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피해피 고문재단-41화 (41/209)

경비 업무 일지 : 야간근무(4)

어린 아이들이 장난감을 곧잘 가지고 논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결정된 것 처럼 여자아이는 인형을 집어들고 놀았으며, 남자아이들 또한 자신이 멋있다고 생각하는 장난감으로 각자의 시간을 즐긴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라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은 끊임없이 아이들을 위해 지갑을 열었다. 귀여운 아이들의 모습을 추억의 앨범 속에 보관해두고 싶은 건 만국공통 모든 부모들에게 통용되는 얘기였으니까.

때문에 장난감 가게, 대형 마트에서 아이들이 바닥을 뒹구르며 부모에게 떼를 쓰는 건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광경이었고, 이를 관찰하며 상품 개발과 마케팅 연구에 힘을 쏟던 기업가들은 최고의 공략법을 알아냈다.

아이가 원하는 건 결국 부모가 사야 한다. 그렇다면 부모도 괜찮다고 생각할 만한 아이의 장난감을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 이는 부모와 아이, 기업과 공장도 만족하는 윈-윈 방식이었다.

그래서 1980년대에 실제 군인을 모티브로 만든 플라스틱 장난감 'Little Army' 가 출시됐다.

하지만 작은 장난감인 것 치곤 전쟁의 참흑함을 보여주는 리얼한 묘사, 그리고 생각 만큼 가격이 만만치 않다는 점 때문에 오히려 소비자들로부터 기피되었다.

장난감을 장난감으로 볼 수 없다는 혹평을 들으며 결국 출시한지 한달도 안 되어 모든 매장에서 해당 상품을 철수시켜야 했다.

그러다 한 디자이너가 아예 판매 전략을 프리미엄화로 바꾸자는 건의를 했고, 기업은 이를 받아들이면서 본격적으로 리틀 아미의 리뉴얼 작업에 들어갔다.

우선 기존의 초록색 몸체 대신 마네킹 같은 새하얀 몸체에 아주 희미한 이목구비만 넣어 간신히 인간형 장난감이란 걸 알 수 있게 했으며, 그 위에는 초콜릿 색상의 군복과 철모를 씌웠다.

무엇보다 통짜 플라스틱 장난감이 아닌, 군복과 철모도 별도로 제작하는 것으로 프리미엄 라벨을 지켰다. 게다가 목각 인형처럼 관절을 조금 움직이게 만들어서 장난감의 활용도를 높였다.

마지막으로 장난감 병사 하나당 3~5cm 수준이었던 기존 사이즈를 늘려서 10cm로 통일했다. 10cm 크기라면 입보다 커서 행여나 아이가 삼킬 일도 없었고, 고사리 같은 작은 손에 쥐기에는 썩 괜찮았던 것이다.

프리미엄 장난감으로 리뉴얼된 리틀 아미는 구상부터 제작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공장에서 충분한 물량을 확보한 다음 미국 주요 도시에 유통하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한 디자이너가 장난삼아 병사 모델 밖에 없었던 기획에 개인적으로 만든 지휘관 모델을 끼워넣으면서 모든 것이 뒤틀려버렸지만.

일단 2개로 확립된 해피해피 진영(초콜릿색 군복)과 언해피 진영(군청색 군복) 속에서 갑작스럽게 지휘관이 참전하고, 그들은 순식간에 장난감이 아닌 진짜 군인으로 거듭나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공장에서 무수히 찍혀 나오던 장난감 군인들은 배급받은 플라스틱 총과 수류탄을 들고 서로를 미친듯이 공격했다.

기껏해야 10cm 장난감들이었을 뿐이지만, 기어이 공장을 박살내고 경찰의 눈을 피해 인간의 도시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춰버릴 만큼 그들은 영특했다.

거기까지가 공식적으로 TF에 들어온 옛 기록이며, 이후 수십 년 후인 2031년에 미국 남부 황무지에서 저들끼리 군사 기지를 건설하고 한창 싸우던 것을 TF 기동타격대가 확보했다.

놀랍게도 이 과정에서 기동타격대 쉰 다섯 명 중 스물 셋이 사망했으며, 일곱은 심각한 PTSD를 앓아야 했다.

