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피해피 고문재단-43화 (43/209)

off the record : #4

테러리스트 단체가 고문재단을 공격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진리교는 TF가 세간에 감춘 비밀일 파헤치고, 모든 진실을 손에 넣어 진리의 끝에 도달하겠다는 뜬구름 잡는 교리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조직이었다.

하지만 TF가 간과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조직력이 대단한 곳인데다 교단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광신도들로 득시글거리는 것이 특징이었다.

얼핏 앞뒤 안 가리고 행동하는 극단주의자 집단 같지만, 놈들의 윗대가리는 제법 영리해서 전세계에 퍼져있는 진리교의 하위 조직들을 점조직 방식으로 운영했다.

또한 TF와 각국의 정부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구시대적인 연락망을 갖췄다. 예를 들어 전서구를 통해 연락한다던가, 특정 지역에, 특정 시간을 맞춰서 특정한 암호문을 남겨 조직 단위 명령을 내리는 일도 있었다.

이는 발견하기도 매우 어렵지만, 현장에서 가로채 역추적을 하는 것 역시 극도로 까다로웠다. 특히 감시용 비행 드론 때문에 전서구를 보내지 못 할 때는 쥐를 이용하기도 하는 영악함을 보였다.

임지영은 입술을 질끈 깨물면서 스마트 패드에 담겨있는 자료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제 6 처리시설이 습격받을 당시의 CCTV 자료와 놈들의 침투 경로를 예측한 해도(海圖)였다. 그리고 놈들에게 정보를 흘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첩자 후보 목록.

진리교의 습격 사태야 이미 정리된 일이니 들쑤셔봐야 얻을 것이 없었다.

하지만 TF내에 숨어든 쥐새끼를 밝혀내는 일은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임지영은 눈에 쌍심지를 켜고 후보들을 면밀히 살폈다.

개중에는 나름 중진에 속하는 2급 연구원이나 기동타격대, 시설안전점검관도 포함되어 있었다. 모두 특정 시설에 대해 자세한 속사정을 알고 있을 법한 사람들 뿐이었다.

어쩌면 후보군 중에 첩자는 없을지도 모른다. 가능성은 적지만 감찰본부 내에서 제공받은 이 자료가 틀렸을 수도 있다. 감찰관들이라고 해서 초능력으로 모든 걸 꿰뚫어볼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냥 의심스러운 사람이 있으면 마킹 해두고 감시망을 구축해서 뒤를 캐는 게 고작이다. 도청이나 도촬은 당연히 기본적으로 깔고 들어가지만, 과거에 그렇게 털어도 먼지 하나 나오지 않는 사람이 제법 있었다.

인간의 감이란 건 때론 자기합리화의 훌륭한 재료이지만, 동시에 객관적이고 공명정대한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안개이기도 했다.

'애초에 TF 산하 시설을 습격하게 하려고 했다고 처리 시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이유가 없어.'

TF 입장에서 처리 시설이란 언제든지 핵폭탄으로 지하 깊숙한 곳에 묻어버릴 수 있는 애물단지였다. 인류의 안전과 기밀 유지를 위해 숨겨두고 있는 것 뿐이지, 딱히 연구 시설처럼 공을 들여서 지키려고 하진 않는다.

ES가 탈출할 것 같다? 정보가 유출될 것 같다? 그럼 그냥 폭파시켜버리면 모든 게 해결된다. 그 뒷감당이 꽤 귀찮기 때문에 아직도 멀쩡히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FCD들도 해야 할 때는 해야 한다는 걸 아는 작자들이다.

'지난번 사태도 결과적으로는 진리교 침투조가 ES에게 전멸해버려서 굳이 시설을 폭파시킬 필요가 없었다지.'

ES는 절대로 빠져나가지 못 하게 해야 할 맹수이면서, 동시에 시설을 지키는 파수견 역할을 지니고 있다. 좀 모순적이긴 하지만.

그러니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내부 첩자가 제 6 처리 시설에 대한 정보를 흘렸을 가능성은 낮다.

애시당초 외부 세력에게 리스크 없이 정보를 건네줄 수 있을 정도라면 그 첩자는 내부 사정을 훤히 꿰고 있으면서, 지위도 꽤 높다는 걸 반증한다.

그런 자가 정말 처리 시설에 대한 걸 모르고 정보를 넘겼을까? 그럴리가 없다. 형제들을 무의미하게 사지로 몰아넣는 건 진리교 내에서 배교 행위에 해당한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역시 다른 조직들간의 알력 다툼인가?'

