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피해피 고문재단-51화 (51/209)

경비 업무 일지 : 10일째(2)

"내려갔어?"

"예, 내려갔습니다."

작업복 차림의 사내, 통칭 개미부대로 알려진 그가 이두근의 질문에 답했다.

"휴, 조마조마했어. 설마 이렇게까지 빨리 깨어날 줄은 몰랐는데......"

"코드 블랙 사태로부터 3일이나 흘렀습니다. 그의 신체는 더할나위없이 건강한 상태였으니 오히려 3일도 너무 긴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만."

확실히 일반인 기준에서 3일내내 죽은듯이 잠만 자고 있는 건 비정상적이다.

물론 장비를 가져와서 전신 스캔을 했으나, 가드-079에겐 어떠한 문제점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너무 건강해서 탈일 만큼 전신의 세포 하나하나가 새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의 상태가 좋은 것과는 반대로 제 6 처리시설의 상태는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3일 전에 이두근을 필두로 한 개미 부대와 파견 연구원으로 위장한 조사관들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 제 6 처리시설은 관리봇에 의해 간신히 유지되고 있었다.

'그땐 정말 아슬아슬했지. 관리봇이 아니었다면 제주도는 죽음의 섬이 됐을 거야.'

관리봇은 본분에 충실하여 탈주하려는 ES들을 철저하게 막고 있었다.

요격 시스템과 고문 시스템을 복구해서 ES들의 탈주를 저지하는 한편, 시설 내부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기계 팔을 이용해 부서진 시설을 복구하는데에 힘썼다.

결과적으로 개미부대가 도착하기 전 까지 시간을 벌 수 있었고, 지금은 추가로 파견된 기동타격대가 ES의 제압을 위해 아래로 내려간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말 저렇게 보내도 괜찮은 겁니까? 상층부에선 일단 그를 잘 감시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만."

"감시는 하되 행동에 제약을 주지 말라는 명령도 있었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그를 제지할 경우 매우 위험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더군."

"매우 위험하다라...하지만 겉보기엔 별 볼일 없는 사내였습니다."

이두근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개미부대 소속 대원들은 FCD의 휘하로 들어가면서 일반인과는 차원이 다른 힘을 손에 넣었다고 들었다.

빡센 훈련과 무수한 실전 경험을 쌓아 자연스럽게 강해지는 기동타격대와는 달리, 그들은 처음부터 FCD가 원하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게끔 특별한 과정을 거쳤다.

저들이 개미라고 불리는 이유는 단순히 상급자(FCD)의 명령에 따라 적을 분쇄하고, 흔적도 남지 않게 말끔히 청소하는 것 말고도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문자 그대로 인간의 몸에 어울리지 않는 강력한 힘을 소유하고 있는 덕분이다.

개미처럼 자신의 몸무게의 3~40배에 달하는 무게를 들어올릴 순 없지만, 한 명의 개미 부대원이 1톤 차량 한 대 정도는 어렵지 않게 움직일 수 있을 정도였다.

'태생이 태생인지라 매우 호전적이군.'

개미부대에게 조차 '죽기 싫으면 건드리지마라' 라고 할 정도의 사내였기에, 그들은 가드-079가 처음 모니터룸에 등장했을 때 부터 모든 감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호승심이 어찌나 대단했는지, 이두근과 휘하의 조사관들조차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가드-079는 일을 해야 한다며 막무가내로 자신의 장비를 돌려받고 아래로 향했다.

그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라질 때는 잔뜩 긴장했던 이두근도 비로소 안도했다.

"우리 같은 이들에게도 공개되지 않은 기밀 자료들은 많아. 특히 TF 내에서도 매우 조심스럽게 다뤄지고 있는 자료들은 FCD나 1급 수석 연구원이 아니면 접근할 수도 없지."

TF에선 어지간하면 아랫 것들에게 쉽사리 정보를 제공해주진 않는다.

그저 각자 맡은 일에만 충실하게끔 직장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전부이며, 급에 맞지 않는 정보를 수집하려 드는 자들에겐 감찰관을 파견해서 뒤를 캐게 한다.

