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 업무 일지 : 야간근무(5)
호국은 군대에서 유일하게 혼자 전세내고 사용할 수 있었던 사지방(사이버 지식 정보방)에서 이런 방송을 잠깐 봤던 적이 있다.
[빡털TV]가상현실 소꿉놀이 - 1:1 사이즈 바퀴벌레랑 일주일간 같이 살기?!
작명센스는 유치하기 짝이 없었지만, 당시 가상현실의 리얼함을 살려 실시간 방송을 하던 스트리머 중에선 제법 인기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놀랍게도 한 모델링 디자이너에게 의뢰해서 1:1 사이즈의 바퀴벌레 모델을 제작해줄 것을 요구했다.
당시 가상현실에선 혐오스러운 아바타를 타인과의 공개된 가상현실 공간에서 사용하는 것이 암묵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는데, 자신의 능력과 정직성을 시험받게된 디자이너는 결국 쓸데없이 열의를 불태우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장인의 손길을 거쳐 가상현실인 걸 뻔히 알아도 정말 리얼한 바퀴벌레 모델이 탄생했다.
그렇다면 빡털TV는 그걸 어디에 썼느냐? 당연히 앞의 구린 작명센스 그대로 가상현실의 미연시(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에 이 바퀴벌레 모델을 써먹었다.
모든 여성 캐릭터가 예쁜 옷과 장신구를 걸친 특대형 바퀴벌레가 되어 게임에 등장했으며, 코맹맹이 소리로 주인공(빡털TV)에게 열렬한 구애를 했다.
당연히 벌레라면 지긋지긋했던 호국은 보기만 해도 까무러칠 것 같은 특대형 바퀴벌레들의 등장에 기겁했다. 오죽했으면 남에게 호구 소리 듣던 호국이 채팅으로 쌍욕을 한 바가지 퍼부었을 정도였다.
이후, 그 스트리머는 '탈현실급 스트리머' 소리를 들으며 승승장구했다나 어쨌다나, 하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좌우지간. 잊을 수 없는 기억이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화가 나는 호국이 어째서 그 기억을 다시 꺼냈느냐면, 눈앞에 진짜 특대형 바퀴벌레가 있었기 때문이다.
"......"
슬쩍 뒷걸음질해서 반쯤 열려있는 방 문을 확인했다.
날아오르는 까마귀 문양과 함께 제대로 ES 6-55 라고 쓰여있었다. 이곳이 B46 구역의 고위험군임은 말할 것도 없었다.
'뭐지? 내가 무슨 죽을 죄라도 지었나?'
호국은 왜 열려있는지도 모를 문의 틈새를 다시 한 번 들여다 보았다.
아기자기한 핑크빛 인테리어로 장식된 소녀풍의 넓은 방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바퀴벌레였다.
자신이 헛것을 본 게 아니란 걸 깨닫자마자 호국의 전신에 소름이 쫙 돋았다. 야식으로 먹었던 라면이 다시 역류할 것만 같았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다행스럽게도 구토 봉지가 한 장 남아있었다. 역시 TF는 경비들의 속사정도 생각해주는 훌륭한 회사임을 상기하며, 입가에 미리 봉지를 갖다댔다.
그리고 이럴 때야말로 후임을 둔 선임이 쥐뿔도 없는 권력을 사용해야 할 때다.
호국은 멀뚱멀뚱 서있던 신입에게 방 안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깐 내가 시범 보여줬으니까 이번엔 네가 먼저 가봐. 이것도 다 경험이야."
말없이 주먹을 치켜드는 신입에게 주먹 쓸 일은 없으니 접어두라고 일렀다.
'아니, 오히려 바퀴벌레가 상대니까 주먹을 써야 하는 거 아닌가?'
잠시 인지부조화를 느낀 호국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진압봉을 건네주었다.
주먹으로 상대를 패면 왠지 나쁜 놈이 일방적으로 폭행을 가하는 것 같지만, 진압봉으로 두들겨패면 맞는 놈이 맞을 짓 했겠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주먹을 쓰면 너무 폭력적이니까, 꿈틀거리면 이걸로 그냥 패버려. 막...벽이나 천장으로 기어다니면 징그러우니까 다리를 집중적으로 때려."
만약 신입이 안드로이드였다면 '접수 완료!' 따위의 말을 했을 것이다.
군인처럼 척 경례를 해보인 신입은 호국이 건네준 진압봉을 들고 6-55의 방으로 들어갔다.
갑작스럽게 불청객이 찾아온 탓일까, 핑크핑크 앞치마를 두르고 있던 거대 바퀴벌레는 더듬이를 빠르게 움직이며 신입을 탐색했다.