진리교를 제외하고도 TF와 세계 정부에 대항하는 조직들은 얼마든지 있다.

메이저한 놈들로는 인류퇴화연맹과 미스터리 콜렉터가 있다.

인류퇴화연맹은 ES보다 인류가 뒤쳐졌으니, 인류는 시대의 흐름과 진화의 혁명에 따라 자연스럽게 퇴화하여, 최종적으로는 지구상에서 멸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싸이코 집단이었다.

진리교의 광신도들이 자판기 커피라면 놈들은 고양이 똥 커피라고 해도 좋을 만큼 제대로 미친놈들이다. 대체 인간이 어떻게 하면 그정도의 광기를 가질 수 있는지 임지영조차 궁금할 지경이었다.

인류퇴화연맹에게 있어서 모든 적은 인류이며, ES는 자신들을 대체할 신인류다. 즉 그들의 목적은 은폐된 ES를 해방하고, 전 세계의 인류를 멸종시키는 것. 따라서 진리교에게 허위 정보를 흘렸을거란 추측에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명분으로 따지자면 미스터리 콜렉터에게도 충분히 있어.'

FCD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국가의 지도자, 혹은 대기업의 CEO들로 이루어져 있다면 미스터리 콜렉터는 뒷세계의 보스, 거부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불법 약물, 무기 거래, 인신매매는 2050년인 지금도 범죄조직 사이에서 횡행하고 있으며, 인류의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바퀴벌레처럼 끈질기게 살아남을 업종이다.

그렇게 악착같이 더러운 돈을 벌어들인 놈들이 정부의 고위 관료를 통해 ES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고, 이제는 그것들을 소유하고자 마수를 뻗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인류 역사에서 오랜 세월 동안 탄탄하게 기반을 다져, 칼질로는 도려낼 수도 없을 만큼 커진 종양(범죄조직)들은 TF의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었다.

TF가 동원할 수 있는 힘을 저들도 동원할 수 있었으니까. 무기면 무기, 군대면 군대. 더러운 돈으로 뒷세계의 정점에 오른 자들에겐 국가와도 맞먹는 힘이 있었다.

그들이 ES의 실체를 확인하고, 제 6 처리 시설의 보안 수준을 확인하고자 진리교를 끌어들였다면? 그 또한 가능성이 있다.

"하아, 머리 아파 죽겠네......!"

등받이에 머리를 기댄 임지영은 멍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털털털 떨리고 있는 수송 헬기 안에서 머리 아프게 고민했더니 한층 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지금껏 잠자코 앉아있던 맞은 편의 사내가 겨우 묵언수행에서 해방된 사제처럼 입을 열었다.

"정말 가셔야겠습니까?"

"가야지. 감찰관이 하는 일이란 게 다 그런거니까."

큰 코에 푸른 눈, 올빽의 금발이 인상적인 정장 차림의 미남이 어울리지 않게 인상을 찡그렸다.

"전 반대입니다. 선배님께서 굳이 그런 위험한 시설에 발을 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기동타격대만 보내도 전후사정쯤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전후사정만 파악하면 끝이야? 시설 하나에 얽히고설킨 수많은 속사정은 어떻게 파악할 건데? 그리고 얼마 전에 파견됐던 기동타격대가 전멸했잖아. 거긴 사람을 부대 단위로 집어넣을 곳이 아니야."

"그러니 더더욱 선배님이 가는 건 말도 안 됩니다. 덜떨어진 연구원 몇 놈에 정신지체장애인 한 명밖에 없는 시설에 감찰관이 가서 뭘 할 수 있단 겁니까?"

"뭘 하긴. 우리가 하는 일이 언제부터 그리 대단했는데? 다들 평소처럼 연기하고, 뒷공작해서 정보 캐내고 그랬잖아? 설마 우리가 하는 일이 굉장히 숭고하다, 이런 거 아니지?"

임지영이 진심이냐는 표정으로 되묻자 사내는 입을 다물었다. 허벅지에 올려둔 주먹을 세게 움켜쥐는 것으로 보건대 말하고 싶은 것이 잔뜩 있는 듯 했지만, 쉬이 입밖에 내진 않았다.

"잘 들어. 네가 아직 신입이라서 잘 모르나본데, 우리가 하는 일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야. 오히려 목숨 걸고 최전방에서 활동하는 기동타격대나, 몇 개월의 시한부 인생 선고 받고 시설에서 일하는 경비들이 훨씬 더 대단해. 알게 모르게 TF를 위해서 목숨 바치고 있는 사람들에 비해 우리가 하는 일은 남 속이고, 상관에게 고자질이나 하는 게 전부야."

