세서를 확인할 때의 기쁨도 2배가 될 것은 당연지사.

만약 그런 제도가 없었다면 호국도 이 작업에 직접 나서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상관이 명령을 내린다면 모를까, 감사도 받을 수 없고 물질적 보상조차 받을 수 없는 생고생을 하라는 건 인간적으로 너무하니까.

'난 호구가 아니야. 호국이지.'

하다못해 농촌의 어르신들을 돌볼 때도 감사 인사를 받았건만, 자연재해에 피해를 입었던 자들은 고생하는 군인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여전히 군인을 아랫것 취급하는 고질적인 사회 현상은 결국 계급이 높은 자들이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출세해야 한다. 출세한다면 높은 계급에 오를 수 있고, 설령 IQ가 84 밖에 안 되는 호국이라도 높은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

솔선수범해서 궃은 일을 하고, 직장에서 불만을 가지지 않는 모범적인 근무 태도! 호국은 이것을 무기삼아 출세할 생각으로 가득했다.

'출세하면 돈도 많이 벌 수 있겠지. 그러면 좋은 VR 기기도 살 수 있어.'

이 멍청한 뇌에 딱 맞는 VR기기를 구입해서 자신도 가상현실에서 놀고 싶다.

"어우! 오랜만에 작업을 했더니......!"

우득, 우드득. 반복 작업을 잠시 쉬면서 기지개를 켜자 뼈와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시작했음에도 역시 같은 자세로 몇 시간이나 삽질을 계속 했기 때문일까, 제아무리 튼튼한 호국이라도 피로가 쌓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호국이 뻐근한 목과 허리를 문질러주면서 잠시 숨을 돌릴 때면 어김없이 천장에서 기계 팔이 튀어나와 따로 모아둔 잔해들을 수거해갔다.

그리고 파괴된 곳을 메우기 위해 철골을 용접해서 뼈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텅 빈 구멍에 냅다 시멘트로 공구리를 칠 수는 없으니, 우선 뼈대와 받침대를 만들고 구멍을 채울 계획인 듯 했다.

'이 작업이 좋은 점은 남 눈치보면서 일할 필요가 없다는 거야.'

대민지원을 나갈 때면 눈치봐야 할 사람이 참 많았다.

선임이나 대민지원을 받는 민간인들이 마치 검은탑의 주시자처럼 눈알을 굴리며, 작업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던 기억이 생생했다.

그에 반해 이곳은 어떤가? 특수 급여를 받기 위해 자발적으로 추가 작업에 뛰어들긴 했지만, 누구도 호국에게 '돈 받는 값은 해라!' 라고 윽박지르는 사람은 없었다.

목이 마르면 편의점에서 사온 스포츠 드링크를 마셨고, 배가 고프면 열량이 높은 인스턴트 식품으로 빠르게 끼니를 때웠다.

만약 군인 신분이었다면 음료나 간식거리로 배를 채우긴커녕 제대로 된 휴식시간조차 받지 못 했으리라.

'B50 저위험군 복구 작업은 얼추 끝나가는 것 같은데......'

한숨 돌리면서 주변을 살펴보니 농사왕의 만행으로 발생한 잔해의 80% 정도는 치운 것 같았다. 두더지굴마냥 생긴 구멍들은 관리봇의 기계팔이 나선 만큼 완전복구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모양새였다.

호국이 에이스 삽질의 시범을 보고나서 자신이 싼 똥을 치우기 시작한 농사왕도 작업량이 꽤 됐다. 호국만큼은 아니었지만 만약 같은 부대에 있었다면 에이스 5호 쯤으로 불렸을 수준이다. 물론 호국은 1호였다.

'이대로 빠르게 고위험군까지 작업한 다음 저녁 먹고 한숨 돌리면 얼추 맞겠는데?'

야간근무와 특수근무가 겹치지 않는 통상근무 시간까지만 작업할 생각이었다. 굳이 피곤한 야간근무를 하지 않아도 2배 시급이 적용되는데, 가능하면 이 작업은 널널하게 진행하고 싶었다.

'그래야 최대한 많이 뽑아먹으니까!'

