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 업무 일지 : 6일째(5)
"잡아! 저 새끼 못 움직이게 해!!"
"놔 씨발! 내가 저 새끼 죽여버리고 나도 죽어버릴라니까! 안 놔?!!"
약 3년 전 부터 개인 연구를 진행해왔던 연구원 중 한 명인 박선명이 돌아버렸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오늘 오전, 김호국이 TF의 부름에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모든 연구원들이 합심하여 크고 아름다운 똥덩어리들을 친히 준비했다.
흡혈귀인 ES 6-01 에게는 절대로 먹여선 안 되는 피를 수혈팩에 담아 건네주게끔 했고, 인간을 영양분 삼아 자라는 6-04에겐 혐오스러운 화학비료를 주게 한 것이다.
그밖에도 여러 물건들을 준비해서 행여나 김호국이 빠져나갈 수 없게끔 철저하게 덫을 깔아놨다.
자신들은 그저 모니터링룸에 모여 앉아 팝콘과 탄산 음료를 곁들이며, 그가 얼마나 오래 버틸지를 두고 내기하는 것이 오늘 하루를 장식하는 마지막 일과였다.
그런데 김호국은 가장 처음부터 제멋대로 일을 망치고 말았다.
"운좋은 새끼. 저걸 저렇게 빠져나가는군."
"아...6-01은 '신선하고 건강한' 피만 마셨었죠?"
누가 전설상에 존재하는 흡혈귀 아니랄까봐 6-01의 입맛은 굉장히 까다로웠다.
혈액이라면 기본적으로 환장하지만, 6-01 역시 인간처럼 선호하는 취향이 있었던 것이다.
우선 혈액이 신선해야 한다. 인간의 체내에서 흐르고 있는 따끈하면서도 응고되지 않은 순수한 혈액이야말로 최고의 신선도를 자랑한다.
물론 연구팀 측에서 준비한 수혈팩도 신선도가 낮은 건 아니었다. 다름이 아니라 김호국 한 명을 족치겠다는 일념하에 가위바위보로 정한 꼴찌의 피를 수혈받아 준비한 것이었으니까.
6-01이 신선도 다음으로 신경쓰는 건 혈액 주인의 건강이다.
놈은 병들어 있는 인간을 잔인하게 살해할 수는 있어도 그 피는 절대로 마시지 않았는데, 그 증거로 이미 TF측에선 여러 환자들을 실험체로 투입해서 연구한 바가 있었다.
6-01은 실험체에게 고작 고지혈증이 있는 것 만으로도 그렇게나 죽고 못 사는 피를 일절 입에 대지 않았다. 대신 실험체의 끈적이는 지방을 하나하나 떼어내서 벽에 처바르는 광경을 보여주었다.
그런 6-01에게 호국은 각설탕을 몇 개나 집어넣은 피를 넘겨주었다.
고지혈증 환자의 피처럼 혈액 주인의 건강에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인간 입장에선 그냥 물을 마시는 것과 탄산음료 마시는 것의 차이였다.
깔끔떠는 6-01이라면 단호하게 혈액 섭취를 거부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건 또 아니었다.
연구원들은 팝콘을 씹다말고 김호국이 갑작스럽게 벌인 돌발 행동에 경악을 금치 못 했다.
"네가 그걸 왜 마시는데 미친 새끼야!"
ES에게 나눠주랬더니 대뜸 안 마시면 자기가 마셔버리겠다면서 한 모금 들이키는 모습이 아주 가관이었다.
심지어 저건 가축의 피도 아닌, 인간의 피였다. 혈액을 제공한 말단 연구원은 토가 쏠린다는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어쩌면 저것도 아주 틀린 행동은 아닐거야.'
이홍선은 6-01이 굉장히 굶주려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매일같이 이뤄지는 고문은 6-01을 급속도로 노쇠화 하였으며, 또한 신체의 재생을 위해 끊임없이 에너지를 사용하게끔 유도하고 있었다.
