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 업무 일지 : 야간근무(3)
"끄윽."
편의점 바깥에 의자를 가져다 놓은 호국은 빵빵하게 찬 배를 쓰다듬으며 행복한 포만감을 만끽했다.
신입은 별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식사 도중에 대화가 성립되진 않았지만, 애초에 호국이 신입을 상대로 할 이야기가 워낙 많았던 터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혼자서 떠들어댔다.
무인 편의점 관리라는 꿀자리를 얻은 신입은 자신보다 똑똑할 수는 있어도 자신보다 아는 건 적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6-01부터 6-30에 대한 이야기까지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신입도 눈치가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호국이 이야기 도중 건네는 음식은 곧잘 받아먹었는데, 놀랍게도 헬멧의 바이저만 열어서 음식을 흡입하듯 먹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헬멧을 벗을 틈도 없을 만큼 굉장히 배가 고팠던 것인지, 아니면 아직 친한 관계가 아니라 낯을 가리는 건지 조금 햇갈리는 광경이었다.
어쨌건, 그렇게 늦은 식사를 하면서 신입에게 유익한(?) 정보들을 알려주었으니 자신도 선임 노릇을 했다고 판단했다.
식곤증이 오지 않을 정도로만 휴식을 취한 호국은 가볍게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밥도 먹었겠다, 신입과 안면도 텄겠다, 이제 예정대로 야간 순찰을 돌 시간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B42에 올라가있던 엘리베이터를 아래로 내렸다.
'어차피 또 고장나서 제멋대로 움직인거겠지.'
엘리베이터가 말을 듣지 않아 잠시 갇혀있어야 했던 악몽 같은 기억이 떠올랐다.
시설을 습격한 침입 세력들을 처치해서 공을 좀 세워보려고 했는데, 결국 안드로이드 한 기를 파괴한 선에서 그쳐버린 비운의 사건이었다.
조만간 상층부에 엘리베이터의 수리나 추가 확장을 건의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편의점에 있을 줄 알았던 신입이 발을 내밀어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는 걸 막았다.
"왜 그래?"
식사 도중에 '말 놓는다?' 라고 물어서 무언의 승낙은 얻었던 호국은 자연스럽게 신입에게 하대를 했다.
하지만 신입은 뭐가 문제인 건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엘리베이터의 '열림' 버튼을 연신 눌러댔다.
"나 이제 일하러 가야하는데?"
신입 역시 꿀자리이긴 해도 일단 무인 편의점의 관리를 맡았다.
땅파서 돈을 버는 게 아닌 만큼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하며 각자 맡은 바 업무에 집중하는 게 맞다.
슬쩍 신입의 발을 빼게 하려던 순간, 잠깐이지만 B44의 저위험군 전체가 잠시 정전이 되었다. 정전이 일어난 시간은 고작 2초밖에 되지 않아, 마치 누가 불을 껐다가 바로 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 또 정전이 일어났다면...어우."
까딱 잘못했다간 또 지난 번처럼 엘리베이터 안에 갇힐 수도 있었다.
낭패를 면한 호국은 그제야 발을 뺀 신입에게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워주었다. 요즘 신입들은 능력이 출중해서 그런지 정전이 올 것도 미리 예견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이번에야말로 아래로 내려가기 위해 버튼을 누른 호국은 신입이 냉큼 안으로 들어오자 깜짝 놀랐다.
"뭐야, 네가 왜 따라와?"
당연한 질문을 했지만 신입은 당연하게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어깨를 으쓱이며 호국의 옆에 붙어 섰을 뿐.
선임이 보는 앞에서 노골적으로 땡땡이를 치려는 건가 싶었으나, 신입은 태연하게 B45의 버튼을 눌렀다.
딱히 아래로 내려가겠다고 말한 적도 없는데 마치 호국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먼저 행동한 것이다.
그래서 '혹시?' 하고 생각했다.
'혹시 내 업무를 도와주고 싶은 건가?'
땡땡이를 치려했으면 신입이라도 따끔하게 혼내주려 했건만, 기꺼이 자신을 돕기 위해 따라나선 신입의 행동이 기껍기만 했다.
만약 헬멧을 착용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멍청하게 웃고 있는 얼굴을 들켰을지도 몰랐다.
'사람이랑 같이 일을 한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군에 있을 때도 경계 근무는 항상 전투용 안드로이드와 함꼐 했다.
작업 역시 혼자서 맡은 구역만 하거나, 산업용 안드로이드를 몇 대 끌고가서 한꺼번에 처리했던 일이 대부분이었다.
그 흔한 식사조차 타인과 함께 한 기억이 거의 없었던 만큼, 호국은 자의로 자신을 따라와준 신입의 모습에 괜히 흐뭇해졌다.
제 6 처리시설 차기 가드 에이스는 이 신입이 될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게 당연한거지. 선임이 가면 후임도 항상 따라와야하는 거라고.'