겉보기엔 귀엽게 생긴 장난감들이었지만, 그들은 수십 년 사이에 진짜 군대처럼 진화했다.

그들이 사용하는 플라스틱 무기의 위력이 인간이 사용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을 만큼 대단했으며, 또한 인간이 구사하는 언어를 사용함은 물론 실제 군대 전술까지 선보였다.

신중하게 호국에게 다가가 위험성을 체크하는 것부터, 호국이 지휘관들을 붙잡아간 것을 알고 주먹을 흔들어 보이면서 위협하는 행동까지 전부 인간과 다를 바 없었다.

심지어 일부 장난감은 기관총이 거치된 지프를 몰고와 호국을 겨눴다. 옹알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지만, 격렬한 바디랭귀지로 미루어보건대 호국에게 억류된 지휘관들을 풀어줄 것을 요구하는 듯 했다.

물론 호국은 호구가 아니었기에 딱 잘라 거절했다.

"여러분이 지금 이해를 못 하시나본데, 이거 전부 정리 안 하면 이분들 못 풀어드린다고."

호국은 폭발로 인한 화약흔이나 우유 같은 하얀 액체 웅덩이를 가리켰다. 이 복도도 꽤 넓었는데, 대부분의 공간을 더럽혔을 만큼 장난감의 수가 너무 많았다.

당연히 호국과 신입 두명이 치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밥 먹고 난 식기는 자기가 직접 싱크대에 갖다 놓고, 자기가 가지고 논 장난감도 제대로 정리해야 한다고 배웠거든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벌인 패싸움도 여러분이 직접 정리하셔야죠."

호국은 검은 화약흔을 손가락으로 문질러보았다. 역시나 제대로 지워지기는 커녕 떗자국이 더욱 번졌다.

자신이 맡은 일은 이 시설의 관리 겸 보호 겸 청소이지만, 이건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호국이 강하게 나가야만 했다.

"서로 치고박든 말든 저는 상관없는데요, 적어도 공공예절은 지키면서 놀죠."

호국은 자신의 앞에 모여든 10cm 군대를 관객처럼 세워두고 오밤중에 시끄럽게 떠드는 건 예의가 아니다, 층간소음으로 민폐를 끼칠 수도 있다는 주의를 늘어놓았다.

마이크라도 갖다줬으면 일장연설을 할 기세였다.

"...따라서 여러분은 적절한 시간에 맞춰서, 적절한 규칙을 정하고,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게끔 놀아야 한다는 거죠."

호국은 10cm 인간에게 딱 걸맞는 화이트 보드인 스마트 패드에 직접 주의문을 적어 보여주었다.

멀리 있어서 잘 보이지 않는 사람은 앞줄에 있는 사람이 귓속말로 전달해주었다.

파도타기처럼 호국의 주의문이 퍼져나가자, 족히 수천은 될 법한 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고지전을 연상케 하는 플라스틱 시체의 산에서 쓰레기들을 걷어낸 이들은 열린 방문 사이로 가지고 돌아갔다.

특히 바닥에 흘린 정체불명의 흰 액체는 휴대용 화염 방사기 같은 청소기로 죄다 빨아들였다. 개미떼 같은 탄피나 파편들 역시 남김없이 챙기는 모습이 모범시민 뺨 후려치는 수준이었다.

문득 호국은 땡볕 아래의 더위든, 한겨울의 혹한이든 허구한 날 불려가서 작업을 해야 했던 옛 시절이 떠올랐다.

쉬고싶어도 마음 편히 쉴 수 없는 병사들을 계급이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부려먹는 윗대가리들이 딱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들은 분명 병사가 헉헉대는 모습을 보며 흥분하는 변태들이었을 것이다.

당연하지만 호국은 변태 장교들처럼 남이 고생하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는 짓따윈 하지 않았다.

"내가 조금 전에 위에서 설명해줬지? 우리의 주된 업무는 모든 층을 돌아다니면서 안전 여부를 체크하는 거야."

날아오르는 까마귀 문양이 새겨진 ES 6-41-1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학교의 강당 같은 넓은 공간에 입이 떡 벌어질 것 같은 성이 세워져 있었다.

