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피해피 고문재단-47화 (47/209)

경비 업무 일지 : 공백(空白)

"미친년."

제임스 마커가 욕지기를 하며 FCD만 접근할 수 있는 연구원동의 CCTV에 접속했다.

처리시설이든 연구시설이든 연구원들이 거주하는 공간의 CCTV는 다른 시설과 공유가 불가능하다. 이는 보안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연구원들의 개인 연구 및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고자 만든 규정이었다.

그래서 지금쯤 타 시설에선 제 6 처리시설의 일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잘 모를 것이다. 연구원동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미친짓을 그들이 알 턱이 없으니까.

-항명 행위로 처벌하시겠습니까?

"그게 애매하다는 문제야. 항명이면서도 항명이 아닌 상황이라고."

제임스 마커는 홀로그램 영상 속에서 저 좋을 대로 날뛰고 있는 감찰관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분노했다.

우선 항명 행위로 간주하고자 한다면 FCD의 권한으로 코드 블랙을 해제한 가드-079에게 해를 입혔다는 점을 문제 삼을 수 있다.

물론 상대의 권한이 높다고 해서 무조건 상관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경비팀장은 일반 연구원보다 높은 3급 보안등급을 자랑하지만, 연구원들에게 있어서 부려먹기 좋은 존재일 뿐이지 상관이 아니다.

또 다른 예로 기동타격대의 현장지휘관은 2급 보안등급을 지니고 있다고 한들, 자신보다 권한이 높은 1급 수석 연구원의 명령을 받지는 않는다.

보안등급이란 건 어디까지나 TF내에서 접근할 수 있는 정보의 기밀 수준, 혹은 자신이 맡게 되는 직책에 의거하는 기본적인 권한일 뿐이다.

때문에 1급 감찰관 임지영이 일시적으로 FCD에 준하는 권한을 부여받은 가드-079에게 해를 입혔다고 한들, 그것이 항명 행위라고 간주하기엔 애매한 감이 있었다.

왜냐하면 상대는 기껏해야 경비팀장이지만, 임지영은 1급 감찰관이었으니까. 보안등급 이전에 직책 자체가 다르다.

서로 상사와 부하 관계인 것도 아닌데 감찰관이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면 그걸 어떻게 항명 행위라고 할 수 있겠나?

하지만 항명 행위라고 몰아붙인다면 못 할 것도 없다. 가드-079를 FCD에서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감찰 본부를 통해 이미 밝히지 않았던가.

그 말은 곧 다른 건 건드리더라도 가드-079는 건드리지 말라는 FCD의 압박이기도 했다. 그런데 자기가 무슨 정의의 경찰도 아니고 상층부의 압박을 가볍게 씹어버렸으니, 항명이라고 한다면 항명이 맞다.

"후우...미꾸라지 여럿 때문에 일이 꼬이는군."

하나도 아니고 여럿이다.

FCD와 최고 위원회 측에서 가드-079가 어떤 인간인지 알아보기 위해 일시적으로 '뭐든'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주었다.

이건 FCD가 가드-079를 상대로 개인 연구를 벌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혹시 착오를 불러일으킬까봐 관리봇을 통해 FCD의 행정 명령까지 전달해두었다. 행정 명령까지 내렸으면 다들 그러려니 하겠지 싶었건만, 인간의 더러운 질투심과 끈적거리는 욕망은 FCD의 힘으로도 쉽게 짓누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결과, 상황이 이따위로 흘러가고 말았다.

-3급 연구팀장 이홍선을 비롯하여 제 6 처리시설내에 거주중이었던 모든 연구원은 이미 사망했습니다. 더이상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찰나의 질투에 눈이 먼 족속들 때문에 시설 전체가 엉망이 되고 말았지. 게다가 한술 더 떠서 감찰관과 경비팀장이 충돌해버렸고."

사실 충돌이라고 할 것도 아니었다.