겉모습이 노인이 된 시점에서 더이상 어떠한 변화도 보이지 않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딱봐도 그로기 상태라는 걸 알 수 있다.
굶주린 맹수가 그래도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건강하지 않은' 음식을 먹는 걸 거부한다. 이건 언뜻 당연해보이면서도 공략하기 쉬운 허점이었다.
'자존심을 역으로 공략한거였군!'
김호국의 의도를 파악한 순간 이홍선의 전신에 전율이 일어났다.
소름이 돋은 양 팔을 문지르며, 그는 영상 속의 6-01이 스스로 구속구를 벗고 김호국에게 다가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김호국의 피를 빨지는 않더라도, 자신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김호국을 잔인하게 찢어발길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저 입맛 까다로운 흡혈귀가......!"
"각설탕을 몇 개나 집어넣은 피를 마시다니. 그것도 인간이 입 댄 피를!"
제 6 처리시설에 가장 오래 갇혀지낸 고참 ES 이면서도 여전히 흡혈귀 다운 성질이나 흉포함은 사라지지 않은 존재였는데.
일개 인간이 자존심을 살짝 건드려준 것 만으로도 태도가 확 바뀌었다. 아니, 태도를 바꾸도록 자연스럽게 유도된 것일지도 모른다.
'저 놈은 저걸 알고서...? 아니, 그럴리가 없다. 자신의 몸 상태가 어떤지도 모르는 멍청한 놈이 거기까지 계산했다면 애초에 이 시설에 돌아오지도 않았겠지.'
아무리 멍청한 일반인이라도 경비팀 78기까지의 역사를 살펴보면 자신의 위치가 명백하게 위험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김호국은 정밀검사를 받고도 건강하다는 말만 듣고 다시 이곳에 되돌아 오지 않았나. 둔하다거나, 눈치가 없다고 말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냥 멍청한 거다.
"어, 문을 열어놓고 나가는데요?"
"잘 됐어! 6-01은 인간의 피를 섭취하면 일시적으로 매우 흉포해지니까, 금세 쫓아가서 가드-079를 찢어발길거야!"
"뭐야, 그럼 게임 시작한지 5분 만에 끝나는 건가? 5분 컷에 건 사람이 누구지?"
"저요! 제가 걸었어요!!"
몇몇 연구원들이 다소 어처구니 없는 상황 속에서도 게임 자체는 생각보다 빨리 끝날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이홍선은 김호국이 그렇게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님을 알았다.
물론 피를 섭취한 6-01이 머지않아 흉폭해지고, 김호국을 쫓아 사냥할 것이라는 말에는 딱히 반론하지 않았다. 자신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서 5분 컷에 10만 크레딧 카드를 걸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그거고, 진짜 문제는 김호국이 6-04의 은폐실에 도달한 순간에 일어났다.
-가드-079의 요청을 확인.
-가드-079는 농약을 원하고 있습니다. 재고 목록 검색 결과 욱시클린 사의 표준 농약 제품을 확인. 가드-079의 요청에 따라 농약 두 통을 지급합니다.
모니터링룸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관리봇이 그의 황당한 요구를 받아들이고, 비품 창고에서 농약을 꺼내가버렸다.
럭비공마냥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김호국이라고 해도, 설마 자신들이 내린 명령 하나 제대로 못 지킬까 생각했는데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다.
"자, 잠깐! 관리봇! 3급 연구팀장의 권한으로 해당 요청의 승인을 거부한다! 이는 제 6 처리시설 연구팀의 실험이며, 팀 단위의 실험은 수석 연구원도 간섭할 수 없다는 내부 규정이 있다! 따라서 승인을......!"
-승인 거부 명령이 거부되었습니다. 제 6 처리시설에 한하여 가드-079에게는 그 어떠한 제약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의 직급은 경비팀장으로 상향 조정되었으며, 내부 규정상 경비팀장은 독자적인 판단에 의거해 시설 내부 상황을 통제할 권한이 있습니다.