그 감찰관도 감찰본부에서 따로 수집한 정보를 제공해주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많았고, 조사관들은 자신들이 직접 발로 뛰어서 정보를 찾는 편이었다. 개미부대 역시 명령을 받은대로만 움직였기에, 필요이상의 정보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해서 괜히 분란을 조장할 필요는 없지.'

이두근은 공식적으로 실종, 비공식적으로는 '처리'된 임지영 감찰관과 그 팀원들을 떠올렸다.

난장판이 된 모니터룸을 수색했을 때 그들이 식당에서 본 것은 인간 한 명에게선 나올 수 없는 대량의 핏자국과, 그 피로 그려진 거대한 눈이었다.

FCD로부터 그녀와 팀원들은 '처리되었다' 라는 답변을 받지 못 했더라면 이두근 역시 패닉에 빠졌으리라.

"그가 돌발 행동을 일으킬 경우 어떻게 대응해야 합니까?"

"아무것도 하지 마."

일단은 FCD의 대리로 이곳의 현장 지휘관을 맡게 된 이두근이 경고했다.

"가드-079가 라면을 2개 끓여서 섞어먹든, 화장실에 비치된 비누로 골프를 치든 그냥 신경 꺼."

"...하지만 그의 돌발 행동으로 인해 이 시설이 다시 한 번 위험에 빠질 수도 있지 않습니까?"

"FCD 측에선 그래도 상관없다는 입장이야."

개미가 처음으로 표정을 바꾸었다.

자신들의 직속 상관인 FCD는 TF가 설립될 당시부터 피도 눈물도 없는 정책으로 전 세계를 휩쓸었다.

방해되는 요소가 있으면 경고조차 주지 않고 곧바로 물리력을 행사했으며, 민간인 피해가 얼마나 발생하든 그 지역에 폭격을 퍼부어서라도 반드시 ES를 생포했다.

안드로이드가 아직 상용화 되지 않았을 때는 마치 고대 중국에서 만리장성을 쌓기 위해 대규모 민간 인력을 동원했던 것 처럼, 어마어마한 인력을 동원해 TF 산하의 시설들을 짓게 했다.

일이 끝난 후 극소수는 '처리'되었으며, 나머지는 모두 일시적인 뇌손상 약품을 사용해서 기억을 없애버렸다.

그런 냉혈한 집단이 일개 가드에게 아낌없이 자유를 퍼준다니, 개미 입장에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믿지 않는군. 하지만 사실인 걸 어쩌나.'

FCD의 의사를 그대로 전달한 이두근조차 믿겨지지 않는데, 하물며 평생을 FCD를 위해 일한 저들이 믿을 수 있을리가 없다.

"가드-079가 가야 할 곳이 많다고 하니, 가능하면 꼭 살려두라는 입장이야. 그러니 서로 충돌하는 일 없도록 주의하라고."

어쩌면 인간의 발에 짓밟혀 절명하는 개미 신세가 될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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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 착.

한 손에 쥔 진압봉이 반대쪽 손바닥을 두들기는 감각은 조금 중독적이었다.

인간의 부드러운 살집을 자비없이 파고드는 금속 막대. 거기에 스위치만 누르면 파직거리는 전류가 흘러 몽둥이찜질과 전기마사지를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구조였다.

오늘이 며칠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꽤 오랜만에 장비를 갖춰입은 호국은 기분이 한껏 상기되어 있었다.

한 유명한 외국인 용병의 말에 따르면 자고로 어설프게 나쁜 놈들은 '악당이 되기전에 대가리를 쪼개버리는게 맞다' 라고 말했다.

그래, 저 아래에서 날뛰는 놈이 정말 나쁜 놈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난리좀 피웠기로서니 그게 죽일 놈이 될 이유는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그거랑 이거랑은 다른 문제지.'

자신에게 치욕감을 줬다는 사실.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어도 남들 앞에서 공개적인 망신을 당한 호국이 절대로 넘어갈 수 없는 사유였다.

남들에게 인정받고, 칭찬을 들어도 모자랄 판에, 일을 개판으로 해놨다는 인상을 팍팍 심어주었으니 호국의 체면은 마리아나 해구 아래까지 처박혔다.