연구원들을 만나러 올라온 가드-079는 대처할 틈도 없이 다수의 기습을 받아 제압당해버렸으니까.

내륙에서 정밀 검사를 하기 위해 하루종일 굶었던 그가 속이 불편한 야식을 먹으면서 야근까지 했다. 피로에 찌든 그가 예측불허의 기습에 어찌 대항할 수 있었겠나.

-지금이라도 행정 명령을 보내 저들을 제지하시겠습니까? 항명으로 간주한다면 반발을 일으키겠지만, 행정 명령으로 물러날 것을 요구한다면 저들도 거부할 수는 없을 겁니다.

"아니, 저 미친 년을 봐. 이미 눈이 돌아갔어. 자신의 권한으로 위기에 처한 시설 하나를 완전히 폐쇄할 수 있었는데, 그 기회가 가드-079 때문에 날아가버렸다고 생각해서 잔뜩 화가 난 상태야."

강하게 명령을 내린다면 받아들이기야 하겠지.

하지만 인류의 존망을 위해 시설 폐쇄 절차를 밟은 임지영은 그것을 가드-079에게 방해받았다는 이유로 허튼 수작을 부릴 위험이 있었다.

바로 이 부분이다. 임지영의 시설 폐쇄 절차는 TF 규정에 따른 것이었으며, 설령 시설내에 누가 있다고 한들 코드 블랙을 선포한 것에 잘못은 없었다.

그걸 방해받았다고 주장해버리면 규정을 중시 여기는 TF도 할 말이 없다. 왜냐고? 임지영은 FCD가 정한 규정을 따랐을 뿐인데, FCD가 책임을 묻는 건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난감한 것이다.

"처벌하고 싶다. 처벌하고 싶어......!"

저 시건방진 년과 그년을 믿고 나대는 아랫것들을 싸그리 불러모아서 네까짓게 뭐라도 되는 줄 아냐고 모욕을 준 다음 처벌해버리고 싶다.

그걸 못 하니까 제임스 마커도 답답해서 복장이 뒤집어 질 판이었다.

차라리 저기서 다 죽어준다면 마음이 편하다.

그럼 시건방진 미꾸라지들도 깔끔하게 처리된다. 코드 블랙도 없었던 일이 되면서 가드-079를 계속 관찰할 수 있다. 그럼 모두가 해피해피 해지는 결말이다.

"...잠깐. 다 죽어준다면?"

어차피 연구동 내부 CCTV는 FCD가 아니면 볼 수 없다. 즉 TF내에서 이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은 FCD 밖에 없다는 뜻.

제임스 마커는 화만 나는 홀로그램 영상을 치워 없앤 뒤, AI 비서에게 '개미'의 호출을 명령했다.

드물게도 감정의 변화가 거의 없는 목석 같은 AI 비서가 '개미'의 호출이 확실하냐는 질문을 재차 던져왔다.

"개미를 호출해. 저곳에서 있었던 일을 싹 덮어버리려면 개미를 쓸 수 밖에 없어."

생태계의 청소부로 불리는 개미는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오직 FCD의 최고 위원회의 명령만 받드는 직속 비밀 부대인 그들은 청소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말끔하게 지워버릴 수 있었다.

예를 들어 TF의 계획에 방해가 되는 대기업 하나쯤, 처음부터 이 세상에 없었던 것 처럼 만들어버리는 것도 가능했다.

"저기 있는 것들 싹 쓸어버리고, 흔적도 말끔히 지워두라고 해. 그 다음 기동타격대와 복구반을 투입해서 시설을 안정화 시키겠다."

-가드-079를 빼낸 뒤 시설을 폐쇄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가드-079를 관찰하기 위해서 아직은 필요한 시설이야. 좋은 놀이터에 개똥 하나 나왔다고 싹 철거해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

그 말을 끝으로 제임스 마커는 오랜만에 가상현실에 접속했다. 미꾸라지들 때문에 해야 할 일이 배로 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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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나질 않습니다."