대체 어디서 가져왔는지도 모를 각종 재료로 건설된 성들은 얼핏 중세 시대의 성을 떠올리게 했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옛 시대의 병사가 절대로 커버할 수 없었던 부분을 각종 무기로 보완하고, 손톱만한 감시 카메라까지 설치해서 보안을 철저히 지키고 있었다.

초콜릿색의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드나드는 것으로 보건대, 호국은 이곳을 임시로 초콜릿 왕국이라 명명하기로 했다. 이곳에 있는 무기를 다른 층으로 가지고 가지만 않는다면 안전에도 문제 없어보였다.

혹시 ES 6-41-2의 방도 이런 건가 싶어 반대편도 확인해보았다.

초콜릿 왕국과는 다르게 미니 컨테이너 박스를 이용한 벽을 쌓아두거나, 콘크리트 벙커를 군데군데 세워둔 것이 인상적이었다.

침입을 우려한 것인지 방문 앞에는 군청색의 10cm 군인들이 서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다.

호국이 방에 들어가면 경례하고, 방에서 나와도 경례를 하는 모습이 제법 귀여웠다. 몇번이나 경례 받기를 반복하다가, 자신의 주머니에서 꿈틀대는 지휘관들을 꺼냈다.

수천 명의 군인들이 분발해준 덕분에 복도는 전과 같이 깔끔해지고 있었다. 책임자인 지휘관들도 이 광경을 봐야 '적당히' 라는 것을 알게 될 터.

호국은 두 지휘관은 복도에 내려놓았다. 10cm 수준의 패싸움이 벌어질 때와는 완전 딴판인 광경이라 그들도 무언가 느끼는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쯤에서 사나이답게 악수라도 하며 기분좋게 끝낼 것 같았다. 분명 그런 분위기였다.

"--! -----!!"

"-? -!!"

하지만 두 지휘관은 다짜고짜 서로의 멱살을 잡더니 거의 동시에 크로스 카운터를 먹였다.

뒷정리가 막바지에 다다랐을 즈음, 갑작스럽게 벌어진 지휘관배 영혼의 맞다이.

남의 싸움 구경이 재밌는 건 1.8m 인간이나 10cm 인간이나 똑같은 모양인지, 청소를 하던 군인들도 하나둘씩 몰려들어 둘을 중심으로 커다란 원을 만들었다.

스리슬쩍 호국의 곁으로 다가온 신입이 말없이 주먹을 들어올려 보였다.

이렇게까지 했음에도 말을 듣지 않는 둘에게 따끔한 주먹 맛을 보여주겠다는 의미 같아서 호국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차라리 싸울거면 윗대가리들이 싸우는 게 나아. 윗대가리들이 편하게 명령이나 내리고 있으면 힘든 건 병사들이거든."

작업! 작업! 그리고 작업! 안드로이드가 있음에도 병사가 쉬는 건 절대로 두고보지 못하는 윗대가리들이 손가락으로 자신들을 부려먹던 일이 어디 한 두번이었던가.

호국은 군인다운 '무언가'를 배우기 보다 단연코 작업을 훨씬 더 많이 했다. 지금도 종종 잠들면 꿈 속에서도 삽질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저렇게 풀게 하는 게 좋아. 최소한 패싸움이 일어나진 않잖아?"

호국의 말이 끝난 순간 초콜릿 지휘관이 군청 지휘관의 목을 잡아서 조르기에 들어갔다. 분명 쌓인 게 많았으리라.

물론 그런 모습도 귀여웠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의 다툼을 보는 어른처럼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다가, 호국은 이내 뒤돌아섰다.

야간 근무가 피곤한 일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두 층 정도는 더 돌아봐야 했다. 야근 수당을 받으려면 그만큼 일해야 양심에 덜 찔리는 법.

호국은 미리 열어두었던 체크 포인트를 향해 먼저 움직였다.

자신의 등 뒤에서 1.8m 크기의 초콜릿 군복 차림의 군인이 생겼다가 다시 바뀌는 모습을 보지 못 한 것은 결코 그가 둔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인간의 감각으로 인지하기엔 너무나도 조용했고, 빨랐으며, 완벽한 변태(變態)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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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팀장님 본 사람 없어?"