뒷공작을 사기에, 임무 보고를 고자질로 빗대자 주변의 다른 감찰관들도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신입인 로니 웨슬러를 제외하면 모두 임지영과 함께 새로 파견된 연구원 신분으로 위장해 제 6 처리시설에 합류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작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자신들이 하는 일을 어린아이 장난처럼 비꼬아서 말했으니 화가 나지 않는 게 이상했다.

다만 임지영은 동아시아 지부에서 최연소로 1급 감찰관에 올랐기 때문에 다들 쉬쉬 하고 있는 것이었다.

1급 감찰관은 '감찰 작전'에 한해서 FCD에 준하는 권한을 부여받는다.

설령 상대가 1급 수석 연구원이든, 연구 시설을 총괄하는 연구소장이든, 아니면 전장에서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현장지휘관이라도 배신 행위가 발각되면 얄짤없다.

1급 감찰관의 권한에 의해 상대의 직위는 즉시 박탈당할 수 있으며, 저항하거나 도주를 시도할 경우 즉시 사살도 가능하다.

이를 위해 감찰관 코스를 밟는 엘리트들은 사관생도 엘리트 집단과는 별개로 10세 전후부터 지옥같은 훈련을 받으며 성장한다.

오직 TF내에서만 활동하는 첩보 요원임과 동시에, 본인의 재량에 따라 죄인의 형을 집행할 수도 있는 것이 바로 감찰관이란 존재다.

그런 대단한 존재가 임지영의 입에 의해 코 푼 휴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상관이 이 광경을 봤더라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을 수준.

하지만 임지영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너무 젊은 나이에 실패 한 번 없이 무수한 공을 세워왔다. 덕분에 파격적인 승진으로 1급 감찰관의 자리에 앉자마자 갑자기 염세주의자가 되고 말았다.

그런주제에 일은 굉장히 잘 해서 20대 감찰관중 그녀를 대체할 인력은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당연히 그녀 아래에서 일하는 팀원들은 아주 죽을 맛이었다.

"그래도 한 번만 더 재고해주십시오. 지금껏 위장 잠입이 발각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모두 안전한 환경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다른 시설도 아니고 화약고나 다름없는 제 6 처리시설에 선배님께서 직접 잠입하는 건 조금......"

"싫은데? 꼬우면 네가 내 상관하든가~"

"......"

그래, 바로 이런 점이 문제였다.

그녀는 젊은데다 꽤 포용적이어서 설령 새파란 신입의 의견이라도 다짜고짜 말을 자르며 무시하지는 않았다.

덕분에 팀내의 분위기는 직급에 상관없이 자유로운 편에 속했지만, 그녀가 한 번 하고자 마음 먹은 것은 설령 직속 상관이라도 바꾸지 못 했다.

한 번은 감찰본부장이 상대가 극심한 후유증을 느낄 정도로 고문해서 정보를 얻는 건 자제하라고 했을 때, 그녀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계산하고 행하는 고문이니 정중하게 거절하겠다고 대답했다.

이런 마당에 팀내의 누군가가 임지영의 상관이 된다고 한들, 그녀의 의지를 바꿀 수 있을 가능성은 한없이 제로에 가까웠다.

"아, 도착했다!"

헬기의 창문 아래로 보이는 푸르른 한라산의 광경에 임지영은 순진무구한 미소를 지었다.

저 귀여운 얼굴과 순진무구한 미소로 대체 얼마나 많은 남자들을 우롱하고 엿 먹였던가. 물론 거기엔 팀의 일부 남성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잘 들어. 이제부터 난 20대 초반의 파릇파릇한 신입 연구원이야. 매번 말하지만 신분 노출하는 놈은 그 자리에서 제명해버릴테니까 알아서들 해."

작전이 시작되기 전부터 그녀의 태도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이는 TF에서 은퇴하거나 '처리'되기 전까지 평생토록 가면을 써야 하는 감찰관들의 전매특허였다.

물론 그녀는 몇 번이고 그랬던 것 처럼, 이번에도 순진무구한 남성을 홀려서 정보를 캐내고 단물빠진 껌처럼 버릴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악인이라는 게 밝혀진다면 흔적도 없이 처리할 것이고.

파견 연구원으로 위장한 다섯 명의 감찰관들이 한라산의 초입에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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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있기에 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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