"헛소리! 지금은 비상 사태가 아니야! 연구팀에서 진행중인 실험에 일개 경비팀장 따위가 간섭할 수 있다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고!!"
이홍선이 버럭 고함을 질렀지만 관리봇은 전자음 섞인 목소리로 이홍선의 말을 잘랐다.
-가드-079는 최고 권한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권한에 따른 직급으로 분류할 시 그는 FCD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것에 해당하며, 또한 최고 위원회 측에선 가드-079가 하고자 하는 모든 행위에 어떠한 제약도 없어야 한다는 행정 명령을 내렸습니다. 따라서 이홍선 3급 연구팀장의 모든 명령은 거부될 것입니다.
"개소리 집어쳐! 기계따위가 뭘 안다고 인간 사회에 대해 뭘 안다고 지껄이는 거야?! 야, 뭣들 하고 있어! 저 빌어먹을 AI 당장 꺼버려!!"
TF 산하의 모든 시설에는 기본적으로 AI가 항상 온라인 상태여야 한다.
AI가 오프라인 상태여도 책임을 묻지 않는 상황은 딱 둘 뿐이었는데, 하나는 AI의 자체적인 판단에 의한 접속 종료. 또 다른 하나는 AI가 오류를 일으킨 탓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경우 시설 관리 권한을 지닌 자가 접속을 차단하는 경우였다.
이홍선은 비록 3급 연구팀장이긴 하나, 제 6 처리시설의 시설 관리 권한을 지니고 있었다.
경비팀장에게도 주어지는 공통적인 권한이기는 하나, 대부분의 경비들이 수 개월을 넘기지 못 하고 사망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연구원 측의 지배력이 훨씬 더 강했다.
이홍선이 던진 보안 카드를 받아든 한 연구원이 관리봇의 시스템을 조작해 접속을 차단해버렸다.
AI가 오프라인 상태일 경우 시설 내부의 시스템은 모두 인간이 수동으로 조작해야 하지만, AI는 그 어떤 정보도 얻지 못 하고 공유할 수도 없었다.
즉 관리봇은 온라인 상태로 돌아온다고 한들, 그 사이에 김호국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또 누구에 의해 그런 짓을 당했는지 결코 알지 못 할 것이다.
'인간과 같은 추리 능력은 있지만, 인간과는 달리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절대로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못 하는 게 AI니까.'
이홍선은 접속이 끊긴 관리봇의 목소리를 더는 듣지 않게 되어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그래도 이곳에서 오랫동안 얼굴을 봐오며 알고지낸 사이인데, 들어온지 일주일도 안 된 애송이를 자신보다 더 높이 쳐주다니. AI나 꼰대들이나 죄다 미쳐버린 게 틀림없었다.
"팀장님. AI가 오프라인 상태일 경우 상층부에 자동적으로 로그가 전송되는데...저쪽에서 물어보면 뭐라고 해야 합니까?"
"뭐라고 하긴. 관리봇이 연구팀의 실험 도중 난입해서 변수를 발생시키려 했다, 라고 보고하면 돼. 우리에겐 CCTV 영상도 있는데 뭐가 그리 걱정이야?"
그렇다. CCTV 영상을 이미 확보해뒀으니 실험에 제대로 협조하지 않은 가드-079와 관리봇을 싸잡아 고발할 수도 있었다.
상층부에서 관리봇이 오류를 일으켰다는 말을 쉽게 믿어준다면 굳이 그런 짓을 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 증거 확보는 중요했다.
원래 이런 건 다 여론과 분위기가 중요한거다. 남자와 여자가 크게 싸워도 결국 눈물을 먼저 보이는 여자가 항상 승리하듯, 자신들도 연구원이라는 대체 불가능한 입장을 이용해 압박하면 그만이다.
경비나 기동타격대 같은 몸 쓰는 일이야 대체재가 많지만, ES를 연구하는 연구원은 대체가 불가능하다.