호국은 바닥에 널려있는 잔해들이 금싸라기처럼 보였다.

이것들을 내다 팔 수는 없지만, 반복적으로 치우는 작업을 하기만 해도 돈이 따박따박 들어온다면 빨리 치우는 게 오히려 손해다.

게을러터진 공무원들이나 할 법한 짓이었지만, 호국은 조금도 양심이 찔리지 않았다.

일을 열심히 한다는 사실 자체는 틀림없으니 결과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대로 한달이든 두달이든 꽉꽉 채워서 2배 시급을 알뜰하게 타먹을 것이다. 설령 연구팀장이 직접 내려와서 휴가를 준다고 해도 거절할 생각이었다.

'휴가? 어림도 없지.'

사회생활 고수라 자칭하던 선임들은 사회에서 휴가를 팍팍 써댔다간 그대로 삽되는 거라며 으스스한 경고를 했었다.

눈 앞에 잔뜩 쌓여있는 일거리를 놔두고 태연하게 휴가 쓰는 놈, 호국의 눈으로 봐도 개자식이 분명했다.

반면 전과가 있긴 해도 열심히 부순 만큼 열심히 일하는 농사왕의 뒷모습은 호국을 미소짓게 했다. 일을 제대로 못 하면 삽으로 머리통을 까버리려 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복구 작업이 모두 끝나면 농사왕에게 작은 텃밭이나 만들어줘야겠다고 다짐한 순간, 호국은 귓가를 때리는 거슬리는 소리에 고개를 홱 돌렸다.

사람 한 명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을까 말까한 벽의 구멍 앞에 선 신입이 삽날로 벽을 긁어대며 구멍을 넓히고 있었다.

'저 미친 새끼!'

아무리 특수급여를 받으면서 오래 일하고 싶어도 그렇지, 고쳐야 할 시설을 몰래몰래 부수면서까지 작업량을 늘리려는 신입의 의도는 충격 그 자체였다.

이론상 부수고 고치기를 반복하면 작업량은 기존의 배 이상 늘어날 것이고, 특수급여도 훨씬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하지만!

'CCTV에 다 찍히고 있잖아 멍청아!!'

휴식을 취하는 호국도 CCTV에 걸리지 않도록 커다란 카트 뒤에 숨어있었는데, 신입은 대체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태연하게 벽을 부수고 있었다.

아랫것의 잘못은 곧 윗놈의 잘못. 내리갈굼 유발자였던 호국에겐 눈뜨고 봐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슬그머니 신입의 뒤로 다가간 호국은 일부러 크게 헛기침을 했다.

CCTV 앞에서 가혹행위 같은 걸 할 수는 없으니 눈치부터 주자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신입은 들은척만척 삽날로 벽의 파손 범위를 넓혀나갔다.

'어쩔 수 없지.'

때론 말로 해도 듣지 않는 놈들이 있다. 그런 놈들은 장난을 치는 척 하면서 은근슬쩍 진지하게 겁을 주면 대개 알아먹는다. 호국이 곧잘 당했으니까 잘 안다.

우선 삽을 들어 작업을 하는 척 하면서 몰래 접근한 그는, 단숨에 신입을 낚아채기 위해 달려들었다.

아마도 남들 눈엔 구멍에 후임을 밀어넣으려는 척 하는 선임의 훈훈한(?) 장난쯤으로 보였을 것이다.

신입이 갑자기 옆으로 피하지만 않았더라면.

"어, 어어?! 야 이......!"

신입에게 무어라 쏘아붙이려던 찰나, 몸의 균형을 잃어버린 호국이 뛰어들기에 딱 알맞은 구멍 속으로 빨려들어가듯 떨어졌다.

저 깊은 구멍 아래로 '새애애애애애끼야아아아아' 하고 들려오는 후렴구에 신입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고는 연체동물마냥 미끄러지듯 움직여, 눈 깜짝할 사이에 구멍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윽고 벽의 구멍은 마치 흉터가 사라지고 새살이 돋는 것 처럼 저절로 메워졌다.

'시설' 복구 작업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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