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 업무 일지 : 10일째(5) -무료 마지막-
그렇다. 소년이 며칠 전 부터 '접촉' 하고 있는 것은 이미 사망한 여성의 뇌였다.
이름은 김미영, 나이는 23세. IQ가 조금 낮은 고등학교 동창이 한 명 있는 것 말곤 '특이한 점'이 없는 고등학교 생활을 보낸 여성이다.
그녀의 뇌는 현재 소년이 갇혀지내는 시설의 지하에서 특수한 용액에 절여져 삶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분명 죽었지만, 더이상 생각이란 걸 할 수 없는 단순한 단백질 덩어리이지만.
특수한 용액과 함께 수십 개의 전극이 꽂혀, 단순히 정보를 뽑아내기 위한 하드디스크로 전락해버렸지만. 어찌됐든 아직 '사용'되고 있었다.
소년은 다시 한 번 시야가 어두워지는 것을 느꼈다. 딥 다이브(Deep Dive)로 인해 시야가 한 번 암전되었다가, 허공을 부유하는 것 같은 기분나쁜 감각은 가상현실 진입의 흔한 과정이었다.
김미영의 기억은 항상 낯선 고등학교의 복도에서 시작된다. 더 이전의 기억은 볼 수 없으며, 아직 그리 많은 진척이 이뤄지지도 않았다.
지난 며칠 간 질리도록 경험한 김미영의 기억 속에서, 실험체-7432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바닥이 훅 꺼지며 나락에 떨어져 즉사. 천장이 무너져 내리면서 즉사. 교실의 유리창들이 모조리 깨지며 전신이 유리 고슴도치가 되어 즉사.
상호합의 하에 접촉하는 온라인 가상현실과 달리, 일방적으로 타인의 정신에 침투하는 가상현실은 천차만별의 난이도를 자랑했다.
때문에 절대로 낯선 사람처럼 보이면 안 된다. 기억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풍경처럼,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엑스트라처럼, 실험체-7423은 복도에서 잡담을 나누는 학생들의 무리에 합류했다.
그들이 무슨 잡담을 나누는지, 어떤 의도를 품었는지도 알 수 없지만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스쳐지나가는 김미영의 기억 속엔 생전 처음보는 소년의 모습도 다른 엑스트라들과 크게 다를 것 없었으니까.
김미영은 다른 학급의 친구인 A와 B 사이에서 무척이나 헤어지기 싫다는 얼굴로 불평불만을 내뱉었다.
"아, 진짜. 나 그냥 반 바꾸고 싶어......"
"왜? 반에서 누가 너 괴롭혀?"
"내가 아는 오빠들 불러서 혼내줄까? 3학년에 김기철 오빠라고 이름대면 1학년은 벌벌 떨걸?"
"하...그런 거 아냐. 그냥, 진짜 가기 싫어. 거기 있으면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아."
중, 고등학생의 친한 여자들끼리 으레 그러하듯, 김미영은 친구들의 손을 붙잡고 진짜 헤어지기 싫다는 태도를 보였다.
실험체-7423은 김미영이란 인물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가치관을 지니고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었는지 관심조차 없었다.
다만 같은 기억을 몇번이고 반복해서 보다보면 그녀라는 인간에 대해 싫어도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말하면서 눈동자가 떨리고 있어.'
김미영은 친한 친구들을 눈앞에 두고도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목소리에 떨림은 없으나, 자세가 뻣뻣하게 굳어 있고 입술이 바짝 말랐다.
특히 피부에 신경쓰는 고등학생이 친구들 앞에서 입술이 바싹 마를 때 까지 방치해뒀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
애초에 김미영의 기억 속은 입술이 바싹 마를 만큼 건조한 계절도 아니었다. 다들 산뜻한 봄에 입는 교복 차림이었던 것이다.
결국 그녀는 친구들과 몇마디 더 나누다가, 아직도 교실 앞에서 어물쩡거리고 있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교실에 들어갔다.
너무나도 익숙하게, 마치 시민들 사이를 자유롭게 누비는 암살자처럼 실험체-7423 역시 그들의 뒤를 따랐다.
교실에 그가 앉을 자리 따위는 없다. 타인의 기억 속에 존재하지도 않는 거짓을 만들어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른 존재의 자리를 빼앗으면 침입자라는 것을 들켜버렸다.
그래서 청소용 안드로이드가 보관되어 있는 커다란 캐비닛으로 숨어들었다.
처음에는 쉽게 눈에 띄어 침입자라는 걸 발각당하고 말았지만, 지금은 구렁이 담 넘어가듯 모두의 시선을 피해 숨을 수 있었다. 죽고, 또 죽다보면 싫어도 배우게 된다.