"몰라, 잠깐 담배라도 피러 가셨겠지. 아오 진짜...!"

B62의 고문 시스템을 제어하고 있던 한 연구원은 떡진 머리를 벅벅 긁으며 신경질을 냈다.

놈이 고문 기계들을 벌써 36%나 박살내버렸다. 어차피 은폐실의 벽과 격벽은 절대로 뚫을 수 없겠지만, 잠깐이라도 손을 떼면 격벽 제어 시스템도 나갈까봐 조마조마 하고 있었다.

"'등가교환의 법칙' 막고 있냐?"

"그래. 이 좆같은 새끼 고문 시스템 잠깐 정지했다고 기계들을 죄다 과자로 만들고 있어. 이거 나중에 시말서 쓸 각 날카롭게 섰다."

"팀장님이 알아서 잘 둘러대시겠지. 여긴 처리 시설이라서 변수 생기는 거야 흔한 일이잖아?"

"변수도 그냥 변수여야지. 지금 은폐 실패만 셋에 고문 시스템 제어 불가능만 일곱이야. 이거 관리봇이 복구하려면 시간 깨나 잡아먹을 걸?"

"여차하면 상층부에 깨질 각오 하고 대처반 부르면 돼. 예전에도 그렇게 했잖아."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남자가 뭐가 그리 걱정이냐며 다 식은 커피를 홀짝였다.

말은 그렇게 해도 본인 역시 연신 시스템을 조작하면서 은폐에 실패한 한 ES의 행적을 CCTV로 뒤쫓고 있었다.

밀짚모자를 쓴 허수아비가 고위험군의 체크 포인트를 박살내려고 미친듯이 낫과 쟁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호밀밭의 파수꾼' 이라는 이름이 붙은 ES였는데, 놈은 곡식을 훔쳐먹는 새 대신 밭에 접근하는 모든 인간들을 죽이면서 악명을 떨쳤다.

문제는 그 밭이 놈이 처음 발견된 밭만이 아닌,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밭이 대상이었다는 점이다. 놈은 자신의 분신과 같은 밀짚 허수아비를 끊임없이 만들어내서 지구상에 마구 흩뿌렸다.

지금도 감자맨과 마찬가지로 분신은 발견되는 즉시 기동타격대가 처리하고 있으며, 본체인 놈은 2급 보안등급을 부여받고 B72에 은폐되어 있었다.

놈에겐 나무나 밀짚 따위의 재료를 제공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일단 밀짚이나 나무만 있으면 인간을 살육하는 허수아비 분신을 공장 기처럼 마구 만들어냈으니까.

놈도 그걸 알고 있기에 금속과 콘크리트 밖에 없는 공간에서 빠져나오려고 필사적이었다. 분명 저 체크 포인트도 오래 버티지 못 하고 박살날 것이다.

'관리봇이 다시 깨어나려면 두 시간 정도 남았다. 시간상 놈들이 B40을 넘어오는 건 충분히 막을 수 있어.'

체크 포인트는 인간 입장에선 번거롭기 짝이 없는 관문이지만 ES 입장에선 탈출을 방해하는 장애물이었다.

관리봇이 깨어나기만 하면 시설내의 모든 시스템들을 빠르게 제어해서 어떻게든 놈들을 다시 은폐실로 밀어넣어줄 것이다.

아주 잠깐, 피곤을 이기지 못한 그가 기지개를 힘껏 켜며 등을 뒤로 꺾었다.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간 고개로 등 뒤의 광경을 보았다. 분명 꺼질 일이 없는 모니터룸의 전등이 깜빡이고 있었다.

'잠깐, 은폐에 탈출한 건 셋이지만 난 B72만 확인했고......'

그는 이런 사태에서도 골아떨어져버린 다른 연구원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ES들이 B40을 넘지 못 할 거라 생각해서 관리봇을 기다리는 김에 잠깐 눈이나 붙이자고 생각했곘지.

그 순간, 모든 불이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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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있기에 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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