공무원 철밥통보다도 튼튼한 자신들의 모가지가 잘릴 일은 만분의 일 확률이라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저건 어떡합니까? 역시 말려야 하는 게......"
"이미 늦었어."
CCTV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김호국의 행위는 6-04를 대상으로 개인 연구를 준비중인 연구원을 미쳐버리게 할 만큼 충격적이었다.
농약을 희석시키거나 소량으로만 뿌리는 것도 아니고, 원액 두 통을 6-04의 은폐실 내부에 냅다 들이부어버렸다.
그 결과, 본래 화학비료만 들이부었다면 미쳐 날뛰어 김호국을 갈기갈기 찢어버렸을 6-04의 식물들이 빠른 속도로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데샤아아아아아아아악!!"
"진정해! 6-04가 저정도로 죽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잖아!!"
이미 인간이 아닌, 한 마리의 분충(糞蟲)이 되어 날뛰는 연구원을 몇 명이나 달려들어 단단히 포박했다.
이홍선도 그의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가 준비하던 개인 연구는 무려 6-04를 이용한 ES 처리였으니까.
6-04는 인간을 영양분 삼아 밀림을 형성하는 괴식물군인데, '만약 인간이 아니라 ES를 영양분으로 삼을 수 있다면?' 이라는 발상에서 그의 연구가 시작되었다고 들었다.
실제로 일부 인간형 ES에게서 어렵게 추출한 살점이나 피를 6-04에게 영양분 대신 공급했던 적도 있었다.
'결과는 반반이었지.'
영양분으로 소화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그렇지 않고 미쳐 날뛰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ES로 ES를 처리한다는 이이제이 전략이 어쩌면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담당 연구원은 벌써 몇 년째 그 연구만 붙들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김호국이 6-04의 은폐실에 농약 두 통을 때려박는 것으로 그의 승진과 부서의 꿈이 산산조각나버렸다. 비명을 질러가며 죽어가는 6-04의 식물들과 함께.
"놔! 놓으라고! 내가 진짜 저 개새끼 뚝배기 깨버릴 테니까!!"
4급 연구원이라도 보안 카드를 사용하면 권총을 보관하는 무기보관함에 손을 댈 수 있었다.
물론 무기보관함의 접근 기록이 서버에 남는 것은 물론, CCTV로 24시간 감시받고 있기 때문에 행여나 사고가 일어날 일은 없었지만, 지금의 그는 어딜 어떻게 봐도 사고를 저지르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였다.
수년 간 준비한 연구가 싹 날아가게 생겼으니 그의 심정을 모르는 자가 없었다.
그건 분명 독라(禿裸)가 된 기분이겠지.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동료의 자살 행위를 두고볼 순 없었기에, 다들 몸을 던져 필사적으로 그를 막는 것이다.
"아서라. 방사능 방호복이나 우주복을 입고도 ES에 의한 원인불명의 오염은 막지 못 했어. 우리가 왜 지상과 가까운 곳에서 근무를 하는지 생각을 해봐."
날뛰는 연구원에게 핀잔을 준 이홍선은 턱을 괸 채 CCTV의 영상을 예의주시했다.
그래, 정말 천운을 타고나서, 그리고 상황과 환경이 모두 기가막히게 맞아떨어져 B41에선 살아남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6-01은 설탕이 잔뜩 들어간 피를 섭취한 뒤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을 뿐, 아직도 움직일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껏 본 적 없는 광경이었다.
6-04는 대량의 농약을 흡수한 탓에 소규모 밀림의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아마 저 상태를 회복하려면 농약을 싹 세척한 후, 대량의 인간을 먹이로 던져줘야 할 것이다.
'하지만 6-10에선 ES의 분노를 피할 수 없을 거다.'
이홍선이 직접 프린트해서 정성스럽게 준비한 압류딱지는 결코 카지노에서 환영받지 못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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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있기에 제가 있습니다.