이것이 바로 타인보다 잘난 게 계급밖에 없는 인간이 맛보는 권력이란 것일까? 호국은 어깨가 들썩이려는 것을 애써 참으며 B45의 저위험군에 발을 디뎠다.
신입이 자신의 업무에 따라오기로 한 이상, 선임으로서 뭔가 보여줘야했다. 희대의 똥꼬쇼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근무 일주일만에 처음 발을 들인 B45의 저위험군은 딱히 특색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었다.
이곳은 누군가가 업무를 보기 위해 따로 마련된 공간이나 휴게실 같은 것이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다른 구역에 비해 아직 공사가 덜 끝난 것 처럼 손을 대지 않은 흔적이 많았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벽이나 먼지가 수북이 내려앉은 자재들이 구석에 쌓여있었다.
처음 방문했던 B41 저위험군 사무실보다도 훨씬 더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던 게 분명했다.
슬쩍 손가락으로 먼지를 쓸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먼지가 섬유 다발처럼 돌돌 말려나왔다.
진지하게 B45의 고위험군을 순찰하기 전에 청소부터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찰나, 신입이 다짜고짜 벽의 배전반에 다가가 마구 건드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죽어있던 전등 몇 개가 되살아나며 비상등의 불빛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저위험군이 다시 밝아졌다.
호국이 할 줄 아는 거라곤 기껏해야 ON, OFF 버튼을 누르거나, 레버를 당기는 게 전부인 것에 비해 신입의 능력은 실로 대단했다.
마치 손만 대면 뭐든 뚝딱 고쳐버리는 군부대의 맥가이버 상사를 보는 듯 했다.
'내가 없으면 안 되는 신입이 아니라, 신입이 없으면 안 되는 내가 될 것 같은데?'
이런 능력자에게 맡긴 일이 고작 무인 편의점 관리라니. 호국은 태스크 포스(TF)의 인력 낭비가 굉장히 심하다는 것을 자각했다.
자신처럼 무식하게 몸을 쓰는 놈이 필요한 일이 있듯, 이런 능력자가 필요한 일도 있는 법인데.
호국은 신입의 재능이 편의점 삼각김밥마냥 썩어갈까봐 내심 걱정했다. 여차하면 자신이 시간을 할애해서라도 무인 편의점 관리를 대신 하고, 신입에게 경비 업무를 좀 더 맡기고 싶었다.
절대 자신이 힘들어서 그런 게 아니라, 재능이란 건 썩히면 안 되는 것이니까.
저위험군의 체크 포인트 앞에 도달한 호국은 평소처럼 보안 카드를 꺼내 문을 개방하려고 했다.
하지만 손에 잡히는 거라곤 간식용으로 넣어둔 사탕과 초콜릿 몇 개뿐. 보안 카드는 어디에도 없었다.
"......"
자신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간 끝에 6-13에게 심하게 부딪쳤으며, 그 충격으로 카드를 떨궜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호국치곤 굉장한 추리력이었지만, 그 이전에 다시 되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짜증났다.
업무 시간엔 업무만, 휴식 시간에는 휴식만 하는 것이 모토인 호국에게 불필요한 시간 낭비란, 마치 성인 잡지에 눈치없이 끼어있는 남성 모델처럼 구수한 패드립을 불러 일으키는 존재였다.
"미안한데 잠깐 위에 다녀와야......"
삐익! 철컹.
호국이 사과를 하기도 전에 체크 포인트가 스스로 개방되었다. 그 앞에 서있는 인물은 용케 자신을 따라나선 신입 한 명.
잠깐 생각해보니 같은 경비인 신입에게도 체크 포인트를 열 수 있는 보안 카드가 있는 게 당연했다.
어차피 자신 말곤 B42의 고위험군을 돌아다닐 사람은 없을테니 돌아가는 길에 회수하자며, 호국은 여유롭게 발걸음을 옮겼다.
이왕 이렇게 됐으니 맨투맨 강의로 신입에게 경비 업무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하나하나 가르쳐줄 생각이었다.
'복도 청소를 하려면 대걸레를 기본적으로 10번은 넘게 빨아야 한다는 사실은 모르겠지? 락스와 세제도 팍팍 써야하고, 다 끝나면 관리봇에게 검사도 받아야 해.'
이 지옥같은 경비 업무(청소)를 네가 과연 버틸 수 있겠느냐는 의미를 담아 시선을 보냈으나, 정작 신입은 덤덤한 태도로 고위험군의 체크 포인트도 열어주었다.
'이 넓은 복도를 혼자서 전부 청소해야 해' 라고 속삭여주기만 해도 부들부들 떨 게 뻔했지만, 호국은 좀 더 참기로 했다.
어차피 자신이 직접 복도 청소를 하면서 시범을 보여줄 생각이기에, 희망고문은 푹 익혀두는 편이 낫다.