때마침 수업종이 울리고, VR 수업이 아닌 일반 수업에 맞춰 담임이 들어왔다.
쉬는 시간에도 그랬지만 이 교실내에선 누구도 잡담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숨소리 하나라도 크게 내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학생들 투성이였다.
"그래, 난 이 반에 올 때마다 기분이 좋아. 수업 준비가 이렇게 잘 되는 반은 여기 뿐일거다."
학생들이 품고 있는 이질적인 분위기도 모른 채, 머리가 M자 형으로 벗겨진 중년 선생은 교과서 출석부를 쿵!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그 소리에 학생들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힐끔힐끔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왜 쟤를 바라보는 거지?'
실험체-7423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광경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반에서 가장 존재감이 없는 인물을 꼽자면 창가의 제일 구석자리에 앉은 김호국이라는 소년이었다.
남학생 기준으로 출석번호 1번. 선생들이 반에 들어올 때마다 흐뭇하게 바라보는 모범생 1순위. 어딜 어떻게 봐도 평범하다는 말 외엔 달리 평가할 것이 없었다.
그런데 29명에 달하는 학생 모두가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다른 건 다 알아냈지만 이 이상한 분위기 만큼은 알아낼 수 없었어.'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반복적으로 보고 듣고 느끼다보면 한 명 한 명에 대해 알게 되는 것들이 많다.
가령 김미영은 수업중에 친구들과 비밀스럽게 SNS로 대화를 나눈다. 손바닥 크기의 스마트 패드를 빠르게 터치하면서 태연하게 수업을 듣는 척 하는 그녀의 스킬은 대단했다.
이 현상은 언뜻 자연스러웠지만, 매 수업마다 그녀와의 비밀스러운 SNS 채팅에 열을 올리는 고정 맴버들이 있었다.
'복도쪽 창문 가장 뒷자리의 주민호, 그 앞의 차범진, 그리고 정확히 반 중앙에 앉아있는 현세희. 이 반에 존재하는 SNS 채팅 고정 맴버는 4명이야.'
지난 회차에서 스마트 패드의 초고화질 영상 녹화 기능을 이용해 저들의 스마트 패드 내용을 모두 촬영해뒀다. 사각지대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내용들은 죽음을 각오하고서 달려들어 전부 체크했다.
그 결과, 4명의 고정 맴버는 항상 김호국이라는 인물에 대해 대화하고 있음을 알았다.
혹시 왕따를 당하는 건가 싶어 아예 시간을 두고 살펴봤지만, 그런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김호국이 반 아이들을 왕따시키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김미영의 기억에 틀린 건 없어.'
인간의 뇌는 너무 영악해서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도록 교묘하게 스스로를 속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트라우마가 될 정도로 깊게 남은 기억은 바꾸지도 못 한다.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기억, 애써 추억으로 위장해서 웃어넘길수도 없는 기억. 그것이 바로 트라우마다.
수업이 막 시작된 지금, 4명은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것이다.
-김미영 : 야, 우리 언제까지 이래야 해?
-현세희 : 그냥 선생님한테 말하면 안 돼?"
-주민호 : 범진이랑 난 신경 안 쓰려고. 어차피 수업 같이 듣는 시간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잖아.
-차범진 : 그래, 어차피 반도 1년마다 바뀐다잖아. 그리고 괜히 건드리고 싶진 않아......
-김미영 : 난 쟤 볼 때마다 토가 쏠려! 진짜 기분 나쁘다고!!
-주민호 : 우리가 기분 나쁘다고 해서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선생들은 쟤 모범생인 줄 알아서 건드리면 우리만 피봐.
-주민호 : 그리고 우리가 보는 걸 선생들은 못 보잖아.
-김미영 : 그림 같은 거라도 그려서 보여주면 안 돼? 반 애들이 다 몰려가서 말하면 선생들도 알아줄 거 아냐.
이때 실험체-7423이 몇번이고 봤던 장면이 연출되었다.
현세희가 책상 안에 몰래 숨겨두었던 스마트 패드가 갑자기 고온의 열을 내뿜기 시작하더니, 쉬이이이익, 하는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타버렸다.
배터리가 폭발했다면 대형 사고가 일어났겠지만, 반쯤 녹아버리듯이 타버려서 현세희가 심각한 화상을 입는 일은 없었다.
이상한 소리와 냄새에도 학생들은 침묵을 유지했다. 오직 선생만이 코를 싸쥔 채 이게 무슨 냄새냐며 소리를 쳤다.