"뭐 이딴 놈이 다 있어?"

차가운 물을 아무리 뿌리고, 뺨을 찰싹찰싹 두들겨봐도 가드-079는 깨어나지 않았다.

마치 교통사고를 당해 혼수상태에 빠진 것 처럼 그는 축 늘어져 있는 게 고작이었다. 크게 소리를 지르든, 강한 충격을 주든, 눈을 뜨기는커녕 작은 신음소리 조차 흘리지 않았다.

이게 연기라면 잘 훈련받았다고 칭찬이라도 해줬겠지만, 임지영은 그것이 연기가 아니란 걸 어렴풋이 눈치챘다. 정말 깊게 정신을 잃어버린 것이다.

마구 밟아댔으니 어디 안 좋은 곳을 맞았나 싶었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뼈가 부러진 것도 아니고, 헬멧 덕분에 머리는 큰 충격을 받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렇다고 당장 죽여버리기엔 상황이 급박해.'

어떻게든 이 시설을 폐쇄시켜야 한다. 이미 ES가 탈주한 마당에 자꾸 시간을 끄는 건 너무 위험했으니까.

코드 블랙 선포는 보안 카드를 이용하는 게 아니라, 특정 보안 등급을 부여받은 사람이 직접 육성으로 관리봇에게 명령해야 선포되는 것이다.

즉 코드 블랙을 해제한 가드-079가 직접 코드 블랙을 재선포 해야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된다. 그 뒤엔 가드-079를 삶든 굽든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이런 놈이 FCD에 준하는 권한을 부여받았다면, FCD 측에서 실험용으로 권한을 줬다는 뜻이겠지.'

감찰본부 측에서도 이미 그가 FCD의 감시하에 있다는 정보를 제공했다.

한마디로 실험용 쥐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에 대해서 실험하고 있었다는 의미. 즉 VIP가 아니기 때문에 뭘 하든 크게 문책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문책을 받는다고 해도 상관없다. 일을 방해받은 건 자신들이니까.

"각성제 투여해."

"대장, 그건 좀......"

임지영을 선배가 아니라 대장이라 부르는 한 말쑥한 차림의 남자가 곤란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 역시 감찰관이지만, 위장 잠입하는 팀원들이 행여나 부상을 입을 것에 대비해 응급조치나 항정신성 약물 처방을 하는 의무관이기도 했다.

일반적인 병원에서 사용되는 각성제와 TF에서 지급되는 각성제는 다소 차이가 있는데, 이 TF제 각성제는 마치 뇌에 직접적으로 전기충격을 가하는 것과 같다는 평가가 자자했다.

깊게 잠들어있든, 충격으로 기절했든, 이 각성제 한 방이면 잠들어 있던 뇌가 단박에 깨버린다. 당연히 부작용도 심각했지만, TF제 각성제를 사용하는 대상이야 뻔하디 뻔한 종자들 뿐이니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것 뿐이다.

"그럼 이대로 가만히 지켜보기만 할 거야? 어서 시설 폐쇄 시키고 우리도 나가야 할 것 아냐."

"그래도 같은 TF 직원을 상대로 각성제를 사용하는 건 자칫 윤리위원회에서 트집을 잡을 수도 있는데......"

의무관이 항상 가지고 다니는 각성제의 수가 부족하다면 설령 잃어버렸든 깨먹었든 무조건 '사용'한 것으로 간주한다. 거짓으로라도 보고서에 빼먹을 수 없는 내용이라 의무관인 민형주는 살짝 겁에 질렸다.

현장에서 1급 감찰관의 명령이 절대적이라고는 하나, 사실상 손발을 자르는 고문과 다를 바 없는 각성제를 사용한다는 것에 굉장한 거부감이 있었다.

"하라면 해. 아니면 ES 수십 마리가 한 번에 탈주해서 세상 멸망 실사판으로 영화 한 번 찍고 싶어?"