쉽게 말하면 그냥 운이 안 좋았던 것이다.

평시에 경범죄를 저지른 사람과 집중 단속 기간에 경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한 시선이 다른 것 처럼, 세상물정 모르고 나대는 저 놈도 하필 좋지 않은 시기에 사고를 쳤을 뿐이다.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게 당연하지.'

착, 착.

진압봉이 손바닥을 가볍게 내려칠 때 마다 착착 감기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지만, 호국에게도 사실 출세에 대한 욕구가 있었다.

높은 사람이 되면 자신보다 똑똑한 사람들 앞에서 기죽지 않아도 된다. 거기에 월급도 더 받을 수 있고, 매일매일 뼈가 부서지도록 일만 하지 않아도 된다.

높은 자리는 호국을 좀 더 위대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책상에 다리를 꼬고 앉아 손짓으로 부하를 부려먹을 수 있는 사람으로.

그 기회가 오늘 막 날아간 참이니 호국이 분노하는 것도 당연했다.

띠잉, 하고 기분 좋은 전자음이 울려퍼지며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기동타격대는 B49에서 바리게이트를 치고서 준비하고 있었다.

놈은 바닥과 천장을 가리지 않고 부수면서 무식하게 위로 향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엘리베이터는 호국이 전세낼 수 있었다,

"스으으으으읍. 하아."

헬멧의 바이저를 올려서 깊게 숨을 들이쉬자, 지하 특유의 퀴퀴하면서도 살짝 서늘한 공기가 호국의 폐를 가득 채웠다. 공기 순환 시스템이 망가진 것이 분명했다.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네.'

전방에서 들려오는 폭음과 충격파와 함께 밀려오는 먼지들이 호국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놈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사실은 순수하게 기뻤지만, 박살난 콘크리트 조각과 끊어진 배선, 깨진 전등의 유리조각과 먼지로 뒤덮인 복도를 보고 있자니 한숨부터 나왔다.

대신 청소를 시켜야 하니까 팔 다리는 놔두고, 대가리만 집중적으로 깨버리겠다고 결정한 순간이었다.

충격파에 반쯤 뭉개져서 너덜너덜거리는 저위험군의 체크 포인트를 지나치자, 고위험군의 천장을 뚫고 올라온 것으로 추정되는 밀짚모자가 보였다.

할로윈의 호박머리에 새겨지는 것 처럼 무시무시하게 찢어진 입, 둥글고 깊게 파인 검은 눈. 코 대신 자리잡고 있는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는 껄끄러운 외관을 자랑했다.

게다가 평범한 인간에 비해 팔이 꽤 길었는데, 긴 팔로 낫이나 괭이를 마구 휘두르면서 닥치는대로 시설을 파괴하고 있었다.

'해적왕이 아니라 농사왕이었네.'

김을 매고 싶다면 자신에게 따로 건의를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대체 뭐가 그리 불만이어서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건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지하 시설이라 밭을 가꾸기 어렵다고 해도 적당한 흙과 비료, 그리고 농작물의 종자만 가져다 준다면 충분히 밭을 만들 수 있다. 적어도 호국의 할아버지는 그것만으로도 농사를 짓고 있었으니까.

정신없이 주변 사물을 때려부수고 있던 농사왕은 당당하게 걸어들어오는 호국을 발견하곤 움직임을 멈췄다.

그 모습이 꼭 빈집을 털다 경찰에게 들킨 좀도둑 같았다.

"거기 딱 서있......"

호국이 진압봉 끝으로 놈을 가리키며 경고한 순간, 농사왕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반대편으로 달렸다.

"...튀어?"

사과가 아닌 도주를 택했다는 건 찔리는 게 아주아주 많다는 것.

호국은 필시 자신이 잠들어 있던 사이에 농사왕이 저지른 죄가 더 있다는 것을 짐작했다.

"잡히면 뒤진다 진짜."

우선 쓸데없이 고퀄리티인 밀짚모자를 빼앗아 라이터로 끝부분부터 태워버릴 것이다.

가드와 ES의 숨막히는 추격전이 지금 막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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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있기에 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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