반짝반짝 광이 날 때까지! 먼지 한 톨도 남지 않게 대걸레로 밀고 칫솔로 박박 문지른 다음 마른 걸레로 한 번 더 밀어야 한다고!
그렇게 외칠 순간을 고대하며 마침내 고위험군에 입장했다.
방음 효과가 죽여주는 체크 포인트 격벽이 개방되자마자 귓가를 찢는 듯한 괴성이 날아들고, 피와 살점이 터져나오는 광경과 목도하는 건......
생각보다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잘 들어라 신입."
답지 않게 목소리를 한껏 내리깐 호국은 목 근육을 뚜둑뚜둑 풀면서 말했다.
"여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절대 당황하면 안돼."
설령 열심히 청소해놓은 공간이 똥오줌으로 범벅이 된다고 해도 당황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을 어지럽히는 일이 일상인 이곳에서 매번 그런 일에 당황하면 정신적으로 금세 지칠 것이 뻔하지 않은가.
호국은 손가락으로 헬멧에 완만한 U 자를 그리며 스마일을 강조했다.
"나도 잘은 모르겠는데, 여기서 우리가 하는 일은 딱 하나더라고. 서비스."
물론 외부에서 방문하는 손님을 위한 서비스가 아니다. 이 시설에 거주하는 ES를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다. 다만 편의점이나 고객센터처럼 감정 노동만 할 게 아니라 육체적 노동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점이 까다롭다면 까다롭다.
호국은 슬쩍 고개를 돌려 넓은 복도에서 한창 벌어지고 있는 신장 10cm 인간들의 전쟁을 내려다 보았다.
거의 100년 전쯤에나 입었을 법한 천과 면 소재의 군복에 깡통 같은 철모를 쓴 10cm 군인들이 각기 다른 진영을 향해 미친듯이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방 문이 죄다 열려있었기 때문에 줄줄이 튀어나오는 10cm 군인과 탱크는 지칠 줄 모르고 격돌했다.
여기서 호국이 신경 쓴 건 어떻게 10cm 인간들이 존재할 수 있느냐가 아닌, 어떻게 10cm 인간들이 감히 자신의 업무 구역에서 패싸움을 벌이냐는 것이었다.
"일단 패싸움부터 말리자. 그리고 그건 먹으면 안 돼."
마침 발 아래로 지나가는 난쟁이 하나를 집어 헬멧 안으로 밀어넣으려던 신입에게 짧막한 경고를 주었다.
군복이 갈색인데다 이목구비가 보이지 않아서 마치 마쉬멜로우에 초콜릿을 덧씌운 과자처럼 보이지만, 눈썰미 좋은 호국의 눈엔 그들도 틀림없는 인간으로 보였다. 하다못해 원숭이는 아닐테니까.
호국은 발 아래를 열심히 뛰어다니는 난쟁이 군인들을 밟지 않게 주의하며, 딱봐도 평시엔 군인들을 빡세게 굴리다가 전시만 되면 제 잘난 맛에 행동할 것 같은 양반을 발견했다.
그런 양반들은 대부분 쥐뿔도 없는 주제에 계급밖에 믿을 게 없는 부사관이거나 장교였다.
'저런 타입이 모든 병사들의 적이지.'
열심히 뛰어서 비비탄총 같은 걸 쏴재끼고 있는 군인들에게 마구 윽박지르기만 하는 놈. 전쟁을 지휘하는 중요 인물이지만, 성격이 구리다면 가장 쓸모없는 부류이기도 했다.
호국은 잘 들리지 않지만 연신 무어라고 소리치고 있는 작자의 뒷덜미를 집어 올렸다.
"---! --!!"
"뭐라는 거야."
병사가 알아듣지도 못 할 말을 씨부리는 건 현실의 군 장교나 이곳의 군 장교나 별반 다를 게 없었다.
특단의 조치로 악을 써대는 작자를 앞주머니에 체포한 호국은 반대편 진영의 지휘관도 똑같이 사로잡았다.
패싸움은 대개 윗대가리들의 자존심 문제가 불거져 갑작스럽게 일어난다. 그러니 윗대가리들만 제압하면 오합지졸들의 싸움도 자연스럽게 소강상태에 접어들 터.
예상대로 소리만 치는 지휘가 들려오지 않자 당황한 병사들이 개미처럼 주변을 마구 돌아다니며 자신들의 지휘관을 찾아나섰다.
뽈뽈 거리며 돌아다니는 인간들이 간혹 호국의 다리에 매달려 그늘진 곳을 살펴보거나, 호국의 다리 안에 숨겨진 공간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주먹으로 탕탕 두들겨 보기도 했다.
그러다 포기하고 돌아가는 모습이 꽤 귀여웠다.
호국은 또 다시 자신 몰래 병사를 집어먹으려고 하는 신입의 손을 쳐낸 후, 혼란의 도가니 속에서 박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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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있기에 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