"...후우."

ES를 들먹이면 할 말이 없다. 실제로 지금 이 순간에도 관리봇이 시스템을 복구하고 있지만, ES들이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다는 건 모니터를 통해 전부 보였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백팩에서 각성제가 든 앰플과 주사기를 꺼낸 민형주는 침을 꿀꺽 삼켰다.

각성제를 사용하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TF내에서 테러 조직의 첩자노릇을 하던 자를 붙잡아서 끔찍한 고문을 하고, 각성제를 투여해서 다시 깨웠던 적이 몇 번인가 있었다.

다만 눈앞의 상대는 테러 조직의 첩자도 아니었고, 하물며 FCD가 눈여겨보고 있다는 인물이라 거부감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현장에선 임지영이 왕이니 그녀의 말에 따를 수 밖에 없었지만.

조심스럽게 가드-079의 앞으로 다가간 민형주는 그에게 각성제를 투여했다. 뇌사(腦死)해버린 게 아닌 이상 인간이라면 이 각성제를 맞고 30초 안에 무조건 깨어난다.

'이젠 나도 모르겠다.'

FCD 측에서 연락이 들어올 줄 알았더니 그쪽에서도 묵묵부답이고, 대장인 임지영도 딱히 상층부와 연락을 하려 들지는 않았다.

그녀는 그녀대로 독단적인 행동을 강행하겠다는 것이고, FCD는 FCD대로 그녀가 얼마나 더 막나가는지 지켜보겠다는 의도가 다분했다.

'누구 하난 죽어나가겠네.'

감찰관 내에서도 최대 성과를 자랑하는 임지영의 목을 함부로 치진 않겠지. 기껏해야 좀 심한 징계가 내려질 것이다.

대신 그녀에게 튈 불똥이 팀원들에게 옮겨붙을 것은 사실상 확정이었다.

힘없이 돌아선 민형주는 문득 자신을 바라보는 팀원들의 의아한 시선에 고개를 갸웃했다.

"왜들 그렇게 보십니까?"

혹시 자신이 겁먹어서 각성제가 아니라 다른 약물을 몰래 투여했다고 의심하는 걸까? 그런 이유라면 살짝 기분이 나빠질 것 같았다.

이런 상황이 살짝 짜증난 나머지 무어라 말하려던 민형주는 갑자기 나탈리 수에게 어깨를 붙들렸다.

"뭐, 뭐야? 갑자기 왜 그러는......!"

"아니, 의무관님 이마에 이상한 게 생겨서요."

"이마에? 난 피부 관리도 확실하게 해서 여드름 같은 것도 없다고!"

의약품을 다루는 의무관답게 깔끔 떨기로는 여성들 못지 않은 민형주였다. 피부관리는 물론이고, 위와 간에 부담이 가지않는 선에서 자신의 몸에 딱 맞는 영양제도 꼬박꼬박 섭취하고 있었다.

그런 자신에게 뜬금없이 여드름 같은 게 생겼을리가 없다.

"아무것도 없잖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이마를 슥슥 만져본 민형주는 괜한 말을 한 나탈리 수를 노려보았다.

안 그래도 짜증나는데 이 고릴라 같은 여자가 성질을 돋구다니.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대장이 안 보는 곳에서 조인트를 까줬을 것이다.

조용히 나중에 보자는 경고를 하려던 찰나, 눈 앞에서 나탈리 수의 눈알이 터져나갔다.

"...아?"

측면에서 날아든 한 발의 탄환이 정확히 그녀의 안와(眼窩)를 관통해, 안구를 산산조각내버렸다.

뇌를 관통당한 게 아니라 나탈리는 두 눈을 부여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으, 아아아아아아!!"

남자보다도 훨씬 더 강인했던 그녀가 지금은 두 눈에서 터져나간 눈알 조각과 핏물을 흘리며 미친듯이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여러분이 있기에 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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