문 틈새로 그 광경을 지켜보던 호국은 눈을 질끈 감았다. 바퀴벌레의 더듬이는 유독 길어서 움직일 때 마다 촉수처럼 거칠게 흔들렸다.
나름 비위가 좋다고 자신하는 호국도 특대형 바퀴벌레가 내뿜는 특유의 좆같음은 버틸 수가 없었다. 업무만 아니었다면 벌써 뒤돌아 도망쳤을 것이다.
앞치마를 두른 바퀴벌레가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털이 우수수 돋아난 6개의 다리를 자랑하는 바퀴벌레가 양 손에 프라이팬과 뒤집개를 들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지 않았다.
아직 상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그냥 신입이 먼저 선빵을 친다음 잘 몰라서 그랬다고 변명해주길 원했다. 그럼 자신은 선임답게 '다음부턴 그러지마라'고 주의를 주면서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을 텐데.
호국의 바람과는 달리 바퀴벌레는 더듬이로 신입을 몇 번 건드려보다가, 이내 흥미를 잃은 듯 뒤돌아섰다.
그리고 아직 호국도 가지지 못한 대형 냉장고에서 정체모를 고기를 꺼내 조리 준비를 했다.
미인이 아니어도 딱히 상관없다. 그저 평범한 인간이 저랬다면 남자든 여자든 요리도 잘하는 자취생쯤으로 보였으리라.
하지만 윤기가 좔좔 흐르는 검붉은색의 등딱지, 그 아래로 보이는 황갈색의 날개는 어딜 어떻게, 어떤 관점으로 봐도 매력적이지 않았다.
누군가가 '10억을 줄테니 딱 한 달만 요리 잘 하고 성격도 좋은 특대형 바퀴벌레와 같이 살래?' 라고 묻는다면 호국은 두말할 것도 없이 진압봉을 휘두를 자신이 있었다.
셀프 패드립하고 100원 받기 만큼이나 고민할 가치도 없는 질문이다.
하다못해 도마뱀이나 생쥐가 인간과 비슷한 크기라면 이해할 수는 있다. 보기에 따라선 귀엽거나 멋있게 보일수도 있는 생물들이니까.
하지만 바퀴벌레는 안 된다. 인간이 인간으로써 허용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바퀴벌레다.
'근데 쟤는 저기서 뭐하는거야?'
신입은 자연스럽게 바퀴벌레의 것으로 추정되는 개인물품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대체 바퀴벌레가 왜 가지고 있는지 모를 화장품이나 헤어 드라이기, 소녀 만화 따위가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이쯤 되면 일단 방의 주인인 바퀴벌레도 화를 낼법 하건만, 둘은 마치 서로에게 일말의 관심도 없는 것처럼 저 좋을 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헛짓거리를 하고 있는 신입을 불러들일까 생각했지만, 바퀴벌레가 알아챌까봐 쉽사리 입을 열 수 없었다.
'그래, 슬쩍 들어가서 데려오자. 큰소리만 내지 않으면 모르겠지.'
핏물이 뚝뚝 흐르는 고기를 그대로 굽고 있는 바퀴벌레는 여전히 등을 보이고 있었다.
첩보 영화의 스파이처럼 스리슬쩍 문 틈새로 들어간 호국이 굉장히 예쁜 방에 발을 들이는 순간이었다.
1초 전만 해도 고기를 굽고 있던 바퀴벌레가 초고속으로 이동해서 천장에 매달렸다. 어찌나 빨랐던지 잠깐이지만 충격파 비스무리한 바람이 느껴질 정도였다.
저도 모르게 제자리에 굳어버린 호국은 용케 천장에 매달린 바퀴벌레를 올려다 보았다. 순간적으로 자신을 덮치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정작 바퀴벌레가 선택한 장소는 이 방 안에서 가장 안전한 천장이었다.
자신을 피해서 천장으로 이동했다? 이는 말도 안 되는 희망사항이었다. 애초에 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는 척을 하면서 날 덮치려는 걸지도 몰라.'
호국은 바퀴벌레용 가디건을 뒤집어 쓴 신입에게 어서 나오라는 손짓을 하며, 한 손은 권총에 갖다댔다.
깜짝 놀라서 떨어뜨린 구토 봉지를 다시 주워서 속을 게워낼 틈 같은 건 없었다.
저 매끄러운 광택을 자랑하는 특대형 바퀴벌레가 볼록하게 튀어나온 두 눈을 자신에게 들이대는 상황을 상상하기만 해도 끔찍했다.
하다못해 말이라도 통했다면 자신은 바퀴벌레로 양갱을 만들어먹는 꼬리칸 출신이라며 허세를 부렸을텐데, 바퀴벌레는 더듬이를 파르르 떨고 있을 뿐, 인간의 말을 내뱉을 기색은 없어보였다.