현세희를 포함한 고정 맴버들의 움직임은 이미 멈춘 상태였다. 오히려 자신들의 스마트패드가 더러운 오물이라도 되는 양 아예 손에서 떼어놓았다.
"스마트패드가 타버렸어? 이거 불량 아니냐? 폭발이라도 하면 어쩔 뻔 했어! 준구는 당장 청소용 안드로이드 꺼내서 이거 치워버려!!"
현세희의 책상 안과 스마트패드가 타들어간 모습에 성을 내면서도, 선생은 아이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빠르게 대처했다.
하지만 누구 하나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닌 듯한 눈치였다.
창문을 열어서 환기하라는 목소리를 끝으로 17세 김미영의 5월 21일 기억이 끝나버렸다.
이후에 주마등처럼 여러 기억들이 오갔지만, 실험체-7423은 함부로 그 기억들을 잡지 않았다.
기억의 급류 속에선 기억을 붙잡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 없었다. 힘으로 제어하려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흐름을 타서 안착하는 것이 중요했다.
'왔다, 23세 김미영의 기억!'
엄청난 기억의 급류 속에서 미친듯이 도달하고자 했던 가장 끝자락의 기억. 그녀의 마지막이 각인되어 있는 지점에 안착한 순간 실험체-7423은 거리의 행인 A로 변했다.
'됐어. 여기서 얻어내는 게 있다면 이 지긋지긋한 실험도 끝날거야!'
중학생일 무렵부터 가상현실에서 뛰어난 아바타 디자이너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소년이 이 시설에 잡혀들어온지도 벌써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들은 '가상현실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을 원했고, 소년은 그에 딱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특별히 나쁜 짓을 하지도 않았고, 평생 남에게 해를 끼친 적도 없었음에도 자유를 빼앗긴 것이다.
억울해서 미칠 것 같았지만 결과적으로 소년은 미치진 않았다. 저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면 결국 풀려날 수 있을 거라는 미성년자의 순진한 생각때문이었다.
'ㄱ래도 이젠 정말 끝이야. 기억의 마지막 부분을 원한다고 했으니까, 여기서만 제대로 하면 돼!'
언제 다시 손에 넣을 수 있을지 모르는 기회다. 소년은 이 천금같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때마침 자신의 옆을 스쳐지나가는 한 미모의 여성에 소년은 고개를 홱 돌렸다.
앳된 티는 더이상 찾아볼 수 없는 성숙한 여성이었지만, 그녀는 틀림없는 김미영이었다.
젊은 20대 여성답게 패션에 잔뜩 힘을 준 그녀는 활기 찬 걸음으로 인근의 카페에 들어갔다. 자연스럽게 그녀를 따라 카페에 들어선 순간, 소년은 참을 수 없는 구역감에 속이 뒤집어졌다.
'무, 무슨?!'
역겹다, 추잡하다, 혐오스럽다 라는 말로는 표현이 불가능한 불쾌감이 전신을 휘어감쌌다.
평생토록 인간들이 흘려보낸 오물을 모아둔 하수도에 기어들어가도 이것보다는 훨씬 더 깨끗할 것 같았다.
하지만 갑자기 구토를 하거나 하진 않았다.
간신히 얻은 이 기회를 걷어차고 싶지 않아,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필사적으로 구토감을 참아냈던 것이다.
'참아야 해, 참아야 해!'
인간이 지닌 별 볼일 없는 후각을 완전히 말살시켜버리겠다는 일념이 가득한 더러운 공기.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속 안에 있는 장기들마저 모조리 토해낼 것 같았다.
소년이 간신히 구토감을 억눌렀을 때, 가게의 구석진 곳에서 대화하던 김미영과 두 남자의 이야기는 이미 상당히 진행되었다.
그래도 단 하나의 이름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김호국.'
23세, 대학생이 되어 더이상 고등학교의 인연들과는 큰 연관이 없을 법한 그녀의 입에서 다시 한 번 그 이름이 언급되었다.
생각해보면 그녀의 무수한 기억 속에서 김호국의 이름이 실제로 거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어떤 기억을 뒤져봐도 직접 김호국의 이름을 부른 적 없었던 그녀가, 처음 만난 두 남자의 앞에서 그 이름을 꺼낸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변화를 알리는 '신호'였다.
김호국의 이름이 몇 번이나 오를내릴 때마다 소년은 전신이 짓눌리는 듯한 중압감에 신음성을 흘렸다.
당장 이곳에서 빠져나가고 싶었다. 그의 이름따윈 듣고 싶지 않았으며, 김미영의 기억에도 관심을 가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소년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돌렸을 때, 김미영의 목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낡은 밧줄이 매여 있었으니까.
여러분이 있기에 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