"다가오면 병신으로 만들어주겠다."
자랑은 아니지만 호국은 바퀴벌레의 좋지 못한 곳에 정확히 총알을 박아줄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자세히 보니 검붉은색 몸체 때문에 왠지 공산당을 할 것 같기도 했다.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바퀴벌레와 엉거주춤한 자세로 권총을 뽑아들 준비를 하는 인간의 눈치게임은 약 5분이나 이어졌다.
양측 모두 눈곱만큼도 움직이지 못 하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정적을 깬 것은 다름아닌 스프링쿨러였다.
고기가 심하게 타면서 독한 연기가 피어올랐고, 공기 순환 시스템으로 미리 걸러내지 못한 뜨거운 연기가 화재경보기를 작동시킨 것이다.
하필 천장의 중심부, 스프링쿨러가 설치된 자리에 있던 바퀴벌레는 거센 물줄기를 맞으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깜짝 놀란 호국도 엉겁결에 권총을 뽑아들었다.
"움직이지 마! 제발 부탁이니까 다리좀 움직이지마!!"
거대한 바퀴벌레가 배를 까뒤집은 채 6개의 다리를 버둥거리는 건 너무나도 끔찍한 광경이었다.
보고 있으면 정신이 혼미해진다고 해야 할까? 특히 물을 흠뻑 뒤집어 쓴 탓에 검붉은 몸체가 한층 더 섹시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신입! 네가 어떻게 좀 해봐!!"
킹 사이즈 침대 아래를 뒤지고 있던 신입은 뒤집어져 버둥거리고 있는 바퀴벌레의 옆구리를 냅다 걷어차버렸다.
인간의 힘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한 각력에 바퀴벌레는 벽에 한 번 부딪혔다가 호국을 향해 튕겨나왔다.
축구선수가 봤다면 혀를 내두를 만큼 완벽한 굴절패스였겠으나, 호국에겐 이세계로 향하는 트럭이 덮쳐드는 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광경이었다.
"으아아아! 신입 미친놈아!!"
자신에게 이런 시련을 패스한 신입을 욕하며, 호국은 재빨리 바닥에 몸을 던졌다.
바퀴벌레랑 몸을 맞대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하물며 근거리에서 총을 갈겨 바퀴벌레의 역겨운 체액이 자신의 몸에 튀는 건 어불성설!
아슬아슬하게 호국의 머리 위로 지나간 바퀴벌레는 그대로 복도에 내던져졌다. 직후, 충격에서 벗어난 바퀴벌레는 호국의 눈으로도 쉽게 좇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도망쳤다.
한바탕 난리를 겪은 호국은 조심스럽게 문밖을 살펴보았다. 바퀴벌레는커녕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야."
호국은 괘씸하기 짝이 없는 신입에게 화를 내는 대신 극적 합의를 보기로 했다.
"우린 여기서 아무것도 못 본 거야. 여긴 아무도 없었어."
그의 등 뒤에서 바퀴벌레가 더듬이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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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영은 올해로 3년차의 근속을 자랑하는 TF 감찰관이다.
감찰관은 TF내에서 주로 부정을 저지르는 직원을 찾아내거나, 혹은 TF의 기밀을 유출하려 하는 첩자를 밝혀내는 역할을 맡는다.
해야 할 일은 썩은 싹을 찾아내 제거하는 것밖에 없지만, TF내에서 기동타격대 만큼이나 가장 바쁜 부류였다.
우선 그들에게 공식적인 직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나이에 맞게 적당히 상대를 속일 수 있는 위조 신분이 부여된다.
예를 들어 임지영과 같은 20대의 젊은 감찰관에겐 4급 연구원이나 기동타격대 대원 같은 평범한 직책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젊은 사람이 보안 등급이 높을리가 없다는 점을 고려해서 자연스럽게 책정된 것이었다. 나이에 걸맞는 지위를 가져야 주위의 의심을 피할 수 있을 테니까.
물론 감찰관들의 감찰 업무에 지장이 생기면 곤란하니, 그들에겐 별도의 보안 카드 대신 눈에 특별히 삽입된 극소 전자칩을 보안 카드 대신 사용한다.
겉으로는 조금 멍해보이는 20대의 젊은 연구원이, 뒤로는 높은 보안 등급을 이용해 수상쩍은 이들의 개인 기록을 뒤지고 다닌다.
임지영 역시 젊은 나이와 낮은 직책을 가면 삼아 은밀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얼마 전 습격받은 제 6 처리시설의 내부 정보를 퍼뜨린 첩자를 찾아내기 위해서.
여러분이 있기에 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